강원도 평화누리길 11코스(양구 돌산령길)

 

여행일 : ‘23. 9. 17()

소재지 : 강원도 양구군 동면 및 해안면 일원

여행코스 : 팔랑리대암산용늪 탐방안내소도솔산 전적지돌산령 정상해안입구(거리/시간 : 16km, 실제는 대암산 용늪 탐방안내소부터 10.7km를 3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평화누리길이란 북한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의 서해안 강화도에서 강원도 동해안 고성까지의 접경지역을 동서로 연결하는 자전거 길이다. 이중 강원도 관내(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을 경유) 강원도 평화누리길이라 부르는데 생태·평화의 상징공간인 DMZ 일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20개 코스(370.6km)로 구성됐다. 분단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지는 길,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평화의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들머리는 월운저수지 상부(양구군 동면 월운리)

중앙고속도로 춘천 IC에서 내려와 46번 국도를 타고 양구읍까지 온다. 송청교차로(국토중앙면 죽리)에서 31번 국도(양구·해안방면)로 옮겨 금강산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월운저수지에 이른다. 댐의 상부에 평화누리길  ‘DMZ평화의 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팔랑리(양구군 동면)에서 시작해 해안입구(양구군 해안면)에 이르는 16km짜리 구간. 하지만 팔랑리의 어디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서해랑길 같은 공식적인 트랙이 없음은 물론이고 선답자들의 기록도 중구난방. ‘가톨릭 팔랑리공소를 기점으로 삼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곳 월운저수지(같은 동면이지만 월운리)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아무튼 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대암산 용늪 탐방안내소 앞에서 출발하는 꼼수를 사용했다.

 평화누리길은 자전거 길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 같은 걷기 여행자들은 들러리인 셈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평화누리길보다 새로 개통되는 ‘DMZ평화의 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미 개통구간은 조금 더 기다렸다가 걸으면 될 것이고 말이다.

 이 구간은 ‘DMZ평화의 길(27코스)’도 함께 간다. 평화누리길(강원도 11코스)과 종점만 다를 뿐 시점은 같기 때문이다. 아니 월운저수지 구간은 두 탐방로가 약간 다르게 나있다고 했다.

 일단은 도로 건너에 있는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부터 둘러보기로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의 무한책임임과 동시에 우리네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의무가 아니겠는가. 참고로 피의능선 전투(Battle of Bloody Ridge)’ 1951 8 16일부터 9 5일까지(20일간) 벌어진 전투다. 한국전쟁의 최대 격전 중 하나였던 이 전투를 기억하고, 희생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전적비를 세웠다.

 피의능선 전투는 국군이 휴전회담을 진척시키는 동시에 휴전에 대비하여 중요한 요충지(캔사스선 북방 10~20km 지역에 위치한 수리봉 일대)들을 확보하기 위해 실시한 공격작전이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의 1개 연대 규모, 그리고 북한군 1개 사단 규모의 사상자(1,480여 명이 사살되고 70여 명이 생포)가 발생하자 미군 신문(Stars and Stripes) 피의능선 전투라 이름 지었다. 이 전투의 승리로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난다.

 실제는 대암산 용늪 탐방안내소 앞에서 출발했다. ‘돌산령 옛 고갯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출발할까도 했지만, 경사만 가파를 뿐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생략했다. 특히 쉼터용 정자에 화장실까지 갖추었으니 출발지점으로 이만한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참고로 대암산의 1,280m 구릉지대에 형성된 용늪은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남한에서 처음 발견된 고층습원(高層濕原)으로 다양한 지연환경과 동·식물을 갖고 있어 1989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 1997년에는 국내 최초로 람사르 조약의 습지로 등록되었다.

 용늪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탓에 일정 기간에 제한된 인원에게만 탐방을 허용한다. 탐방안내소는 이곳 말고도 인제군의 서흥리(10년 전 내가 이용했던 곳이다)와 가아리가 있다. 아무튼 민간통제선 안에 자리 잡고 있어 군의 통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 저처럼 문이 굳게 닫혀있는 이유일 것이다.

 10 : 14. 돌산령 옛 고갯길(돌산령 터널이 생기기 전 양구에서 해안으로 갈 때 이용하던 지방도)을 올라가며 트레킹이 시작된다. 이 구간(12.34km)은 갓길이 따로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다. 산자락 쪽으로 파란 선을 그어 자전거 길을 구분하고 있으나 안전 확보는 라이더(보행자 포함)의 몫이다.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이정표는 돌산령 정상까지 4.7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11코스가 시작되는 팔랑리까지는 5km. 딱 그만큼 단축했다고 보면 되겠다.

 돌산령 정상까지는 400m 이상 고도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길은 경사를 거의 못 느낄 정도로 평탄하다. 하긴 5km를 걸으며 400m만 높이면 되니 서두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몸이 편하면 마음까지도 여유로워지나 보다. 심심찮게 변하는 주변풍광에 눈 맞추며 걸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 절개지의 비탈진 사면에 박아놓은 락볼트(soil nailing공법). 도로개설 당시의 어려움을 대변해준다.

 길가 산비탈은 산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초여름에는 흰색의 화려한 꽃으로, 가을에는 붉게 익은 열매로 우리를 사로잡는 나무다. 그 열매가 딸기와 비슷하게 생겨서 산딸나무라 부른다. 그나저나 붉고 고운 열매가 군침을 돌게 해 따먹어 봤다. 하지만 약간 달달할 뿐 즐겨 찾을만한 과일은 아닌 것 같다.

 10 : 31. 첫 번째 쉼터(이정표 : 정상까지 3.9km)에 닿았다.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온 이들에 대한 배려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자전거 거치대는 기본. 파고라 모양으로 만든 쉼터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지붕까지 씌웠다. 전천후인 셈이다. 그나저나 쉼터라고 해서 꼭 쉬었다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쉼터는 있는 자체로만으로도 나그네에게 기쁨을 준다.

 옛 고갯길은 군인 통제 하에 있다고 봐야겠다. 길 양쪽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는 것은 기본. 도로도 순찰차량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길섶에 핀 야생화를 촬영하는 중인데, 순식간에 차량이 나타나더니 도로를 벗어나지 말라는 경고를 내릴 정도였다.

 갖가지 경고용 현수막도 이 구간의 특징 중 하나다. 민통선 이북의 군사시설보호지역이라서 무단출입 및 채집·영농활동을 금지한단다.

 순찰차의 말마따나 철조망을 넘어서는 안 된다. 이 울타리는 또 북한에서 넘어오는 ASF(아프리카 돼지열병) 감염 멧돼지의 차단막까지 겸하고 있나보다.

 무단출입은 물론이고 사진촬영까지 금지한단다. 전적지를 안내해주던 병사는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니 카메라나 핸드폰은 꺼내지도 말라며 겁을 주고 있었다.

 그나마 이건 부탁에 가깝다.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의 주요서식지이니 아끼고 보호해주잔다.

 가끔가다 허락되지만 조망 또한 주요 볼거리다. DMZ 방향의 산하가 널따랗게 펼쳐지는데, 지대가 높아서인지 운해로 뒤덮여 있었다.

 올 여름, 무섭게 쏟아지던 빗줄기는 이곳에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 산사태가 도로를 덮친 곳에서는 위험을 무릅쓴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도로가 유실되다시피 한 곳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가끔은 저런 급경사 구간이 나타나기도 한다. 1,050m(돌산령 정상)까지 고도를 높여야하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맞다. ‘DMZ평화의 길(27코스)’ 안내판은 이 구간을 물리적 난이도가 높다고 적고 있었다.

 10 : 55. 24분쯤 더 걸어 두 번째 쉼터를 만났다. 이정표는 정상까지 2.2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돌산령 고갯길 ·구도로가 나뉘는 삼거리에서 정상까지의 거리가 6km라고 했으니 대략 2km마다 쉼터를 만들어놓은 셈이다.

 돌산령 인근은 ‘DMZ 야생화벨트 사업이 시행된 모양이다. 청사초·김의털·비비추·꿀풀·기린초 등을 심고, 흰민들레·질경이·구절초·벌개미취 등은 씨앗을 뿌렸단다. 시간이 흐르면 동아시아 그린브릿지 연결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은 몰라도 야생화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은 많이 찾아오겠다.

 이 지역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라는 것도 기억해 두자. 주목·분비·거제수 등을 보호하고 있단다.

 안내판에 이끌려 카메라의 초점을 야생화에 맞춰본다. 가장 먼저 잡힌 것은 개미취’. ‘들국화라 부르는 국화과 꽃의 얼굴마담이다. 참고로 들국화란 산국·감국·쑥부쟁이·개미취·구절초 등등 산과 들에 피는 국화과의 꽃들을 싸잡아 부르는 이름이다.

 생김새가 조금 다르나 이것 역시 개미취.

 요건 구절초’, 세분류하면 낙동구철초란다. 모 대학 도예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여사친 산우가 심심찮게 보내주는 차의 원료이기도 하다. 가끔 이 차를 마시는데 은은한 노란빛이 우려난 차색도 곱지만 향도 정말 일품이다. 향긋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을 정도로...

 블루 마거리트(Blue Marguerite)로도 불리는 블루데이지(Blue Daisy)’이다. 한국 이름은 청화국이라나?

 백공작이라고도 불리는 미국쑥부쟁이. 싸잡아서 들국화로 부르는 국화과의 꽃들은 종류도 많다. 꽃의 생김새도 구분이 불가능 할 정도로 비슷비슷하다. 작은 꽃들이 총총하게 피는 미국쑥부쟁이가 유일하게 뚜렷한 차이점을 본인다고나 할까?

 작약, 당귀, 황기, 지황과 더불어 5대 기본 한방 약재 중 하나로 꼽히는 천궁도 꽃을 활짝 피웠다.

 야산에서 피는 구절초나 개미취와는 달리 심산이나 고원에서나 만날 수 있는 체꽃(스카비오사)’도 눈에 띈다. 꽃봉오리의 모양이 구멍 뚫린 체를 닮았다고 해서 체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스카비오사(Scabiosa) 이란 뜻의 라틴어, 이 꽃이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11 : 29: 굽이굽이 돌산령길을 돌아올라 도솔산전적지 입구에 이른다. 하지만 군인들이 딱 막고 섰다. 그들의 안내를 받아야만 탐방이 가능하단다. 말이 안내지 전적지를 둘러싼 울타리를 넘을 것을 대비한 경계가 아닐까 싶다.

 도솔산 전적지의 입구임을 알리는 빗돌. 붉은 글씨로 적힌 무적 해병이 눈길을 끈다. 도솔산 전투의 승리를 치하하며 이승만 대통령이 내려준 휘호라고 한다. 한편 도솔산 전투를 기리는 도솔산가라는 군가가 제정되기도 했단다.

 도솔산(兜率山, 1,148m)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도 도솔산 전적지를 가리킨다. 전적지 뒤로 길이 나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완주하면 담낭이 튼튼해진다는 양구 십년장생 길(4년길)’ 안내판도 눈에 띈다. 도솔산과 대암산 정상을 거쳐 양구생태식물원으로 떨어지는 4코스란다. 하지만 민통선 안이라서 통행은 불가. 길은 길이나 걷지 못하는 길인 셈이다.

 11 : 34. 전적지는 꽤 넓게 조성되어 있었다. 위령비를 중심으로 한때 해병대의 주력 상륙장비로 사용되던 수륙양용장갑차. 그리고 비목을 연상시키는 나무 조형물들이 들어서 있다.

 도솔산지구전투 6·25전쟁 당시 한국해병대 제1연대가 북한 공산군 제5군단 예하의 제12사단 및 제32사단이 점령 중이었던 도솔산(1,148m)을 혈전 끝에 탈환한 전투를 말한다. 첫 공격은 1951 6 4일 시작됐다. 그리고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면 적의 공격을 받아 다시 빼앗기고, 또 빼앗는 가운데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던 24개 목표 고지를 6 19일 완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투에서 2,263명의 북한군을 사살하고 44명을 생포했으며, 아군 또한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산악전 사상 유례 없는 대공방전으로 해병대 5대 작전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평화나무·생명나무가 눈길을 끈다. DMZ을 횡단하는 평화·생명지내 체험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는데, ‘생명의 열쇠로 평화의 문을 열고, 평화의 들판에 통일의 집을 짓는다.’는 어느 단체의 홍보문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위령비는 나무 장승들이 지키고 있었다.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그날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양구군 각 면에서 만든 것들이란다. 하지만 난 6.25 전쟁 당시 스러져간 무명용사들의 돌무덤과 철모가 올려진 비목(碑木)을 연상한다. 저 위령비가 그리 만들었을 것이다.

 전적지에서의 조망도 뛰어난 편이다. 아까 고갯길을 올라오면서 바라보던 풍경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아니 높아진 고도만큼이나 시야도 넓어졌다.

 되돌아 나오는 길.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돌산령 정상이 고개를 내민다. 돌산령 정상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사진촬영이 금지된다.

 11 : 50. 돌산령 정상에 올라섰다. 하지만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사진촬영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정상을 묘사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군부대가 나오지 않도록 도로만 카메라에 담는다.

 이곳이 돌산령의 정상이라는 표식은 일절 눈에 띄지 않았다. 그 흔한 이정표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이곳의 해발(1,050m, 내 앱은 980m를 찍고 있었다)을 적은 표지판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헬기장 너머로 보이는 저 봉우리가 도솔산(兜率山, 1,148m)’이 아닐까 싶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산, 때문에 웬만한 국내의 산을 다 올라봤지만 도솔산은 아직도 미답의 산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그 왼쪽에 있는 산의 정체는 뭘까. 도솔산보다 한참이나 더 높고, 망루까지 설치되어 있는데...

 몇 걸음 더 걷자 길이 나뉜다. 평화누리길은 계속해서 도로(돌산령 옛 고갯길)을 따른다. 왼쪽은 군의 관측기지인  ‘OP(observation post)'로 연결되니 진입하면 안된다.

▼ 왼쪽으로 가면 호국 도솔암이 나온단다. 한국전쟁 당시 여섯 번이나 주인이 바뀐 격전지 가칠봉이 인접한 최전방 군법당이다. 해발 1,070미터에 위치해 설악산 봉정암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절이란다.

 11 : 56  12 : 21. 세 번째 쉼터에 이른다. 널찍한 공간에 전망까지 좋아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우리도 준비해간 간식을 서로 나누며 여유롭게 머물다 갔음은 물론이다.

 판박이로 만들어놓았던 아까의 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많은 이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공간도 넓히고 벤치도 여럿 배치했다. 그래선지 많은 이들이 이곳을 전망대로 분류하고 있었다.

 발아래로 펀치볼(Punch Bowl)’이 펼쳐진다. 아니 한 폭의 풍경화가 그려진다. 고산준령이 기다랗게 펼쳐지는가 하면 그 봉우리들을 운해가 감싸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양구 제일의 전망대 중 하나로 꼽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참고로 펀치볼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이 분지를 둘러싼 모습이 화채 그릇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펀치볼 평화누리길 안내판도 눈에 띈다. 2주 후에 걷게 될 12코스(양구 펀치볼길)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평화누리길은 공식적인 지도가 없어 답사를 위한 준비나, 답사 후 기록을 남길 때 애로가 많다.

 다시 길을 나선다. 이후부터는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전형적인 가을 풍경을 연출한다.

 12 : 33. 네 번째 쉼터에 다다른다.

 건너편에는 대암샘터라는 약수터가 있었다. 사시사철 가뭄을 타지 않는 샘이라니 돌산령 고갯마루를 넘어온 라이더나 트레커들에게 감로수가 되어주기 충분하겠다.

 그렇다고 샘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두꺼비 조형물의 입에 파이프를 박아 물이 흘러나오게 하고 있었다.

 길은 굽이굽이 내리막의 연속이다. 그런 길을 걷다보면 요런 대전차 방어시설도 만나게 된다. 돌산령 옛길이 군사요충지라는 얘기일 것이다.

 13 : 10. 다섯 번째 쉼터를 지났다싶으면 곧이어 계곡 쉼터를 만난다.

 하지만 문이 닫혀있는 게 아닌가. 산림청의 입산금지 팻말과 지정된 장소 외의 출입을 금한다는 군부대장의 서슬 퍼런 경고판도 세워져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자물쇠를 채워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안에는 ‘DMZ펀치볼 둘레길 탐방객들이 자연을 벗 삼아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는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출입이 허용된 공간이라는 얘기다.

 작은 폭포가 겹겹이 쌓여있는 계곡은 머물다가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아니 족탕이나 알탕을 즐기기에도 이만한 곳이 없겠다.

 맞은편, 길 건너에 있는 야생화공원은 완벽하게 막혀있었다.

 오유밭길은 해안면의 ‘DMZ펀치볼 둘레길 4개의 노선(평화의길·오유밭길·만대벌판길·먼멧재길) 중 하나다. 바람꽃·노루귀·얼레지·제비꽃 등 북방계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고, 전쟁의 흔적을 통해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진입로는 열쇠를 채워 출입을 막고 있었다. 안내판은 그 이유를 적었다. 곳곳에 미확인 지뢰가 있으므로 숲길 등산지도사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등산지도사를 대동할 때만 문이 개방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13 : 30. 20분쯤 더 걸으면 453번 지방도에 내려서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첨부된 지도에 해안입구로 표시된 지점이다. 오늘은 3시간을 걸었다. 앱에 10.70km가 찍혀있으니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해발 1,050m의 돌산령 고갯마루를 넘는 게 만만찮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정표(해안면 4.9km/ 돌산령 정상 5.1km)는 지나왔거나 가야할 곳의 지명과 거리만 표시하고 있을 뿐,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11코스(양구 돌산령길)의 종점으로 알고 있는 내 앎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종점 오른편은 돌산령터널이다. 저 직선코스를 놓아두고 만산령 옛 고갯길을 에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