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탄고도 1330’ 2(각동리-모운동)

 

여행일 : ‘23. 8. 5()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일원

여행코스 : 각동리가재골대야리김삿갓면사무소→예밀교차로  예밀와인힐링센터구름품은캠핑장모운동(거리/시간 : 18.8km)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폐광지역인 영월군·정선군·태백시·삼척시 등 4개 지역을 잇는 운탄고도 1330’은 과거 석탄과 함께 흥망성쇠를 누리던 길이다. 출퇴근하는 탄부를 태우거나 탄 더미를 실은 트럭들이 이 길을 달렸었다. 그게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유산이자 역사·문화·힐링의 길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사라진 옛길을 복원하고, 와이너리(영월만항재(만항재매봉산(태백미인폭포(삼척) 등 주요 포인트들을 스토리텔링으로 각색해 세상에 내놓았다. ‘1330’은 운탄고도(運炭高道) 전체 구간 중 해발이 가장 높은 만항재의 높이에서 따왔다.  9개 구간으로 나뉘는데 그중 두 번째 구간인 김삿갓 느린 걸음 굽이굽이 길을 오늘 걷는다. 옥동광산 광부들이 내뱉던 숨결에 더해 김삿갓의 흔적, 그리고 winery에 들러 시음까지 해볼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들머리는 각동마을 버스정류장(영월군 김삿갓면 각동리)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내려와 34번 국도를 따라 태백방면으로 가다 영월교차로(영월읍 방절리)에서 88번 지방도(단양방면). 13km쯤 달리다 각동교차로(김삿갓면 진별리)에서 ‘595번 지방도(강변로)’로 옮겨 남한강을 건너면 곧이어 각동마을 버스정류장에 이르게 된다.

 1길과 2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버스정류장 옆에 설치되어 있다.

 2길은 김삿갓 느린 걸음 굽이굽이 길이란 브랜드를 내걸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 18.8km의 산길을 걸으면서 김삿갓 산천경개 하듯 느릿느릿 주변경관을 둘러보라는 모양이다. 하지만 폭염 경보에 놀란 우리 일행은 김삿갓면사무소에서 모운동까지만 걷기로 했다. 아니 2년 전에 걸었던 외씨버선길과 겹치는 구간을 제외시켰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다.

 10 : 26, 실제로는 역방향(모운동에서 출발)을 선택했다. 굽이굽이 돌아가며 망경대산(1,087m)을 에도는 2길 중 가장 높은 지점(667m)을 조금이라도 편히 오르기 위해서이다. 제대로 진행하면 오르면 400m가까이를 치고 올라야지만 이곳 모운동에서는 140m만 오르면 되니 망설일 필요조차 없지 않겠는가. 특히 오늘처럼 폭염 경보까지 내려진 날이라면...

 김삿갓계곡 입구에서 모운동으로 올라오는 1차선 도로는 구절양장처럼 한없이 구불댄다. 거기다 천애의 낭떠러지 위로 나있어 눈 맞추기조차 두렵다. 하지만 산악회 황사장님은 요리조리 잘만 달린다. 그렇게 도착한 모운동에는 제법 너른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모운동을 찾는 관광객들이 꽤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구미를 당기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구름이 모이는 마을, 모운동 걷는 길이란다. 광부의 길, 명상길, 망경사길, 굽이길, 숲속길이 모운동 주변을 실핏줄처럼 헤집고 다닌다. 만사 제치고 저걸 걸어봐? 하지만 나는 주어진 시간 안에 트레킹을 마쳐야만 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아서라.

 스탬프보관함은 모운동 쉼터에 기대듯 설치되어 있었다. 주차장 입구, 버스정류장 옆이다.

 트레킹을 나서기 전 마을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첫 번째 만남은 운탄고도 마을호텔이다. ‘tvN’의 동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운영하던 호텔이다. 엄홍길 대장을 필두로 그의 찐친 정보석 그리고 막내 이장우와 함께 저 호텔을 운영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출연자들이 여유를 즐기던 소품이 눈길을 끈다. ‘운탄고도 마을호텔 방영 이후 모운동은 관광객이 급증했다고 한다. 제공되는 식사와 편의를 통해 백패커들과 출연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해피 슬로우 라이프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호텔 맞은편에 위치한 양씨판화미술관은 양태수 판화작가와 전옥경 냅킨아트 공예가 부부가 건립한 사립 미술관이다. 양태수 작가의 자연을 소재로 한 흑백판화와 다색 판화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냅킨아트 공방에서는 냅킨아트 공예 생활소품과 장식품이 전시·판매되고 있다.

 근처 폐가(창고일지도 모르겠다)는 벽화로 인해 동화 속 나라로 새롭게 태어났다.

 호텔 앞, ‘아랫마을을 가리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짬을 내서라도 벽화마을에 들러보라는 모양이다.

 작은 화전마을이던 모운동(募雲洞)’은 옥동광업소가 문을 열면서 상황이 확 변했다. 돈을 캐낸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탄광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1만 명이 넘는 주민들로 늘 북적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영화는 1989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한순간에 무너진다. 사람들은 떠나고 과거의 영화만 남긴 채 마을은 잊혀졌다. 그러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주민들은 텅 빈 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마을 곳곳에 산책로와 등산로를 만들고, 탄 더미가 쌓여 있던 빈터도 꽃을 심어 폐광의 흔적을 지워냈다.

 마을은 곳곳에 동화 속 이야기를 담았다. 주택이나 담장의 빈 공간에 화사한 꽃, 백설 공주, 푸른 산과 구름 등 벽화를 빼곡히 그려 넣었다. 벽화마을이라는 애칭이 붙은 이유이다. 그게 또 동화를 담았다고 해서 동화마을로도 불린다.

 무늬만이지만 사진관도 복원시켰다. 당시는 저런 사진관 말고도 영화관·당구장·미장원·양복점·병원 등 대도시 부럽지 않은 상권을 형성했단다. 특히 영화관은 서울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 영화가 상영되었을 정도라나?

 마을 공터에서는 영월읍보다 더 큰 장이 열렸었다고 한다. 그곳에 지금은 공연장이 들어섰고, 그 벽에 수백 개의 옛 핸드폰이 진열돼 탐방객들의 눈요깃거리로 제공된다.

 야외 테이블로도 모자라 비치파라솔까지 쳐놓은 저 집은 대체 누가 살고 있을까?

 벽면은 홍보의 장으로 이용했다. 모운동의 역사는 모운동 마을이야기로 포장됐고, ‘버디버디 이 모운동에서 촬영되었음을 episode 형식을 빌려 전해준다.

 10 : 36, 양씨판화미술관을 오른쪽에 끼고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참고로 모운동을 둘러보는 데는 10분 정도가 걸렸다.

 80m쯤 걸으면 임도의 초입. ‘운탄고도 1330’의 이정표(장재터 3.22km/ 모운동 0.64km)가 길을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려준다.

 이후부터는 울창한 숲속을 걷는다. ‘운탄고도 1330’은 기억너머로 사라졌던 석탄 길, 즉 탄광에서 이용하던 옛길을 복원시켰다. 출퇴근하는 탄부를 태우거나 탄 더미를 실은 트럭들이 이 길을 달렸었다. 바닥에 깔린 저 검은 흙이 그 증거일 것이다.

 길 찾기는 나그네들의 몫.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길이 나뉘기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이정표가 나타났고, 그 구간이 멀다싶으면 운탄고도 특유의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널찍한 임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르는 게 만만찮을 정도로 가파른 오솔길도 나타난다. 하지만 유일무이한 오르막구간이니 싫다는 내색은 너무 말자. 거기다 계곡을 끼고 있어 졸졸거리는 청량한 물소리까지 들을 수 있지 않는가.

 트레킹을 시작한지 34. 오르막의 막바지에 긴 나무계단이 놓여있었다.

 11 : 01,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1차선 도로인 모운동길(주문교모운동싸리재)’. 이정표(장재터 2.08km/ 모운동 1.78km)가 왼쪽으로 진행하란다. 오른편으로 가면 출발지인 모운동이 나오는데, kakaomap은 저 길을 따라 이곳으로 오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모운동길은 싸리재에서 솔숲길에 바통을 넘긴다. 두 길의 특징은 한없이 꼬불댄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산꼬라이데이길을 조성하면서 굽이길이란 브랜드까지 내걸었겠는가. 특히 솔숲길은 좁은 노폭에 400m의 고도차를 극복하기 위한 가파른 경사도까지 겹친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런 스릴이 좋아 찾아오는 드라이버들도 꽤 많다고 했다. 실제로 적당한 리듬을 타면서 달려가는 차량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5분쯤 더 걸어 도착한 싸리재(kakaomap의 정류장 이름)’. 한우 육종농가인 서로목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고 있었다. 암소 계획교배로 생산된 보증씨수소를 기르는 농장일 것이다. 그러니 방역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일반인의 출입도 당연히 금물.

 운탄고도는 망경대산의 7부 능선을 향해 고도를 높인다. 하지만 경사가 거의 없어 평지나 마찬가지로 걷는다. 거기다 주변의 숲은 따가운 햇살까지 막아준다. 덕분에 우린 폭염 경보까지 내려진 무더위인데도 피서를 나온 사람들처럼 즐기면서 걸을 수 있었다.

 이즈음 모운동(募雲洞)’이 눈에 들어왔다. 해발 1.087m의 망경대산 6부 능선 분지에 형성된 산골 마을, 늘 구름이 모여든다는 지명처럼 마을 위 하늘은 뭉게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잠시 후 망경대산의 한 지능선을 넘는다. 앱이 667m를 찍는 어엿한 고갯마루이지만 넘는다기보다는 모퉁이를 돌아가는 모양새이다.

 이후부터는 내리막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경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해서 평지를 걷는 듯한 느낌이다.

 이 구간에서도 시야가 트인다. 산태극수태극을 이루며 흘러가는 옥동천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저 어디쯤에는 외씨버선길을 걸으면서 답사했던 김삿갓계곡이 있을 것이다.

 4분쯤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구름품은 캠핑장’. 이름처럼 구름을 품에 안을 만큼 높지막한 곳에 위치한 캠핑장이다. 특히 마운틴 뷰가 뛰어난 곳으로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단다.

 이 캠핑장의 명물은 공중에 걸린 캠핑사이트이다. 솔숲에 대를 올리고 그 위에 사이트를 만들었다. 저 정도면 빗줄기 따라 내려온 구름을 품에 안아볼 수도 있겠다. 하나 더, 애견동반이 가능하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11 : 35, 길을 나선지 1시간 8분 만에 예밀2리삼거리에 이른다. 초등학교(옥동초교 예밀분교)까지 있었다는 갈금마을의 초입이라선지 버스정류장 말고도 운탄고도 이정표(장재터 1.6km/ 모운동 4km) 같은 시설물들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이정표의 하단, 현 위치 안내판은 이름표까지 달았다. ‘산꼬라데이 길’, 그중에서도 굽이굽이 돌아가는 굽이길이란다. 옛 탄광 길을 강원도 사투리인 산꼬라데이로 명명하고, 굽이길·광부의길·솔숲길 등 구간마다 고유의 이름을 따로 붙였다. 그런데 이게 모운동을 찾는 여행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요즘은 걷기 코스의 명소로 자리매김 되었다고 한다.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도로가 구불대기 시작한다. 거기다 경사까지 가팔라진다. 첨부된 지도의 장재터 오른쪽에서 한없이 구불대고 있는 구간이다. 스릴을 쫓는 드라이버들이 딱 좋아할만한 코스라 하겠다.

 5분쯤 더 걸으면 또 다른 삼거리. 오른쪽은 밀엄사(密嚴寺)라는 작은 절로 연결된다. 안쪽에 절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는지 여러 기의 돌탑을 쌓아올렸다.

 도로변에는 쉼터도 조성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보수를 하지 않은 탓에 의자가 썩어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운탄고도 1330’ 2구간은 해발 1.087m의 망경대산을 에두르며 나있다. 덕분에 곳곳에서 시야가 트이며 1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한눈에 쏙쏙 들어온다.

 하지만 썩 편치 않은 풍경도 펼쳐진다. 산비탈을 깎아 태양광발전소를 만든 것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한 결정이겠지만, 원자력을 축소하면서까지 장려된 점은 분명 문제다. 그로 인해 발전단가가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우리 국민은 두 눈을 뻔히 뜨고 물어야 할 수밖에 없었고.

 17분쯤 더 내려오니 삭도를 설명해놓은 안내판이 반긴다. 안쪽에는 삭도가 설치되어 있었음직한 시멘트 구조물도 있었다. 삭도(索道)란 케이블카처럼 생긴 운반 장치를 말한다. 1960-70년대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옥동광업소에서 캐낸 석탄은 이곳에서 시작되는 삭도에 실려 산을 넘어 석항역 저탄장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열차를 이용해 전국의 연탄공장으로 운송되었다.

 몇 걸음 더 내려오니 이번에는 삼거리. 왼쪽은 예밀 와이너리로 내려가는 도로, 이정표는 이곳에서 오른편(장재터길)을 타라고 지시한다. ! 첨부된 지도에는 2길이 장재터를 지나도록 되어있었다. 이 부근을 이르는 지명이 아닐까 싶다. 하나 더, 장재터(長者坪)는 재물이 많은 부자가 살던 집터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산골짜기에서 그런 부자가 생겨날 수 있었을까?

 버스정류장은 영월10을 홍보하고 있었다. 장릉·청령포·별마로천문대·김삿갓유적지·고씨굴·선돌·어라연·한반도지형·법흥사·요선암(요선정) 등인데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이 모두를 이미 둘러본바 있다.

 산꼬라데이길 이정표가 가리키는 송골길(운탄고도 이정표는 장재터길로 적는다)’ 방향으로 200m쯤 걷다가 왼쪽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선다. 들머리를 지키는 이정표를 참조하면 되겠다.

 오솔길로 들어서자 가파른 내리막길이 기를 확 꺾어버린다. 등산용 스틱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는 구간이다.

 그럼에도 둘레길 나그네들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예밀천 계곡을 내려가며 원시림 속에 숨어있던 갖가지 비경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만남은 높이가 10m쯤 되는 폭포, 수량까지 많아 여느 유명 폭포가 부럽지 않은 풍경을 선사한다. ! 운탄고도 1330‘을 답사한 어느 기자는 이곳을 예밀폭포로 부르고 있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위험천만인 바윗길에는 굵직한 밧줄이 매어있었다. 그마저도 할 수 없는 곳에는 철제다리와 계단을 설치했다.

 대간에 정맥·지맥을 다 마쳤어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여성분. 더 이상 오를 산이 없다는 듯, 요즘은 둘레길에 필이 꽂혔다. 그런 그녀의 눈에도 이곳 예밀천 계곡은 새로웠던 모양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비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철다리를 지나자 또 다른 폭포가 반긴다. 제법 긴 물줄기의 옆. 수직 암벽에는 미지의 숲으로 들어가는 통로라도 되는 양 철제계단이 길게 놓여있다. 저 시설물은 산꼬라데이길을 개설하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찾는 이들이 드물어 그동안 방치되어오다가, 운탄고도를 내면서 새롭게 정비했단다.

 계단 아래서 길은 더 험해지고 있었다. 안전 밧줄이 매어있지만 몸을 의지하기에는 2%쯤 부족. 다들 바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이유다.

 계곡의 볼거리는 폭포만이 아니었다. 뾰쪽하면서도 긴 바위 하나가 수직의 절벽에 기대듯 서있었다. ‘촛대바위라 불러주라면서.

 12 : 17-37, 청량한 물길을 그냥 지나칠 수야 없는 노릇. 물가에 둘러앉아 망중한을 즐기기로 했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면서 20분 동안이나 족탕을 즐겼으니 이 아니 좋을 손가. 맞다. 오랜만에 누려본 호사였다.

 다시 길을 나선다. 하지만 길 찾기가 편치만은 않았다. 쓰러진 거목이 길을 헷갈리게 만들어 한참이나 헤매야만 했다.

 길이 묻혀버릴 정도로 웃자란 잡초도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데 동참했다.

 12 : 51, 숲이 열리면서 첫 민가가 얼굴을 내민다. 이정표(출향인공원 0.3km/ 장재터 2.4km)는 출향인공원이 멀지않은 곳에 있음을 알려준다.

 눈에 익은 이정표가 반갑다. 영월의 하천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말뚝 모양의 이정표로 2년 전 외씨버선길(청송영월)’을 답사하면서 심심찮게 만났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일행은 이 부근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계곡으로 내려서서 출향인공원으로 가야하는데 무심코 민가 진입로를 따라버렸던 것이다.

 놓쳐버린 출향인공원의 사진은 산악회 총무님의 것을 빌려왔다. 맑은 샘물이 흘러나와 족탕에 안성맞춤이라는데 족욕은커녕 눈요기도 못했다. 아까 계곡에서 청정수에 발을 담갔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랄까?

 때문에 계곡이 아닌 민가 진입로를 따라 내려간다. 길가 옥수수 밭은 아직도 푸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옥수수자루가 여물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홍천에 농장을 두고 있는 난 옥수수 수확을 이미 끝냈는데... 같은 강원도임을 감안하면 씨앗의 종자가 서로 달랐음이리라.

 잠시 후 예밀2에 닿는다. 아까 삭도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졌던 길을 다시 만나는 지점이다. 탐방로가 갈 지()’ 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그려가며 내려오는 삭막한 아스팔트 도로 대신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고 보면 되겠다. ! 운탄고도 이정표도 오른편 도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 전 길을 놓치지 않았을 경우 출향인공원을 거쳐 저곳으로 내려오게 된다.

 운탄고도 1330’은 이제 예밀촌길을 따른다. 그런데 가로수삼아 심어놓은 저 예쁜 나무의 정체는 뭘까?

 13 : 00,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15, 예밀2리 영농조합법인에서 운영하는 예밀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마을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포도 품종인 캠벨얼리가 재료로 사용된단다. 스위트·드라이·로제 등을 생산하는데, 여러 와인 콘테스트에서 상을 받기도 했단다. 진한 장밋빛의 아름다운 색과 특유의 산미가 조화를 이루는 화사한 향에다 적당한 보디감을 느낄 수 있다나?

 문간에는 탑도 하나 쌓아올렸다. 눈에 익은 모양새이나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와인체험관은 문이 닫혀 있었다. 이 와이너리는 예밀 와인이란 자체 브랜드로 시장에 출시된다. 그 와인을 시음도 해볼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다보면 한 병쯤 사갔을 테니 와이너리로서도 이익이었을 것이고...

 와이너리의 중심축은 힐링족욕체험센터이다. 전문자격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족욕(足浴)으로 피로를 푸는데, 그게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란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녹여낼 수 있는, 말 그대로 힐링의 표상이란다. 소정의 입장료를 내야함은 물론이다.

 운탄고도 스탬프보관함은 족욕체험센터의 맞은편 소공원에 설치되어 있었다. 동화 속 나라에는 나비와 삿갓 등 여러 조형물 외에도 벤치 등 부대시설을 배치했다. 편히 쉬면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라는 모양이다.

 와이너리 주변은 포도밭이 널려있다. 예밀촌은 낮에는 일조량이 많고 밤낮의 일교차가 심해 포도재배의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고 한다. 거기다 배수가 잘되고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토양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단다. 그러니 좋은 와인이 생산될 수밖에.

 도로 건너 숲속에는 성황당이 들어앉았다. 당집의 생김새로 보아 오래된 게 분명한데도 이에 대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운탄고도 1330’을 만들면서 스토리텔링이라도 입혀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이후부터는 여름철 걷기 코스로는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아니 오뉴월 뙤약볕에 오롯이 노출되는 탓에 오늘처럼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에는 최악의 코스가 될 수도 있는 구간이다.

 밭을 지키고 있는 저 소나무들의 정체는 대체 뭘까? 이탈리아의 우산소나무를 쏙 빼다 닮은 모양새가 하도 예뻐서 남겨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길옆 예밀천은 물기 한 점 찾아볼 수 없다. 장마철 폭우가 할퀴고 간지 며칠 되지도 않았고,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곳곳에서 수마가 남긴 상처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 정도라면 폭우 때나 잠시 물기를 보이는 순수 건천(乾川)이라 하겠다.

 13 : 30. 88번 지방도와 만났다. 그렇다고 지방도로 올라선다는 얘기는 아니다. 잠시지만 두 도로가 나란히 서서 간다.

 잠시 후 만난 예밀교차로는 공원 수준으로 꾸며져 있었다. 인공 숲은 물론이고 정자에 벤치까지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탐방로를 겸한 예밀천길은 예밀천1교 근처에서 88번 지방도 아래로 난 굴다리(이정표 : 김삿갓면사무소 1.1km/ 예밀교차로 0.3km)를 지난다. 그리고는 영월동로에 바통을 넘겨준다.

 탐방로(영월동로)는 이제 예밀천을 따라 옥동천으로 간다. 이때 예밀천2교를 건너기도 한다. 예밀천을 좌우로 번갈아가며 따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게 10분쯤 걸으면 드디어 옥동천, 천변에 정자와 화장실까지 지어놓은 걸 보면 이 부근이 유원지로 개방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예밀천이 옥동천으로 유입되는 두물머리 일대를 물놀이장으로 열어놓고 있었다. 물이 깊은지 강가에는 안전요원도 몇 보인다.

 예밀교는 쌍 다리다. · 2개의 다리가 나란히 옥동천을 가로지른다. 탐방로는 이중 보행교로 변한 옛 다리를 건넌다. 퇴역을 하는 대신 수세미 넝쿨로 터널을 만들어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멋진 다리로 변신했다.

 다리를 건너 만난 외씨버선길이 무척 반갑다. 2년 전 경북 청송의 주왕산에서 걷기를 시작해 영양과 청송 땅을 지나 이곳으로 왔었다. 아무튼 이후부터는 두 탐방로가 정확히 일치한다.

 탐방로는 이제 김삿갓면 소재지로 들어간다. 트레킹이 끝나간다는 얘기다.

 김삿갓면은 파출소까지도 삿갓을 브랜드로 내걸었다. 하긴 김삿갓의 생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인연삼아 면의 이름까지 바꿨는데 어련하겠는가. 김삿갓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의 난 때 평안도 선천 부사로 있다가 반란군에게 투항했다. 역적이 된 조부는 참수당하고 가족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당시 김삿갓 일가가 숨어든 곳이 바로 영월이다.

 14 : 10, 오늘은 김삿갓면사무소에서 마치기로 했다. 잔여 구간은 2년 전 외씨버선 13(관풍헌 가는 길)을 답사하면서 이미 걸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오뉴월 삼복더위에 산 하나를 더 넘어야 하는 일정은 무리가 분명하다. 그나저나 오늘은 3시간 20분을 걸었다. 앱에 찍힌 거리가 10.85km임을 감안하면 더디게 걸은 셈이다. 무더위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았다는 얘기도 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