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산(飛鳳山, 458m)

 

산 행 일 : ‘21. 11. 27(토)

소 재 지 :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산행코스 : 비봉초등학교→(박정희)사단장공관→전망대→비봉공원 갈림길↔비봉산(일출봉) 왕복→비봉산전망대→비봉전망타워→송청 회전교차로(소요시간 : 마을투어 포함 7.23km/ 2시간 30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양구의 진산(鎭山)으로 산경표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소양양구지맥에 놓여있는 산이라 주장한다. 백두대간의 매자봉(1,450m)에서 분기한 소양기맥(뒤에 가지를 치면서 양구지맥으로 변한다)이 양구읍 서천변 하리교에서 그 숨을 다하기 직전에 빚어놓은 산봉우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양구 주민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 얘기일 따름이다. 그네들에게 비봉산은 그저 도심공원처럼 친근한 산이기 때문이다. 새해 일출도 이곳에서 맞이하고, 산책삼은 휴식도 역시 이곳에서 갖는다고 한다. 그래선지 등산로를 잘 정비해 놓았음은 물론이고, 운동기구를 갖춘 쉼터도 곳곳에 배치했다.

 

▼ 산행들머리는 비봉초등학교(양구군 양구읍 하리 43)

서울-양양고속도로 춘천 IC에서 내려와 44번 국도를 타고 양양·속초 방면으로 달리가가 신남교차로(인제군 남면 신남리)에서 46번 국도로 옮기면 양구대교(소양호를 가로지른다)와 양구터널(봉화산 자락을 꿰뚫는다)을 지나 양구읍에 들어서게 된다. 송청교차로(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죽리)에서 양구읍내로 들어온 다음 하리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비봉초등학교에 이르게 된다.(사진은 비봉초등학교와 붙어있다시피 한 양구보건소이다)

▼ 양구군에서 내건 산행안내도는 들머리를 4곳(냉천골도 어엿한 들머리이다)으로 표시한다. 하지만 송청리의 ‘회전교차로’에서도 오를 수 있다. 탐방로 정비가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송청리를 하산지점으로 삼을 경우 ‘웰빙먹거리타운’에서 뒷풀이까지 가능해지는 장점도 있다.

▼ 시작부터 뜬금없는 풍경이다. 이곳 양구는 열차가 다니지 않는 고장이다. 그런데 군청(보건소는 군청 소속) 앞에다 떡하니 열차(조형물)를 놓아둔 것이다. 오죽했으면 집사람이 사진부터 찍고 보라 했겠는가. 아니 ‘양구 시티투어버스’가 포함된 ‘경춘선 호수문화열차’가 용산역에서 출발한다 했으니 이를 형상화했을지도 모르겠다.

▼ 양구보건소와 비봉초등학교 사이의 샛길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단장 공관’이라고 적힌 팻말을 이정표 삼아 들어가면 된다.

▼ 본격적인 산행은 ‘사단장 공관’ 앞에서 시작된다. 들머리에 ‘비봉산 등산로’를 그려 넣은 종합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무언가 볼만한 것이 있다면 내다보는 게 인지상정. ‘사단장 공관’으로 방향을 트니 할아버지나무와 할머니나무라는 노거수 두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공관 아래서 살던 할아버지의 꿈에 머리가 새하얀 산신령이 나타나 ‘이놈아! 뜨거워죽겠다’라고 호통을 치더란다. 깜짝 놀라 밖에 나가보니 진짜로 나무가 불에 타고 있지 않겠는가. 일단은 불부터 끄고 봤음은 물론이다. 훗날 이런 얘기를 전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불타고 있던 신갈나무를 ‘할아버지나무’, 맞은편 갈참나무를 ‘할머니나무’라고 부른데서 그런 이름이 시작되었단다.

▼ 여염집이나 진배없는 저 소박한 건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군 5사단장으로 재임할 당시 머물던 공관이라고 한다. 개·보수과정을 거쳐 지난 2009년에 문을 열었는데 안에는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단다. 하지만 문이 닫혀있어 울타리 밖에서 기웃거리다 외관만 카메라에 담고 돌아섰다.

▼ 들머리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나선다. 산길은 시작부터 가파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세를 뚝 떨어뜨려 버린다. 그리고는 좌우로 몸을 비틀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 잠시 후 올라선 능선에는 야외학습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동·식물, 새 등 숲과 관련된 자료를 담은 ‘학습안내판’을 세우고 의자를 놓아 참가자들이 편히 앉아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 학습장은 두어 곳에서 더 만나게 된다. 비봉산이 갖고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을만하다.

▼ 의자에 앉으니 숲 사이로 천태종 소속의 동강사가 살포시 내려다보인다.

▼ 고개를 들자 이번에는 ‘청춘 양구’라 적힌 조형물이 내다보인다. 하산 후 시내구간을 걸을 때도 ‘청춘’이란 글귀는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이곳 양구군이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 아닐까 싶다. 하긴 군부대가 많으니 젊은 군인들도 많겠다.

▼ 산행을 시작한지 15분. 이정표(일출봉↑ 0.2㎞/ 전망대← 50m/ 비봉초교↓ 0.4㎞) 하나가 잠시 들렀다가라며 꼬드긴다. 시야가 툭 트이는 곳이 있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일단은 전망대로 향하고 본다.

▼ 50m쯤 들어갔을까 비탈진 언덕에 사각의 정자가 지어져 있다. 참! 가는 도중 강아지를 닮은 귀여운 바위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정자에 오르니 ‘전망대’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조망이 펼쳐진다. 먼저 들어오는 풍경은 파로호(破虜湖). 1944년 화천댐이 생기면서 형성된 인공호수로, 1951년 5월 한국군과 미국군이 중국군을 격파한 곳이라고 하여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이 그런 이름을 붙이고 친필 휘호를 내리면서 지명으로 굳어졌다. 호반에 떠있는 자그만 섬은 ‘꽃섬’일 것이다. 따듯한 봄에는 유채꽃과 철쭉류를, 해가 내리쬐는 여름에는 양귀비와 장미를, 하늘이 푸르러지는 가을에는 하늘색과 대비되는 백일홍과 코스모스, 메밀꽃 그리고 해바라기를 볼 수 있다는 곳이다.

▼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양구읍(楊口邑) 시가지가 눈앞으로 불쑥 다가온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저곳은 북한 땅이었다.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저렇게 넓은 들녘을 잃은 김일성이 얼마나 가슴 아파 했을까?

▼ 다시 길을 나선다. 비봉산은 아까 인제군에서 올랐던 ‘기룡산’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시종일관 오름짓만 해대던 기룡산과는 달리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해가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기 때문이다. 덕분에 산책하듯이 산을 오를 수 있었다.

▼ 말안장을 연상시키는 능선을 따라 걷다가, 계단이 놓인 가파른 구간을 잠시 치고 오르자 KBS중계시설이 얼굴을 내민다. 아까 나뭇가지 사이로 엿보이던 ‘청춘양구’라는 간판형의 조형물이 내걸려 있는 곳이다.

▼ 능선은 온통 소나무 세상이다. 이삼십 년쯤 묵은 소나무 숲을 헤집으며 난 산길은 걷는 자체만으로 행복해진다. 코끝을 스쳐가는 짙은 솔향기가 심신을 맑게 해주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저 솔향기 속에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도 듬뿍 들어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길은 웰빙, 아니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행복한 길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40분. ‘냉천골 갈림길’(이정표 : 일출봉↑ 0.6㎞/ 냉천골→ 0.7㎞/ 비봉초교↓ 1.8㎞) 근처에서 정자에 벤치와 운동기구까지 갖춘 첫 번째 쉼터를 만났다. 서두에서도 얘기했듯이 양구 주민들에게 이곳 비봉산은 도심공원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선지 ‘명심보감’에나 나올 법한 유익한 글귀들을 여럿 매달아놓았다.

▼ 조금 더 오르면 이번에는 ‘비봉공원 갈림길’(이정표 : 일출봉← 0.5㎞/ 비봉공원→ 1.4㎞/ 냉천골↓ 0.8㎞)이 나온다. 비봉산전망대라는 또 다른 조망 명소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코스로, 우리 부부 역시 하산코스로 이용할 계획이다. 그러니 정상을 둘러본 다음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갈 지(之)’자를 써가면서 올라야만 할 정도로 가파르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잠깐이면 그 가파름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중간쉼터’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런데 쉴 수 있는 벤치보다 운동기구가 더 많다. 명색이 쉼터인데도 말이다. 고생고생 해가며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부족한 사람들이 있을까?

▼ 소나무 숲이 하도 울창하다보니 아예 산림욕장으로 꾸며버렸나 보다. 길가에 누워서 쉴 수 있는 벤치까지 놓아두었다. 하지만 이용하는 이는 별로 많지 않은 듯. 벤치 위에 솔가리가 수북이 내려앉았다.

▼ 얼마쯤 더 걸었을까 또 다시 급경사 구간이 나타난다. 허리를 곧추세운 듯 날카롭게 서버린 경사 때문일까 탐방로는 나무계단까지 놓아가며 찾아온 이들을 정상으로 인도한다. 계단이 싫은 사람들은 오른편 우회로를 이용하면 된다. 송천리로 연결되는 등산로인데 곧이어 나타나는 삼거리(이정표 : 일출봉← 0.2㎞/ 송청리↑ 4.5㎞/ 냉천골↓ 1.1㎞)에서 왼편으로 오르면 정상이다. 다만 이럴 경우 거리가 꽤 늘어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산행 시작 1시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동네 운동장보다도 더 넓은 정상은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정상석과 삼각점(인제 24), 이정표(죽곡리 농공단지 2.16㎞/ 냉천골 1.30㎞)는 기본. 벤치에 팔각정까지 지어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 정상석은 ‘비봉산’이라는 본명보다도 별명인 ‘일출봉’을 더 크게 적었다. 하긴 예로부터 양남팔경의 하나인 ‘비봉조양(飛鳳朝陽, 비봉산의 해돋이)’으로 꼽혀왔다니 어련하겠는가. 맞다. 이곳은 양구 제일의 ‘해맞이’ 장소로 꼽힌다. 매년 정월 초하루면 군청에서 주관하는 ‘신년 해맞이’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 정상은 조망의 명소이기도 하다. 발아래로 파로호가 내려다보이는가 하면, 봉화산과 백석산, 도솔산, 사명산, 백암산, 가칠봉 등 1천 미터를 넘나드는 고산준령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자 내부의 조망안내도와 비교해가며 살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 조망의 백미는 ‘한반도 섬’이다. 쓰레기 불법투기 등으로 골머리를 썩이던 파로호의 나대지를 관광명소로 탈바꿈시킨 인간승리의 현장이다.

▼ 이제 하산할 차례다. 아까 지나왔던 ‘비봉공원 갈림길’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비봉공원 방향의 능선을 탄다. 하지만 하산코스라고 해서 내리막길만 기대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아래 사진처럼 만만찮은 오르막길과 두세 번이나 힘을 겨루어야하기 때문이다. 계단으로도 부족해 밧줄난간까지 매어놓았을 정도로 가파르다.

▼ 비봉공원으로 내려가는 능선은 오른편에 냉천골, 왼편은 곧은골을 끼고 이어진다. 때문에 두 골짜기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삼한시대에 쌓았다는 산성은 끝내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 영조 35년에 쓰인 ‘기묘장적(己卯帳籍)’에 기록된 산성으로 둘레 892척에 높이가 8척이나 된다기에 잔뜩 기대했었는데 아쉬운 일이다. 아니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유적을 찾아보겠다고 벼른 게 차라리 어불성설이 아니었을까?

▼ 하산을 시작한지 25분, 비봉공원갈림길을 지나친지 15분 만에 비봉산전망대에 올랐다. 4층으로 지어진 전망대는 높이가 15m나 된다. 그런데 골조가 나무가 아니겠는가. 안내판도 약간의 흔들림이 있을 거라며 겁을 준다. 두렵다. 하지만 구조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내진 및 내풍 설계를 적용했다니 안심하고 오를 일이다.

▼ 망설임 끝에 올라선 전망대는 그동안의 고민을 실없게 만들어버린다. 양구시가지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오는데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 이후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지자체에서도 그게 부담스러웠던지 계단을 설치했다. 나선형으로 만들면서 한껏 멋까지 부렸다. 하지만 집사람처럼 무릎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구간이라 하겠다. 계단의 턱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다.

▼ 가파른 내리막길이 지겨워질 즈음에야 나타나는 ‘비봉공원’은 ‘충혼탑’이 먼저 반긴다. 양구는 같은 민족끼리 피를 흘려야만 했던 아픈 현대사를 지닌 고장이다.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유엔 고지, 크리스마스 고지 등은 6.25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 어찌 충혼탑 하나 없겠는가. 6.25 전쟁 당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이곳 비봉공원에 충혼탑을 세웠다.

▼ 산행코스까지 바꿔가며 보고자 했던 박수근 화백의 동상은 찾을 수 없었다. 하도 아쉬워서 다른 분의 사진을 올려본다. 이곳 양구는 향토성 짙은 작품으로 가장 한국적인 현대 회화를 그린 작가로 평가받는 박수근(朴壽根. 1914-1965)이 태어난 곳이다. 이중섭과 쌍벽을 이룬 작가로 평가받았으며, 이중섭의 자유분방함에 반해 최대한 절제된 화면효과를 추구했다고 한다. 대표작으로는 ‘봄이 오다’, ‘일하는 여인’, ‘할아버지와 손자’, ‘노상의 소녀들’, ‘농악’. ‘나무와 여인’ 등이 있다.

▼ 비봉공원을 빠져나오면 이번에는 ‘군민공원’이다. 하산을 시작하고 50분이 지난 지점인데, 자잘한 벤치 몇 개와 물기 하나 없는 인공폭포가 전부인 작은 공원이다. 하지만 폭포의 위에다 ‘전망타워’를 얹을 경우 분위기는 확 달라진다. 잘 그린 한 폭의 풍경화로 둔갑해버리는 것이다. 참! 3층에 들어선 ‘카페’가 양구의 유명 맛집이라던데 한번쯤 짬을 내보는 것도 괜찮겠다.

▼ 이젠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송청회전교차로’로 가야할 차례다. ‘중심로’를 따라 1.7km쯤 걸으면 된다. 이때 양구 제일의 번화가라는 경찰서 앞 로터리에서 ‘백자조형물’을 만났다. 뭔가 양구를 대표할만한 사연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맞다. 이곳 양구는 고려시대 이래로 주목받는 도자기 생산지였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분원에 백자 원료인 백토를 공급했으며 광주분원에 기술과 조형미를 이식한 사람들도 양구의 도자기 장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광주분원에서 본격적으로 왕실을 위한 백자를 빚기 시작하면서 양구에서 직접 생산하는 백자는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거기다 현대에 들어서 보다 가볍고 편리한 식기구를 추구하게 됐고 사실상 양구백자는 명맥이 끊기게 된다.

▼ 박수근 화백은 그림 하나로 먹고 산 전업 화가였다. 하지만 반듯한 화실 하나 없이 어렵게 지냈다고 한다. 그런 서글픔을 양구군에서 풀어주었나 보다. 시내를 아예 그의 미술관으로 꾸며버렸다. 정림리(화가의 생가 터일 것이다)에 ‘박수근미술관’을 따로 지어놓았음은 물론이다.

▼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요즘에는 학교의 변신도 무죄인 모양이다. 양구고등학교의 담벼락을 박수근 화백의 ‘길거리미술관’으로 둔갑시켜 놓은 걸 보면 말이다.

▼ 빠른 걸음으로 20분쯤 걸으니 ‘팔효자각(八孝子閣)’이 나온다. 조선 헌종 때 양구군내 효자 8위를 모시기 위해 지은 전각으로, 그들의 효행을 목판에 상세히 기록하여 저 건물 안에 보관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저 안에는 비석만이 외롭다. 6.25 전쟁 때 전각과 함께 목판이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기록도 후손들의 족보와 양구현지, 양구군읍지에 그 일부만이 전해질 따름이란다. 참! 효자각의 옆에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인 고인돌도 전시되고 있었다.

▼ 산행날머리는 ‘송청리 회전교차로’

효자각을 살펴본 다음 몇 걸음 더 걸으니 ‘송청리 회전교차로’가 나온다. 산악회에서 지정한 날머리로 이곳에는 ‘웰빙 먹거리타운’이 조성되어 있어 어느 때나 식사가 가능하다. 또한 비봉산의 등산코스 중 가장 긴 코스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산악회버스를 이곳에 주차해 둔 이유일 것이다. 그나저나 오늘 산행은 2시간 30분이 걸렸다. 핸드폰의 앱이 7.23Km를 찍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 첨부된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비봉산의 등산로 가운데 가장 긴 코스가 이곳 송청리 회전교차로에서 시작된다.

▼ 산을 두 개나 올랐는데도 시간이 남았나 보다. 산악회는 양구의 또 다른 명소인 ‘한반도섬’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한반도섬’은 양구가 우리 국토의 정중앙임을 알리기 위해 파로호(破虜湖) 상류에 조성한 섬이다. 이곳은 무단 경작으로 인한 부영양화와 쓰레기 불법 투기로 몸살을 앓던 곳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바로 아래에 소형 보를 설치하고 습지를 조성한 후 생태계가 되살아났으니 환경보호와 휴식 공간 확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그 덕분인지 최근에는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유명세를 보이고 있다.

▼ ‘한반도섬’은 세 곳에서 연결된다. 강원도와 제주도로 연결된 나무다리를 건너거나, 북쪽에서 함경도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 중 강원도로 통하는 길이 주차장이 넓을 뿐만 아니라 나무다리도 길고 운치가 있는 공식적인 입구다. 참! 반대편에서 짚라인을 타고 경기도로 오는 방법도 있으니 참조한다.

▼ 한반도섬은 ‘양구 10년 장생길’의 일부이기도 하다. 양구의 브랜드는 ‘청춘 양구’다. 국내 어느 지역보다 공기가 맑아서 양구에 오면 10년은 젊어진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양구는 공기 중 산소 농도가 23%가량으로 전국에서 최상위 수준이다. 공해를 유발하는 공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 우리 부부는 동해바다를 건너 한반도섬으로 들어갔다. 양 옆으로 펼쳐지는 호수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걷는다. 걷는 자체만으로도 즐거운데, 거기다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가득 담겨오니 이 아니 행복할 손가.

▼ 동쪽 호숫가에는 분수(噴水)가 들어섰다. 야간이면 음악이 가미된 분수 쇼가 펼쳐지는 곳으로 5월에서 10월까지 매주 금·토·일요일 오후 8시에 쇼가 시작된다니 시간에 맞춰 찾아볼 일이다. 조금 일찍 도착해 파로호의 잔잔함을 느끼며 걷다가 해가 지면 음악 분수 쇼를 보는 일정으로 꾸며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호수를 바라보다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름은 왜일까? 눈에 들어오는 수면이 그만큼 잔잔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티 하나 없는 그 화폭 위에는 또 다른 산하가 그려지고 있었다. 수평선을 중심에 두고 대칭을 이루 듯...

▼ 한반도섬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갈대숲. 눈앞으로 다가오는 풍경은 가히 몽환적이다. 어는 글쟁이는 파로호반을 걷고 있노라면 세상의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고 했다. 내가 파로호인지 파로호가 나인지 모르는 그런 무아지경에 빠지는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더니, 그에 딱 어울리는 풍경이라고나 할까?

▼ 동해바다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형상화 한 섬들이 들어앉았다. 한반도섬과 동해에 떠있는 독도의 디테일이라니 오랜만에 만나보는 통쾌함이랄까? 저걸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는 인간들을 골려주기라도 한 듯 기분이 썩 좋아진다.

▼ 한반도에 상륙하자 널따란 광장이 손님을 맞는다. 광장 곳곳에 사진 찍기 딱 좋은 갖가지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음은 물론이다.

▼ 한반도의 주인인 배달민족의 조상은 ‘웅녀(熊女)’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桓雄)으로부터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받아먹으면서 삼칠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자 문득 여자의 몸으로 변했고, 환웅과 혼인해 우리네 조상인 단군왕검을 낳았다. 그렇다면 저 곰이 웅녀?

▼ 한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서울. 그래선지 서울시의 대표적 상징물인 해치상(해태)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서울시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란다. 이밖에도 전국 8도의 상징물들을 시·도와 협의해 기증형식으로 제공 받을 계획이란다.

▼ 관광지이니 포토죤은 필수. 그 중에서도 그네는 특히 인기다. ‘I♡YG’라는 조형물이 좋은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 글자가 거꾸로 나타난다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 그런데 ‘국토의 정중앙, 자연의 중심 양구’라고 적힌 저 조형물의 정체는 뭘까? 문구의 내용이야 익히 들어왔으니 진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꼭대기에 올라앉은 저 전투기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모르겠다.

▼ 관광객이 몰려오니 어찌 즐길 거리 하나 없겠는가. 수동형의 오리보트는 물론이고, 투명카약, 동력이 가미된 꼬맹이 요트까지 다양한 놀이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단 한 대밖에 없는 태양열 보트도 길 떠날 준비를 마쳤단다.

▼ 파로호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cafe 바라보다’는 상부를 잔디밭으로 꾸몄다. 여름철 무더위를 대비한 지혜가 아닐까 싶다.

▼ 자 이젠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차례이다. 배나 비행기는 없지만 튼튼한 두 다리로 다리를 건너면 금세 제주도에 도착한다. 호수의 서쪽 동수리 방향에서 인도교(人道橋)를 이용해 곧장 제주도로 들어올 수도 있다.

▼ 섬으로 들어서자 한라산 백록담 모형이 반긴다. 주변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돌하르방(대한민국 석공예 명장인 장공익 옹이 제작했단다)과 유채꽃밭 그림으로 장식했다. 가장자리에 벤치를 놓아두는 센스도 엿볼 수 있다. 벤치에 않자 티 하나 없는 수면위에서 실바람이 흐느적거린다.

▼ 육지로 되돌아오니 지리산이 반긴다. 백두대간의 남쪽 끄트머리를 장식하는 어머니 같은 산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돌무더기 위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작은 3개의 통로가 보였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를 연결하는 지리산의 특성을 나타낸 것이란다. 산 구조물 하나로 지형 특색까지 살리는 세심함이 감탄할만하다.

▼ 지리산에서 섬의 북쪽 끄트머리까지는 두툼하게 쌓아올린 둑으로 연결시켰다. 생김새로 보아 백두대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국토종주를 나서볼 일이다. 고요한 파로호를 바다라고 생각하고 길을 따라 심어져 있는 나무를 숲이라고 생각하며 걸어보자. 골짜기처럼 푹 파여진 틈은 강이다. 백두대간을 걷는 우리는 곳곳에서 산을 상징하는 큼지막한 바위를 만나게 된다. 덕유산, 설악산, 금강산, 두류산 등 그 산에 대한 설명을 담은 안내판을 세워두었음은 물론이다.

▼ 지리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 걷기 여행은 백두산에서 대미를 장식한다. 최단시간 국토종주를 마친 셈이다. 그렇게 만난 백두산은 한반도를 대표하는 산이자.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답게 덩치도 큼지막했다. 그 기세를 살리려는 듯 커다란 소나무도 한 그루 심어놓았다.

▼ 한반도는 곧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나라꽃은 ‘무궁화’이다. 그래선지 백두산 근처에다 무궁화 숲을 배치했다. 조형물이라는 걸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산림청이 공모한 ‘2022년 무궁화동산 조성사업’에 대상 지자체로 선정되었다니 내년쯤에는 꽃이 활짝 핀 무궁화동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양구로 오는 도중 인제에 있는 ‘기룡산(起龍山, 1015m)’을 먼저 올랐다. 아니 정상은 구경도 못했으니 등산이랄 게 없는 일정이다. 오늘 따라나선 팀이 강원의 20대 명산을 모두 올라보는 ‘에코 하이킹 챌린지(Eco Hiking Challenge)’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인증장소인 활공장까지만 다녀오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기룡산 산행의 출발은 인제고등학교 앞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 기룡산의 들머리는 꽤 여러 곳에서 열린다. 하지만 우리처럼 활공장까지만 다녀올 요량인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주어진 시간 내에 다녀오려면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거리가 짧은 코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M(어린이공원)’에서 출발해 ‘H(전망대)’를 거쳐 ‘G(패러글라이딩장)’까지 왕복했다.

▼ 기숙을 기본으로 깐 인제고등학교는 외형부터가 조금 특이하다. 학교 앞에 도로를 두고 그 아래에 운동장이 들어앉았다. 그 운동장에는 유소년 축구경기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관중들은 거의 없다. 언텍트가 기본이 된 코로나의 여파가 아닐까 싶다. 맞다. 우리도 역시 워킹스루(Walking-through) 방식으로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가며 산행하고 있는 중이다.

▼ 학교 담벼락이 끝나는 곳에 들어선 어린이공원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은 시작부터 가파르다. 아니 무지막지하게 가파르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겠다. 울창한 잣나무 숲길을 오른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잣나무 숲이 끝나자 이번에는 토종 소나무 숲이 길손을 맞는다. 이 구간도 가파르기는 매한가지다. 곧장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쓰고 나서야 겨우 고도를 높일 수 있다면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삼거리가 있는 능선에 올라선다. 쉼터를 겸한 전망대로 조성되어 있는데, 널찍한 전망대에는 이정표(활공장↑ 350m/ 하늘지붕 소나무박물관←/ 인제고등학교·어린이공원↓ 620m) 외에도 기룡산의 설명판과 소양강 하안단구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조망안내도이다. 전경사진을 게시해 실물과 사진을 비교해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은 별로이다. 조망도는 인제 시가지는 물론이고 소양강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비봉산에 더해 한석산과 방태산까지 그렸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지는 건 비봉산이 전부이다. 미세먼지 탓일 게다. 거기다 인제 시가지는 웃자란 나무들이 그림의 대부분을 잘라먹어 버렸다.

▼ 활공장으로 가는 길은 일단 곱다. 경사가 완만할 뿐만 아니라 바닥에 야자매트를 깔아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35분 만에 활공장에 올라섰다. 초등학교의 운동장만큼이나 큰 활공장은 정자와 벤치, 그리고 운동기구까지 두루 갖췄다. 인제 읍민들에게는 산책삼아 오를 정도로 친숙한 뒷동산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인증을 위한 표지판은 행글라이더가 이륙을 시작하는 지점에 세워져 있었다. 해발고도는 480m. 하단에 적힌 ‘강원 20대 명산 인증 챌린지’가 인증에 필요한 증표가 아닐까 싶다.

▼ 인제읍의 진산인 기룡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운동기구 뒤로 열린다. 그렇다고 다녀올 수는 없는 노릇. 주어진 시간인 1시간 30분에 맞추려면 곧바로 내려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