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골산(383.1m)-천봉산(天峰山 , 435.8m)

 

산 행 일 : ‘21. 5. 6(목)

소 재 지 : 경북 상주시 남적동·부원동·만산동·연원동·외서면 일원

산행코스 : 세천(SK주유소)→204.2봉→황골산→안부→천봉산→자산→임란 북천전적지(산행거리 : 8km, 소요시간 : 3시간)

 

함께한 사람들 : 산두레

 

특징 : 상주의 삼악(三嶽) 가운데 하나이자 진산(鎭山)이다. 상주시의 자랑대로 이 산은 산세가 부드러운데다 등산로 주변에 소나무까지 우거져 있어 산림욕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하지만 특별히 눈에 담을만한 볼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 천봉산의 정상 말고는 조망까지도 보잘 것이 없다. 육산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봉산은 언제나 분주하단다. 도심에 어깨를 맞대고 있는 접근성에다 등산로 주변에 운동기구까지 배치해 산책삼아 나온 주민들이 운동까지 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꾸며놓았기 때문이다. 상주 시민들에게 천봉산은 산책을 하듯 수시로 오르내리는 곳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 산행들머리는 ‘SK주유소’(상주시 남적동)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상주 IC’에서 내려와 국도 3호선을 타고 상주 방면으로 내려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세천교’를 건너게 된다. 외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인데 산행들머리인 SK주유소는 이 다리에서 5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 산행은 꽤 여러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곳은 임란북천전적지 주차장. 이밖에도 흥복사 및 천봉산요양원 등이 있으나 대부분이 동남쪽 방향(만산동 일원)에 몰려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한참이나 북쪽에 위치한 세천교 근처의 SK주유소에서 시작했다. 천봉산뿐만 아니라 황골산까지 한꺼번에 답사해보기 위해서이다.

▼ SK주유소의 옆길. 그러니까 세천 재가노인복지센터와 신흥다방 사이의 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만난 삼거리마트 주변에는 꽤 여럿의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중국집, 고깃집, 통닭집, 순대국밥집 등 종료도 꽤 다양하다. ‘도심 속 농촌의 정겨운 손맛’이란 주제로 조성된 ‘세천 먹거리촌’으로 석쇠구이와 짬뽕, 불고기 등을 대표 음식으로 내놓고 있다니 한번쯤 찾아볼 일이다.

▼ 도로변의 담장이나 벽면은 벽화로 채워 넣었다. 2018년의 도민체전 때 손님맞이를 위한 환경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꾸며놓은 것이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벽화를 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꽤 된단다. 먹거리촌에서 식사를 마친 다음 산책삼아 걸으며 옛 추억이 녹아든 벽화를 감상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 이곳은 도시와 농촌마을의 경계지점이다. 이런 특징을 살리려 했는지 벽화는 하나같이 7080의 색채가 강하다.

▼ 담배를 팔고 있는 가게는 ‘우리동네 담배가게’란 이름표를 달았다. 그런데 문을 두드려보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우리동네 담배가게 사는 아가씨가 이쁘다네’. 이런 문구를 보고도 그런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 5분쯤 걸었을까 창고처럼 생긴 건물 앞에 ‘천봉산 등산로 안내도’와 이정표(천봉산 등산로 4.7㎞)가 세워져 있었다. 안내도는 지도와 함께 소나무가 우거져 있다는 특징을 적었다. 산림욕을 즐기기에 그만이라면서 말이다.

▼ 20m쯤 들어가는 곳에 있는 ‘남적2동 마을회관’ 앞에는 또 다른 안내도가 세워져 있었다. 예스런 느낌이 물씬 풍기는 지도에는 중요지점에 이르는 거리까지 적어 넣어 이해를 돕고 있다. 천봉산 정상까지 4.7㎞이고 날머리인 임란전적지까지는 7.5㎞라고 한다.

▼ 마을을 벗어난 탐방로는 이제 임도를 따른다. 꽤 긴데다 중간에 갈림길을 만나기도 하나 이정표(천봉산 정상→ 4.3㎞/ 세천먹거리촌↓ 250m)가 잘 되어 있어 길이 헷갈릴 일은 없다.

▼ 가는 도중 시야가 트이면서 외서면의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저런 들녘이 있기에 상주의 자랑거리인 삼백(三白)의 한 축을 쌀이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15분 만에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사직되는 것이다.

▼ 이정표는 천봉산 정상까지의 거리를 4.0㎞로 적고 있다. 남적동(세천)까지는 0.7㎞. 하지만 아까 안내도에서 보았던 ‘황골산’이란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방향에 거리까지 표시된 모범적인 이정표이지만 어딘지 5%쯤 부족하다고나 할까?

▼ 능선을 따라 난 산길은 고운 편이다. 보드라운 흙길에 경사까지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서너 번 만나게 되는 갈림길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빠짐없이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

▼ 산행을 시작한지 20여분 만에 송전탑(63번) 아래에서 첫 삼거리(이정표 : 천봉산 정상↑ 3.6㎞/ 부원동← 250m/ 세천먹거리촌↓ 850m)를 만났다. 왼편은 부원동에서 올라오는 길인데, 우리가 산행을 시작했던 세천먹거리촌보다 훨씬 가깝다. 이는 황골산-천봉산의 산세가 남북으로 긴 반면에 동서로는 홀쭉하게 늘어서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능선은 온통 소나무 세상이다. 거기다 신갈나무로 간을 맞추는 모양새이다. 코에 더해 눈까지 호사를 누리는 산행이 되는 이유이다. 코끝에 스쳐가는 솔향기만으로도 과분한데, 거기다 연록의 푸름까지 더해지니 이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 이색적인 풍경이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무덤의 둘레를 철조망으로 꽁꽁 막아놓은 것이다. 야생동물들과의 힘겨운 투쟁에 대한 기사가 심심찮게 뜨더니 이제는 무덤까지도 저렇게 변해버렸나 보다.

▼ 야생동물이 남기고간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 황골산과 천봉산은 해발이 500m에도 한참이나 못 미치는 나지막한 산이다. 그래도 명색이 산인데 오르막길 하나 없겠는가.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파르다싶으면 어김없이 침목계단을 놓았다.

▼ 산행을 시작한지 35분 만에 ‘204.2m봉’으로 여겨지는 봉우리에 올라섰다. 그런데 이정표(천봉산 정상 3.0㎞/ 세천먹거리촌 1.5㎞) 아래에 낡은 의자 하나가 놓여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벤치나 의자 등 쉴만한 곳이 일절 눈에 띄지 않더니, 이곳에서라도 잠시 쉬어가라는 누군가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 도심 근교의 산인데도 나무들이 참 굵다. 아니 원시에 가까운 숲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숲을 잘 관리해 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 한마디로 멋진 길이다. 가파른 내리막길까지도 나선형으로 만들어 눈을 즐겁게 했다.

▼ 산행을 시작한지 40분. 푹 꺼진 안부에 내려섰다. 좌우로 널찍하게 임도가 나있지만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 이후부터는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그렇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다. 가파른 곳마다 침목계단을 놓았기 때문이다. 속도만 조금 떨어뜨리면 되는데 걱정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 괴상하게 생긴 바위가 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여자의 엉덩이를 쏙 빼다 닮았다. 그 위에 선돌까지 보이니 스토리텔링용으로 이만한 소재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 굵은 신갈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곳도 있다. 이번에는 소나무가 간을 맞춘다.

▼ 그렇게 30분 정도를 오르자 황골산(383.1m) 정상이다. 네다섯 평쯤 되는 정상에는 이정표(천봉산 정상↑ 1.6㎞/ 남적동← 2.3㎞/ 남적동(세천)↓ 3.0㎞)와 국가지점번호판(라바 5755-2875) 외에도 평상이 놓여있다. 아니 들머리의 산행안내도에서 산림욕하기에 딱 좋은 산이라고 자랑했으니 캠핑 사이트가 아닐까 싶다.

▼ 아쉽게도 정상석은 세워져 있지 않았다. 그 흔한 표지기조차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게 아쉬웠던지 산행대장이 이정표의 맨 위에다 ‘황골산’이라고 적는다. 후래자를 위한 배려일 것이다.

▼ 천봉산으로 향한다. 이곳 황골산에서 천봉산의 정상까지는 1.6㎞. 안부까지 가파르게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막길과의 힘겨운 싸움을 치러야만 한다.

▼ 침목계단을 따라 10분쯤 내려서자 안부에 이른다. 부원동과 외서면의 봉강2리를 잇는 고갯마루로 첨부된 지도에 ‘이끼늠에 안부’. 상주시에서 만든 산행안내도에는 ‘이끼넘어 잘록지점’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끼늠에’란 지명은 요 아래에 큰 못이 있어 이끼가 많이 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하지만 이정표(천봉산 정상↑ 1.1㎞/ 부원동← 1.4㎞/ 남적동(세천)↓ 3.7㎞)는 부원동으로 내려가는 길만 표시하고 있었다. ‘이끼늠에’가 봉강리 쪽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자연부락의 이름인데도 말이다.

▼ 안부를 지나자 산길은 가파르게 변한다. 아니 엄청나게 가파르다. 지자체는 그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려는 듯 침목계단을 놓았다.

▼ 계단도 놓지 못할 정도로 가파른 곳에서는 좌우로 몸을 비틀면서 위로 향한다. 왔다갔다 ‘갈 지(之)’를 써가면서 경사를 누그러뜨렸다는 얘기이다.

▼ 가파름과의 힘겨룸은 그다지 오래가지는 않는다. 13분 정도면 그 기세를 팍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 이후부터는 솔향기 가득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걷게 된다.

▼ 이때 왼편 나뭇가지 사이로 틈새가 열리면서 상주 들녘이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쌀이 대표적인 특산물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한 들녘이다.

▼ 그렇게 7분 정도를 걷자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아까 황골산에서 보았던 캠핑 사이트가 만들어져 있다. 이곳 역시 산림욕을 즐기기에 그만이겠다.

▼ 사이트와 천봉산 정상 사이는 온통 소나무 일색이다. 상큼한 솔향기를 한껏 들이키며 걸어본다. 온 몸이 새로운 활기로 넘쳐나는 듯하다. 소나무 숲길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40분 만에 산불감시탑을 겸한 팔각정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정상에 올라섰다. 10평 남짓 되는 너른 정상에는 정상석과 이정표는 물론이고 삼각점(상주 415)에 각종 안내판까지 어지럽다 싶을 정도로 많은 시설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 먼저 천봉산의 내력부터 살펴보자. 팔각정 앞에다 만들어놓은 큼지막한 석판을 읽어보면 된다. 석악(石岳)이라고도 부르는 상주의 진산으로 남쪽 갑장산(淵岳), 서쪽의 노음산(露岳)과 더불어 상주 삼악(三岳)을 이루고 있다한다. 봉황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상을 하고 있다하여 천봉산(天鳳山)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석판은 또 이 산이 외침을 막는 주요 요충지였음을 알려준다.

▼ 자연석으로 만든 정상석은 석판의 반대편에다 세웠다. 적힌 이름은 천봉산(天峰山). 정상에 서면 주변의 산봉우리 천개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는 설을 인용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자세한 상황은 들머리에 세워져 있던 안내도의 글귀를 인용해본다. <정상에 오르면 황악산, 속리산, 주흘산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등 주변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이제 하산할 일만 남았다. 하산은 2.6㎞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임란북천전적지이다. 이 코스는 상주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얻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소나무가 길가에 가득하니 오죽하겠는가.

 

▼ 요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소나무가 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문득 남녀가 교합하고 있는 듯한 자세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얘기를 집사람에게 했다가 불순하다는 지청구만 얻어들었다. 동일한 사물임에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이다. 무학대사는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 했다. 맞다. 육십년 이상을 쌓아온 내 수양은 아직도 멀었다.

▼ 5분쯤 걸었을까 길이 둘로 나뉜다. 능선을 따르는 코스 및 약수터를 경유하는 코스인데, 이정표는 거리(2.7㎞)나 소요시간(60분)이 같다고 적고 있다. 우리 부부는 약수터를 경유해서 내려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길이 훨씬 편하다는 산행대장의 귀띔을 참조했음은 물론이다.

▼ 하지만 이 구간도 역시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침목계단을 놓아 미끄러짐을 방지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참! 중간에 바깥너추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났으나 개의치 않고 통과했다. 그쪽으로 200m만 더 가면 데크전망대가 나온다지만 아까 정상에서의 조망과 별반 달라질 것도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 정상에서 내려선지 10분 만에 약수터에 도착했다. 약수터는 데크로 대를 만들고 벤치를 놓아 쉼터로 꾸며놓았다. 물 한잔 마시면서 잠시 쉬어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이곳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말이다.

▼ 표주박 모양의 돌로 치장된 약수터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먹는 물 시험성적서는 눈에 띄지 않으나 바가지가 걸려있는 걸로 보아 마실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물맛은 썩 뛰어나지 못했다. 오늘처럼 따뜻한 날에는 뱃속까지 청량감이 느껴져야 하지 않겠는가.

▼ 약수터를 지나서도 가파른 내리막길은 계속된다. 하지만 아까 헤어졌던 길이 다시 합쳐지는 지점부터는 완만하게 변한다.

▼ 갈림길도 심심찮게 만난다. 그 가운데 ‘영암각’이란 지명이 표기된 이정표가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이름 그대로 영험하다고 소문이 난 바위를 모시는 전각이 바로 ‘영암각(靈巖閣)’이기 때문이다. 높이가 9m, 둘레가 18m나 되는 커다란 바위인데 하도 영험하다보니 전각까지 세워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사가 봉행됨은 물론이다.

▼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돌탑 하나 없겠는가. 그리고 소망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가슴에 품어왔던 소망이라도 있다면 저 돌탑에 빌어보면 어떨까.

▼ 잠시 후 이정표(임란북천전적비 1.6㎞/ 천봉산 정상 1.0㎞)가 세워져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첨부된 지도에 나와 있는 ‘292m봉’이 아닐까 싶다. 아니 ‘묘봉’일지도 모르겠다. 괄호 속에다 ‘묘봉 쉼터’라고 적어 넣은 걸 보면 말이다.

▼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팔각정에 이른다. 전망대의 기능이 없이 오롯이 쉼터의 기능만 수행하는 정자이다.

▼ 정자의 뒤에는 거북이의 등짝처럼 생긴 바위가 올라앉았다.

▼ 그 옆에는 조망바위가 있었다. 상주의 너른 들녘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명당자리이다.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이곳 상주는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리어 왔다. 삼백이란 쌀과 명주(누에고치), 곶감 등 세 가지의 하얀색 특산품을 의미한다. 그 가운데 하나인 쌀은 저렇게 너른 들녘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참! 최근에는 ‘이백일청’이란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포도 재배지가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또한 ‘명실상감 한우’라는 브랜드로 곶감을 먹여 기른다는 상주한우를 새로운 특산품으로 홍보까지 한다.

▼ 조망을 즐기다가 빠져나오니 나무계단이 길게 놓여있다. 하지만 집사람은 무릎에 무리가 간다며 흙길을 고집한다. 비탈진데다 미끄럽기까지 하지만 무릎에는 부담이 덜 간단다.

▼ MTB 전용 이정표도 눈에 띈다. 상주가 ‘자전거 도시’라더니 일반 자전거 말고도 저런 산악용자전거도 일상화가 되었나보다. 참고로 상주의 자전거 교통 분담률은 무려 21%(전국평균 3%)에 이른다고 한다. 가정당 평균 2대의 자전거를 보유한다니 아예 상주 사람들의 삶에 묻어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다.

▼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이곳 천봉산은 상주 시민들에게 휴식처나 다름없다. 산책삼아 오르는 곳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니 시민들이 몸을 풀 수 있는 체육시설을 만들어놓지 않았을 리가 없다.

▼ 몇 걸음 더 걷자 밋밋한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근처의 ‘119 구호지점 표시목’은 현 위치를 ‘자산’으로 적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산산성(紫山山城)이 있었다는 자산이 이곳일지도 모르겠다.

▼ 하산길의 마지막은 가파른 내리막길이 장식한다. 찾아온 길손을 그냥 떠나보내기가 아쉽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 정상에서 내려선지 50분 만에 임란북천전적지에 내려섰다. 임진왜란 당시 관군 60명과 민병 800여명이 조총으로 무장한 왜의 주력부대 1만7천여 명과 북천변에서 격전, 전원이 장렬히 산화한 곳으로 현재는 호국정신의 성지이자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77호로 지정돼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산행은 3시간이 걸렸다. 물론 임란북천전적지를 둘러보는데 소요된 시간까지 포함됐다. 핸드폰의 앱에 찍힌 거리가 8㎞이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 안으로 들어서면 ‘태평루(太平樓)’가 가장먼저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으로 된 다포식 팔작지붕의 2층짜리 누각이다.

▼ 다음은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분들을 배향하는 충렬사의 외삼문인 ‘경절문(景節門)’이다. 이 문의 출입은 오른쪽으로 올라갔다가 왼쪽으로 내려와야 한단다. 하지만 보수공사가 한창이어서 오른쪽만 이용할 수 있었다.

▼ 외삼문을 통과하면 제실(祭室)과 비각(碑閣) 그리고 임란기념관(壬亂紀念館)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비각은 임진왜란 당시 북천 전투에서 싸우다 순국한 3충신(종사관 윤섬, 박호, 이경류)과 2의사(의병장 김준신, 김일)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신의사단비(忠臣義士壇碑)’ 복제본과 상주목 판관으로 봉직 중 순국한 권길의 충절을 새겨둔 ‘판관권길사의비’가 모셔져 있다. 기념관에는 전투 참여 인물들에 대한 역사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는데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 내삼문인 충의문(忠義門)을 지나면 충렬사(忠烈祠)로 입장할 수 있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모했다. 참고로 충렬사는 북천전투에서 전사한 3충신·2의사, 사근도찰방 김종무, 호장 박걸과 함께 순국 무명열사들의 위패가 함께 봉안되어 있는 곳이다. 매년 양력 6월4일 넋을 기리는 제향 행사를 가져오고 있단다.

▼ ‘침천정(枕泉亭)’은 1577년 상주목사 정곤수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한 연당으로 선비들이 휴식처와 글 짓는 곳으로 사용했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한 것을 다시 지으면서 천향정(天香亭)이란 이름을 붙였다. 1914년 상주읍성이 헐릴 때 뜻있는 유지 몇이 정자를 사서 현 위치에 옮기고 침천정이란 이름으로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단다.

▼ 침천정의 옆에는 상산관(商山館)이 있다. 지방 관아의 중심 건물로 고을 수령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망궐례를 행하였던 곳으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던 시설이다.

▼ 경내에는 임란북천전적비가 세워져 있었다. 의병 800여 명의 귀중한 목숨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