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산(蓬萊山, 410m)

 

산행일 : ‘21. 4. 19(월)

소재지 : 전남 고흥군 봉래면

산행코스 : 편백숲 주차장→체육공원→봉래2봉→봉래1봉→봉래산 정상→용송 빗돌→시름재→편백나무 숲→편백숲 주차장(소요시간 : 약 6km/ 2시간 20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고흥반도 최남단 외나로도(外羅老島)에 있는 높이 410m의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그러나 섬 산답게 곳곳에서 거대한 바위를 품었고, 그 덕분에 시야가 툭 트이면서 고흥반도의 산들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풍광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그런데도 봉래산을 찾는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다른 곳으로 쏠린다. 등산보다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9천 그루에 이르는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을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편백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피톤치드가 보태주는 힐링을 얻어가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 산행들머리는 ‘외나로도 편백숲 주차장’(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산 212-14)

남해고속도로(영암-순천) 고흥 IC에서 내려와 국도 15호선을 타고 내려오면 내나로도를 거쳐 이곳 외나로도에 이르게 된다. 이어서 ‘나로도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앞 오거리에서 4시 방향의 ‘하반로’를 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봉래산의 7부 능선쯤에 조성되어 있는 외나로도 편백숲 주차장에 닿는다. 널찍한 주차장에는 화장실은 기본. 테이블과 벤치를 세트로 배치해 쉼터도 만들었다. 심지어는 흙먼지 털이기까지 설치해 놓았다.

▼ 봉래산을 오르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가장 많이 이용되는 방법은 편백나무숲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정상을 오른 후 편백나무 숲을 거쳐 원점회귀 하는 것. 그밖에도 동쪽 해안의 우주과학관(예내해변) 또는 하반해수욕장에서 출발하여 시름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방법과 서쪽 해안의 염포해수욕장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방법 등이 있다.

▼ 탐방로 입구에 만들어놓은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아니 시국이 시국인지라 ‘관광지 방역관리본부’에서 설치한 몽골텐트라 하는 게 옳겠다. 참! 다도해국립공원사무소에서는 하절기(3월-10월) 입산시간을 04시-16시로 제한하고 있었다. 동절기에는 앞뒤로 1시간씩 단축됨은 물론이다.

▼ 평지나 다름없는 길을 따라 100m쯤 들어갔을까 체육공원이 나온다. 아고라를 세우고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나로도)의 안내도도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본 다음에 산행을 나설 것을 권해본다. 그러면 이곳이 봉래산 원점회귀 산행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어지럽다 싶을 정도로 많은 안내판들 가운데 하나가 눈길을 끌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오늘 걷게 될 탐방로가 고흥군에서 조성한 세 번째 ‘마중길’. 즉 ‘고흥 싸목싸목길(사계절 향내길)’이라는 것이다. 안내판은 또 삼나무·편백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를 걸으면서 세상사 어디선가 받았을 상처를 흔적 없이 치유해보길 기대한다고 적고 있다. 걷다가 만나게 되는 이정표는 ‘지붕 없는 왁자지껄 쉼터’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각자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하면 된단다.

▼ 이정표(봉래산 탐방로↑ 2.2㎞/ 편백숲← 1.4㎞/ 주차장↓ 0.1㎞)는 이곳에서 길이 둘로 나뉨을 알려준다. 직진해서 능선을 타면 봉래산 정상에 이르게 되고, 왼편은 피톤치드 공장인 편백나무 숲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 부부는 봉래산을 먼저 오른 다음 내려오는 길에 편백나무 숲을 들르기로 했다. 두 지점을 연결하는 탐방로가 잘 닦여있기 때문이다.

▼ 오른쪽 길. 즉 봉래산 정상으로 향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탐방로는 초입부터 만만찮은 경사를 내보인다. 지자체로서는 그게 못내 부담스러웠던지 모양이다.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써가며 경사를 많이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집사람처럼 ‘이까짓 오르막쯤이야’를 외쳐대는 사람들도 꽤 많았던 모양이다. 곧장 치고 오르는 지름길도 제법 뚜렷했다.

▼ 탐방로를 닦을 때 나왔음직한 큼지막한 돌들이 모였고, 누군가는 저렇게 돌탑을 쌓아올렸다. 오르는 게 힘들다고 바라는 소망 하나 없을까. 하다못해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해달라는 기도라도 드려보자.

▼ 취사가 금지된다고 해서 준비해 온 음식까지 못 먹겠는가. 저 원형 식탁은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물이다.

▼ 가파른 오르막길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 10분 남짓이면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고, 이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고도를 높여가기 때문이다.

▼ 이때 왼편으로 시야가 열리면서 예내저수지 아래에 위치한 나로도우주센터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우리나라 우주 발사체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야외엔 실물 크기의 나로호 모형과 나로호 개발 전 우주발사체 개발의 모체가 됐던 KSR 과학 관측 로켓 등이 전시돼 있다. 다양한 체험을 통해 우주를 경험해 볼 수도 있다니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 탐방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길이 널찍하게 닦인 것은 기본, 경사가 심한 곳에는 나무계단을 놓아 안전을 도모했다. 갈림길은 물론이고 일정한 간격으로 이정표를 세워놓아서 길을 잃고 헤맬 일도 없다. 이곳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국립공원에 걸맞는 꾸밈새라 할 수 있겠다.

▼ 잠시 후 국가지점표시판(라라 0031-0558)이 세워진 바위지대가 나오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시야가 열린다.

▼ 조금 전과는 달리 외나로도의 서쪽 해안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그 중심에는 ‘조구나루(동광)’가 놓여있다. 시선을 조금 더 옮기면 나로도항과 함께 애도(쑥섬)도 눈에 들어온다.

▼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바위지대다. 탐방로는 이 거대한 바위를 피해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이번에는 아예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봉래산을 세상에 알리는데 일조한 ‘삼나무·편백나무 숲’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 전용 전망대이다. 편백나무 숲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도 세워두었음은 물론이다.

▼ 전망대에 서면 봉래산의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길게 펼쳐진다. 그 왼편에는 예내저수지와 우주센터가 있다. 그림의 중앙은 물론 봉래산의 하이라이트인 삼나무·편백나무 숲이 장식한다. 거침없이 동공을 파고드는 진녹색의 물결이다.

▼ 조망을 즐기다가 돌계단을 오르니 ‘봉래 1봉’이다. 하지만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이 봉래1봉임을 알리는 별다른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정표(봉래2봉 0.5㎞/ 주차장 1.1㎞)에 나타난 지명을 보고 이곳이 그곳이려니 유추해볼 따름이다. 그렇다고 시설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전망도’ 아니 ‘조망도’를 세워놓았다. 원탁의자도 배치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쉬엄쉬엄 즐기다 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 바위지대로 나가자 외나로도의 서해안이 눈앞에 펼쳐진다. 먼저 상초마을과 외초마을부터 눈에 담는다. 고개를 조금 더 돌리자 이번에는 염포해안. 갯바위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아름답기 짝이 없다. 이곳을 왕래하던 중국 사신들도 저런 풍광에 취해 ‘봉래산’이란 이름을 갖다 붙이지 않았을까 싶다. ‘봉래산’이라는 게 본디 영주산(瀛州山), 방장산(方丈山)과 함께 전설상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 그 오른편으로는 조구나루(동광)와 교동마을이 있다. ‘외나로도항’은 그 너머. 그런데 포구의 앞에 있는 애도가 본섬인 외나로도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들고 남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리아스식 해안으로 이루어진 고흥에는 23개 유인도와 200여개 무인도가 딸려 있다.

▼ 이후로는 소사나무 숲속을 누비게 된다. 봉래산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이밖에도 봉래산에는 고로쇠나무와 소나무가 많다고 한다. 희귀 야생화로 보호 중인 복수초(福壽草)의 대규모 자생 군락지도 있단다.

▼ 이제 탐방로는 봉래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을 걷게 된다. 크고 작은 바위들을 넘으며 봉래산을 물론이고 고흥반도 주변의 풍광을 한꺼번에 눈에 담을 수 있다. 왼편은 항상 삼나무·편백나무 숲과 우주센터가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에서는 나로도와 고흥반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제 모습을 뽐낸다.

▼ 작은 바위를 돌아가기도 하고, 두부처럼 모난 바위를 정면으로 보며 가기도 한다. 거대한 바위가 길을 막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무계단을 놓아 노약자들도 별 어려움 없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했다.

▼ 오랜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어느 거인이 공깃돌 놀이하기에 딱 좋은 바위가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능선을 오르내리다보면 저렇게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될 만한 바위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 요놈들은 영락없는 개다. 그것도 우리네 옆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실이가 분명하다.

▼ 눈의 호사를 계속해서 이어진다. 봉래산의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그 중심에는 항상 편백나무 숲이 들어있다.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저 편백나무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편백나무 숲이라고 한다. 올 2월에는 전남도에서 발표하는 ‘올해 방문해야 할 명품 숲’에 선정되기도 했다.

▼ 거대한 바위를 우회하는 나무계단도 우리 부부에게는 또 다른 호사이다.

▼ 바위지대가 끝나면 탐방로는 또 다시 울창한 소사나무 숲속을 따라 이어진다.

▼ 고즈넉한 능선을 따르던 탐방로가 오르막길로 변하는가 싶더니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봉래 2봉’에 올라선다. 집채만 한 바위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듯한 주변 풍경이 눈길을 끄는 곳이다.

▼ 이곳도 역시 정상표지석은 없다. 그저 이정표(봉래산 정상 0.6㎞/ 봉래1봉 0.5㎞)에서 이곳이 ‘봉래 2봉’임을 유추해 볼 따름이다. 봉우리가 3개인 봉래산에서 정상과 1봉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2봉뿐이니 말이다.

▼ 2봉에서의 전망도 빼어난 편이다. 아니 누군가는 이곳이 봉래산 제일의 전망대라고까지 했다. 먼저 진행방향을 살펴보자. 잠시 후에 오르게 될 봉래산 정상이 우뚝하고, 그 왼편 산자락은 편백나무 숲이 장식하고 있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조금 전에 올랐던 ‘봉래1봉’이 그 빼어난 미모를 자랑한다. 넓게 펼치면 봉우리 주변을 바다가 감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비록 버스를 타고 들어왔지만 이곳 나로도는 역시 섬이었다.

▼ 오른편으로 펼쳐지는 그림에는 염포항이 놓여있다. 해수욕장도 살짝 얼굴을 내민다. 바다를 향해 튀어나간 곶의 뒤에서는 아름다운 섬 하나가 손짓을 보내온다. 바다 위에 솟은 바위와 드러누운 바위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맷돌 형상을 하고 있는 ‘곡두여’이다. 저 돌섬은 바닷사람들이 겁내는 암초다. 하지만 낚시꾼들에게는 프리미엄 낚시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 탐방로는 울창한 숲을 헤집으며 나있는 터널과 바위가 만들어놓은 천연의 전망대를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이 구간도 역시 눈이 호사를 누리는 구간이라는 얘기이다.

▼ 완만하던 탐방로가 갑자기 가팔라진다. 그것도 바윗길이다. 해발이 410m에 불과한 산이지만 명색이 봉래산의 정상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힘들게 해서라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 가파른 오르막길을 잠시 치고 오르자 드디어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는 1시간 만이다. 봉수대가 있었다는 정상은 수북하게 쌓인 잡석더미를 연상시킨다. 그래선지 막 쌓아올린 돌탑을 오르는 느낌이다. 그건 그렇고 섬에 있는 봉수대이니 연변봉수(沿邊烽燧)가 분명할 테지만 자세한 내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편백나무 숲과 나로도우주센터는 물론이고 조망에다 식생까지 적어 넣은 안내판도 막상 봉수대에 대해서는 뒤끝을 흐려버렸다.

▼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봉래산 정상’이란 이름표를 단 기둥을 세웠다.

▼ 우주센터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정상에서의 조망은 빼어나다. 자세한 상황은 전문가의 시선을 빌려보자. <팔영산·마복산·천등산 등 고흥반도의 산들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고흥의 시산도·지죽도·거금도·소록도는 물론 멀리 여수의 돌산도와 금오도·안도 등도 한눈에 들어온다.>

▼ 봉래산과 맞대고 있는 능선에서는 장포산과 마치산이 솟아올랐다. 그 오른편에는 ‘곡두여’가 있다. 해식애로 이루어진 저 부근은 유람선을 타고 돌아봐야 제 맛이라고 한다. 곡두여 외에도 나로(羅老)라는 지명을 낳게 한 ‘서답바위’, 부채바위, 사자바위, 부처바위 등 수많은 해안 절경들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정상의 이정표(시름재→ 1.2㎞/ 주차장← 2.2㎞/ 봉화산 정상↓)는 우리에게 어디로 갈 것인지를 놓고 선택을 강요한다. 하지만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선택이다. 오지에 묻혀있던 봉래산을 세상에 알린 일등공신인 ‘편백나무 숲’을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름재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유이다.

▼ 시름재로 내려가는 능선은 소사나무 일색이다. 어찌나 울창한지 아예 터널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에 서식하는 낙엽활엽수인 소사나무는 이곳처럼 주로 해안에 분포한다. 몸채의 뒤틀림이 심하고, 그 생김새가 아름답기 때문에 분재용으로 선호되는 나무이다.

▼ 숲길이라고 해서 볼거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래 사진과 같은 기암들이 나타나는가 하면, 길가 바위에라도 올라설라치면 시야가 열리면서 다도해의 고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 양탄자처럼 보드라운 풀밭이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쉬어가기 딱 좋겠다. 아니 잠시나마 눈을 붙이기에도 그만이겠다. 비록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겠지만 말이다.

▼ 정상에서 내려선지 20분. 길가에 죽은 나무줄기 몇 개가 쌓여있다. 그 뒤에는 ‘용송(龍松)’에 대한 얘기를 적은 비석까지 세워놓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봉래산의 청석골에서 쉬던 용이 이곳의 비경에 도취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소나무로 변해 살아가다가 봉래산 자락에 우주센터가 들어서자 소명을 다했다며 승천했단다. 인근 주민들이 태풍 매미 때 죽은 이 소나무에 ‘용송’이란 스토리텔링을 한 다음 그 잔해를 모아놓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로도에서 발사되는 우주선은 성공여부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하늘에 올라가 있는 용이 자신이 수호해주던 지역에서 올라온 우주선을 돌보지 않고 어찌 배겨낼 수 있겠는가.

▼ 용송을 지난 탐방로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침목 계단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사이사이에 야자매트까지 깔았기 때문이다. 무릎이 성치 않은 사람들도 힘들이지 않고 내려설 수 있다는 얘기이다.

▼ 이 구간은 꽤 많은 돌탑들이 눈에 띄었다. 탐방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돌멩이들을 쌓아올린 모양인데, 개중에는 정성들여 쌓은 흔적이 역력할 정도로 잘 생긴 것도 있었다.

▼ 그렇게 5분쯤 내려가자 ‘시름재(이정표 : 편백숲 입구 0.5㎞/ 봉래산 정상 1.1㎞)’에 이른다. 하도 숲이 우거져 사람들이 넘기 싫어했다는 고갯마루지만 지금은 어엿한 쉼터로 변해있다. 산행안내도는 물론이고 정자에 화장실까지 갖췄다.

▼ 편백숲 방향의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50m쯤 떨어진 지점에서 탐방로는 오솔길(이정표 : 편백숲← 0.5㎞/ 예내제↑/ 시름재↓ 0.1㎞)로 들어선다. 임도와 헤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와 다시 만난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또 다른 갈림길(이정표 : 주차장← 1.9㎞/ 우주센터↑ 2.2㎞/ 봉래산 정상↓ 1.7㎞). 이번에는 편백나무 숲으로 연결되는 오솔길이다. 이곳은 아까 들머리에서 보았던 ‘고흥 싸목싸목길(사계절 향내길)’의 주요 포인트이기도 하다. 3개의 코스가 모두 이곳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참고로 1~3 코스로 이루어진 편백나무 숲길은 총 11.8km다. 1코스는 4.2km로 우주과학관에서 예내저수지, 삼나무 편백숲을 거쳐 무선국으로 통하는 치유의 길이다. 2코스는 편백숲과 봉래산 정상을 거쳐 내려오는 5.8km 구간이다. 3코스는 편백숲에서 무선국에 이르는 길로 봉래산의 7부 능선을 가로지른다. 3코스는 사실상 1코스 안에 포함돼 있다. 그러니까 길을 우주과학관에서 시작한다면 1~3코스를 모두 아우르는 셈이 된다.

▼ 도로를 버리고 편백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된 '나로도 편백숲'은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지역 주민들이 정성을 들여 심고 가꿨다고 한다. 현재 22㏊ 면적에 높이가 20m도 넘은 아름드리 편백나무와 삼나무 9천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 편백나무 숲에 들어서면 길이 둘로 나뉜다. 그렇다고 고민할 필요까지는 없다. 두 길이 모두 쉼터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편백나무가 보내주는 솔향기를 조금이나마 더 맡고 싶을 경우 50m를 더 돌아가는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참고로 편백나무 숲의 탐방로는 경사가 거의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방문하기 좋다. 힐링을 위해 찾아온 탐방객들에게는 평상과 벤치를 놓아두는 배려도 했다.

▼ 오솔길을 따라 편백나무 숲속으로 들어선다. 가는 낙엽들이 쌓인 푹신한 흙길. 아늑하고 거칠 것 없이 하늘로 쭉쭉 뻗은 둥치들 사이로 걷는 걸음이 마냥 흥겹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기에 취해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 향기 속에는 피톤치드까지 가득할 것이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해충, 병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자연 항균 물질로 스트레스 해소와 심폐 기능 강화, 살균 효과가 있다.

▼ 숲의 나이가 100년에 이르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나무 하나하나가 모두 어른 두 명이 함께 끌어안아야 할 정도로 굵직하다. 높이도 30m에 이르는 거목들이니 바로 아래서 나무를 위로 올려다보기 힘들 정도다. 나무숲 사이로 빛도 쉽게 통과 못하는 듯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하다. 그 속으로 난 숲길을 걸으며 아름드리 편백나무 아래에서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가 편백나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활력에 넘쳐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울창한 편백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도심에서 찌들은 안 좋은 기운들이 쏙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피톤치드를 통해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힐링’하면 ‘편백나무 숲’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산림욕을 하러 편백나무 숲을 찾는다. 심폐기능 강화는 물론이고 스트레스 완화와 유해물질 프롬알데히드 제거, 항균 탈취, 알레르기·피부질환 면역기능 증대 등 수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미세먼지 자욱한 때 편백나무 숲을 거닐면 상쾌 통쾌 그 자체다.

▼ 30m도 넘는 거목들이 즐비한 숲은 겨우 통과한 빛살도 주눅 들어 숨죽인다. 100년이나 묵었다는 이 오래된 숲속에서 치유의 길을 걸어본다. 그것도 가장 편하게.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 숲에서 아예 머무르고 싶어지니 말이다. 그런 내 마음이 안쓰러웠는지 숲속에 평상과 벤치가 놓아 쉼터를 조성했다. 길가 곳곳에는 벤치도 놓아두었다. 바삐 가지 말고 오래 숨을 들이쉬고 뱉으며 숲을 즐기라는 배려일 것이다.

▼ 6만평이 넘을 정도로 광대한 넓이지만 울창한 숲속 산책로를 다 걸어 나오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탐방로가 종이 아니라 횡으로 나있었던 모양이다. 뒤돌아본 숲은 싱그러움을 상징하듯 초록색군락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저 숲은 198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숲이 훼손되지 않은 채로 보존되어 온 이유이다. 그 덕분에 현재 국가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국 18곳에 산림문화자산이 지정되어 있지만 편백나무 숲이 지정된 것은 봉래산이 유일하단다.

▼ 아쉬움을 뒤로하고 숲 밖으로 나서니 시야가 뻥 뚫리면서 시퍼런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바다와 하늘이 경계가 없다. 옅게 낀 해무 탓이 아닐까 싶다.

▼ 산행날머리는 ‘외나로도 편백숲 주차장’(원점회귀)

편백나무 숲을 벗어나고 20분쯤 더 걸으면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주차장에 이르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6㎞를 2시간 20분에 걸었다. 절반 이상이 능선이었음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참! 주차장으로 나오는 길에 옛 사람들이 살았음직한 터도 만날 수 있었다. 나지막한 돌담도 보인다. 아까 안내판에서 보았던 ‘화전민의 돌담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난 집사람의 이름을 크게 불러봐야겠다. 이 길에서 미워하고 사랑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거나 지우다보면 어느새 그 이름이 맑아진다고 안내판은 적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지워야할 이름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미워했던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