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봉(572m), 말봉산(589m), 천봉산(天鳳山m, 612m)

 

여행일 : ‘21. 4. 1(목)

소재지 : 전남 보성군 문덕면·복내면과 화순군 사평면의 경계

산행코스 : 대원사→삼거리→까치봉→마당재→말봉산→삼거리→천봉산(왕복)→대원사(소요시간 : 약 9.5km/ 3시간 30분)

 

함께한 사람들 : 산두레

 

특징 : 딱 4년 6개월 만에 ‘산두레’를 찾았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심심찮게 따라다니던 산악회인데 자작의 산행기가 있는 산은 또 다시 오르지 않는다는 내 고집으로 인해 함께 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미답의 산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다른 일정과 겹쳐대니 어쩌겠는가. 오죽했으면 산두레와는 인연이 닿지 않는구나 하는 푸념까지 늘어놓았었겠는가. 그러다가 산행대장이 윤홍주대장으로 바뀌면서 미답의 산이 공지되었고, 그렇게 해서 따라나선 산이 보성 땅에 있는 ‘천봉산’이다. 전형적인 육산인 천봉산은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편이다. 볼거리가 드물다는 육산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산이 품고 있는 대원사는 결코 낯설지 않은 천년고찰이다. 십리 벚꽃길과 티벳박물관 등의 볼거리까지 갖추고 있어 사시사철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 산행들머리는 ‘대원사 주차장’(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831)

호남고속도로 문흥 JC에서 ‘광주 제2순환로’로 옮겨 화순·나주 방면으로 달리다가 소태 IC에서 내려와 화순방면 국도(29호선)로 갈아탄다. 이어서 금능교차로(화순군 이양면 금능리)에서 58번 지방도, 복내사거리(보성군 복내면 복내리)에서는 다시 국도(이번에는 18호선 주암방면)로 바꿔 들어가다 대원사삼거리(문덕면 죽산리)에서 좌회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원사에 이르게 된다. ‘초르텐(chorten)’이라는 티베트 불탑이 찾아오는 길손을 맞아주는 절의 주차장이 산행의 들머리가 된다.

▼ 천봉산은 꽤 여러 곳에서 오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들머리는 대원사와 백민미술관. 모두 보성(문덕면) 땅이다. 이밖에 문덕면의 봉갑사와 복내면(보성군)의 일봉리, 화순(사평면)의 운산마을에서도 오를 수 있다.

▼ 절간에 왔으니 일단 경내부터 들러보는 게 순서. 주차장의 오른편에 보이는 일주문으로 들어서면 된다. 대원사(大原寺)는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통일신라 때는 5교9산 중 열반종(涅槃宗)의 8대 가람 중 하나로 꼽혔던 참선도량이었다. 고려 땐 송광사의 16국사 중 제5대 자진원오(慈眞圓悟) 국사가 절 이름을 죽원사(竹原寺)에서 대원사로 바꿔가며 크게 중창, 정토신앙과 참선수행의 도량으로 발전했으나 여순사태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극락전만 남기고 모두 불타 버리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러다가 현 주지인 현장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중창불사를 일으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 일주문 앞에는 이곳이 국가농업유산인 ‘고차수(古茶樹)’의 군락지임을 알리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극락전 뒷편 언덕에서 자라는 야생녹차로 350년쯤 묵었는데, 현재 보성녹차의 시배지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단다. 맞다. 천년고찰인 대원사는 대규모 사찰이었다. 그러니 사찰의 융성과 함께 차 문화 또한 꽃피웠을 것이다.

▼ 일주문의 오른편에 붙어있는 작은 문은 꼭 기억해두자. 일화문이라는데 ‘우리는 한 꽃’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이세상은 너와 내가 따로 없으니 모든 생명이 한 가족으로 살아가자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 문으로 나가 왼편으로 진행하면 천봉산 등산로의 들머리가 나온다. 절간을 둘러본 다음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 경내에는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나 볼 법한 금언과 명구들이 많이 보인다. <욕심보다 더 질긴 결박은 없다. 분노보다 더 뜨거운 불꽃은 없다. 어리석음보다 더 엉성한 그물은 없다.> 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 말인가. 이밖에도 ‘사랑으로 은혜를 많이 베풀어라. 세상이 좁아서 언제든 만나지 않으랴. 미움으로 원한을 절대 만들지 말라. 세상이 좁아서 어디서 피할 수 있으랴’ 등의 팻말들이 수없이 늘어서 있었다.

▼ 일주문을 지나자 5칸으로 지어진 이층짜리 전각이 얼굴을 내민다. 아래층에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셨으니 천왕문(天王門)이나 천왕각(天王閣)으로 불리는 게 마땅하겠건만 ‘김지장 성보박물관’이라는 낯선 편액을 달고 있었다. 김지장(金地藏)은 신라 성덕대왕의 태자였다고 전해지는 스님이다. 하지만 24세에 출가하여 75년 동안 금욕 수행한 다음 99세에 열반에 들어 육신보살이 되었단다. 이에 중국 불교에서는 그를 지장왕보살로 떠받들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 이곳에다 그의 기념관을 건립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과연 김지장스님과 어떤 인연 있을까? 아니 과거가 아닌 앞으로 맺어나갈 억겁의 인연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 구품교(九品橋)로 건너는 연못은 대원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여름이면 활짝 핀 연꽃과 각종 수생식물로 생태 공원을 방불케 한단다. 대원사 경내에는 이런 연못이 7개가 있는데, 이는 인간의 몸에 있는 일곱 개의 챠크라(Chakra, 인간의 감각·감정·신체 기능을 지배하고 있는 에너지 센터)를 상징한단다.

▼ 주불전인 극락전의 대문 격인 ‘연지문(蓮池門)’은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낮다. 아니 무엇보다도 머리로 치는 커다란 목탁이 걸려있어 흥미를 돋운다. 일명 '용서하는 왕목탁'이다. 여기에 머리를 부딪치면 나쁜 기억이 사라지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니 한번쯤 시도해 볼 일이다. 두 손으로 목탁을 잡고 이마로 세 번 부딪치며 ‘나쁜 기억 사라져라, 나의 지혜 밝아져라, 나의 원수 잘되거라’를 되뇌며 들어가면 된단다.

▼ 주불전은 극락전(전라남도유형문화재 87호)이다. 불교의 이상향. 즉 극락정토를 상징하는데 일주문과 사천왕루를 지나고 구품교를 건너 계단을 오르면 연지문 너머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시간이 없어 생략했지만 극락전의 안에는 보물 제1861호인 ‘대원사 극락전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영조 때인 1766~1767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서쪽 벽에 흰옷 입은 관음보살과 선재동자가 함께 있는 관음보살 벽화를, 그리고 동쪽 벽에는 달마대사와 혜가단비의 고사를 표현한 달마대사 벽화를 그렸단다.

▼ 대원사는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어린 영령(태아령)을 위로하는 지장 기도도량이라고 했다. 그래선지 극락전 옆에다 어린 영혼들을 천도하기 위해 태안지장보살상을 세우고 빨간 모자를 쓴 수많은 동자상들을 모셨다. 천도를 위한 백일기도도 열린단다.

▼ 부모공덕불(父母功德佛)이란다. 아버지지장과 어머니지장을 앞뒤 감실에 모시고 있다. 이밖에도 전남도 유형문화재(35호)로 지정되어 있는 자진국사부도(大原寺慈眞國師浮屠)와 김지장전(金地藏殿), 아도영각(阿道影閣), 천불전(千佛殿), 산신각(山神閣), 황희정승영각(黃喜政丞影閣), 금종루(金鐘樓), 선원(禪院), 요사(寮舍) 등의 전각이 있다.

▼ 일주문으로 되돌아와 산행을 시작한다. 일주문과 '우리는 한 꽃'이란 현판이 걸린 일화문을 잇따라 통과한 다음,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곧이어 산행들머리가 나타난다. 초입에 이정표(천봉산 7.0㎞, 까치봉 1.7㎞)'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산죽밭 사이로 난 침목계단을 오르자 산길은 경사가 거의 없는 능선을 탄다. 육산의 특징인 보드라운 흙길에다 코끝에서는 솔향기가 솔솔. 그야말로 콧노래라도 흥얼거리기에 딱 좋은 코스라 하겠다.

▼ 그렇다고 오름길 한번 없으랴. 명색이 600m급의 산인데 말이다. 비록 잠시지만 이런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 산행을 시작한지 25분이면 주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길이 세 갈래로 나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산봉우리인데, 누군가 이정표(까치봉← 0.78㎞, 말봉산 3.8㎞/ 백민미술관→ 3.7㎞/ 대원사↓ 1㎞)에다 ‘문수봉삼거리’라고 적어놓았다. 친절하게도 450m라며 높이까지 표시했다.

▼ 오른편은 또 다른 들머리인 ‘백민미술관(百民美術館)’으로 연결된다. 보성 출신의 향토작가인 조규일(曺圭逸)의 작품과 소장품을 기증받아 1993년에 문을 연 국내 최초의 군립미술관으로 그의 호인 백민(百民)이 미술관의 이름이 되었다. 조규일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상설전시하고 있다.

▼ 천봉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은 왼편으로 흐른다. 맞다. 오늘 산행은 대원사를 중심에 두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다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까치봉까지 0.78㎞의 구간은 작은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경사도 거의 없다. 두 봉우리의 고도차가 122m밖에 되지 않아 서둘러 고도를 높일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 전형적인 육산(肉山)이지만 바윗길 느낌이 나는 구간도 있었다. 비록 딱 한번, 그것도 50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하도 신기해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 오늘 산행은 수많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게 된다. 하지만 독자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딱 3개뿐이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게 ‘까치봉’이다. 그런 자부심 때문인지 까치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구간은 상당히 가팔랐다.

▼ 삼거리봉에서 넉넉잡아 20분이면 ‘까치봉’에 올라선다.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정표(말봉산 3.0㎞, 천봉산 5.2㎞/ 대원사 1.7㎞, 백민미술관 4.5㎞)에다 현재의 위치(까치봉, 해발 570m)를 표시해 놓았을 따름이다. 대구의 산악인 김문암씨가 걸어놓은 정상표지판이라도 보이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 거의 없으니 걷기에 딱 좋은 코스라 하겠다.

▼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게 된다. 따뜻해진 날씨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산벚나무와 생강나무, 진달래가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북이 쌓인 낙엽더미 속에서는 새 생명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수줍은 듯 꽃망울을 열었다.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 가운데 하나인 ‘얼레지 꽃’이다.

▼ 이름 없는 봉우리를 두 개쯤 넘었을까 갑자기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것도 곧장 내려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쓰고 나서야 고도를 낮출 정도로 많이 가파르다.

▼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런 내리막길은 오래지 않아 끝나고 또 다시 완만한 경사의 보드라운 흙길로 변하기 때문이다.

▼ 까치봉에서 내려선지 30분. 느닷없이 산죽밭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산길은 ‘마당재’에 내려선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보성 문덕면과 화순 사평면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이다.

▼ 사거리가 분명하지만 이정표(말봉산↑ 2.2㎞, 천봉산 4.4㎞/ 대원사 입구← 0.8㎞/ 까치봉↓ 0.8㎞)는 보성지역의 세 방향만 나타내고 있다. 화순 방면은 쏙 빼버린 것이다. 어깨를 맞대고 있는 두 지자체간에 서로 배려하는 게 요즘의 트랜드인 윈윈(win-win)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 마당재를 지난 능선은 점점 왼쪽으로 휜다. 푸릇푸릇한 풀이 돋아난 것이 이제는 바닥까지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아니 짧은 내림과 길고 완만한 오름을 반복하면서 고도를 높여간다. 그렇다고 서두르지는 않는다. 마당재에서 말봉산까지는 2.2㎞. 거리가 길다보니 서두를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 그렇게 15분쯤 더 걸어서 오른 삼거리봉(이정표 : 천봉산 3.5㎞/ 까치봉 1.7㎞)에서 선두대장인 윤홍주씨가 술상을 차려놓고 있었다. 산행 때마다 간식을 막걸리로 때우는 내 습관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 이곳에는 이정표 하나가 더 세워져 있었다. 말봉산(0.4㎞)과 화순의 운산마을(3.2㎞) 방향만 표기한 것으로 보아 화순군에서 세웠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보성 땅에 있다는 죄만으로 대원사를 누락시킬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긴 보성군에서 세운 이정표도 화순 땅의 지명은 쏙 빼먹어 버렸지만 말이다.

▼ 또 다시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작은 산치고는 오르내리는 봉우리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아까 운산마을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봉까지 오면서 고도를 다 높여놓은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 나뭇가지에 매달린 ‘국제신문’의 리본이 반갑다. 부산시의 유력 일간지 가운데 하나로 ‘근교 산’이란 취재팀을 운영하는데, 조금 덜 알려진 산들을 찾을 때 그들이 남긴 기록을 많이 참조하는 편이다.

▼ 이번에는 양지꽃이 눈에 띈다. 치자연(雉子筵)·위릉채(萎陵菜)·소시랑개비라고도 불리는 관화식물(觀花植物)로 어린순과 연한 잎을 삶아 나물로 먹거나 된장국을 끓여 먹으며, 혈증을 다스리는 탕약의 약재로도 쓰인다.

▼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콧노래 흥얼거리며 걷기를 13분. 산길은 우릴 ‘말봉산’에다 올려놓는다. 물론 ‘삼거리봉’에서 막걸리를 마시고나서 부터이다. 말봉산은 독자적인 이름을 가질만한 외형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두루뭉술한 능선인데, 그 능선 상에서 살짝 솟아오른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나무들에 포위당해 조망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육산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 정상표지석도 눈에 띄지 않는다. 보성군에서 세워놓은 이정표(천봉산 2.2㎞/ 까치봉 3.0㎞)가 다인데, 이번에는 현위치 표시도 없다. 김문암씨의 ‘정상표지판’마저 없었더라면 십중팔구 정체불명의 산봉우리로 추락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508m로 잘못 표기해놓은 산의 높이는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그래선지 매달려있어야 할 표지판이 땅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 천봉산으로 향한다. 산악마라톤을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완만한 산길이 계속된다. 걷는 내내 산죽과 함께한다는 또 다른 특징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곳에서는 웃자란 산죽들에 둘러싸인 터널을 통과하기도 한다.

▼ 이번에는 또 다른 봄의 전령사인 ‘제비꽃’이 반긴다.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올 때쯤 꽃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지방에 따라서는 오랑캐꽃이나 반지꽃, 앉은뱅이꽃, 외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랑캐꽃이란 이름은, 꽃을 뒤에서 보면 그 모양이 오랑캐의 투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 산자락은 온통 산죽으로 덮여있다. 그러고 보니 대원사가 위치한 마을의 이름이 ‘죽산리(竹山里)’였다. 오죽 산죽이 많았으면 그런 지명이 붙여졌을까. 그렇게 20분 남짓 걸었을까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가 나온다.

▼ 이곳은 윤대장이 대원사로의 탈출이 가능하다던 지점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이정표도 대원사의 글씨를 커다랗게 적어놓았다. 하지만 1㎞ 남짓만 더 걸으면 천봉산 정상인데 어느 누가 이곳에서 탈출할까 싶다.

▼ 천봉산에 가까워진 탓인지 산길이 조금 가팔라졌다. 그러나 산악마라톤을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경사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 그렇게 10분 정도를 걷자 윤대장이 진행방향표시지를 깔고 있는 게 보인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분명히 삼거리인데도 두 개나 되는 이정표는 각각 까치봉과 대원사만 가리키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천봉산 방향이 쏙 빠져버린 것이다.

▼ 윤대장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10m쯤 더 걸으니 제대로 된 이정표(천봉산 정상 0.3㎞, 봉갑사 4.3㎞/ 대원사 1.5㎞/ 말봉산 1.7㎞, 까치봉 4.9㎞)가 세워져 있다. 삼거리에 있어야 할 이정표를 엉뚱한 곳에다 세워놓은 것이다.

▼ 이정표는 천봉산의 정상 말고도 ‘봉갑사(鳳甲寺,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鳳岬寺)’라는 지명을 적고 있다. 아도화상(我道和尙)이 창건했다는 이 절을 영광 불갑사, 영암 도갑사와 더불어 ‘호남삼갑(湖南三甲)’으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 무릇 '갑'이란 '으뜸'과 '최초'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 백제 최초의 사찰인 불갑사나 풍수리지리의 대가인 도선이 자신의 고향에다 지었다는 도갑사와 어찌 어깨를 견줄 수 있겠는가.

▼ 삼거리를 지나면 천봉산은 바로 코앞이다. 짧고 부드럽게 아래로 내려섰다가 약간 가팔라진 건너편 산비탈을 잠깐 치고 오르면 드디어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20분 만이다.

▼ 두세 평이나 됨직한 정상은 비좁은데도 텅 비어있다는 느낌이다. 가장 중요한 정상표지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삼각점(복내 23)이나 이정표 갖고는 이곳이 정상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현지 주민들도 그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문덕초교 동문들이 이정표에다 정상표지판을 붙여놓았다. 참! 정상에서는 길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여러 갈래로 나뉘는 길을 찾아내기에는 이정표가 너무 부실했기 때문이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우선 동쪽부터 살펴보자. 전남지역 주민들의 젖줄인 주암호가 널따랗게 펼쳐지는데 그 뒤는 조계산 도립공원의 아름다운 산세가 받쳐준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이번에는 존재산, 방장산, 계당산, 천운산 등을 품은 호남정맥이 구불구불 달려가는데, 그 너머로 첩첩이 쌓인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자세한 상황은 국제신문의 기사를 인용해본다.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란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사방팔방 산의 물결이 펼쳐진다. 북으로 까치봉 말봉산 너머로 무등산과 그 우측으로 화순 모후산이, 동쪽 주암호 뒤로 조계산과 그 우측 뒤로 호남정맥의 종착지인 광양 백운산과 암봉인 금전산 그리고 소설 '태백산맥'의 중심무대인, 군부대철탑이 보이는 존제산이 확인된다.>

▼ 이제 하산할 일만 남았다. 아까 지나왔던 삼거리로 되돌아가 이번에는 대원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산죽군락지를 따라 나있는 이 코스는 가파르기 짝이 없다. 그 가파름이 얼마나 심했으면 밧줄까지 매어놓았을까 싶다.

▼ 그렇다고 가파른 내리막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잠깐이지만 완만한 구간이 나타나는가 하면 또 어떤 곳에서는 오르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참! 내려오는 길에는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바위를 만나기도 했다.

▼ 하산을 시작한지 35분 만에 ‘천봉산 임도’에 내려섰다. 차량이라도 다니는지 반질반질하게 길이 나있는데, 이 길을 따라 대원사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더 걸린다니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겠다.

▼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50m쯤 더 걷자 산길은 또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임도삼거리’라는 이름표를 단 이정표는 500m만 더 걸으면 대원사에 이르게 된다고 알려준다. 산행이 다 끝나간다는 얘기일 것이다.

▼ 솔향기 가득한 숲길을 잠시 걸으면 침목을 덧댄 급경사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진행방향의 나뭇가지 사이로 대원사가 얼굴을 내민다.

▼ 산행 날머리는 대원사주차장(원점회귀)

그렇게 10분쯤 내려서면 작은 개울(이정표 : 천봉산 2.2㎞)이 나오고, 이어서 총총거리며 징검다리를 건너면 산행을 출발했던 대원사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오늘 산행은 3시간 10분이 걸렸다. 이는 순수하게 걸은 시간이며, 대원사와 티벳박물관을 둘러보는데 걸린 시간은 포함되지 않았다.

▼ 주차장 근처. 오색의 타르초(風幡)가 펄럭이는 하얀 건축물은 ‘수미광명탑(약사여래 삼존불을 모셨는지 약사여래법당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이다. 티벳박물관 개관을 축하하는 달라이 라마의 메시지와 티베트·네팔에서 보내온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탑 외부에는 네팔에서 제작한 마니보륜 108개를 매달았다. 불교 경전이 들어 있는 마니보륜을 돌리면서 탑을 한 바퀴 돌면 소망이 이뤄진다니 한번쯤 시도해 볼 일이다. 티베트 불교의 육자진언 '옴마니밧메훔'을 암송하면서 말이다. 부처의 자비가 온 세상에 퍼지기를 바라는 의미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참고로 ‘타초르’는 ‘룽다(風馬, 룽다란 긴 장대에 매단 한 폭의 기다란 깃발을 의미하니 긴 줄에 정사각형의 깃 폭을 줄줄이 이어달은 만국기 모양의 ’타초르‘와는 약간 다르다)’라고도 불리는 오색 깃발이다. 우주의 5원소(하늘, 땅, 불, 구름, 바다)를 상징하는 파랑·노랑·빨강·하양·초록 깃발에 불경 구절을 깨알같이 적어 끈으로 이었다. 부처의 가르침이 온 세상에 퍼지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아래 사진은 다른 분의 것을 빌려다 썼다.

▼ 대원사의 명물로 자리 잡은 ‘티벳박물관’은 수미광명탑의 뒤에 있다. 현장스님(대원사 주지)이 인도 여행 중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난 인연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티베트 불교문화는 인류가 이룩한 영적인 문명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티베트의 정신문화와 예술 세계를 소개하고 한국 불교와 교류를 촉진하고자 2001년 박물관을 열었다. 1천여 점의 전시물은 현장스님이 티베트와 몽골 등지를 순례하며 모았다고 한다.

▼ 소정의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자 ‘달라이라마’가 가장 먼저 반긴다. ‘티벳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풍경이라 하겠다. 티베트의 살아있는 성자이자 관세음보살의 현신이 곧 달라이라마이니 말이다.

▼ 이밖에도 티베트 불교회화인 탕카, 티베트 사람들의 생필품인 티포트, 석가모니 직계 후손인 석가족 장인이 만든 불상, 티베트 불교의 정수로 꼽히는 만다라 등 다양한 티베트의 문화들을 만나볼 수 있다.

▼ 박물관의 대미는 ‘저승체험장’의 몫이다.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또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망자의 시신을 독수리 먹이로 내주는 티베트 장례 문화를 담은 사진은 오싹하면서도 성찰할 기회를 준다.

▼ 대원사로 들어가는 입구. 구불구불 돌아가는 5.5km의 도로는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힌다는 그 길에 지금은 꽃비가 내린다. 서럽도록 하얀 꽃잎이 봄치고는 제법 센 바람결을 따라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장축의 버스를 운전하는 김부장님에게는 이 또한 달갑잖은 상황일 뿐이다. 2차선이라지만 가뜩이나 차선이 비좁은데다, 그마저도 시도 때도 없이 휘기 때문이다. 거기다 반대방향에서는 벚꽃놀이 나온 차량들이 끊이지 않으니 이 얼마나 조심스럽겠는가.

♧ 에필로그(epilogue), 지리·계룡·한라·모악산과 더불어 국내의 대표적 여산인 천봉산은 아도화상(阿度和尙)과 인연이 있는 산이라고 전해진다. 신라 미추왕 시절, 고구려의 승려 아도가 지금의 선산(경북)으로 들어와 모례(毛禮)의 집에 머물면서 불법을 전파하는데, 어느 날 꿈에 봉황이 나타나 사람들이 죽이려고 하니 빨리 도망가라고 하더란다.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서 봉황이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봉황은 광주 무등산의 봉황대까지만 데려다주고 사라져버렸던 모양이다. 3개월 동안이나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들을 누빈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다가 하늘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인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낸 다음 붙여놓은 이름이 천봉산(千鳳山)이라는 것이다. 그 산자락에다 대원사를 창건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