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산(鍾懸山, 588.5m)

 

산행일 : ‘21. 2. 27(토)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과 연천군 청산면의 경계

산행코스 : 종현교→460봉→종현산→덕둔리방향 능선→잣나무 숲→아장교(소요시간 : 약 7km/ 4시간 20분)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특징 : ‘코로나-19’ 와중에도 2월부터는 격주 단위로 ‘외씨버선길’이라는 트레일을 걷기 시작했다. 버스를 이용하여 해당지역까지 간 다음 집사람과 함께 걷는 일정이다. 나머지 주말에는 서울 근교의 산들을 찾아다녔음은 물론이다. 그러던 차에 최군의 전화를 또 받았고, 이번에는 포천에 있는 ‘종현산’을 찾았다. 600m에도 못 미치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오지에 위치한데다 이정표 등의 편의시설까지 일절 없어서 일반인들에게는 접근이 어려운 산이기 때문이다. 갑갑하기 짝이 없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산행을 할 수 있으니 요즘 시국에 이보다 더 나은 산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아장교로 내려오는 하산길이 바위로 되어 있어 다소 위험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 산행들머리는 ‘종현교’(포천시 신북면 덕둔리 산 252-1)

구리-포천고속도로 ‘신북 IC’에서 내려와 국도 43호선을 타고 철원방면으로 달리다가 ‘신북면사무소 앞 교차로’에서 좌회전 368번 지방도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종현교에 이르게 된다. 차량은 들머리에 있는 공터에 세우면 된다. 승용차 5~6대 정도는 주차가 가능하다. 참고로 이곳 덕둔리(德屯里)는 둔덕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만큼 산골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종현산을 오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제일휴게소에서 오르는 방법과 종현교에서 오르는 방법, 그리고 종현교 바로 옆에 있는 불무리교육대에서 오르는 방법이다. 일부 지도는 원둔덕 또는 상정초등학교에서 오르는 방법과. 법수동에서 오르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제일휴게소를 들머리로 삼아서 정상에 오른 다음 종현교로 내려오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경사가 완만하고 바위가 적은 길로 하산하는 게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지 않겠는가.

▼ 종현교의 바로 옆에 ‘포천염광수련원’이 자리하고 있으니 들머리를 찾는데 참조하면 되겠다. 미션스쿨인 염광학원(鹽光學園)의 대단위 수련시설이니 찾아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참고로 우리 부부는 내비게이션에 ‘종현교’를 찍고 왔다. 중간에 포천이 아닌 동두천을 경유해 와서 약간 헷갈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돌아갈 때는 우리 예상대로 포천을 경유해 귀가했다.

▼ 공터의 바로 뒤에서 산자락으로 들어서야 하는데도 현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돼지열병의 방역을 위해서라며 산자락을 통째로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감염원인 멧돼지와 사람 사는 세상을 원천적으로 갈라놓기 위해서일 것이다.

▼ 능선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찾다가 다리로 나오니 제법 규모가 큰 하천이 나온다. 기암절벽과 맑은 계곡이 손잡고 선경을 빚어낸다는 ‘열두개울’이다. 선녀바위와 만장바위, 무장소, 도라소, 쌍무소 등의 명소가 10리에 걸쳐 펼쳐지는데, 오래 전 다리가 없던 시절에 법수동에서 덕둔리로 가려면 열두 번이나 개울을 건너야 한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참고로 종현산의 남서쪽으로 흐르는 저 하천의 원래 이름은 ‘산내천(山內川. 또는 靑山川)’이다. 소요산과 왕방산, 국사봉, 계류산의 한가운데 위치한 ‘산골 중의 산골’, 즉 산안(山內)이라는 뜻에서 온 지명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열두개울’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 해결책은 다리 끝부분에 있었다. 다리의 끝과 연결시킨 철망을 붙잡고 산자락으로 이동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바닥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까짓 철망을 붙잡은 손아귀에 힘만 조금 더 더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들어붙은 산자락에는 제법 또렷한 길이 나있었다.

▼ 완만한 능선을 따라 잠시 걷자 잘 써진 무덤 하나가 나온다. 봉분은 각종 문양을 넣은 석재로 테를 둘렀고 그 앞에는 비석은 물론이고 상석에 망주석까지 갖췄다. 무덤만 보면 정경대부는 못되어도 벼슬깨나 한 것으로 보이는데, 비문은 그냥 학생(學生)으로 적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이 명당일지도 모르겠다. 무덤의 발복(發福)으로 후손이 잘 되어 저렇듯 돈을 들였을지 누가 알겠는가.

▼ 묘역의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는 ‘열두개울’이 내려다보인다. 경기도의 계곡은 요즘 많이 달라졌다. 불무리교육대(부대 앞 버스정류장은 ‘휴양소’로 되어있다)라는 군사시설 외에는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아직도 불법으로 영업하는 식당의 평상들이 냇가 널려있는 풍경이 더 익숙한데도 말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 행정기관에 찬사를 드려본다.

▼ 산으로 들어선지 10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커다란 바위벼랑이 갈 길을 막는다. 종현산의 등산로가 많이 험하다더니 이런 바윗길이 많아서 그런 표현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최군의 아이들도 함께하고 있는데 걱정이다.

▼ 바위를 피해 왼쪽으로 돌아 오르니 ‘국가지점번호(다사 6486-9825)’ 푯말이 길손을 맞는다. 정상까지 3.4㎞가 남았단다. 들머리에서 여기까지가 0.45㎞이니 정상까지의 총 거리가 4㎞ 가까이나 되는 셈이다. 종현산의 높이가 588.5m인 것을 감안하면 등산로의 경사가 완만하다는 얘기도 된다.

▼ 길은 또렷한데 반해 상황은 썩 좋지 않다. 바닥이 거의 너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보통의 흙길로 돌아오니 너무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 그렇게 10분 정도를 걷자 또 다른 푯말이 세워져 있다. 이번에는 119의 ‘구조지점표시목(위험지역 1)’이다. 현 위치를 ‘초성리휴게소와 정상사이’로 적고 있는 푯말은 정상까지의 남은 거리를 1.9㎞로 표기했다. 들머리인 마을입구에서는 0.5㎞를 걸어왔다는 것이다. 첫 번째 푯말에서 10분쯤 걸었을 따름인데 1.5㎞나 걸었다는 것이다. 시설물을 세운 경기도와 포천시의 관계자들은 이 구간에서 축지법을 사용했던 모양이다.

▼ 두 번째 푯말을 지나면서 산길은 상당히 가팔라진다. 하지만 버거울 정도까지는 아닌데다 흙길이라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 발길이 편하면 사념 또한 많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 2주일 만에 만났으니 주고받을 얘기가 많아지는 것 또한 당연하다. 오순도순 밀린 얘기를 나누며 8분 정도를 오르자 송전탑이 나온다.

▼ 송전탑을 아래서 올려다보며 셔터를 눌러봤다. 대칭을 이루는 모양새가 그럴 듯하지만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맞다. 꼭대기 위로 지나가고 있어야할 뭉게구름이 빠졌다.

▼ 송전탑을 지나서도 걷기 딱 좋은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깔린 낙엽이 소리를 질러댄다. 낙엽이야 비명일지 몰라도 내 가슴에 전해오는 바스락거림은 반가움의 표시다. 최군의 두 아이도 나와 같았던지 쫑알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기 짝이 없었다.

▼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만에 주능선에 올라섰다. 조그만 봉우리인 이곳은 주능선을 따라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이다. ‘법수교(法水橋)’나 ‘강서교’로 연결되는 등산로인데 길의 흔적이 또렷한 걸로 보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법 되는 모양이다. 참고로 ‘법수(法水)’라는 지명은 마을 앞을 흐르는 ‘열두개울’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불법이 중생의 마음 속 때를 깨끗이 씻어내는 물’에 비견될 정도로 물이 맑다는 것이다.

▼ 주능선을 만나면서 오른편으로 크게 휜 탐방로는 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진다. 콧노래라도 흥얼거리기 딱 좋은 기분 좋은 산길이다.

▼ 그렇다고 모든 구간이 다 완만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래 사진처럼 가파른 내리막길도 나타나니 주의할 일이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까짓 미끄러져봐야 엉덩이 한번 털어버리면 그만 아니겠는가.

▼ 이 구간은 걷는 내내 왼편 나뭇가지 사이로 채석장이 내다보인다. 산의 한쪽 면을 통째로 잘라내고 있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라 하겠다. 하지만 눈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두부 자르듯이 반듯반듯하게 잘라놓은 공법. 즉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벤치 커트’라는 채석방법을 쓰고 있다는 선입견이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 콧노래 흥얼거리며 걷길 20분. 산길이 느닷없이 아래로 뚝 떨어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부를 만났다. 첨부된 지도의 2번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열두개울’의 지류인 ‘절골’을 거슬러 올라오는 길로, 우리가 올라왔던 3번 등산로보다 0.5㎞쯤 단축되는 코스이다.

▼ 안부의 오른편에는 ‘열두개울’에서 올라오는 길이 또렷하게 나있다. 반면에 왼편에서는 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 안부를 지난 산길은 가파르게 변한다.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파름이라서 그런지 꽤나 힘들게 올라설 수밖에 없었다.

▼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올라선 봉우리는 교통호 일색이다. 최근 격주 간격으로 찾고 있는 포천지역 산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대부분의 봉우리들은 군의 벙커가 차지하고,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교통호로 잇는 풍경 말이다. 그나마 이곳 종현산은 벙커가 없는 봉우리들이 대부분이라는 게 조금 다를 뿐이다.

▼ 작은 오르내림 두어 번을 하던 산길이 또 다시 아래로 향한다. 그리고 15분 조금 못되는 지점에서 또 다른 안부를 만났다.

▼ 이번의 안부는 아예 좌우로 임도가 뚫려있다.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절골’을 거슬러 올라오는 ‘2번 등산로’이다. 이 코스를 이용할 경우 우리가 걷고 있는 ‘3번 등산로’보다 0.3㎞ 정도 단축된다고 한다.

▼ 또 다시 긴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것도 곧장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좌우로 ‘갈 지(之)’자를 쓰고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가파르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라 하겠다.

▼ 그렇다고 이 구간이 마냥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래 사진의 나무처럼 기괴한 모양의 볼거리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 기괴하게 생긴 바위들 또한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임도사거리를 지나면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자잘한 바위들이 언제부턴가 몸체를 크게 부풀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아예 바윗길 수준이다. 그런데 그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만만찮다. 아래 사진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호랑이가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포효하는 모습을 쏙 빼다 닮았다.

▼ 터키의 ‘카파도키아(Cappadocia)’를 연상시키는 바위도 눈에 띄었다. 고깔모자나 레고 장난감처럼 생긴 바위들이 잔뜩 모여 있던 ‘파샤바 계곡(Pasabag)’. 그곳에서 나를 놀래게 했던 송이버섯처럼 생긴 바위를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다만 ‘카파도키아’의 것은 몸통은 하얗고 갓은 거무튀튀한데 반해, 이곳은 몸통과 갓이 모두 하얗다는 게 다를 뿐이다.

▼ 바위절벽 위에 걸터앉은 노송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했다. 나무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척박하기 짝이 없는 바위에 기대어 살아온 삶은 몸체를 부풀릴 여력도 없었을 게고. 또 요리조리 몸을 비틀고 있는 저 몸통은 오랜 풍상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습관이 분명하다.

▼ 과연 저런 곳에 길이 나있을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바위지대도 나온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끊어진 듯 보이는 등산로는 이런 바위들 틈새로 미끄러지듯 길을 이어간다.

▼ 460m봉으로 여겨지는 바위봉우리에서는 매의 머리를 닮은 바위를 만났다. 거대한 매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려는 듯한 모양새이다. 이밖에도 쉬어가기 딱 좋은 마당바위, 종현산의 정상의 군부대가 올려다 보이는 걸상바위, 중국의 고성을 연상시키는 성벽바위 등 눈에 담아둘만한 바위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 눈요깃거리가 끝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울창한 잣나무 숲이 펼쳐진다. 참나무 일색에 양념삼아 들어앉은 소나무가 전부이던 산에 난데없는 잣나무라니 생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이런 풍경이 싫다는 얘기는 아니다. 잣나무 특유의 상쾌한 내음이 코를 찔러대는데 싫어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특히 그 내음 속에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가 듬뿍 들어있을 것이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오느라 지쳐있던 심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히 치유되어버리는 이유이다.

▼ 잣나무 숲이 끝나자 안부가 나온다. 제일휴게소로 내려가는 등산로에 놓여있는 560m봉과 현재의 종현산 정상이랄 수 있는 570m봉 사이의 안부라고 보면 되겠다. 이곳에는 ‘덕둔리 入口(우리가 올라온 방향은 군휴양소 入口)’라고 적힌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살펴보던 최군은 길이 보이지 않는단다. 그럼 우리가 날머리로 삼은 ‘제일휴게소’는 어디로 내려가야 한단 말인가.

▼ 일단은 정상부터 오르기로 한다. 길이야 그 뒤에 찾으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정상은 왼편에 보이는 봉우리이다.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나 거리가 짧아서 부담스러울 정도까지는 아니다.

▼ 정상으로 오르는 도중 ‘국가지점번호(다사 6672-9777)’ 푯말을 다시 만났다. 이곳도 역시 이정표(종현산 정상 0.1㎞/ 종현교 2.5㎞) 기능까지 겸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두 구간의 거리를 2.6㎞로 적고 있다. 오늘 산행에서 만난 119의 푯말들마다 각기 다른 거리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3.85㎞와 2.4㎞에다 이번에는 2.6㎞라니 정확한 거리는 대체 얼마란 말인가.

▼ 잠시 후, 그러니까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만에 마루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이곳은 정상이 아니다. 실제 정상인 588.5m봉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꿩 대신 닭’ 격으로 이곳 570m봉을 정상으로 삼은 것이다. 여기서 아재개그 하나. ‘종현산이란 지명의 유래는?’ 정답은 옛날 산 정상에 큰 종을 매달아 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내 대답은 확고했다. ‘종현’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정상석을 기증한데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것. 다들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반문했지만 왕수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의 뒤를 보여주었더니 다들 고개를 끄떡거린다. ‘증. 이종현’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 정상에 서면 빈 나뭇가지 사이로 건너편에 있는 진짜 정상이 내다보인다. 그 꼭대기에는 군의 벙커가 올라앉아 있다.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이유인데 사진촬영도 불가능하단다. 덕분에 풍경화 대신 서슬 시퍼런 경고판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별로이다. 전곡지역의 널따란 들녘과 근처에 있는 국사봉, 왕방산, 그리고 그 우측으로 소요산 정도가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잡목의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내다보이는 정도다. 참! 어떤 이는 불암산과 수락산, 도봉산은 물론이고 관악산까지도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한북정맥으로 여겨지는 마룻금만 희미하게 나타날 뿐이었다.

▼ 자! 이제 하산이다. 정상적으로는 ‘덕둔리 입구’ 푯말이 세워진 안부까지 되돌아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리더 최군은 정상에서 곧바로 치고 내려가잔다. 길이 또렷하게 나있는 것이 분명 제일휴게소로 내려가는 정규 등산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오늘도 최군의 오판은 계속되고 있나 보다.

▼ 하산 길은 처음부터 죽을 맛이다. 절벽에 가까운 바윗길인 것이다. 바위 사이사이로 길이 나있긴 하지만 위험하기는 매일반이다. 자칫 발이라도 헛디디면 최소한 중상인 것이다. 사실 돌부리에 발이 걸린 집사람이 중심을 잃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다행이 바위에 무릎을 찍히는 것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다.

▼ 바윗길이 끝나갈 즈음 돌탑 하나를 만났다. 위험한 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램. 즉 안전에 대한 열망의 표현일 것이다. 최군의 큰 아들 민상이가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는 게 보인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까지 드린다. 그만큼 위태로운 구간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오래지 않아 바윗길은 끝난다. 하지만 이후에 나타나는 흙길 또한 만만치가 않다. 바위가 아니라 흙이라는 게 다를 뿐 가파르기 짝이 없는 내리막길이기 때문이다. 붙잡을 나무라도 많으면 좋으련만 그마저 허락되지 않는 난감한 구간이다.

▼ 죽을상인 민상이와는 달리 둘째 아들인 동규는 그저 희희낙락이다. 조그만 여유라도 생길라치면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귀여움을 떤다. 그게 다 아빠가 챙겨주는 덕분일 것이다.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 그렇게 내려오길 1시간 40분(길이 험한 탓에 더디게 걸은 시간이다). 거대한 바위봉우리가 그렇지 않아도 더딘 발걸음 가로막는다. 길은 이곳에서 바위를 피해 왼편으로 우회시킨다.

▼ 이때. 최군의 오판이 또 다시 불거졌다. 왼편에 보이는 잣나무 숲으로 내려가자는 것이다. 길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데 막무가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 일행 가운데 최고의 산꾼은 최군이 아니겠는가.

▼ 그렇게 내려선 길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다’던 어느 보양강장제 광고에 딱 어울리는 상황으로 우릴 맞는다. 허리를 바짝 곧추세운 산비탈은 몸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기만 한데 의지할만한 나무들조차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버티다 못해 끝내는 엉덩이를 땅에 대고 미끄러져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것도 너무 빨리 내려가지 않도록 발로 브레이크까지 잡아가며 말이다.

▼ 미끄러지듯이 숲에 들어서자 곧게 자란 아름드리 잣나무가 신비스러운 기운을 내뿜는다. 짙은 녹색을 띠는 잎사귀와 회백색의 나무껍질이 어우러져 솔숲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 냄새 또한 소나무와 같으면서도 또 다르다. 그런 내음이 코끝을 스쳐가면서 머릿속까지 개운해진다. 조금. 아니 버거울 정도로 가파른 숲이지만 조심조심 발을 떼면 걷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가 건강샤워가 된다.

▼ 미끄러져 내려가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가 보다. 덕분에 이렇게 예쁘게 생긴 운지버섯도 만날 수 있었다.

▼ 산자락은 온통 잣나무 숲이다. 저 정도면 명성이 자자한 가평의 ‘축령백림’에 못지않는 잣나무 숲이라 하겠다. 맞다. 이곳 포천은 우리나라 잣의 3대 생산지가 아니겠는가. 참고로 포천에서 생산되는 잣은 맛과 품질을 인정받아 조선시대에는 임금님께 진상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산자락 전체가 잣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그 굵기도 만만찮다. 참고로 잣은 심은 지 7년이 되면 열매가 열리지만, 양질의 잣은 대략 20년은 되어야만 수확할 수 있단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이런 나무들을 키우기 위해 얼마만큼 많은 땀을 저기에 쏟아 부었을까?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 잣나무 숲을 벗어나자 남의 집 마당이다. 길 없는 길을 헤매다보니 엉뚱한 곳으로 내려선 것이다. 미안해 할 주인장이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겠다. 그건 그렇고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무려 2시간 10분이나 걸렸다. 내려오는 길이 그만큼 험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이후부터는 잘 닦인 임도를 따른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열두개울’에 다다른다. 소요산 자락의 금동리(포천시 신북면)에서 발원해 연천군 청산면을 지나 양주시 신천으로 합류하는 총 길이 15㎞의 하천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다리가 없던 시절, 하류인 연천의 법수동에서 저 안쪽에 있는 포천의 덕둔리까지 가려면 개울을 열두 번이나 건너야 한다며 붙여놓은 이름이다. 물론 지금은 2차선의 신작로가 뚫렸는가 하면 다리도 여섯 개나 놓였다.

▼ 산행 날머리는 아장교(포천시 신북면 덕둔리 598-1)

임도는 ‘세인트펜션’ 앞에서 ‘아장교’를 통해 개울을 건넌다. 그리고 368번 지방도와 만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 종현교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까짓 2㎞쯤이야 느긋이 걸어도 30분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고 오늘 산행은 총 5시간 1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50분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나게 오래 걸은 셈이다. 참고로 우리가 걷고 있는 반대편, 그러니까 왼편으로 가면 ‘허브아일랜드’로 유명한 ‘삼정리’가 나온다. 조선 초기 세 정승이 난을 피해 외부와 접촉을 끊고 산수를 벗 삼아 여생을 보냈다는 마을이다.

▼ 이때 ‘열두개울’ 뒤편으로 거대한 바위절벽이 펼쳐진다. 맞다. 저렇듯 솜씨 좋은 석공이 한껏 솜씨를 부려놓은 듯한 기암절벽과 계곡물이 거세게 휘돌아 흐르다가 쉬어가는 작은 연못들이 바로 ‘열두개울’의 본래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리산이나 설악산의 깊은 계곡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우기기도 한단다.

▼ 5분쯤 걸었을까 ‘다래골 염소탕’이란 간판이 보였다. 많은 블로거들로부터 포천의 ‘맛집’으로 소개된 명소이다. 마침 주인장께서 승용차를 픽업해올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준단다. 덕분에 우린 종현교까지 걸을 필요도 없이 수육과 전골을 안주삼아 폭음을 즐길 수 있었다. 전날 잡은 염소고기만을 사용한다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육질이 매우 부드러운데다 맛도 여느 유명 음식점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다만 닭백숙 등의 서브메뉴가 성수기 외에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은 흠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