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7코스

 

여행일 : ‘20. 8. 15()

소재지 :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일원

여행코스 : 삼포해변(3.2km)봉수대해변송지호 철새 관망타워(2.4km)왕곡 한옥마을(4.1km)공현진1·2리 해변가진항(거리/시간 : 9.7km/ 실제는 11.513시간 15)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삼포해변을 출발해서 봉수대 해변과 송지호해변, 공현진 1·2리 해변을 거쳐 가진항에 이르는 해파랑길 47코스는 길이가 10km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구간이다. 하지만 눈에 담을만한 볼거리는 차고도 넘친다. 중간에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송지호와 영동지방의 전통가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왕곡마을을 지나기 때문이다. 거기다 크고 작은 바위섬과 갯바위들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해변들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그 가운데서도 하이라이트는 서낭바위 산책로라 하겠다. 외국에서나 볼 법한 기암괴석들이 바닷가에 널려있어 잠시도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정규코스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꼭 들러볼 것을 권한다.

 

들머리는 삼포해변(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243-13)

동해(속초-삼척)고속도로 속초 IC에서 내려와 56번 지방도를 이용 교동지하차도사거리(속초시 교동)까지 온다. 이어서 동해대로(7번 국도)’를 타고 고성방면으로 올라가다 삼포민박촌(죽왕면 삼포리) 앞에서 오른편으로 빠져나오면 삼포해변이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오션투유리조트건너편 도로가에 세워져 있다.

 

 

 

해안도로(삼포해변길)을 따라 북쪽으로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삼포해변(三浦海邊)을 오른편 옆구리에 꿰차고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해안도로를 사이에 둔 왼편 공터에는 카라반이 가득하다. 작년 여름, TV JTBC에서 방영한바 있는 캠핑클럽이 꽤나 인기를 끌었다더니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저렇게도 많은 카라반 가운데 비어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하긴 평생 캠핑 한번 떠나보지 않았던 나까지도 따라하고 싶었을 정도로 1세대 아이돌 핑클의 멤버들이 보여주던 캠핑에서의 소소한 일상은 재미있었다.

 

 

동해에서도 가장 물이 맑고 깨끗한 해수욕장으로 손꼽히는 삼포해변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숨은 명소이다. 저 지난달에는 tvN ‘바퀴 달린 집이 이곳을 찾기도 했다. 성동일, 김희원, 여진구 등이 라미란, 혜리와 함께 왔는데 그들의 인기만큼이나 해수욕장의 관심 또한 부쩍 높아졌다고 한다. 삼포해변은 서핑축제 미드나잇 서핑 뮤직 페스티벌이 매년 열릴 정도로 서핑의 메카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파티의 섬스페인 이비자와 비유되는 삼비자라는 별칭까지 갖고 있단다. 지난달에는 ‘DMZ 평화이음 드라이브인 콘서트 with 자우림·국카스텐공연이 성황리에 열리기도 했다. 생활 속 거리 두기와 관람객 간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동차 극장처럼 관객이 차량 안에서 관람하는 드라이브인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말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0, 삼포해변과 맞닿아 있는 봉수대 해변(烽燧臺海邊)’ 앞을 지난다. 길이가 800m나 되는 백사장이지만 1996년까지만 해도 이곳은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통제구역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성산불로 피해를 본 지역주민들을 위해 1997년 해수욕장으로 개장했단다. 그건 그렇고 봉수대해변의 자랑거리는 오토캠핑장으로 알려져 있다. 캠핑 데크 84면과 카라반 10, 공동취사장, 화장실, 샤워장 등의 시설에다 저녁에는 밤바다의 운치를 느낄 수 있도록 조명까지 켜준단다. 레저 체험시설도 들어서 있었다. 스카이버마와 스카이버켓, 로그터널, 엑스크로스 등의 체험시설들이 미들코스와 하이코스로 나뉘어 설치되어 있다. 볼더링 월과 인공암벽도 눈에 띄었다.

 

 

'오호항 어촌체험마을''송지호 해변' 입간판이 세워진 '동해대로' 진출입로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죽왕 보건지소 앞을 지난다. 이어서 '송지호 해수욕장' 환영 아치를 통과하면 '오호교' 다리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0분만이다.

 

 

다리를 건넌 해파랑길은 해변펜션 앞에서 왼쪽, 그러니까 송지호 해변을 향해 방향을 튼다. 커브지점에는 동해안종주 자전거길이정표까지 세워놓았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를 따랐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 수도 있다. 오른쪽 바닷가에 기암괴석의 전시장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들머리에 '강원 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 안내도'서낭바위의 운명’, ‘서낭바위 산책로 조형물등이 세워져 있으니 주의만 조금 기울인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통나무계단을 올라서자 하얀색 등대가 길손을 맞는다. 등대 부근에 산재해 있는 암초들로부터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등대라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크기나 생김새,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등대이다. 탐방로는 등대의 옆을 스치듯 지나간다.

 

 

등대를 지나자마자 길은 둘로 나뉜다. 왼편은 서낭바위 해변, 먼저 능선의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전망대부터 올라본다. ()의 해안초소를 개조해 이층짜리 전망대를 만들었는데, 아래층을 그대로 놓아둔 걸 보면 아직도 야간에는 초소로 사용하고 있나 보다.

 

 

명색이 전망대인데 시야가 막혔을 리가 없다. 에메랄드빛 망망대해가 끝 간 데 없이 눈에 차오르고, 그 오른편에는 봉수대해변에서 삼포해변을 거쳐 자작도해변에 이르는 해안선이 길게 펼쳐진다. 왼편 발아래는 잠시 후 내려설 서낭바위 해변이다.

 

 

전망대 아래의 바위지대인 서낭바위는 오호리 마을의 서낭당(성황당, 아래 사진에서 하얀색 건물)이 위치하는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서낭당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서낭신(성황신)을 모셔놓은 우리나라 전통신앙의 영역으로, 서낭당 일대는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져 온 장소이다. 마을주민들은 이 일대의 바위들을 서낭바위라 부르며 서낭당에서 하듯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려오고 있단다. ! 해변에 내려서면 조약돌 여남은 개를 이고 선 바위가 먼저 보인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비스듬히 선 화강암 바위 표면에 자갈을 올려 떨어지지 않고 딱 붙으면 운수대통이라 여긴다고 해서 운수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린단다.

 

 

서낭당의 오른편에 보이는 부채바위는 버섯이나 오리, 문어 등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 차별침식으로 머리 부분이 넓적하고 허리 부분이 잘록하게 깎인 바위인데, 쓰러질 듯 아슬아슬한 것이 여간 위태롭지가 않다. 그래선지 목 부위에 시멘트로 보강한 흔적도 보였다. ! 그러고 보니 대만에서도 저렇게 생긴 바위를 본적이 있다. 세계자연유산인 야류지질공원의 명물 여왕머리 바위(女王頭)’로 당시 가이드는 고대 이집트의 여왕 네페르티티(Nefertiti, BC1370-1330)’를 닮았다고 했다. 당시 우리 부부는 그녀와 함께 사진 한번 찍어보려고 언제 줄어들지도 모르는 줄을 하염없이 서있어야만 했는데 부채바위앞은 썰렁하기만 하다. 머리 위에 소나무까지 이고 있는 게 대만보다 오히려 한 수 위인데도 말이다. 아직까지 입소문을 타지 않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스토리텔링이라도 가미될 경우 관람료까지 너끈히 받을 수 있을 텐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해변에는 부채바위만 있는 게 아니다. 생김새가 제각각인 기암괴석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는 풍화와 침식작용이 만들어낸 자연 조각품들이다. 참고로 서낭바위 주변은 그동안 군사시설에 포함돼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저 영험하다는 소문에 무속인들이 몰래 들어가 치성을 올리고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게 전부였단다. 그러다가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2017년 깔끔하게 산책로를 조성했다.

 

 

 

동화의 캐릭터처럼 귀여운 아래 바위는 복어(붕어)바위라고 했다. 눈 달린 복어(붕어)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도대체 내 눈에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 문제다. 무학대사가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육십 평생 수양을 쌓아왔건만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

 

 

국가지질공원인 이곳은 화강암의 풍화미지형(風化微地形)과 파도의 침식작용이 어우러져 매우 독특한 지형경관을 이루고 있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속으로 마그마가 뚫고 들어와 형성된 암맥(岩脈, dike rock)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독특한 형태로, 회백색의 화강암 사이로 관입해 식어버린 돌은 옅은 갈색의 규장암이다. 8300만 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규장암층은 뱀 꼬리처럼 바닷가 백사장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데 멀리서 보면 커다란 햄버거나 샌드위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15분 정도 눈요기를 즐기다가 '서낭바위 산책로' 입구(이정표 : 송지호해변 0.4/ 오호항 0.1)로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송지호 해변으로 향한다. 아니 송지호 해변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해안도로(심층수길)의 오른편 백사장에 피서객들로 가득하니 말이다.

 

 

송지호 해변(松池湖海邊)은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4에 달하는데다, 우거진 송림이 훌륭하게 그늘막 노릇을 해주는 멋진 해수욕장이다. 또한 저 해변은 수심이 낮아 아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백사장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다워 가족단위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해변을 따라 거닐다 보면 일렁이는 파도 너머로 손에 잡힐 듯한 바위섬 하나가 보인다. 일출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죽도(竹島)’로 지난해 해중경관지구로 지정되면서 해양레저가 활발히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

 

 

송지호 모래사장이 끝나는 곳에는 최근에 오픈한 '르네블루by워커힐(하얀색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87개의 럭셔리 객실을 비롯해 루프톱(Rooftop), 비즈니스센터, 스몰 웨딩이 가능한 연회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었단다. 이어서 주차장이 나오는데 이게 거짓말 좀 보태서 북경의 천안문광장 만큼이나 넓다. 하지만 텅텅 비어있다. 수요 예측을 잘못 했는지 아니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피서객들의 숫자가 현격히 줄었는지는 모르겠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7번 국도(동해대로)’'송지호 교차로' 직전(이정표 : 강원심층수 0.2/ 송지호해변 0.5)에서 우측 '강원심층수' 방향으로 진행해 나간다. 그리고 대교의 강원심층수 철망울타리를 따라 송지호로 향한다. 해양심층수는 수심 200m 아래의 깊은 '안정된 바다'에 있는 물이다. 이 물은 영양 염류가 풍부하고 식물성 플랑크톤 및 용존 산소량이 적어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식수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성을 사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대교와 강원도, 고성군, 일본KIBI 시스템 등이 강원심층수라는 회사를 만들었고, 현재 심층수와 관련된 음료, 김치 등이 출시되어 일본 등에 수출되고 있다.

 

 

강원심층수의 울타리가 끝나면 송지호에서 흘러나오는 물길과 동해바다가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이 나온다. 탐방로는 이곳(이정표 : 송지호/ 오토캠핑장)에서 둘로 나뉜다. 해파랑길은 송지호가 있는 왼쪽, 송지호 해변의 또 다른 명물인 오토캠핑장으로 가고 싶다면 물길 위에 놓은 목교(木橋)를 건너면 된다. 90개소의 야영장(데크)10동의 통나무집으로 구성된 오토캠핑장은 지난 2007년 개장 이래 매년 많은 캠핑족이 찾는다고 한다. 탁 트인 동해바다와 널찍한 모래사장, 그리고 울창한 송림이 우거진 송지호(호수)가 자랑거리인데, 최근 밀리터리체험장까지 들어서면서 가족단위 캠핑족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단다.

 

 

동해대로(47번 국도)의 아래, 아니 정확히는 송지호교라는 다리의 아래를 통과하면 또 다른 목교(木橋)가 송지호의 물길을 가르고 있다. 탐방로는 이 다리를 건너 철새 관망타워로 향하는데, 고성군에서는 이 구간을 송지호 둘레길이라 부른다. 고성판 올래길인 갈래구경길7경길이기도 한데 송지호와 왕곡마을이라는 고성의 자랑거리를 품고 있는 걷기 코스이다. 또한 철새관망타워에라도 오를라치면 송지호의 철새 관찰은 물론이고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어 있는 동해바다까지 조망된다. ! ‘둘레길이지만 그렇다고 꼭 걸어야할 필요는 없다. 고성군에서 걷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자전거를 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용·청소년용·어린이용·2인용·4인용 자전거를 신분증만 제시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단다. 헬멧과 무릎보호대 등 자전거 라이딩 보호 장비도 비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철새관망타워 근처에 위치한 자전거 대여소는 월요일에 쉰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다리 위에서의 조망이 일품이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송지호가 발아래 놓여있고, 그 너머로는 설악의 준봉들이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향로봉(香爐峰)이 성큼 다가온다. 금강산 12천 봉우리 가운데 하나이자 남한에서 오를 수 있는 백두대간의 최북단에 위치한 봉우리이다. 고도가 높아 구름이 덮이는 날이면 향로에 불을 피워놓은 모습처럼 보인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나 역시 향로봉을 다녀왔다. 진부령에서 향로봉까지는 왕복 33킬로, 힘은 들었지만 백두대간을 완성시킨다는 희열에 들떠 달리다시피 다녀올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자투리시간을 이용해 그 귀한 천궁(川芎)을 여러 뿌리 캘 수 있었지만 말이다.

 

 

탐방로는 이제 송지호의 호반을 따라 나있다. 사색하며 걷기에 딱 좋은 구간이다. 그 길은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 그동안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눌 만큼 시간은 넉넉했다. 덕분에 시간이 흐를수록 오가는 얘기는 친밀해졌고 사랑은 한층 더 충만하고 견고해졌다. 이런 게 바로 해파랑길을 걷는 참맛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7~8분 정도를 걷자 `철새관망타워`가 나온다.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와 괭이갈매기, 민물가마우지 등 송지호를 도래지로 삼고 있는 철새를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지상 4층짜리 자연생태학습관이다. 호수의 고즈넉한 전경과 바다의 시원함을 동시에 내려다보는 즐거움은 또 다른 즐거움이라 하겠다. 면적 278.47규모의 타워에는 총 89240여 점의 박제를 전시한 조류박제전시관과 송지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옥외전망대, 망원경이 설치된 전망타워 등을 갖추고 있다.

 

 

관망타워에 올라가기 전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는 송지호 쉼터를 둘러보았다. DMZ의 고장 고성답게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조각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통일을 향하여라는 조형물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남고성과 북고성으로 나뉜 고성군은 늘 가슴 아픈 분단의 역사와 그리움으로 표현되는 상처를 간직한 곳이다. 이 작품은 그런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통일의 문을 형상화한 높이 2.7m, 가로 2.2m의 사각 프레임 안에는 우리민족의 평화통일 염원을 상징하는 손을 마주잡은 인물을 음각으로 극대화시켰고, 앞뒤에는 소망과 화합을 상징하는 소년 소녀상을 양각으로 조형했다. 청색과 적색은 남북을 의미한단다. ! 근처에 있다는 철새관망대는 찾아보지 못했다. 조형물 옆의 쉼터에서 일행들과 함께 술을 마시느라 들러본다는 걸 깜빡 잊었기 때문이다. 호수 위로 난 데크로드를 걸으며 이곳에 둥지를 튼 습지 생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2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동갑내기들이 권하는 술자리인데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쉽게 올 수 없는 곳이니 내친김에 철새관망타워에 올라보기로 한다. 경로대상자는 1천원의 입장료가 면제되지만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거기다 자신의 신상 정보도 적어야 한다. 엘리베이터로 오른 4층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시원스러웠다. 송지호의 전경은 물론이고 탁 트인 동해바다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철새 도래시기에는 망원경으로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도 관찰할 수 있다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벽면에 다양한 철새의 박제와 사진 등을 걸어 탐방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었다.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가에는 테이블을 놓았다. 한쪽 귀퉁이에 들어선 카페테리아의 배려인데, 해양심층수로 만든 호박 식혜가 인기가 좋다니 한번쯤 마셔볼 일이다. 아름다운 주변 풍광에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차까지 곁들인다면 이 어찌 신선놀음이 아니겠는가.

 

 

내려올 때는 계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한 층 아래에 있는 야외 전망대(높이가 낮은 탓에 조망은 별로다)에 들렀다가 그 아래층에 있는 조류박제전시관을 들어가 봤다. 89240여 점의 새들이 박제되어 있단다. 그 가운데서도 철새를 소재로 한 우표들이 눈길을 끌었다. ! 이왕에 시작했으니 송지호에 날아드는 철새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송지호를 찾아오는 철새들 중 대표적인 것은 괭이갈매기와 고니, 흰뺨검둥오리, 민물가마우지 등이다. 그 외에도 여름 철새와 겨울 철새, 나그네 새, 텃새 등으로 다양한데, 제철을 맞추어 송지호를 찾으면 철새들의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호숫가에는 몸을 숨기고 새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조류 관찰대도 만들어 놓았다. 또한 탐방로 주변에는 안내판들도 여럿 설치했다. 송지호 서식하는 물고기와 텃새, 그리고 계절별 철새들에 대한 자료를 사진과 함께 적어 넣었다. 덕분에 고니와 민물가마우지·청둥오리·가창오리·쇠오리·비오리·흰꼬리수리 등 어떠한 철새들이 이곳에 들르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탐방로는 호숫가를 따라 북쪽으로 간다. 송지호와 7번국도 사이에 난 호젓한 솔숲 길로 고성군에서 '송지호 산소(O2)'이라 부를 정도로 자연을 벗 삼는 멋진 길이다. 이런 구간은 꼭 둘이 아니어도 좋은 것 같다. 길은 걷는다는 것은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나를 위로하는 일이며 나와 화해하는 행위라는 얘기이다. 속도전에 등 떠밀려 방향도 없이 살아가는 일상,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아채기는커녕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삶이 조금은 버겁다면 길 위에 서보자. 그 길에서 우리는 느리게 걷고 조용히 숨 쉬며 다른 누구도 아닌 를 알아갈 수 있다.

 

 

탐방로 왼편으로는 송지호가 널따랗게 펼쳐진다. 둘레가 6.5쯤 되는 송지호(松池湖)는 아득한 옛날 바다였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모래가 쌓이면서 자루 모양이 되었고, 어느 날 바닷물보다도 민물이 더 많아지자 사람들은 석호(潟湖, 사주 등에 의해 바다와 분리되면서 생긴 호수)라 불렀다. 지금도 송지호 물길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으며, 수시로 도미와 숭어 같은 바닷물고기가 호수를 넘나든단다. 이처럼 풍부한 어족은 이곳을 유명한 철새 도래지로 만들었다. 어족이 풍부하다보니 매년 고니(천연기념물 제201)와 멸종 위기종인 흰꼬리수리·말똥가리, 큰고니 독수리 등 철새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런 철새들의 군무를 관찰할 수 있도록 지어놓은 게 조금 전에 들렀던 철새관망타워이다. 참고로 전설에 의하면 1,500년 전의 송지호는 정거재(鄭巨載)라는 구두쇠 영감의 문전옥답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노승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자 똥을 퍼주면서 내쫓았는데, 스님이 문간 옆에 놓여 있던 쇠절구를 논 한가운데에 던지고 사라졌다. 그 뒤로 쇠절구에서 물이 솟아나 송지호가 되었다는 것이다.

 

 

철새관망타워를 나선지 14분쯤에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 함께 해온 자전거 길과 헤어져 왼편으로 향한다. 10분 남짓 더 걸어서 만나는 갈림길(이정표 : 왕곡마을 0.7/ 송지호 관망타워 1.8)에서는 오른편이다. 이어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T`자형 삼거리이다. 오른편으로 가면 저잣거리. 왼쪽으로 방향을 꺾은 탐방로는 연꽃방죽을 지나자 왕곡(旺谷) 마을로 들어선다. 철새관망타워를 출발한지 37분만이다. 왕곡마을은 바다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는 데도 파도소리는 물론이고, 갯가의 비릿한 내음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곳, 마을 앞에 드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는데도 깊고 깊은 산중인 듯 고고한 마을이다. 마을의 역사는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집안도 평온하지 못하다고, 고려 말 유신이었던 강릉 함씨 집안의 형은 조선의 개국 공신이 되었고, 동생인 함부열(咸傅說)은 간성에 은거하여 양근 함씨가 된다. 이후 그의 손자 함영근이 왕곡마을에 뿌리내렸다. 지금은 강릉 최씨와 다른 성씨도 함께 살고 있다. 마을은 19세기를 전후해 지어진 전통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온 점을 인정받아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꽃 방죽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2016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동주'의 촬영지라는 팻말이 붙은 '정미소'가 나온다.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던 어둠의 시대에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강하늘)와 독립운동가 송몽규(박정민)의 빛나던 청춘을 담은 영화다. 두 주인공의 아지트였던 정미소는 동주가 홀로 앉아 시집을 읽기도 하고 그들의 잡지를 만들기도 했던 곳이다.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 거면 문학이 무슨 소용이 있니?’라는 몽규의 말이 동주의 가슴에 비수같이 꽂혔던 곳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동주5억 원이라는 순수 제작비가 말해주듯 저예산 독립영화이다. 중급영화의 제작비가 40~50억 정도라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1,176,468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1천만 관객이 수두룩한 요즘이니 뭐가 대단하냐고 하겠지만 손익분기점이 27만 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그것도 대형 상업영화들과의 무한경쟁 속에서 말이다.

 

 

조금 더 들어가자 왕곡마을(오봉 1)의 마을회관(경로당)이 나온다. 특이 사항이 없기에 그냥 지나치려는데 마을장터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시키는 게 아닌가. 농산물 판매점인줄 알았는데 요깃거리까지 팔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메뉴판은 아예 주막집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조금 전 발걸음을 이끌었던 냄새는 막걸리와 궁합을 맞추기 위해 지져대는 메밀전에서 흘러나왔던 모양이고 말이다.

 

 

관광객들을 위한 포토죤도 보인다. 실사(實寫) 출력된 전통가옥을 배경삼아 인생샷이라도 건져보라는 모양이다. ‘옛 것 그대로 시간이 멈춘 곳이라는 부언(附言)이 눈길을 끈다. 맞다. 초가와 기와집이 골고루 섞여 있는 마을은 마치 조선시대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런 풍경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지 마을에는 민박집이 여럿 들어서 있었다. 주말마다 열린다는 뻥튀기, 떡메치기, 그네타기, 널뛰기 등의 체험도 해볼 겸해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겠다.

 

 

마을회관 바로 위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해파랑길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흐른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직진방향의 마을안길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왕에 왔는데 영동지방의 전통가옥들을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함희석 효자 비각(咸熙錫孝子碑閣)’이다. 조선(고종) 때 사람인 함희석은 지극한 효행을 인정받아 조정으로부터 정려까지 하사받은 인물이다. 엄동설한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다가 병환으로 누운 부친을 봉양했고, 경신년(1860) 화난 때는 큰 화상을 입은 부친을 정성으로 간호했단다. 비각 안에는 효자전통정대부 돈영부도정 강릉 함희석 지려라고 적힌 비석이 들어있었다. 통정대부(通政大夫)는 조선시대 문신 정3품 상계(上階), 즉 당상관(堂上官)의 품계명이다. 유교를 통치의 이념으로 삼은 나라답게 효자에게 내리는 품계 또한 엄청나게 높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젠 전통가옥들을 둘러볼 차례이다. 마을은 50여 가구가 산자락에 기대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기와집(31)과 초가집(20)이 적절히 섞여 있는데다 전선을 지중화한 덕분에 전봇대도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근대 이전의 조선시대로 돌아간 느낌이 드는 이유이다. 첫 번째로 안내판이 없는 기와집을 둘러봤다. '' 자형으로 부엌에 외양간을 붙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것에 대비하여 기와지붕은 경사지게 하였고 집의 기단도 돌을 쌓아 높였다. 차가운 북서풍을 막으려고 집 뒤는 담으로 막았으나 햇볕 드는 앞쪽은 틔웠다. 이러한 형태를 조선 시대 함경도 지방(관북지방) 겹집 구조라고 한단다. 굴뚝도 눈길을 끈다. 진흙과 기와를 켜켜이 쌓아 지붕만큼 올리고 위에 항아리를 거꾸로 놓았다. 열기를 구들로 다시 들여보내기 위한 지혜란다.

 

 

두 번째는 성천집이다. 19세기 말 함일홍이 성천사는 부인을 맞아 함께 살던 초가이다. 마을의 집들은 이처럼 안주인의 고향이나 이사 온 마을의 택호를 따서 성천집, 큰상나말집, 큰백촌집, 작은백촌집, 석문집, 한고개집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가는 곳은 큰상나말집으로 앞서 거론했던 영화 동주가 촬영되었던 곳이다. 내 공직기간 내내 좌우명으로 삼았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되는 서시를 노래한 윤동주의 성장 배경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이를 자랑하듯 영화의 한 컷이 벽에 걸렸다. 영화를 감독한 이준익 감독은 이 마을의 집성촌과 주거 형태가 북간도와 비슷하여 이곳을 골랐다고 한다.

 

 

함정균 가옥(咸丁均家屋,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8)’은 부인의 택호가 아닌 주인장의 이름을 따랐다. 정면 4칸에 측면 2칸의 본채는 박인로의 조홍시가(早紅柿歌)’를 떠올리게 만드는 '반시재(盤枾齋)'라는 현판을 달고 있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정면 2칸에는 마루가 있고 그 뒤에 안방, 측면에 사랑방과 고방이 있는 영동 북부지방 주거의 전형적인 평면배치라고 한다. 본채의 좌측 부엌 앞에 외양간 지붕을 달아내었고, 본채 뒤쪽에는 툇마루가 달려 있으며, 마루 양측 끝에는 하부는 뒤주, 상부는 두 짝 여닫이문이 달린 벽장이 있다. 본채 우측에는 행랑채가 있다. 현재 강릉 함씨’ 21대 후손이 살고 있는 이 주택은 19세기 중엽에 건축되었단다.

 

 

'한과 만드는 집'도 찾아봤다. 예쁘장한 처자가 조청에 쌀 강냉이를 묻혀 커다란 누에고치처럼 생긴 것을 몇 개씩 집어 준다. 맛을 보고 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 주전부리를 좋아하는 집사람을 위해 작은 곽에 든 만 원짜리를 들고 일어섰다.

 

 

20분 남짓 마을을 둘러보다 마을회관 근처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해파랑길을 따른다. 이어서 작은 상나말집과 양근 함씨 4대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을 기웃거리다보면 길은 어느덧 마을 입구에 이르게 된다. 마을을 지키는 장승과 마을의 역사를 적은 안내판을 세워 옛 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왕곡마을에 들어왔음을 알린다. 이곳에서 두백산 숲길의 들머리를 겸하는 고갯마루를 넘으면 왕곡마을회관에서 8분 거리에 있는 저잣거리이다.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길거리라는 뜻에 맞게 향토식당과 왕곡한과, 전통체험장 등이 들어서 있다는데 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이용할 수는 없었다.

 

 

저잣거리를 나서서 7~8분쯤 지나면 왕곡한과 판매점’, 계속해서 5분쯤 더 걸으면 왕곡마을입구 삼거리(이정표 : 공현진1리 해변 0.6/ 왕곡마을 저잣거리 0.7)’가 나온다. 해파랑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 다음 7번 국도를 따라 3분쯤 더 걸으라고 한다.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국도의 위를 말이다. 그러다가 공현진해변 입구 버스정류장 앞(이정표 : 공현진해변 0,3)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라는 것이다. 아직도 이 구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명색이 해파랑길인데 탐방객들을 이처럼 위험한 곳으로 인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왕곡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공현진교' 아래로 인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에는 공현진해변길을 따른다. 이어서 5분쯤 더 걸으니 공현진 해변(公峴津海邊)이 드넓게 펼쳐지면서 공현진항 등대가 멀리 보인다. 아니 정확히는 공현진1리 해변이다. 공현진항을 가운데에 놓고 남쪽의 공현진1리와 북쪽의 공현진 2리 해수욕장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널따란 모래사장은 텅 비어있다시피 하다. 수심이 얕은 공현진2리 해수욕장이 더 인기가 있다던 얘기가 사실이었나 보다. 아니면 이곳 역시 코로나19의 여파일 것이고 말이다. ! 이곳 공현진1리 해변은 개그 테마해변이라 불리기도 한다. SBS 공채개그맨들이 한때 이곳에서 라디오 생방송과 공연 등을 진행하면서 얻어낸 별칭이라고 한다.

 

 

해변의 가장자리를 따라 난 길가에는 인어상이 세워져 있었다. 설악해맞이공원과 속초해변에서 본 인어상보다는 좀 투박하지만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이 여간 매력적이지 않다. 인어 하나로는 부족했던지 그 옆에 문어 조형물도 세워놓았다.

 

 

잠시 후 탐방로는 공현진항(公峴津港)에 이른다. 국가어항답게 방파제와 물량장 등의 기본시설뿐만 아니라 널따란 주차장과 야간조명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배들은 1~5톤의 소형급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가까운 바다에서 가자미나 우럭, 광어, 놀래미 등의 횟감 어종을 주로 잡는다고 한다. 그렇게 잡아온 물고기들은 주차장 맞은편의 활어회센터에서 팔고 있었다. ! 운이라도 좋으면 주변의 얕은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성게나 해삼, 전복 등을 채취한다니 싱싱한 횟감을 즉석에서 맛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공현진 포구를 벗어나자 곧이어 공현진2리 해변이 그 뒤를 잇는다. 이곳의 너른 백사장은 모래가 고울 뿐만 아니라 수심까지 얕아서 해수욕장으로서의 입지조건이 뛰어나가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항상 문이 열려있는 것은 아니란다. 마을운영위원회에서 관리를 맡고 있지만 관할군부대의 협조 아래 한시적으로 운영될 따름이라고 한다.

 

 

공현진2리 해변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수뭇개 바위이다. 해수욕장의 남쪽 바다에서 솟구쳐 오른 웅장한 크기의 기암괴석으로, 생긴 그 자체만으로도 황홀한데 바위 사이로 해라도 떠오를라치면 말로는 표현 못할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참고로 '조선지지자료(1910년에 발간)'에는 이 바위를 3개의 바위가 묶여있다는 뜻에서 삼속도(三束島)’로 기록하고 있다. 안내판에는 '삼속도'가 세월이 흐르면서 '셔뭇뒤''스뭇대'를 거쳐 '수뭇개'로 구전되었을 것이라 적고 있었다. 한편 이 바위는 옵바위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옛날 물개가 많아서 바위에 옷을 덮듯이 올라가 쉬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하지만 이 옵바위는 수뭇개바위보다 한참이나 작은 다른 바위라는 게 알려지면서 군지명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2017수뭇개바위로 이름을 통일시켰다.

 

 

해변이 끝나갈 즈음 만나게 되는 정자 앞에서 탐방로는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곧이어 '공현진 경로당' (이정표 : 가진항 1.4/ 공현진항 0.5)에서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이후로는 가진해변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탐방로를 따로 내놓지 않았으므로 지나다니는 차량에 주의를 기울여가며 걸어야 하는 구간이다.

 

 

 

날머리는 가진항(고성군 죽왕면 가진리 46-7)

공현진해변을 나선지 10, 도로변 공터에 산악회 버스가 주차되어 있다. 주차할만한 공간을 찾다보니 그랬겠지만 47코스의 종점인 가진항(加津港)은 조금 더 걸어야만 이를 수 있다. 오늘 트레킹은 3시간 15분이 걸렸다. 핸드폰 앱에 찍힌 거리는 11.51, 47코스의 공식 거리인 9.7km보다 2가까이를 더 걸은 셈이다. 서낭바위와 왕곡마을 등의 명소를 자세히 살펴보느라 정규 코스를 많이 벗어났던 모양이다. 참고로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가진항 입구삼거리에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