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지산(白屛山, 534.9m)

 

산행일 : ‘18. 1. 15()

소재지 : 경남 양산시 명곡동과 동면의 경계

산행코스 : 주차장치유의길 분기점법기전망대군지산(운봉산)하늘농장 갈림길MTB임도수원지방향 둘레길법기수원지(산행시간 : 2시간 20)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누군가는 군지산을 일러 그런 산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얼마나 입소문을 타지 않았으면 그런 말까지 나돌겠는가. 그 말은 볼거리가 너무 빈약하다는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낙동정맥이 천성산을 지나 뻗어 내린 지능선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산이기 때문이다. 조망 또한 보잘 것이 없다. 그러니 낙동정맥 마룻금을 종주하는 산꾼들을 제외하고는 찾는 이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입소문을 타지 않은 이유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람으로 넘친다고 한다.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법기수원지가 완공된 지 79년 만인 1911년에 금단(禁斷)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수원지를 찾아온 사람들이 이왕에 온 김에 군지산까지 오른다는 것이다. 양산군의 개발노력도 힘을 보탰다. 능선과 산자락을 따라 법기치유의 길양산 누리길이라는 명품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산행들머리는 법기수원지 주차장(양산시 동면 법기리)

경부고속도로 양산 IC에서 내려와 35번 국도를 이용해 양산시내로 들어온 다음, 북부천을 가로지르는 신기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하여 60번 지방도를 타고 정관(부산시 기장군)방면으로 달리다보면 법기교차로(양산시 동면 개곡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빠져나와 좌회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법기수원지(法基水源池) 바로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이 주차장은 유료주차장이니 참조한다.



주차장 앞에 법기 치유의 길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꼼꼼히 살펴보고 출발하는 게 좋겠다. 둘레길이 여러 갈래로 나있어 자칫 방심하다가는 엉뚱한 곳으로 진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2014년엔가 법기치유의 길조성사업을 시작한다는 기사(記事)를 읽은 것 같은데, 그 사업이 마무리가 되었나 보다. 당시 기사는 누리길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사업이라고 했다. 국토부의 개발제한구역 내 문화경관 사업으로 선정됨으로써 확보된 7억 원의 사업비를 이용해, 법기수원지와 천성산 주변 등산로와 연계해 명품 치유의 길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8Km의 누리길 조성 및 정비와 쉼터, 전망대 등의 주요 사업내용도 함께 전했었다. 참고로 법기치유의 길은 코스만 다를 뿐 주변 산세와 경관은 비슷하다. 따라서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법기 치유의 길 특유의 절경과 건강한 숲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주차장 입구에서 오른편은 법기수원지로 가는 길이다. 법기수원지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건너편 산자락에 놓인 데크길이 보인다. ‘법기 치유의 길A코스인 법기 조망길이다. 이 길을 따라 0.5Km정도 오르면 수자원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군지산(운봉산)으로 가려면 안내소의 반대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20m쯤 내려가면 본법마을 특산물 공동판매장 앞에서 오른편으로 길(자동차용 도로)이 하나 나뉘는데 이 길로 들어가면 된다. 20m쯤 더 들어가면 다리가 나오는데 이곳에 치유의 길로 연결되는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이정표(법기치유의 길/ 법기수원지)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참조하면 되겠다.



잠시 후 본법(本法) 마을이 나온다. 본법마을의 역사는 5세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인근에 위치한 법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및 고분의 축조 형태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후 주거 상황 및 마을의 명칭에 대한 구전이나 문헌적 자료는 현재 전하지 않고 있어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본법마을에 대한 최초의 문헌기록은 조선 철종 때이다. 1860(철종 11) 이전에는 본법마을을 본의곡(本義谷)이라 불렀다고 한다. 주민들의 구전에 의하면 본의곡이란 ()를 본()으로 하는 곳이다란 뜻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문헌자료가 없어 추정만 할 뿐이다. 1872(고종 9)에는 본의리(本義里)로 되었다가 본법으로 다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마을 안길이 운치가 있어 보인다.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돌담이 고풍스럽기까지 하다. 담장은 집 둘레를 둘러막아 벽처럼 쌓은 것으로 대지경계를 이룬다. 도난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부속 공작물의 하나이기도 하다. 외담(한 줄로만 쌓아올린 담)과 맞담(돌멩이를 겹으로 마주 놓아 쌓은 돌담)으로 구분되나 담장의 대부분은 맞담으로 보면 되겠다. 이곳 역시 맞담인데, 삐뚤삐뚤하고 불규칙적이며 비정형적이고 아무렇게나 쌓은 것 같지만, 그 자연스러움 안에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돌담에 매달려 있는 경고판 하나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 길이 기존 ‘B코스 진입로이지만 개인의 사유지이니 통행을 말라는 것이다.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조금 손해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또 다른 측면의 이기심일까?



마을의 끄트머리쯤에 이르자 철문(鐵門)이 하나 나타난다. 문 뒤의 산죽(山竹) 사이로 길이 보이기에 텃밭에서 일하고 있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지나가도 된단다. 고맙게도 둘레길로 연결된다는 설명까지 꼼꼼히 해주신다. 하지만 이 문은 평소에는 닫혀 있는 게 분명하다. 손잡이 부분이 반질반질 윤이 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산죽 숲을 지나자 삼나무(杉木) 한 그루가 외롭게 길손을 맞는다. 그런데 그 굵기가 자못 거대하다. 이곳 둘레길의 이름이 치유의 길이라고 하더니 맛보기로 보여주는 게나 아닌지 모르겠다. 삼나무 역시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나타나는 밭두렁을 지나자 편백나무(扁柏, Japanese false cypress) 숲이다. 그다지 넓지 않은 범위이지만 코끝을 스쳐가는 향기는 무척 짙다. 편백나무 숲길을 걷노라면 온몸으로 퍼지는 송진 내음에 황홀함마저 느끼게 된다. 천국이 따로 없다. 세상 시름 다 잊고 솔향기에 취해 그저 천천히 걷고 또 걷고 싶다. 더구나 저 향기 속에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가득 들어있을 게 분명하지 않는가. 피톤치드는 나무와 식물이 해충이나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휘발성 물질이다. 편백나무의 피톤치드는 다른 나무에 비해 월등한 효과가 있어 각종 감염 질환이나 아토피 질환 등은 물론 면역력을 좋게 해줄 뿐 아니라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편백나무가 자연의 명의(名醫)인 셈이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자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정표는 보이지 않지만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아까 들머리에서 보았던 안내도를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방향을 틀자마자 이번에는 대나무 숲이 길손을 맞는다. 바람에 부대낀 대나무들이 서로간의 몸을 비벼대며 내는 소리가 무척 고운 구간이다.



대나무 숲을 지나자마자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이정표( 법기수원지 분기점0.1Km/ 임도방향 둘레길2.0Km/ 편백숲길(법기전망대)1.0Km) 외에도 안내판 하나가 더 세워져 있다. 둘레길인 법기치유의 길중에서도 편백 숲길을 콕 찍어서 설명해주고 있는 안내판이다.



안내판은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편백 숲길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아까 만났던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진행할 경우 원두막도 나오는 모양이다. 참고로 법기 치유의 길은 왕복 40분부터 4~5시간이 소요되는 곳까지 총 3가지 코스로 구성돼 있다. ‘명장정수사업소 법기수원지소에서 수원지 전망대 간 A코스(0.5)와 법기 편백 숲길 B코스(1.3), 그리고 법기 둘레길 C코스(6.5) 3곳이다. A코스는 왕복 40, B코스는 왕복 1시간 30, C코스는 4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개인 취향과 체력에 따라 코스를 고르면 된다.



몇 걸음 더 걷자 또 다른 삼거리이다. 그런데 이정표(낙동정맥(운봉산)1.4Km/ 법기수원지0.38Km)에는 오른편 방향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아니 거기다 더해 숲길의 통행을 제한한다는 안내판까지 따로 세워두었다. 그 이유를 사유지로 들고 있는 걸로 보아 아까 마을 입구에서 보았던 안내판과 같은 맥락인 모양이다. 이곳에는 또 다른 안내판도 보인다. 수도법에 따라 수원지 내의 진입을 금지한단다. 이를 어길 시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서슬 시퍼런 경고까지 하고 있다.



이제부터 능선을 따른다. 오른편에는 철조망이 길게 처져있다. 수원지(水源池)로의 진입을 막고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 법기수원지의 물은 소독을 하지 않고도 먹을 수가 있다고 했다. 하긴 저 정도로 통제를 하고 있기에 그런 얘기가 나돌 수 있었을 것이다.



길은 엄청나게 가파르다. 문득 코에서 땅 냄새가 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버거울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이라는 얘기이다. 통나무 계단이 놓여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 오르막이 15분이 채 안되어 끝난다는 것도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길은 서두를수록 손해다. 그저 서서히, 최대한으로 속도를 줄이면서 오르고 볼 일이다.



숨이 턱에 차게 치고 오르면 법기전망대이다. 데크로 만든 전망대와 이정표(낙동정맥 운봉산1.1Km/ 법기 치유의 길/ 법기수원지0.7Km) 외에도 법기수원지에 관한 제반 정보를 적어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부산에 사는 일본인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1927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5년 후인 1932년에 준공한 저수지(貯水池)라고 한다. 현재는 양산시 창기마을 및 금정구 선동, 남산동 등 부산시 일원의 7천 세대에 물을 공급하고 있단다.



전망대에 오르면 법기수원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런데 저수지가 바닥을 통째로 드러내놓고 있다. 물기 한 점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아까 흙을 가득 실은 트럭이 수원지 진입로를 들락거리더니 준설공사(浚渫工事)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조망을 즐기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밋밋하던 산길인가 싶던 산길이 또 다시 가팔라진다. 아까보다는 못하지만 만만히 볼만한 경사는 아니다. 이곳도 역시 쉬엄쉬엄 오르는 게 옳은 방법일 것 같다. 그래도 힘들다면 뒤돌아서 주변 경관이라도 살펴보자. 법기수원지 건너편에 있는 천성산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올 것이다.



느긋하게 5분쯤 오르니 굵직한 바위들 옆에 오두막 한 채가 지어져 있다. 커다란 오두막 옆에는 통나무 의자와 벤치까지 겹으로 놓아두었다. 느긋하게 쉬면서 조망을 즐겨보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오두막에서의 조망은 괜찮은 편이다. 잡목(雜木)들에 가린 법기수원지가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조금은 아쉽지만, 그 뒤에 있는 천성산은 아까보다 훨씬 더 또렷하게 시야(視野)에 잡힌다. 그런데 천성산의 송전탑(送電塔)이 유난히 크게 보인다. 거리가 꽤 먼데도 선명하다. ‘대못을 박은 듯 산의 정기를 막았다는 누군가의 넋두리를 그냥 흘려들었었는데 오늘 보니 허투루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다시 길을 나선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을 5분쯤 걸으면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봉우리 위에 오르게 되고, 이어서 나타나는 돌탑을 지났다싶으면 곧이어 ‘MTB임도 갈림길’(이정표 : 낙동정맥 운봉산0.47Km/ MTB임도1.3Km/ 법기수원지1.3Km)을 만난다. 그런데 이정표를 바라보던 집사람이 코웃음을 치는 게 아닌가.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이정표의 거리표시가 500m나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은 ‘119 구호지점 표시목(운봉산 1-12)’이 증명해 주었다. 50m쯤 더 걸었는데도 운봉산까지의 거리가 600m로 오히려 130m가 늘어나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잠시 후,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낙동정맥 다람쥐캠프장1.9Km/ 법기치유의 길0.3Km/ 법기수원지1.8Km)를 만난다. 이번의 이정표도 쓸모없기는 매한가지이다. 말도 안 되는 거리표시는 그냥 넘긴다고 해도, 그동안 쪽 표기해오던 운봉산의 방향까지 빼먹어버렸다. 국민의 혈세(血稅)로 만든 시설일진데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잠시 아래로 떨어지던 산길이 또 다시 오르막으로 변한다. 가파르기 짝이 없는 것이 맨입으로 정상을 내주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입에서 단내를 내야만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르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16분쯤 오르자 드디어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만이다. 정상은 서너 평쯤 됨직한 공터로 이루어졌는데 시멘트 기둥 모양의 작고 오래된 정상표지석과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사각의 아크릴판도 보이지만 글씨가 다 지워져버린 탓에 용도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정상석이 이상하다. ‘군지산이 아니라 운봉산으로 표기가 되어있는 것이다. 국토지리 정보 업무를 총괄하는 국립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군지산으로 등재가 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하긴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시설물들, 즉 양산시가 만든 '양산누리길 종합안내도'와 이정표, 그리고 양산소방서의 '구호지점 표지목'에도 하나 같이 운봉산이라고 적혀 있었다. 느닷없이 자신들의 이름을 붙여버렸다는 부산의 어느 산악회를 나무랄 일도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런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관할 지자체인 양산시에서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립정보원의 지명(地名 : 군지산)을 따르던지, 아니면 국립정보원에 요청해 군지산운봉산으로 바꿔놓는 요식행위(要式行爲)를 해줄 것을 지면을 통해서나마 요청해본다.



눈에 익은 팻말 하나가 눈에 띈다. ‘·라는 아호(雅號)를 쓰고 있는 최남준씨가 매달아놓은 것인데, ‘낙동정맥 군지산 634.9m’라고 산의 이름과 높이를 제대로 적었다. 국제신문의 근교산행 팀산행대장을 역임했던 분답다. 덕분에 정상석으로 인해 심란해져 있던 마음이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보잘 것이 없다. 나무들에 포위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까보다 훨씬 좁아진 천성산 방향의 시계(視界)는 그나마 조금 낫다. 그 반대방향은 나뭇가지가 허용해주는 조금만 틈새로만 조망이 허락되기 때문이다. 백운산과 망월산, 그 뒤로 달음산과 동해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어느 산을 지칭하는지는 모르겠다. 연무(煙霧) 때문일 것이다.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다람쥐캠프장 분기점1.9Km/ 법기임도0.6Km/ 법기치유의 길(수원지방향)1.7Km)가 가리키고 있는 다람쥐캠프장 방향이다. 비록 이정표에는 표기가 되어 있지 않지만 낙동정맥의 마룻금을 잠시나마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난 길은 일단 곱다. 두세 명이서 얘기를 나누면서 걸어도 될 만큼 널찍할 뿐만 아니라 경사까지 완만하다. 거기다 길가에는 억새까지 무리를 지어 피어나있다. 눈요깃거리까지 될 것 같다는 얘기이다. 낙동정맥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낙동정맥(洛東正脈)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구봉산(九峰山 : 강원도 태백시)에서 분기(分岐)하여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沒雲臺)에서 숨을 다하는 약 370의 산줄기를 말하며, 주요 산으로는 백병산과 주왕산, 가지산, 취서산, 금정산 등이 있다.



5분쯤 걷다가 발길을 돌리기로 한다. 느닷없이 법기치유의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느긋한 산행을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보는 게 옳겠다. 정상으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법기임도 방향으로 향한다. 양산 시내로 빠지는 능선이다. 이 코스도 역시 낙동정맥 마룻금이지만 주변 풍경은 반대편 능선과는 사뭇 다르다. 임도처럼 넓던 산길이 전형적인 오솔길로 변해있는 것이다. 그렇게 4분쯤 걷자 하늘농장 갈림길’(이정표 : 낙동정맥 남락고개0.35Km/ 하늘농장1.4Km/ 운봉산0.4Km)이 나온다.



왼편 낙동정맥 마룻금을 따라 남락고개로 향한다. 산길은 처음부터 가파르게 시작된다. 그것도 엄청나게 가파르다. 지자체에서도 그 가파름이 못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길가에 밧줄난간을 설치해 밧줄에 의지해 오로내리도록 했다. 고마운 일이다.



밧줄에 매달려 5분쯤 낑낑대다 보면 너럭바위에 내려선다. 서너 개의 바위들이 무리를 지었는데 하나 같이 위가 반반한 것이, 일행들끼리 점심상 차리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다. 이런 좋은 장소를 그냥 지나칠 집사람이 아니다. ‘식탁바위라는 이름까지 떡 하니 붙이더니 쪼르르 바위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본다. 마침 조망까지 트이니 준비해온 간식을 먹고 가자는 것이다.



꿀맛 같은 휴식을 마친 후 산행을 이어간다. 나머지 구간도 역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밧줄난간을 만들어 놓은 것 역시 같다.



그렇게 15분쯤 내려서면 아스팔트 포장 임도를 만나게 된다. ‘법기치유의 길C코스인 법기둘레길이 교차되는 곳이다. 길이 다섯 개로 나뉘는 이곳이선지 이정표가 3(#1 : 낙동정맥 남락고개 5.1Km/ 운봉산 0.6Km, #2 : 솔향둘레길/ 하늘마루길 650m/ 법기방향 임도, #3 : 수원지방향 둘레길 2.3Km/ 법기터널 방향 둘레길 3.5Km)나 세워져 있는가 하면 안내도도 2개가 보이는데, ‘법기치유의 길양산 누리길에 대한 안내를 각각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걸어내려왔던 길이 양산누리길이었던 모양이다.



#3의 이정표가 지시하고 있는 수원지방향 둘레길을 따른다. 산허리를 헤집으며 나있는 산길은 한마디로 잘 다듬어져 있다.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새로 낸 오솔길이 아닐까 싶다. 길 주변의 산자락에는 어린 편백나무묘목(苗木)이 널따랗게 심어져 있다. ‘치유의 길이라는 둘레길의 이름에 걸맞게 숲을 가꾸어나가고 있나보다.



편백나무 조림지(造林地) 아래에도 오두막이 한 채 지어져 있다. ‘법기치유의 길안내판도 보인다. ‘명품 자연생태 숲길이라며 잔뜩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하단에는 이곳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줄줄이 적어놓았다.



산행을 이어간다. 아니 이제부터는 산책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딱 걷기 좋을 만큼의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기분 좋은 산길이다. 언제부턴가 나무들까지 소나무로 변해있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이 짙다. 행복하다. 이래서 치유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나 보다. ! 깜빡 잊을 뻔 했다. 중간에 운봉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이정표 : 수원지방향 둘레길1.8Km/ 운봉산0.8Km/ 임도방향 둘레길0.5Km)를 만난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삼나무(杉木) 숲이 넓게 펼쳐진다. 삼나무(Japanese cedar)의 기원은 일본의 고대 역사책 일본서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대(神代)’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라는 신이 나오는데, ‘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배가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다라고 하여 자신의 수염을 뽑아 흩어지게 하니 삼나무가 되었으며, 가슴의 털을 뽑아 흩으니 편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보아 삼나무는 일본의 고유종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에 대량으로 심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 초부터다. 곧게 빨리 자라는 나무이니 재목을 생산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다만 추위를 싫어하므로 경남과 전남의 해안지방에서부터 섬 지방에 주로 심었다. 하지만 삼나무는 꽃가루가 심한 알레르기를 불러일으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렇게 산책 삼아 걷기를 25분여, 삼거리(이정표 : 수원지방향 둘레길0.84Km, 편백숲길 쉼터 0.5Km/ 법기전망대0.17Km/ 임도방향 둘레길1.5Km)를 만난다. 왼편은 아까 정상으로 오를 때 만났던 법기전망대로 오르는 길이다. 몇 걸음 더 걷지 않아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수원지방향 둘레길0.8Km/ 편백숲길 쉼터0.46Km/ 법기전망대0.21Km)가 나온다. 편백숲길과 둘레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어디로 갈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수원지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편백숲길을 잠시 따라보니 수원지와는 정 반대방향으로 길이 나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린 편백 숲길의 진면모를 볼 수 없었다.



▼ 10분쯤 더 걷자 눈에 익은 풍경이 나타난다. 아까 정상으로 오를 때 지나갔던 길이다. 삼거리에서 마을 안길로 연결되는 길을 막아 놓은 처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눈살을 찌푸리고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아까 올라왔던 코스를 거꾸로 내려가면 10분 후에는 법기수원지 입구에 이르게 된다. 산행이 끝났다는 얘기이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2시간 20분이 걸린 셈이다.



법기수원지에 이르니 키 낮은 철 대문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 사람이 들고 나는 쪽문에는 청년들이 지키고 서 있다. 짊어지고 있는 배낭을 맡기고 들어가라고 한다. 분실할 염려도 없다면서 관리실 옆 보관함을 보여준다. 그래, 열쇠까지 달려있으니 안심해도 되겠다. 아무튼 어떠한 소소한 음식물도, 돗자리도 금지란다. 때문에 안에는 화장실 하나와 음수대 하나가 있을 뿐 휴지통 하나 없다. 맨손으로 왔다가 맨손으로 나가는 곳인 셈이다. ‘유원지가 아니라 수원지법기수원지의 특징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 수원지는 1932년에 축조된 이래 상수원 보호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되어 오다가, 79년 만인 20117월에야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비록 개방은 시켰지만 옛날처럼 깨끗하게 보존해가고 싶다는 의지일 것이다. 참고로 법기수원지는 흙댐(土堰堤)으로, 관리 면적은 토지 136필지(681)이며, 최고 수위 197.23m, 수심 14.7m, 높이 21m, 길이 260m, 둘레 6m이다. 총저수량 157만 톤(유호 저수량 1442000 ), 유역 면적 6.85, 만수 면적 191000, 만수위 197.25m(해수면 기준)이다. 상수 원수의 공급 능력은 하루 8,000+5%라고 한다.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 관리하며 수원지의 물은 범어사 정수장으로 보내어 정수된 뒤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두구동, 노포동, 청룡동, 남산동 일대 약 7,000여 세대에 공급되고 있단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주변 풍광에 압도되어 버린다. 거대한 히말라야시다들이 빙 둘러서 길손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숲 앞에서 길은 둘로 나뉜다. 그러나 어느 곳으로 가야할 지를 놓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한 바퀴를 돌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길이 나뉘는 곳에 말라죽은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그 앞에는 벼락 맞은 나무라고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다. 문득 도장(圖章)의 재료로 최고라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 음지쪽 가지가 생각나 팻말을 살펴본다. 하지만 주변의 나무들과 함께 심었던 히말라야시다가 벼락에 맞아 죽은 것이란다. 괜히 헛물만 켰나보다.



왼편은 푸름으로 짙게 물든 숲속으로 들어서는 길이다. 침엽수림인 편백나무를 비롯해 높이 30~40m에 달하는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 등이 꽉 들어찬 숲이다. 양 옆으로 히말라야시다가 하늘을 찌르며 도열해 있다. 너무 높고, 너무 굵고, 너무 곧아서 혹시 동화나라에라도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그들 뒤 좌우 숲속에는 편백나무가 총총히 들어서 있다. 역시 너무 높고 너무 곧다. 숲은 빽빽한 긴 그림자로 어둑어둑하고 서늘한 기운이 짐승처럼 감돌고 있다. 그러나 길은 넉넉히 넓어 한 걸음 물러선 압도다.



이곳의 나무들은 댐 건설 당시 심어진 것으로 수령이 80년에서 130년 이상이다. 7644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루었는데 편백나무 413그루, 히말라야시다 59그루, 벚나무 131그루, 추자(가래)나무 25그루, 반송 14그루, 그리고 은행나무와 감나무가 각각 1그루 있다. 규모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나무 둥치들 사이로 댐 사면이 언뜻언뜻 보이는데도 숲은 깊다.




난 오른편으로 향한다. 벚나무 숲길이다. 봄이면 환한 연두 빛을 자랑하겠지만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다. 조금은 쓸쓸해 보이지만 어쩌겠는가. 보다 큰 감탄은 조금 뒤로 미루고 싶으니 말이다. 아무튼 전면에 높게 쌓아올린 법기수원지의 댐이 보인다. 법기수원지는 일제강점기 때 축조된 저수지로 1927년 착공해 32년에 완공되었다. 당시에는 국가적 규모의 토목공사였다고 한다. 완공과 동시에 상수원 보호를 위해 문이 잠겼고, 20117월 개방되기까지 79년간 철저하게 금단의 땅이었다.



길은 저수지 댐(dam)의 오른쪽 아래에 닿는다. 그곳에 석조 구조물이 만들어져 있다. 상방을 아치모양으로 꾸민 입구에 철문이 단단히 잠겨 있다. 법기수원지의 취수터널이다. 문의 상부에 테두리까지 조각한 석판이 부착되어 있고 거기에 원정윤군생(源淨潤群生)’이라는 글자가 음각(陰刻)되어 있다. ‘깨끗한 물은 많은 생명체를 윤택하게 한다는 뜻이다. 댐 완공 때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쓴 글이라고 한다. 그는 일제시대 제3대와 5대 조선총독을 지낸 사람, 독립투사 강우규 의사의 폭탄 투척에도 살아남았던 인물이며, 우리 민족문화의 말살 정책을 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법기수원지는 비록 일제의 주도하에 건설되었지만 건설의 주역은 강제 동원되었던 우리의 선조들이다. 맨손으로 흙을 돋우고 맨손으로 저 나무들을 심었을 그들이다. 나무들이 하늘만 보며 자라는 동안 우리는 독립을 이루었고 사이토 마코토는 1936년 일본 군부의 급진파 청년 장교들에게 암살되었다.



취수시설의 오른편에 놓인 나무계단을 오르면 댐(dam)의 위이다. 댐의 위에는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다. 판석(板石)으로 바닥을 깔고 길의 양 옆은 목책 난간(木柵 欄干)을 둘렀다. 이 댐은 흙으로 쌓았단다. 높이 21m, 길이 260m, 둘레 6, 총저수량은 1507t에 달한다.



댐 마루 둑길에는 밑동에서부터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져 자라는 반송(盤松) 일곱 그루가 자라고 있다. 수령 130년 정도 된 법기 반송 칠형제다. 저수지 축조 당시에 심어놓은 것으로 나무를 얽어맨 밧줄에 몽둥이를 꿰어 어른 20명이 어깨에 메고 여기 마루까지 옮겨왔다고 한다. 햇살 고스란한 둑길에 반송이 그늘을 드리운다. 우듬지는 좀 더 하늘과 가까워지려 부쩍 솟았고, 아래 가지는 좀 더 물과 가까워지려는 듯 길고 낮게 드리워져 있다. 굵은 가지가 낮아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한다. 코끝을 스쳐가는 솔향기가 무척 달다.




저수지(貯水池)는 자신의 속살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까도 얘기 했듯이 준설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를 잘 맞추었더라면 고요하게 고인 물 위에 그려지는 예쁜 풍경화라도 구경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 안에는 하늘색 취수탑(取水塔)이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취수탑이다. 나이 많음을 생색이라도 내려는 듯 자신의 맨몸을 통째로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법기수원지는 현재 전체 68중 댐과 수림지 2만 개방되어 있다. 원래는 저수지 둘레길 약 3.42차로 개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방 이후 하루 방문객이 최대 3만 명을 넘어서면서 차량 정체와 주차문제, 생태계 위협 등 여러 문제가 대두되었고 결국 둘레길의 개방은 보류되었다고 한다. 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원시림, 아주 옛날에는 호랑이가 살았다는 저 골짜기가 손에 잡힐 듯하다. 그러나 저곳은 여전히 금단의 땅으로 남아있다. 하긴 이렇게 관리를 해왔기에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 7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