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산(白馬山, 532m)-무량산(無量山, 426.5m)

 

여행일 : ‘17. 2. 25()

소재지 : 충북 영동군 영동읍과 황간면의 경계

산행코스 : 가리재538m백마산치마바위성황당고개무량산솔치재공원(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둘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중간에 바위지대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정도의 바위도 없는 산들이 어디 있겠는가. 때문에 특별한 볼거리도 없을뿐더러 조망(眺望)까지도 별 볼 일이 없다. 흙산들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특징들이라 할 것이다. 영동읍민들이 산책코스로 이용하는 듯한 무량산 구간을 제외하고는 등산로 또한 뚜렷하지가 않다. 외지의 등산객들이 별로 찾지 않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볼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지맥(枝脈) 답사를 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꼭 찾아보고 싶다면 무량산 코스만 단독으로 오를 것을 권하고 싶다. 나머지 구간을 포함시킬 경우에는 얻는 것 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가리재(영동군 황간면 서동원리 산 130-61)

경부고속도로 황간 I.C에서 내려와 4번 국도를 타고 영동읍으로 들어온다. 오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고갯마루가 산행들머리인 가리재이다. 하지만 말이 고개이지 생김새로 봐서는 그저 평평한 도로에 불과할 따름이니 참조한다. 황간면(신탄2)과 영동읍(가리)의 경계지점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히 기점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다는 얘기이다. 그저 들머리에 세워진 명륜동마을로 들어가는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표지석과 영동감자체험장의 입간판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 길 건너 저만큼에 있는 퇴비공장을 참조할 수도 있겠다.




명륜동 마을표지석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2년쯤 전엔가 명륜동 진입로가 확·포장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외관(外觀)만 봐서는 꼭 엊그제 공사를 마친 것처럼 산뜻하기만 하다. 50m쯤 걸었을까 왼편으로 길이 나뉜다. 농로(農路)일 것이다. 농로를 따라 50m쯤 들어가면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과수원진입로가 나뉜다. 지맥(枝脈) 답사를 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따르는 게 보통이다. 우리도 물론 이 길을 따랐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구태여 이 길을 따를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농로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외딴집에서 산자락으로 들어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길이 이곳보다는 훨씬 더 또렷하다고 알려져 있다.




지맥(枝脈) 길로 들어서면서 고생문이 활짝 열린다. 과수원으로 지나자마자 길이 희미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두 명이나 다니는지 산길은 온통 잡목(雜木)으로 가득 찼다. 가시넝쿨 또한 뒤질 수 없다는 듯이 휘휘 감고 들어온다. 가시에라도 찔릴세라 조심이라도 할라치면 이번에는 위가 문제다. 나뭇가지들이 싸대기를 때려대는 것이다. 아무튼 찔리거나 할퀴는 것은 물론 싸대기 두어 대는 각오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최악의 구간이다.



그렇게 10분쯤 악전고투를 치르다보면 능선에 올라선다. 그렇다고 길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납던 가시넝쿨이 웃자란 억새로 바뀌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잡목도 소나무들로 뒤바뀌어 있다. 아무튼 산길은 이런 장애물들을 피해 빙빙 돌아가며 위로 오른다.



능선에 오르자 시야(視野)가 열린다. 소문난 산간지역답게 높고 낮은 수많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 있다. 가장 오른편에 보이는 산은 각호지맥 상에 있는 삼봉산이 아닐까 싶다. 그 뒤에 있는 건 각호산과 민주지산일 것이고 말이다.



12분쯤 지나면 폐자재(廢資材)가 널려 있는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산불감시초소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진행방향 저만큼에 538m봉이 나타난다. 오늘 오르게 되는 봉우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이 부근에서는 산불의 흔적도 보인다. 잔불처리 때 모아놓은 듯한 나무들에서 불에 탄 흔적이 아직까지도 역력하다.



산길은 급할 게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언제부턴가 산길 또한 또렷해졌다. ! 깜빡 잊을 뻔 했다. 중간에 왼편에서 올라오는 길 하나를 만난 것을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이후부터 산길이 임도처럼 널따래진 것 같다.



오른편으로 빼꼼히 시야(視野)가 열린다. 그리고 나뭇잎이 다 지고 난 빈 나뭇가지 사이로 산봉우리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정상 어림이 암팡진 암봉으로 이루어진 것이 굴봉이 아닐까 싶다.



얼마쯤 올랐을까 임도처럼 널따란 길은 산봉우리를 피해 오른편으로 우회(迂回)를 한다. 길을 바꾸어 오솔길로 들어선다. 이어서 급경사 오름길을 잠깐 치고 오르면 538.2m봉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46분만이다. 서너 평쯤 되어 보이는 정상은 잡목과 잡초가 점령하고 있을 뿐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정표도 없다. 그저 삼각점(영동460, 1980재설) 하나만이 외로울 따름이다. 하긴 이름도 없는 봉우리에다 정상석을 세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라는 닉네임을 쓰는 최남준씨가 각호지맥 538.2m’라고 적은 표지판을 매달아 놓았다는 점이다. 국제신문 근교산 취재팀의 산행대장을 역임하신 분이라는데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마산으로 향한다. 왼편, 그러니까 동남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하지만 능선은 직진방향이 더 발달되어있으니 주의한다. 자칫 엉뚱한 곳으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기도 한다. 나뭇잎을 다 떨구어버린 나뭇가지들이 조그만 틈새를 열어주는 덕분이다. 겨울철만이 가질 수 있는 특혜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좁디좁은 들녘을 헤집으며 1번 국도와 경부선철도가 지나간다. 전형적인 산간지역 풍경이 아닐까 싶다.



시나브로 고도(高度)를 낮추던 능선이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더니 10분쯤 지나자 암릉지역에다 내려놓는다.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알맞게 발달된 암릉을 가운데에다 놓았는데, 양쪽 사면(斜面) 또한 깎아 세운 듯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바위의 위가 생각보다는 넓고 평평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30분쯤 진행하면 능선 안부에 내려서게 된다. 이정표는 보이지 않지만 좌우로 길의 흔적이 나타난다. ‘사기점고개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갈 경우 사기점 마을(영동읍 가리)로 연결될 것이다. 오른편은 탑선이마을(영동읍 심원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말이다.



또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것도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이이다. 떨어뜨린 만큼의 고도(高度)를 다시 올려놓아야하니 별 수 없었을 것이다. 10분쯤 지난 후, 왼편으로 지능선 하나를 갈려 보내고 나서야 산길은 그 기세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5분쯤 후에는 또 다른 지능선을 왼편으로 갈려보낸다.



얼마쯤 걸었을까 임도처럼 널따란 길을 만난다. 그만큼 경사(傾斜)가 누그러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고 오름길이 아주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걷기에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의 오르막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진행하면 돌담을 만나게 된다. 반듯하게 쌓아올린 것으로 보아 옛날 이곳에서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나 싶다.



몇 걸음 더 걷자 잡목(雜木)들로 가득 차 있는 널따란 공터가 나온다. 이곳이 백마산의 정상이란다. 널따란 분지(盆地)에 있는 하나의 지점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정상표지석이 세워진 것도 아니다. 그 흔한 이정표 하나도 보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저 서래야 박건석선생께서 매달아 놓은 정상표시코팅지가 이곳이 백마산의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가 아니었다면 이곳이 정상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기 때문이다.



무량산으로 향한다. 잠시 후 헬기장이 나오는데,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능선이 구릉(丘陵)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능선의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능선이 어디로 뻗어나가는지가 자꾸 헷갈린다는 얘기이다. 아무튼 헬기장 끄트머리에서 직진이 아니라 왼편으로 꺾어야 하는데, 나침반의 도움을 받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싶다.



펑퍼짐한 능선으로 이루어진 소나무숲길을 따라 10분쯤 진행하다보면 마치 쟁반을 비스듬하게 세워놓은 것 같은 바위를 만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바위를 일러 치마바위라고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처마처럼 툭 튀어나온 형상으로 인해서 생겨난 처마바위라는 이름을 버젓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바위는 이정표로 삼을 수도 있겠다.



산길은 처마바위를 지나면서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몸을 반듯이 세우고는 내려설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가파르다. 거기다 밧줄이나 계단 등의 안전시설도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저 조심조심, 아니 엉거주춤해서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또 다른 처마바위를 만난다. 비록 규모는 아까보다 작지만 그 생김새는 오히려 더 뛰어났다.



두 번째 처마바위에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갈 즈음 또 다른 처마바위를 만난다. 이번의 바위는 수많은 돌탑들로 둘러싸여 있다. 서툴게 쌓아올린 것이 오가는 길손들이 그냥 가기가 안타깝다고 하나 둘씩 올려놓고 간 모양이다. 가슴속에 간직해오던 그네들의 소원과 함께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의 바위는 치성바위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3~4분이 지나 안부에 내려선 후부터는 한동안 밋밋한 능선이 이어진다. 이어서 작은 오르내림을 두어 번 하고나면 16분 만에 양쪽으로 길이 또렷하게 나있는 고갯마루에 내려서게 된다. 왼편 주곡교(영동읍 주곡리)와 오른편의 봉현저수지(영동읍 봉현리)를 연결시키는 성황당고개란다. 하지만 성황당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는 성황당의 흔적이 확연하다고 했는데 이상한 일이다.



이제부터 무량산의 오름길이 시작된다. 이곳까지 오느라 지친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가파른 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지친 사람들을 여러 번에 걸쳐 골탕을 먹인다. 진행방향 저만큼에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이겠거니 하지만, 막상 이르고 보면 그보다 더 높은 봉우리가 떡 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오르막 구간들이 짧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 않나 싶다.



얼마쯤 올랐을까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진행방향 표시지가 왼편으로 향한다. 정규 등산로를 벗어난다는 얘기이다. 무량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지름길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오랫동안 인적이 끊긴 탓에 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길을 가로막고 있는 고사목(枯死木)들을 위험스럽게 넘는가 하면, 산길에 가득 찬 잡목(雜木)들에 싸대기 서너 대쯤 맞고 난 후에야 겨우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길은 거칠었다. 그렇게 35분쯤 진행하면 저만큼에 무량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굵직한 능선이 나타난다. 물론 성황당고개에서부터 걸린 시간이다.



성터의 흔적이 아닐까 싶은 돌무더기를 기어오른다. 그리고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잠시 후에는 무량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봉분(封墳)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정상에는 자그마한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영동303, 1980재설)이 설치되어 있다. 무량산 정상과 봉화터를 병기(倂記)하고 있는 이정표(영동대학교 2.6Km무량산(봉화터)영동그릴 2.3Km)도 보인다. 옛날에는 이곳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나 보다. 하지만 문헌(文獻)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으니 참조한다. 그런가하면 스테인리스(stéinlis) 의자 하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보잘 것이 없다. 아니 꽉 막혔다고 보는 게 옳겠다. 지금은 비록 텅 빈 나뭇가지 사이로나마 영동시가지가 나타나고 있지만, 계절이 바뀌어 잎이라도 무성해진다면 그것마저도 사라져버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산을 시작한다. 조금 전에 올라왔던 방향으로 되돌아나간다. 이어서 잠시 아래로 내려서면 오른편으로 길이 나뉘는 삼거리 하나를 만난다. 아까 무량산으로 오르면서 정규등산로를 벗어나지 않았더라면 이곳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헛고생을 한 꼴이 되어버렸다. 거리를 단축시키지도 못했던 것으로 보이기에 하는 말이다.



계속해서 능선을 탄다. 하나 둘 보이던 바위들이 그 빈도를 점차 높여간다. 그리고 곳곳에서 시야(視野)를 터놓는다. 코앞으로 다가와 있는 백마산은 물론이고, 백화산과 주행봉, 팔음산 등 주변의 산군(山群)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본격적인 암릉으로 변해버린다. 안전에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그래선지 암릉이 시작되는 지점에다 절터·(돌아가는 길)’이라고 적힌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우회(迂廻)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 권고가 효력이 있었는지 바위 위로 올라갔던 집사람이 되돌아 내려온다. 길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방향으로 돌아가 보면 길이 나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조금은 위험해 보이지만 말이다. 무량산 정상에서 내려선지 17분이 지났다.




아쉽지만 암릉구간은 금방 끝나버린다. 그리고 밋밋한 능선이 이어진다. 7분 후 또 다른 바위군락이 나타날 때까지는 말이다. B팀을 인솔했던 이대장이 멋지지 않았느냐고 물어올 정도로 이번의 암릉은 빼어나다. 하지만 바위가 귀한 산에서나라는 전제조건(前提條件)은 깔아야겠다. 바위가 많은 다른 산들이라면 이정도의 암릉은 쌔고도 쌨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옛말이 있다. 자리를 잘 잡은 덕택에 귀물 취급을 받고 있는 저 바위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집사람의 눈에도 귀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선뜻 병풍바위라는 이름까지 붙여 놓는다.




병풍바위 근처에서 다시 한 번 조망(眺望)이 열린다. 아까 암릉에서 보았던 그림이 똑 같이 그려지지만 눈여겨 보아둘 것을 권해본다. 앞으로는 이만한 조망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10분쯤 지났을까 절터·0.1Km’라고 적힌 이정표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저만큼에 돌탑들이 보인다. 옛날에는 이곳(이정표 : 영동대학교 1.7Km/ 정상 0.8Km)에 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비록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오가는 길손들은 그게 못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 흔적으로 수많은 돌탑들을 쌓아 올렸다. 대부분이 서툴기 짝이 없지만 개중에는 제법 번듯하게 쌓아올린 것들도 보인다.



돌탑들의 가운데에 옹달샘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도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지붕까지 씌워 놓았다. 플라스틱 바가지가 놓여있지만 마셔보는 것은 사양하기로 한다. 흐르지 않은 채로 고여 있는 것이 영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절터를 지난 산길은 다시 오름길로 변한다. 그리고 잠시 후 능선 위로 다시 올려놓는다. 이정표(영동대학교/ 소류지(어미실못)1.0Km/ 절터·)는 왼편 능선이 어미실못으로 연결된다고 적어 놓았다. 영동읍 설계리에 있는 향엄사 근처의 소류지를 말하는 모양이다.



산길은 또 다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길은 제법 또렷한 편이다. 영동 군민들이 운동삼아 자주 오르내리는 코스인 모양이다. 그리고 12분 후에는 삼거리(이정표 : 봉현리 3.5Km/ 영동대학교 0.5Km/ 무량산 정상 2.1Km)를 만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유원대학교(옛 영동대학교)가 나온다. 우리가 하산하려고 하는 솔치재는 계속해서 능선을 타야만 한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 하산할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물론 지맥 답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아무런 눈요깃거리도 없는 능선을 계속해서 타야만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후부터는 지루한 산행이 이어진다. 눈요깃거리가 하나도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능선이 계속된다. 거기다 오르내림도 제법 심한 편이다. 능선만을 고집하지 않고 어떤 곳(372m봉이 아닐까 싶다)에서는 사면(斜面)을 따른 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그마저도 피하고 싶을 정도로 위험천만이지만 말이다. ‘차라리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게 나을 뻔 했다며 집사람이 투정을 내뱉기까지 했다면 그 정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20분쯤 진행하면 295m봉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도 최남준씨가 각호지맥 295m’라고 적은 팻말을 매달아 놓았다. 그 아래에 서래야 박건석선생이 매달아 놓은 코팅(coating)지도 보인다. 그는 이곳을 양지말봉이라는 이름으로 표기했다. 높이도 291.9m라고 다르게 적었다. 아무튼 이 봉우리는 오늘 새로운 이름을 하나 얻은 셈이다. 그게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295m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계속해서 아래로 향한다. 저쯤에서 산행이 끝나겠지 하는 기대감에 부풀게 만드는 구간이다. 푹 파인 안부의 생김새로 보아 틀림없이 임도가 나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행방향 저만큼에 바위산이 보이지만 설마 저곳까지 가겠는가 하는 기대감이 강하게 든다.



건너편에 면() 경계봉인 암봉이 보인다. 그 뒤 오른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산은 아마 박달산(480.5m)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5분쯤 후에 임도(林道)에 내려선다. 그리고 비록 잠시지만 임도를 따른다. 산행이 끝나간다는 믿음이 강하게 드는 구간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산길은 다시 위로 향한다. 아까 보았던 암봉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15분 후에는 영동읍과 심천면이 맞닿은 면경계봉에 올라선다.



이 부근의 바위들은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자갈과 모래 등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것이 영락없는 콘크리트(concrete)이다. 퇴적물이 쌓여 형성되었다는 퇴적암(堆積岩, sedimentary rock)의 모양새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 전 이곳은 바다 속이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다가 지반운동(地盤運動, tectonic movement)’에 의해 융기(隆起), 즉 바다 밑의 지면이 해수면 위로 솟아올랐을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이곳에서 또 다시 조망이 열린다. 가까이 백마산은 물론이고, 박달산, 그리고 그 너머로는 백화산과 주행봉까지 나타난다.



왼편으로 내려선다. 솔치재 방향이다. 물론 직진방향으로도 길의 흔적은 보인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내리막길을 잠시 진행하면 유원대학교 방향으로 조망이 트이는 슬랩구간이 나타난다. 참로고 오늘 걷어온 이 능선은 각호지맥(角虎枝脈)의 일부구간이다. 각호지맥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삼도봉(1.178m)에서 분기해서 석기봉(1.242m)과 민주지산(1.242m), 각호산(1.202m), 천만산(960m), 삼봉산(930.4m), 백마산(534m) 등을 일구고 난 후 영동군 심천면 소재지 인근의 초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7.3km의 마루금을 말한다. 하지만 이 지맥은 아직은 덜 알려진 탓인지 백두대간일대와 각호산 일대를 제외하고는 산길이 또렷하지가 않다. 청정 마루금이라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면에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도 된다.




산행날머리는 솔치재

그렇게 10분 정도를 내려서면 저만큼에 솔치재가 나타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19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에는 이곳이 솔치재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펜스를 피해 절개지 우측으로 내려선 후,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잠시 걸으면 통신탑으로 향하는 길이 나뉘는데 산악회 버스는 이곳에 주차되어 있다. 차량통행이 뜸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정확히 4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멈춘 일이 없으니 오롯이 걷는 데만 걸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