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랑산(月朗山, 458m)-태청산(太淸山, 593.3m)-장암산(場岩山 481.5m)

 

산행일 : ‘16. 9. 10()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대마면·묘량면과 장성군 삼계면·삼서면의 경계

산행코스 : 깃재바위봉월랑산몰치재태청산마치재장암산매봉재석전마을(산행시간 : 4시간 30)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오늘 오른 세 산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하지만 약간의 차이들은 있다. 장암산은 온전히 흙으로만 이루어진 구릉(丘陵)형의 산인데 비해, 월랑산과 태청산은 정상 어림이 바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태청산은 단단하면서도 모가 난 바위들이 널려있어 혹시 바위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이다. 모두가 육산이다 보니 태청산의 정상을 제외하고는 눈에 담아둘만한 볼거리가 없다. 조망(眺望) 또한 대부분의 구간에서 트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단 트이기만 하면 그 정도는 끝내준다. 겨우 태청산과 장암산에 불과하지만 이 두 곳에서의 조망은 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거라는 얘기이다. 영광과 장성의 너른 들녘은 풍요로움이 넘치고 그 너머로 펼쳐지는 서해바다는 아득하기 짝이 없다. 특히 태청산에서 내려다보는 상무대는 의외의 볼거리로 작용한다. 웬만한 군사시설들은 사진촬영까지도 금지되는데 비해 이곳은 전망대까지 만들어 조망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산길이 곱다는 것이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傾斜)까지 완만해서 걷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 거기다 철쭉을 심고 각종 편의시설들을 짓는 등 공원(公園)에 가깝도록 가꾸어 놓았다. 가족 산행지로 추천하고 싶은 산이라는 얘기이다. 이때 등산로 정비가 일절 되어 있지 않은 월랑산은 제외시켜야 한다. 지맥(支脈)을 답사하는 산꾼들이 아니라면 월랑산은 뺀 채로 산행계획을 짜는 게 좋을 듯 싶다.


 

산행들머리는 깃재(장성군 삼계면 부성리)

서해안고속도로 영광 I.C에서 내려와 우회전하여 23번 국도를 타자마자 오른쪽으로 빠져나와 816번 지방도로 옮긴다. 잠시 후 장보사거리(영광군 대마면 원흥리)에서 좌회전하여 계속해서 816번 지방도를 탄다. 대마면 소재지(월산리)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성산리교차로(대마면 복평리)에서 오른편 734번 지방도로 옮겨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깃재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깃재는 영광군 대마면 성산리와 장성군 삼계면 부성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이다. ()의 경계이자 군()의 경계선이 되는 셈이다.




산길은 깃재산장에서 삼계면 방향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서 오른편으로 열린다. 들머리에 필암서원이정표(홍길동생가지 2.5km/ 축령산휴양림 6.3km/ 필암서원 20.4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편은 고성산(古城山 546.7m)으로 가는 길이니 참조한다. 참고로 고갯마루에는 깃재산장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영산기맥(榮山岐脈)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면서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던 곳이다. 하지만 그런 낭만은 옛 추억 쯤으로 놓아두어야 할 것 같다. 마당이 텅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기척까지 느낄 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문을 닫아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영산기맥(榮山岐脈)이란 호남정맥의 내장산 새재 부근 (652m)에서 분기(分岐)하여 영산강의 북쪽 울타리 노릇을 하면서 이어지다가 목포 앞 바닷가인 다순금 마을에서 서해바다로 가라앉는 도상거리 약 159.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입암산과 방장산, 문수산, 구황산, 고산, 고성산, 월랑산, 태청산, 장암산, 칠봉산, 불갑산, 영태산, 곤봉산, 승달산, 국사봉, 유달산 등이 마루금을 이루는 주요 산들이다.



산길은 일단 또렷하다. 누군가 일부러 손질을 해놓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생각을 접고 만다. 웃자란 잡초와 가시넝쿨이 산길을 뒤덮고 있는 구간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10분 조금 못되어 송전탑(送電塔, 68)이 버티고 있는 첫 번째 봉우리를 오르고 난 뒤부터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능선의 좌우로 농가나 태양광발전소가 보이는 등 나지막한 동네 뒷산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부근에서 조심해야 할 점은 두 번째 만나는 송전탑에서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길가에 줄기가 빨갛고 포도처럼 생긴 열매가 열린 나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미국자리공(Phytolacca americana)’이다. 19506·25전쟁 때 미국에서 들어온 귀화 식물로서 열매와 뿌리에 독성을 지니고 있어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며, 동물이 열매를 따 먹으면 죽기도 한다. 들어오지 말았어야 할 것이 엉겁결에 묻혀 들어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뿌리를 탕으로 만들어 소화기나 신경계, 비뇨기 등의 질환을 다스리기도 한단다. 하지만 독성이 강하다고 하니 의사의 처방이 전제되어야 할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산길은 사나와진다. 웃자란 잡초와 잡목, 거기다 넝쿨식물들까지 산길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듯한 모양새이다. 그러다보니 길의 흔적이 잘 나타나지 않는 곳도 생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주의해서 살펴볼 경우 길의 흔적을 찾아낼 만큼은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산악회의 시그널(signal) 등을 찾아가며 진행하면 된다. 물론 진행속도가 조금 늦어지는 것은 감수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30분쯤 진행하다보면 커다란 바위 몇 개가 널려있는 작은 봉우리를 넘게 되고, 이어서 10분 조금 못되게 더 걸으면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월랑산 정상에 올라선다. 산행을 시작한지 50분 만이다. 월랑산(月朗山)달 월()’자에 밝을 랑()’자를 쓴다. ‘달빛이 밝다는 뜻이니 인근에서 가장 높게 솟아오른 산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가장 먼저 달빛이 비춰야 가장 밝게 보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 사연이 요 아래에 있는 월산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이어졌을 테고 말이다.



월랑산의 정상은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아래에서 볼 때에는 분명히 바위산으로 보였기에 때문이다. 아무튼 서너 명의 서있기도 버거울 정도로 비좁은 정상은 텅 비어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대구의 산악인 김문암씨의 작품으로 보이는 정상표지판만이 이들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 하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를 산봉우리의 이름과 함께 적어 놓은 코팅지도 보인다. 지맥(支脈)을 걸을 때 심심찮게 보이던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걷고 있는 이 길도 영산기맥(榮山岐脈)의 한 구간이다. 정상에서는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오래 머물지 않고 자리를 떠버리는 이유이다.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이정표가 없으니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된다. 곧바로 직진할 경우 남산리로 연결되는 하산코스, 태청산은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야 한다. 내려가는 길은 초반부터 거칠기 짝이 없다. 경사(傾斜)가 심한데다 길의 흔적까지도 희미하다. 정보가 없이 내려섰을 경우 방향을 잘못 잡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기 딱 좋은 구간이다.



그렇게 10분쯤 내려왔을까 편백나무 숲이 나타난다. 광활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나름대로 제법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런 숲은 산행을 하는 동안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깃재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 6.3Km만 더 가면 축령산휴양림이 나온다는 이정표가 보였었다. 광활하기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곳인데 독립운동가 출신인 고() 임종국 선생이 조성한 숲이다. 그는 1956년부터 20년간 사재(私財)를 털어 596ha의 임야에 253만 그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만을 심고 가꿨다. 양잠 등으로 모은 상당한 재산도 모자라 빚까지 져가며 조림(造林)을 계속했다고 한다. 60년대 말의 혹독했던 가뭄 때에는 온 가족이 물지게를 지고 비탈길을 오르내리기도 했단다. 아무튼 그의 신념이 이곳까지 미쳤던 모양이다.



잠시 후 몰치재에 내려선다. 화산리(장성군 삼계면)와 남산리(영광군 대마면)를 잇는 고갯마루인데, 다음에 만나게 되는 이정표들에 표기된 것으로 보아서는 군감뫼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이정표(태청산3.3Km/ 추모공원0.9Km)를 만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월랑산은 지맥(支脈)을 하는 사람들이나 오르는 산이니 보통 사람들이라면 일부러 찾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같은 생각임을 밝힌다. 참고로 왼편의 화산리에는 장성에코힐이라는 레저단지가 새로 생겼다. 편백나무 숲속에다 수영장과 눈썰매장, 캠핑장, 방갈로 등을 갖춘 가족단위 휴양시설인데 요즘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고개 오른편으로 길이 나있기에 다가가보니 널따란 임도와 연결된다. 초입에는 태청산 등산로 안내도와 이정표(태청봉 3.30Km, 태청산주차장 3.16Km/ 월산리 4.45Km)까지 세워 놓았다. 안내도를 보면 구태여 산길이 아니더라도 마룻금과 나란히 난 임도를 이용해서 태청산 정상에 오를 수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럴 수는 없다. 편한 길을 버리고 고된 능선길을 고집하는 이유이다.



이제부터 길은 더 없이 좋아진다. 널찍하고 정비까지 잘 되어 있다. 특히 편백나무 숲이 일품이다. 좌우에서 번갈아가며 편백나무 숲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에코힐이라는 레저단지까지 요 아래에 생겨났나 보다.



담소(談笑)를 나누면서 걸어도 좋을 만큼 널찍한 산길이 계속된다. 거기다 경사까지도 평지 수준으로 완만하다. 그리고 길가는 온통 편백나무 천지, 참나무 등의 잡목이나 일본이깔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도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편백나무 숲이 계속된다. 한마디로 산책삼아 걷기에 딱 좋은 산길이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정제된 산소를 듬뿍 마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숲길을 걷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은 편백나무 숲이라고 할 수 있다. 편백나무가 가장 많은 피톤치드(phytoncide)를 내뿜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길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사색(思索)을 시작하게 된다. 사색하기 싫은 사람들도 별 수 없다. 걷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사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 한동안 가슴을 짓눌러오던 고민 한 조각은 해결 된지 이미 오래이다.



사색을 즐기며 10분 정도를 걷다보면 삼거리(이정표 : 태청봉2.6Km/ 산림도로0.1Km/ 군감뫼0.8Km)를 만나게 되고, 또 다시 10분 정도를 더 걸으면 또 다른 갈림길, 몰치재에 이른다. 십자(十字) 안부인 이곳에는 이정표(태청봉1.91Km/ 몰치입구0.36Km/ 대화레저관광농원(장성 에코힐의 다른 이름이다)1.50Km/ 군감뫼1.39Km) 외에도 돌로 만든 벤치까지 놓아 쉼터의 기능을 겸하도록 했다. 편백나무 향기라도 맡으며 쉬어가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이후로도 편백나무 숲은 계속된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산길이 가팔라진다. 그리고 곧이어 봉정사 갈림길’(이정표 : 태청산1.23Km/ 봉정사1.42Km/ 몰치0.58Km)을 만난다. 지도에 표기된 537.1m을 오르고 싶다면 이곳 삼거리에서 봉정사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난 우회(迂廻)하기로 한다. 잠깐의 다리품만 팔면 오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았던 모양이다. 산의 사면을 따라 깔끔하게 데크길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데크길이 끝나면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태청봉 1.18Km/ 봉정사 1.39Km/ 몰치 0.63Km)를 만난다. 537.1m을 올랐을 경우 내려오게 되는 길인데, 육군보병학교에서 별도의 이정표를 하나 더 세워 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후부터 산길은 또 다시 완만해진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길가는 어른의 키만큼이나 자란 산죽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걸으면 헬기장에 올라서게 된다. 현재는 사용을 하고 있지 않은 듯 잡초들만 무성하다.



잠시 후 진행방향에 태청봉이 나타나는가 싶으면 사각의 정자가 길손을 맞는 너른 공터(이정표 : 태청봉0.28Km/ 산림도로0.78Km/ 몰치1.63Km)를 만난다. 이어서 또 다른 이정표(태청봉0.19Km/ 때깍바위0.04Km/ 몰치1.56Km), 오른편으로 샛길이 나뉘는 것은 조금 전과 같으나 명주실이 통과한다는 때깍바위를 표기해 놓은 걸로 보아 내려가는 길은 서로 다른 모양이다.




이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가파르다. 그리고 그 끝에는 헬기장이 있다. 이정표(태청봉 0.15Km/ 대화관광농원·봉정사)와 등산안내도까지 갖춘 이곳에서는 아시아 최대의 군사교육기관이라는 상무대가 내려다보인다. 하지만 그걸 보려고 지체할 필요는 없다. 조금 후 정상에 오르면 똑 같은 풍경을 더 넓고 더 확실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데크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영광군에서 가장 높다는 태청산이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10분 만이다.



멀리서 봤을 때 흙산이었던 태청산이 정상에 이르자 크고 작은 바위들이 모여 세를 맘껏 뽐내고 있다. 여러 개의 바위를 모아 만들어 놓은 듯한 정상에는 그런 특징을 살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커다란 정상석을 두 개나 세워 놓았다. 그 외에도 삼각점(고창 469, 2010재설)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 참고로 태청산은 석태산(石太山)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산의 정상에 큰 바위들이 널려 있다고 해서란다.



정상에는 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그 목적이 의외이다. 군사시설인 상무대(尙武臺)를 보다 잘 조망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군사시설이긴 하지만 교육기관이라서 통제장치가 필요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상무대는 광활하다. 아시아 최대의 군사교육기관다운 규모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무대만 조망되는 것은 아니다. 지평선을 닮은 장성과 영광의 너른 들녘이 막힘없이 펼쳐진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은 풍요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곳 민초(民草)들의 온순한 심성의 근원이다. 산들에 대한 조망도 뛰어나다. 영광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답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진행방향에는 장암산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답게 손짓하고 있다. 그리고 북서쪽으로 이 산줄기를 이어온 월랑산과 고성산 너머로 방장산 내장산이 뚜렷하고, 뒤돌아보면 남쪽으로 장암산 너머로 불갑산이 달려간다. 서쪽으로는 영광의 시가지와 멀리 서해바다가 아련하다. ‘태청이란 산의 이름처럼 크고 광활한 조망이다.



기암괴석과 조망 등 구경거리가 많은 정상이지만 눈에 거슬리는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절벽에 그려진 십자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린 당사자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표현쯤으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겨야 할 경관에 자기만의 표식을 한다는 것은 도리어 하느님을 욕보이는 짓거리가 아닐까 싶다.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에서 30m 정도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이정표(마치1.28Km/ 산림도로0.94Km/ 태청봉0.03Km)가 가리키고 있는 마치쪽이다. 잠시 후 또 다른 이정표(마치 1.18Km/ 태청봉 0.13Km)를 만난다. 이곳에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맞은편으로 곧장 뻗어 내린 능선을 따라 난 희미한 길이 보이지만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모르겠다.



잠시 후 삼거리를 만난다. 지자체에서 세운 이정표(마치 0.71Km/ 태청봉 0.60Km)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육군보병학교에서 세운 이정표를 보면 왼편으로 1.5Km쯤 떨어진 지점에 법당이 있단다. 아무래도 군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설인 모양이다.



잠시 후 거대한 바위벼랑을 만난다. 산길이 벼랑을 피하고 있어 오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그저 벼랑 중간에 제법 너른 공간이 있으니 잠시 쉬어가는 곳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조망도 트이는 편이고, 거기다 약간의 스릴까지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위봉을 지났다싶으면 산길은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엄청나게 가팔라져 버린다. 곧장 내려설 수가 없어 왔다갔다 갈지()자를 쓰는 것쯤이야 다른 곳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곳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안전로프로 난간까지 만들어 놓았다. 부여잡지 않고는 오르내리기가 부담스럽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7분쯤 내려서면 성황당 터가 있는 마치재에 내려서게 된다. 해발 350m인 마치재는 왼편(동쪽) 장성군 삼서면 학성리와 오른편(서쪽)에 영광군 대마면 삼효리를 있는 고갯마루이다. 태청산 정상에서 25분쯤 걸렸다. 이곳도 역시 지자체가 세운 이정표(작은마치0.60km/ 마치입구 0.33Km/ 태청봉1.31km) 외에 육군보병학교에서 세운 이정표가 하나 더 있다. 참고로 옛날 이 고갯마루는 영광군 대마면에서 장성군 삼서면으로 넘나들던 큰 고개였다. 시원스레 뚫린 도로들에 길을 내어주고 이제는 오가는 이가 적지만 산을 찾은 이들에게는 아직까지도 그 품을 내어준다.



마치채에서 작은마치재까지의 구간은 겨우 600m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구간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오르고 내리는 게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산길이 정비되지 않아 걷기가 사나웠다는 얘기이다. 웃자란 잡초와 잡목은 물론이고, 가시넝쿨들까지 능선을 가득 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디게 진행하는 데도 찔리거나 할퀴는 것은 물론 까딱 방심하다간 싸대기까지 얻어맞기 일쑤이다.



그렇게 14분 정도 악전고투를 치른 후에야 작은마치재(이정표 : 장암산2.3Km, 월암리 사동 3.5Km/ 석전모정2.8Km/ 태청산1.9Km)에 내려선다. 또 다른 십자 안부이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산행날머리인 석전마을에 이른다. 장암산까지의 산행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이곳에서 탈출하면 된다.



작은마치재를 지나면서 산길은 또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기세는 사납지가 않다. 장암산까지의 거리가 2.3Km나 되다보니 서둘러 고도를 높일 필요가 없었나 보다. 산불이라도 났던 탓일까 이 구간은 커다란 나무들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햇볕을 가려주지 못한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고통스런 구간이 될 듯 싶다.



그렇게 25분 남짓 걸으면 4각으로 지어진 정자(亭子)와 송신용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구릉(丘陵)에 올라서게 된다. 구릉은 온통 철쭉들로 둘러싸여 있다. 일부러 조림한 것 같은데 봄철에라도 찾으면 분홍빛 꽃 잔치를 볼 수도 있겠다. 구릉 근처에서의 조망도 괜찮은 편이다. 영광군 묘량면 일대가 잘 내려다보인다.




이어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샘터삼거리(이정표 : 장암산0.2Km/ 숯가마샘터0.1Km, 월암리 사동 1.4Km/ 작은마치재2.1Km, 태청산 4.0Km)가 나온다. 산행을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해오던 영산기맥(榮山岐脈)과 이별을 고하는 지점이다.



삼거리 주변은 벤치뿐만 아니라 테이블까지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그리고 곳곳에 철쭉을 심는 등 공을 들여 가꾼 흔적들이 역력하다. 한마디로 산상공원(山上公園)에라도 올라선 느낌이다. 철쭉의 개화와 때를 맞춰 장암산철쭉등산대회가 열린다니 한번쯤 찾아볼 만도 하겠다.



장암산으로 향한다. 영산지맥과 헤어진 산길은 이제부터 장암지맥(場岩枝脈)을 따른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장암산의 정상에 올라선다. 태청산에서 1시간 여, 산행을 시작한지는 3시간 30분 만이다. 참고로 장암지맥이란 영산기맥의 장암산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오동산(351.1m)과 우리봉(185m), 노인봉(255m). 수리봉(354.4m), 봉화령(373.8m)을 지나 영광군 배수읍 대신리에서 돔배섬과 구암천을 바라보며 서해바다로 빠져드는 도상거리 약 36.3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봉긋하니 솟아오른 정상은 구릉(丘陵)의 형태이다. 그 구릉의 한가운데에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기는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정표(임도 종점 0.3Km, 석전모정 3.1Km/ 월암리 사동 1.6Km, 태청산 4.2Km, 석전모정 5.1Km)와 삼각점(고창311)도 보인다. 그리고 고전미가 팍팍 풍기는 2층짜리 팔각정까지 지어 놓았다. 거기다 산상(山上)을 덮고 있는 철쭉무리들까지 합치면 이건 숫제 공원(公園)이다. 마치 도심(都心)의 공원을 산 위로 옮겨다 놓은 듯하다.



정상에 올라서면 커다란 바위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장암산(場岩山)이라는 이름을 낳게 한 가로 세로 8~9m에 높이가 남쪽이 2m, 북쪽이 1m 안팎인 마당바위이다. '마당 장()' 자에 바위 암()’자를 쓰는 산의 이름을 낳게 한 바위답게 20~30명이 너끈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다. 이런 게 바로 우리네 조상들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산의 이름만 들어도 그 생김새를 그려낼 수 있는 그런 지혜 말이다. 아무튼 옆에서 보면 마치 물위를 떠가는 조각배를 닮은 이 마당바위에는 신분을 초월한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온다. 오래전 장암산 기슭 아랫마을에 고관대작(高官大爵) 집 아들과 가난한 농부의 딸이 양가 몰래 사랑을 약속했는데 집안의 반대에 장암산으로 도망쳤다가 산신령이 알려준 대로 바위에서 3일을 진달래로 연명하며 견뎌낸 후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이야기이다. 처음에 두세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였으나 산신령이 바위를 쳐 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로 커졌다는데, 선남선녀가 함께 바위 위에 앉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니 젊은이들이라면 한번쯤 올라가 볼만도 하겠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망무제(一望無題)로 펼쳐진다. 비록 바위산은 아니지만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덕분에 사방팔방으로 시야(視野)가 열리기 때문이다. 서쪽 아래론 묘량면의 평야지대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저 멀리 영광읍 너머로는 서해바다가 가물거린다. 북쪽으로는 대마면의 들판 너머로 고창군의 곡창지대가 탁 트인 조망을 뽐낸다. 해산물, 소금, , 나물 등 어염시초(魚鹽柴草)가 풍부한 영광군은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으로도 불렸다. 이름처럼 쌀, 소금, 목화가 많았고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옥당고을또는 호불여 영광(戶不如 靈光)‘으로 지칭 되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게 저렇게 너른 들녘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않을까 싶다. 한편 대마면 방면으로 마루금을 그으며 태청산과 월랑산으로 이어지는 북릉의 풍광도 일품이다. 남쪽으로 불갑산까지 내달리는 산릉이 첩첩산중을 이룬다.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석전모정 방향이다. 나선형(螺旋形)으로 만들어진 침목(枕木) 계단을 잠시 내려서면 널따란 공터가 나온다. ‘임도종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이정표(패러글라이딩 이륙장, 석전모정 2.8Km/ 월암·영양·삼호 임도/ 장암산) 옆에는 장암산 철쭉공원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장암산 일원에서 인위적(人爲的)으로 조성해 놓은 철쭉무리들이 계속해서 보였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아직도 주위는 온통 철쭉무리이다. 그래 이 정도라면 철쭉공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철쭉보다는 진달래를 심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만일 그랬더라면 마당바위의 전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경관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맞은편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의 위는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 활공장이다. 풍향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시설 외에도 정자를 지어 놓았다. 바람의 방향이 맞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휴식을 취하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참고로 이곳 장암산 활공장은 행글라이더들에게도 인기가 있다고 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해 하늘로 날아오르기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란다.



이륙장에서의 조망은 빼어나다. 도움닫기 후 점프하기 좋도록 산 사면을 따라 나무들을 베어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묘량면은 물론 멀리 법성면까지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아름다운 풍광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니 하늘을 날면서 바라보는 풍경은 오죽할까. 행글라이더들이 선호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산을 이어간다. 잠시 후 편백나무 숲을 만난다. 아니 삼나무 일지도 모르겠다이 숲은 금방이면 끝나버린다. 그리고는 또 다시 굴참나무들이 능선을 차지해 버린다. 아무튼 이런 산길을 10분 조금 넘게 걷다보면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리고 10분 조금 못되어 임도에 내려선다. 매봉재(이정표 : 석전모정1.5Km/ 묘량 월암·영양리/ 장암산1.6Km)이다. 차량 2대가 교행이 가능할 정도로 널따란 비포장 임도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이정표가 가리키는 석전모정 방향의 오솔길을 탄다. 그리고 2분 후에는 성석삼거리(이정표 : 석전모정1.3Km/ 상석·석전모정0.8Km/ 장암산1.8Km)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진행하더라도 산행날머리인 석전모정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우린 왼편으로 향한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산길을 구태여 길게 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왼편으로 내려선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내리막길을 타다보면 5분이 채 되지 않아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기는 산죽(山竹) 숲을 만나게 되고, 산죽 사이로 난 오솔길을 빠져나오면 전주 이씨문중의 묘역(墓域)이다.



산행날머리는 석전마을의 모정(茅亭)

묘역에서부터는 농로(農路)를 따른다. 그리고 10분 후에는 석전마을이 자리한 버스정류장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정류장 옆에는 모정이 있다. 마을주민들이 여름철의 무더위를 피하며 휴식하기 좋은 곳에 세운 정자로 산악회에서 준비한 음식물을 먹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3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이 채 10분을 넘기지 않았으니 오롯이 걷는데 소요된 시간으로 보아도 좋을 듯 싶다. 참고로 석전(石田)이란 마을 이름은 마을이 형성되기 전 이곳에 돌이 많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시는 독밭이라고 불렸는데 마을이 형성된 후 한자로 음이 바뀌면서 석전(石田)으로 고쳐졌다는 것이다. 현재 이 마을에는 해주 오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집사람과 본관(本貫)까지 같아 더욱 친밀감이 드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