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중남미의 멕시코 및 페루

 

여행일 : ‘18. 4. 23() - 5.2()

여행지 : 멕시코, 페루. 쿠바(비행기 사정으로 인해 취소)

 

일 정 :

4.23() : 멕시코시티(소깔로광장, 과달루페성당)

4.24() : 멕시코시티(테오티우아칸)

4.25() : 쿠스코(마추픽추)

4.26() : 쿠스코(12각 돌, 쿠스코대성당, 산토도밍고성당)

4.27() : 리마(아르마스광장, 사랑의 공원, 라르꼬마르)

4.28() : 파라가스(바예스타 섬), 이(와카치나 사막)

4.29() : 나스카(나스카라인)

4.30() : 멕시코시티(소우마야 미술관)

 

여행 첫째 날 :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소칼로광장(Zocalo Square)’

 

특징 : 멕시코(Mexico, United Mexican States, 墨西哥) : 북미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로 북쪽으로는 미국, 서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과테말라와 벨리즈, 동쪽으로 카리브 해와 접한다. 국토면적은 1964375로 우리나라의 약 20, 인구는 약 13천만 명으로 우리나라의 2.5배가 되는 커다란 나라이다. 이 지역은 기원전부터 조직적인 문화권을 형성했었다. 기원전 1300년경 멕시코 만을 중심으로 올멕 문명이 발흥했으며, 이후 멕시코 중앙 고원 텍스코코 호수 남쪽에 원형의 대형 피라미드로 알려진 쿠이쿠일코(Cuicuilco) 동쪽으로 테오티우아칸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세워졌다. 이후 16세기 초 스페인에 정복될 때까지 마야(Maya)와 톨테카(Tolteca), 아즈테카(Azteca) 등과 같은 여러 고급 원주민 문명의 거점으로 ​​번성했다. 원주민 사회를 정복한 스페인은 원주민 사회를 온존시킨 채, 스페인왕이 파견하는 부왕(副王, Viceroy)을 정점으로 하는 식민사회로 재편하였다. 식민사회는 스페인에서 파견된 식민관료, 경제력을 향유하는 멕시코 출생의 백인(Criollo),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Mestizo), 그리고 노예(peon)에 가까운 원주민으로 이어지는 엄정한 계급사회였다. 그러다가 1810년 신분해방을 원하는 메스티조와 정치권력을 원하는 크리올료가 결합하여 독립전쟁을 전쟁을 일으켜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와는 1962년에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나 일찍이 1948년의 건국 당시 이미 승인을 했고, 6·25전쟁 중에는 유엔의 긴급구호계획에 의거하여 약 35만 달러 상당의 곡물 및 약품을 원조한 바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멕시코시티(Mexico City) : 해발 2,300미터의 멕시코 고원에 있는 멕시코의 수도이자 중심 도시이다. 스페인의 침략으로 아스텍 왕국이 멸망하기 전에는 테노치티틀란이라고 불렸던 아스텍의 수도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수도권(METRO) 인구(2011년 기준 1,956만명)가 많은 도시로 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기도 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평야에 위치하고 있으나 이곳은 원래 호수(湖水)였다고 한다. 호수가 매립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반이 불안정하고 지진에 취약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도시는 1930년 이후 계획적인 대도시 정비 사업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옛 시가지의 면모가 많이 파괴되었지만 산토도밍고 광장을 비롯한 몇몇 광장들은 아직까지도 본래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참고로 '멕시코(스페인어: México)'멕시틀리 신의 땅이라는 뜻으로 아즈텍 문명 때부터 불려온 이름이라고 한다. 전쟁의 신 멕시틀리의 이름은 ‘metztli()’‘xictli(배꼽)’에서 온 말로 달의 자식이라는 뜻이 된다. 스페인인들이 멕시코 지방에 왔을 때, 나우아틀어의 /ʃ/ 소리가 스페인어에서 x로 표기하는 소리와 같았기 때문에 멕시틀리를 Mexitli로 쓰는 등 그 소리를 x로 표기했다. 현대 나우아틀어로 멕시코를 부르는 말은 Mēxihco(/meː.ɕiʔ.ko/)이다.

 

 

 

멕시코 여행은 소칼로광장(Zocalo Square)’에서 시작된다. 멕시코시티를 대표하는 곳으로 스페인 지배 당시 세워진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원래의 이름은 리얼 광장(Plaza Real)이었는데 1843년 산타 안나(Santa Anna) 대통령이 독립기념탑의 기반석을 놓으면서 현재의 이름인 소칼로(Zocalo)’로 바뀌었다고 한다. ‘소칼로는 원래 '기반석'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나 현재는 멕시코의 도시마다 하나씩 있는 중앙 광장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니 참고한다. 아무튼 1519년부터 이곳을 지배한 스페인은 철저하게 아스텍 문명을 파괴했다. 때문에 몇 안 남은 아스텍 문명의 유적은 먼저 멕시코시티의 중심인 소칼로 광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대성당의 아래 묻혀 있는 아스텍 유적은 대성당의 건축 공사를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때 무게가 8톤이나 되는 달의 신 코욜사우키 신전의 석판이 발견되면서 본격적으로 아스텍 문명의 복원을 시작했단다.

 

 

 

 

 

 

용설란은 역시 멕시코를 대표하는 식물인가 보다. 도로변의 화단의 화단을 아예 용설란으로 꾸며놓은 걸 보면 말이다. 멕시코 하면 데킬라와 용설란과 함께 떠오르는 단어가 애니깽이 아닐까 싶다. 100여 년 전 이곳으로 끌려와 노예나 다름없이 살아야 했던 우리네 선조와 그 후예들을 이르는 말이다. 그들이 끌려갔던 곳이 선박용 밧줄을 만드는데 쓰이는 선인장을 재배하는 '에네켄(Henequen) 농장'이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정성들여 가꾸어 놓은 용설란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도로에 시티투어 버스가 보인다. 둘 모두 붉은 색이지만 그중 하나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투어를 즐길 수 있도록 이층을 완전히 개방시켜 놓았다. 저 버스를 타면 빨간색 텍(tag)을 손목에 채워주고, 영어 또는 스페인어로 된 투리부스(turibus) 안내서와 티켓, 이어폰 등을 나누어 준다고 한다. 이 빨간색 텍만 차고 있으면 언제든지 원하는 장소에서 내려서 구경하고 추가 비용 없이 다시 차를 탈 수 있는데, 22곳에 이르는 정류장에 대한 정보는 안내서를 참고하면 된다. 안내 방송은 총 6가지 언어(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일본어)로 제공된다. 좌석마다 라디오처럼 언어선택과 볼륨조절을 할 수 있는 버튼과 이어폰 단자가 설치되어 있으니 이용하면 될 일이다. 그건 그렇고 저런 빨강색 버스 외에도 갈색과 녹색의 버스가 더 있으니 참조한다. 물론 제공되는 서비스도 각기 다르단다.

 

 

사방이 각각 240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다는 광장은 온통 천막들로 가득하다. 각종 기념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천막 안의 풍경들이 우리나라의 축제현장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부스의 상단에 세계 각국의 이름이 적혀있는 걸로 보아 국제적인 행사라도 열리고 있나 보다. 그나저나 커다란 천막들이 하도 빼곡하게 들어서있어 애초부터 있었던 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그나마 엄청나게 큰 멕시코 국기가 휘날리고 있어 원래 이곳이 광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왕에 나온 김에 멕시코의 국기(國旗)에 대해 한걸음 더 나아가 보자. 멕시코의 고대 문명은 마야와 아즈텍을 꼽는다. 기원전 3천년 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마야문명은 기원후 25십 년에서 9백 년 사이에 황금기를 맞는다.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급속히 쇠락의 길을 밟으면서도 16세기 초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그리고 마야문명이 주춤한 사이 발전한 것이 아즈텍문명이다. 13~14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것으로 보이는데, 주로 멕시코시티 등 서쪽에 많은 유적을 남겨놓았다. 하지만 스페인의 침공 이후로 두 문명 모두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에 대한 전설을 그저 국기에다 그려두었을 따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멕시코 북부에 살던 아즈텍인들은 수호신인 우이칠로포치틀리로부터 신탁(神託)을 받게 된다. ‘선인장 위에서 독수리가 뱀을 먹고 있는 곳에 정착하라라는 계시였는데, 이 말에 따라 중부로 남하하던 중 테노치티틀란이라 불리는 호숫가의 작은 섬에서 이 신탁과 일치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아즈텍인들은 신탁에 따라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호수를 메워 지금과 같은 도시를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그곳이 바로 여기 멕시코시티이며 그때부터 아즈텍족이 아니라 멕시카족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문양은 현재 멕시코의 상징이 되었으며 국기 뿐만 아니라 동전에도 새겨져 있다.

 

 

광장의 한편에는 행사를 위한 무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FICA 2018’이라고 적혀있는 걸로 보아 지금 열리고 있는 행사가 멕시코에서 매년 개최한다는 국제친선문화박람회(FICA : Feria Internacional de las Culturas Amigas)인 모양이다. 정식 행사는 520일부터 열리지만 광장에는 이미 국가별 부스가 만들어져 있고, 안으로 들면 그 나라의 문화소개와 기념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한쪽에 한국관도 만들어져 있으니 시간을 내어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 무대의 하단에 적혀있는 ‘CDMX’라는 글자가 궁금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곳 말고도 시내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데, 전광판은 물론이고 택시나 심지어는 투어버스에도 등장하니 더욱 궁금해 질 것이다. 그러나 막상 스페인어인 ‘Ciudad De Mexico’를 줄였다는 것을 알고 나면 조금은 허탈해 질 수도 있겠다. 영어로는 멕시코 시티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광장의 남쪽, 그러니까 대성당의 맞은편에는 시청사가 있다. 멕시코시티 시장은 권력 서열이 대통령의 다음이라고 한다. 한때 이곳 소깔로광장에서 서커스 공연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대통령과 시장이 맞섰는데, 결국에는 시장의 생각대로 행사를 열었다니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공공건물과 레스토랑, 호텔 등 중요한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서민을 위해 저리(低利)로 국가에서 운영한다는 전당포가 특히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광장의 동쪽에는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던 대통령 궁(Palacio Nacioal)’이 있다. 디귿자모양으로 지어진 건물과 중앙의 분수가 특징인 이 궁전은 정복자 코르테스(Hernán Cortés, 1485-1547)’가 아즈텍의 궁전을 허물고 그 위에다 지었는데, 멕시코가 독립하기 전에는 스페인의 총독이 머물렀었다. 현재는 관광지로 개방되어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대통령궁 입구를 무장한 군인들이 지킬 만큼 경계는 삼엄하지만 입장은 무료라고 한다. 매년 915일 밤이면 이 궁전에서 멕시코에서 가장 성대한 독립기념일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바로 이달고 신부의 도롤레스의 독립선언을 재현하여 궁전의 발코니에 대통령이 나타나, ‘Viva MexicoViva la independencia(멕시코 만세독립만세)’라고 외치고 이를 소칼로에 모여 있는 수만 명이 군중들이 제창한단다.

 

 

특히 이곳은 멕시코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벽화(壁畫)로 유명하다. 아즈텍의 부흥과 스페인의 침략, 멕시코의 독립 등을 대서사시(大敍事詩)처럼 담아내고 있단다. 멕시코의 민중화가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가 그렸는데 그는 멕시코의 역사와 생활을 다룬 민족적·혁명적 벽화를 다수 제작한 남미 벽화 운동의 선구자이다. 아무튼 그림은 1929년부터 그리기 시작했는데 완성하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미완성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대통령의 발코니에 매달려 있다는 종도 볼거리 중 하나이다. ‘이달고( Miguel Hidalgo, 1753~1811)’란 신부가 멕시코 독립선언을 할 때 타종했던 독립의종이란다. 독립기념일인 915일에는 대통령이 이 종을 타종한단다. 하지만 난 안으로 들어가 보지를 못했다. 주어진 자유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값싼 패키지여행의 특징이 바로 그런 것을 말이다.

 

 

 

멕시코시티의 상징이자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 건축물이라는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Cathedral Metropolitana)’은 북쪽에 자리 잡았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즈텍의 신들을 미신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신전을 무너뜨린 뒤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1524년 건축을 시작한 이 성당은 완공에만 240여년이 소요됐다. 때문에 성당 외관에는 고딕과 바로크, 코린트, 이오니아, 르네상스 등 다양한 양식이 반영돼 있다. 한마디로 건축 갤러리라 할 수 있겠다.

 

 

 

 

 

 

 

 

남미의 성당들이 늘 그렇듯 이곳 역시 식민화와 연관 짓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아즈텍 신전을 파괴한 터에다 원주민들의 고통스런 부역을 더해서 지어졌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예전에 텍스꼬꼬 호수가 있던 곳에 지었기 때문에 현재 진흙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다. 건물을 고정하기 위해 실내에 비계를 설치하는 등 건물을 보존하기 위한 각종 노력들이 현재 진행 중이란다.

 

 

안으로 들자 황금색 장식과 돔 형식의 천장이 웅장함과 화려함을 자랑한다. 대성당의 내부는 천장이 매우 높을 뿐 아니라 아치형의 기둥이 솟아 있어 강한 힘이 느껴진다. 성당 안에 있는 다섯 개의 통로는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벽면은 정교한 조판으로 장식돼 있으며 바닥은 멕시코에 풍부했던 대리석으로 깔려있다.

 

 

 

 

 

 

 

 

성당은 5개의 중앙 제단(祭壇)16개의 예배당이 마주보고 길게 늘어서 있다. 성당에 있는 다섯 개의 통로는 다소 야해 보이는 형상과, 정교한 조판과 회화로 장식되어 있다. ‘후안 로드리게스 후아레스의 회화 작품인 '왕들의 경배''성모의 승천'으로 장식된 왕의 제단, 마카오에서 수입한 금도금 난간과 장엄한 두 대의 오르간이 있는 성가대 석이 성당에서 하이라이트라고 한다.

 

 

 

 

 

 

 

 

 

 

 

 

 

 

성당의 앞은 아즈텍 시절에 제사로 희생된 사람들의 해골이 묻혔던 장소라고 한다. 그 흔적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상부에 투명유리를 씌워 놓았다.

 

 

 

 

성당의 왼편 옆에는 특이하게 생긴 동상이 하나 세워져 있다. 몸채에 두 손을 합장하고 있는 성모(聖母)를 조각해 넣은 성직자의 동상이다. 차림새로 보아 교황으로 보이는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아즈텍 인디오들의 의해 14-15세기에 걸쳐 세워진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로 향한다. 성당 바로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으나 또 다른 풍경을 만날까 싶어 성당을 오른편에 끼고 한 바퀴 돌아본다. 가슴에 담아둬야 할 정도의 특별한 볼거리는 없으나 고풍스런 옛길이 한껏 아름다움을 발산해준다.

 

 

 

 

 

성당의 담벼락에는 각종 사진들을 게시해 놓았다. 사진에 대한 설명까지 해놓았으나 스페인어로 되어있어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에 대한 안내가 아닐까 싶다.

 

 

 

 

끄트머리에 이르자 발굴이 한창인 유적지가 나온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이다. 스페인의 통치기간 동안 인디오들의 주된 건축물들은 모두 땅속에 묻혀 졌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 위에 스페인 방식의 건물들이 다시 저어졌다. 이곳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다가 1913년 성당 건축공사를 하던 중 유적 일부가 발견되었으나 그대로 방치되어오다가 1979년 무게가 8톤이나 되는 달의 신 석판이 발견 되면서 본격적인 복원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이 터가 옛날 아즈텍왕국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의 중앙 신전임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신전 앞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바치던 제단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 눈에는 뱀의 머리 몇 개와 흩어진 벽돌만이 시야에 들어올 따름이다. 참고로 이 사원의 상징물은 뱀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원의 아즈텍 이름 또한 뱀의 언덕이라는 뜻의 '코아테펙(Coatepec)'이란다.

 

 

 

 

15C 아즈텍이 건설한 이 위대한 사원은 아즈텍의 수도이던 테노치티틀란의 중심부에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이 아즈텍의 수도를 정복한 이후 사원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1978년에 우연히 코욜셔우키(Coyolxauhqui)’ 조각물이 발견되면서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고, 1984년에는 일반에게도 공개 되었다. 스페인의 침략으로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던 아스떼카 시대의 유적이 세상에 낯을 내민 것이다. 참고로 코욜셔우키는 둥근 모양의 돌조각으로 아즈텍 여신인 코욜셔우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원 안에는 해골 벽(Tzompantli Shrine : Wall of Skulls)도 있다고 한다. 엄청난 수의 해골들이 줄줄이 벽에 붙어 있다는 것이다.

 

 

유적지 옆 담벼락에도 여러 개의 사진들을 게시해 놓았다.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템플로 마요르는 멕시코시티에 있었던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의 중심 신전(神殿)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신전은 나우아틀어로 Huēyi Teōcalli라고 불렸다. 독립된 계단(separate staircases)이 있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성지에서 전쟁의 신 위칠로포치틀리와 비와 농사의 신인 트랄로크(Tlaloc)를 동시에 부르는 말이었단다.

 

 

하룻밤을 머물렀던 갈레리아 플라자 호텔(Galeria Plaza Hotel), 오성급인 이 호텔은 유명한 관광지와, 부티크, 레스토랑 등에 둘러싸여 있어서 멕시코시티 주변 지역을 관광하려는 사람들에게 유리할 것 같다. 루프탑 테라스와 무료 무선 인터넷 외에도 피트니스센터와 수영장, 스파 및 웰니스 센터 등 각종 편의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이 호텔의 특징 중 가장 특이한 점은 공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권한이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호텔의 지하에 있는 카페에 내려가면 칵테일이나 탄산음료 중에서 하나를 골라 마실 수 있다. 잔의 윗부분에 붙여놓은 소금을 안주삼아 칵테일을 홀짝거리다 보면 지금 자신이 중남미에 와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칵테일의 주원료가 멕시코 고유의 술인 데낄라이기 때문이다. 멕시코 사막에서 나는 용설란이란 선인장 줄기의 즙을 발효 시켜 만드는 술로 알코올 도수가 38도 정도 된다.

 

 

 

두 끼를 때웠던 한인식당 수라상’, 규모도 제법 큰데다 그 맛도 본래의 우리 맛을 잃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 교민들이 많이 찾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나라와 멕시코는 100여 년 전에 이미 인연을 맺게 된다. 그 인연은 이민으로부터 시작된다. 1905년 생활이 곤궁한 275가구 1,003(남자 802, 부녀자 및 어린이 231)19054월에 인천항을 떠나서 멕시코로 이주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들은 현지 대지주에 인계되는 즉시 혹독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로인해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병사했다고 전해진다. 19213월에는 이들 중 288명이 쿠바로 이주하는 등 멕시코 각지로 흩어졌다. 80여 년이 지난 현재는 교포 1세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2·3세가 멕시코인과 동화하여 일부는 정부 관리를 비롯하여 의사·교수·기술자 등으로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