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래산(御來山, 1,064m)

 

 

산행일 : ‘11. 8. 5(토)

소재지 : 충북 단양군 영춘면, 경북 영주시 부석면,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의 경계

산행코스 : 어은동의 도경계 소공원→계곡→능선 안부삼거리→삼도봉→어래산→1014봉→회암령→화암봉(1,136m)→남대리→송내(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어래산은 조선 초기(朝鮮 初期)의 배극렴과 인연(因緣)이 깊은 산이다. 고려(高麗)의 멸망과 함께 이 산에 숨어든 배극렴을 신하로 맞아들이기 위하여 이성계가 세 번을 찾아왔다고 해서 어래산(御來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을 등지기 위해서는 심산유곡(深山幽谷)을 찾는 법이니 이곳도 당연히 심심(深深)산골일 것이 당연하다. 어래산은 산세(山勢)도 별로일뿐더러, 다른 산에 비해 내세울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그저 평범한 산이다. 이성계는 이곳을 세 번이나 찾았다지만, 이성계와 같이 특별한 것을 찾을 필요가 없는 보통사람들은 구태여 찾아올 이유가 없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곳이 충북과 경북, 그리고 강원도가 접경을 이루고 있는 의미가 있는 山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자체(地自體) 하나도 관심을 갖지 않는, 버려둔 산으로 남아있다.

 

 

 

산행들머리는 영춘면 의풍리 어은동마을의 도경계(道境界)에 있는 소공원(小公園)

38번 국도(國道/ 태백방향)의 영월에서 빠져나와 우선 남한강을 끼고 이어지는 88번 지방도(地方道/ 춘양면 방향)로 들어선다. 고씨동굴을 지나면서 도로는 남한강과 헤어지고 옥동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옥동천을 끼고 달리던 버스는 김삿갓면 와석리에서 88번 지방도를 떠나 오른편의 28번 지방도로 들어서더니 김삿갓계곡을 따라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도로를 비틀거리며 달리고 있다. 도로주변의 그림 같은 계곡에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다. 그들의 표정들이 행복하거나말거나 멀미에 약한 집사람의 얼굴은 벌써부터 죽을상이다. 28번 지방도는 935번 지방도를 만나면서 그 생명을 다하고, 935번 지방도(영주시 방향)를 따라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이내 어래산의 들머리인 영춘면 의풍리 어은동 마을에 이르게 된다.(* 참고로 중앙고속도로 북단양 I.C를 빠져나와 단양시가지를 우회(迂廻)한 후, 남한강줄기 옆으로 이어지는 59번 국도(國道/ 영월방향)와 522번 지방도(地方道/ 영춘면 방향), 935번 지방도(영주시 방향)를 이용해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산행들머리인 어은동마을은 충청북도의 의풍리와 경상북도의 남대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곳이다. 대개의 도경계(道境界)가 山의 능선(稜線)을 따라 이어지기에, 여기도 그러려니 했지만 의외로 이곳은 평지(平地)이다. 도로변(道路邊)에 세워진 경상북도라고 적힌 커다란 경계석이 아니라면 누구도 이곳이 도(道)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도경계석의 뒤편에는 자그마한 공원(公園)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 핀 주황색 하늘나리들이 꽃망울을 활짝 열고 길손들을 맞이하고 있다. 산행은 공원의 맞은편에 있는 잘생긴 소나무 옆으로 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잘생긴 소나무는 이곳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에서 보호수(保護樹)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단다.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農路)를 따라 10분쯤 올라가면 농로가 끝나면서 건너편 언덕에 우람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느티나무 뒤로 난 소로(小路)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묵밭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꺾어 들어서면 계곡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나타난다.

 

 

 

계곡은 그야말로 원시림(原始林) 그 자체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은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데, 거기다 한술 더 뜬 다래넝쿨들은 아예 어렵게 스며든 빛까지도 차단할 정도이다. 등산로는 계곡을 여러 번에 걸쳐 가로지르며 이어지는데, 계곡의 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건너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다.

 

 

 

 

 

 

녹색의 이끼가 가득한 계곡의 바위들은 많이 미끄럽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조심조심, 녹색의 계곡이 끝나면서 등산로는 능선을 향해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갈지(之)자를 만들어야만 겨우 경사(傾斜)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 무더운 여름 날씨에 경사까지 심하다보니 다들 힘들어 하는 기색들이 역역하다. 힘든 오르막길에서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이면 드디어 능선안부의 삼거리에 다다르게 된다. 왼편은 어은재에서 올라오는 길이고, 어래산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이 지났다.

 

 

 

주능선에서부터는 등산로는 뚜렷해지고 걷기에 편한 흙길이 이어진다. 작은 내리막에 긴 오르막, 그렇게 산길은 오르내림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이곳의 오르막길은 한마디로 예쁘다. 다시 말해 마음에 꼭 든다는 얘기이다. 간혹 만나는 봉우리들을 통과하지 않고도 정상으로 오를 수 있도록, 봉우리의 옆 사면(斜面)에 길을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이 두텁게 쌓인 폭신폭신한 흙길, 걷기 좋은 길에서는 나도 몰래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오늘따라 집사람의 발걸음도 가벼운가 보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성큼성큼 걷고 있으니 말이다. 경사가 완만한 오르막길을 스스로 즐기며 걸다보면 어느덧 삼도봉(三道峰)이다. 충북과 강원도, 그리고 경상북도의 귀퉁이 한 자락씩을 붙잡고 있는 지점이란다. 삼도(三道)가 만나는 거창한 의미를 가졌건만 막상 도착한 봉우리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지리산과 민주지산에서 만나본 삼도봉을 연상했는데... 조그만 공터에는 정상표지석은 눈에 띄지 않고 어느 산악회에서 꽂아놓은 표지판만이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탓에 조망도 일절 없다.

 

 

 

삼도봉에서 경사가 거의 없는 능선을 따라 얼마간 오르면 헬기장이 보이고, 다시 조금 더 진행하면 이내 어래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어래산 정상은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헬기장이다. 한쪽 귀퉁이에 앙증맞도록 자그마한 정상표지석이 놓여있다. 영월군청에서 세워 놓은 것을 보면 그쪽 귀퉁이가 강원도의 끝자락인 모양이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의 머리너머로 소백산과 백두대간의 능선들이 허리가 잘린 채로 얼핏 나타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20분이 지났다.

 

 

 

 

간간히 떨어지는 빗방울에 쫓겨 회암봉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들 일색, 참나무 아래를 뚫고 지나가는 등산로는 대체로 경사가 완만(緩慢)하다. 발목을 감싸는 부드러운 촉감, 금잔디를 닮은 풀들이 수북하다. 참나무 일색이던 등산로 주변에 갑자기 소나무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얼마안가 다시 참나무가 제자리를 찾고 있다. 역시 이곳 어래산은 참나무들 천국이 맞나 보다. 이곳 회암령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송내계곡을 거쳐 송내마을에 이르게 된다. 회암봉은 전면(前面)의 능선을 따라 올라서야 한다. 시계를 보니 1시,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다. 하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인지라 집사람의 양해를 구하고 회암봉을 향해 맞은편 능선으로 향한다.

 

 

 

 

 

 

회암령 : 옛날 의상대사가 상동의 고승골(절골)에서 절(寺刹)을 짓고 있는데 까치 한 마리가 매일 날아와 대팻밥을 물어 가더란다. 그 까치의 행위를 의아스럽게 생각한 의상대사가 쫓아가 보았더니, 회암령을 넘어 부석사 자리에다 물어온 대팻밥을 쌓아 놓고 있었다나? 그래서 그 자리에다 새로운 절을 세웠으니, 그 절 이름이 부석사란다. 그러나 부석사에 가면 ‘선묘와 의상의 승화(昇華)된 사랑’을 테마로 한 창건설화(創建說話)가 따로 있으니, 이곳 회암령의 설화는 ‘믿거나 말거나’쯤으로 치부해도 좋을 듯 싶다.

 

 

회암봉으로 오르는 길은 초반에는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어래산과는 달리 집채만 한 바위들이 눈에 띈다. 바위를 붙잡고 오르거나, 바위를 에둘러 올라야할 정도로... 가파르게 오르던 등산로는 첫 봉우리를 지나면서 다시 능선을 만들고 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몇 개 지나면 순수한 흙산(肉山)으로 이루어진 회암봉에 오르게 된다.

 

 

 

 

 

역시 회암봉은 찾는 사람들이 드문 모양이다. 등산로 주변 참나무들의 굵기부터가 남다르다. 사람의 손때를 타지 않은 순수한 산길에서 나는 비릿한 산내음이 코끝을 따라 스치며 지나간다.

 

 

 

여기가 회암봉? 잡목에 둘러싸인 두세 평 남짓한 공터에는 아무 표식도 없다. 정상표지석은 물론 이정표 하나도, 하긴 오늘 산행하는 동안 단 한 개의 이정표도 구경할 수 없었다. 거기다 조망까지 없는 이곳에 왜 왔을까? 고생하며 억지로 끌려온 집사람의 눈초리도 곱지 않다. 회암봉에서 좌측으로 계속 진행하면 '선달산'인 백두대간으로 들어서게 되므로, 남대리로 내려가려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화암봉을 뒤로 하고 남릉의 하산길로 들어서면 한동안은 등산로가 뚜렷하게 이어진다. 그러다 급격히 고도를 낮추면서 등산로도 따라서 희미해진다. 간간히 나타나는 집채만 한 바위들은 자못 위압(威壓)스럽다. 가도 가도 끝없는 내리막길,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은 손으로 붙잡을만한 나무들까지도 보기 힘들 정도이다. 행여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 부상을 입을 만큼 등산로는 험하다. ‘산을 다 내려온 후에 비가 와서 천만다행입니다.’ 하산 후에 일행들과 나눈 이야기와 같이, 행여 눈비라도 내릴 경우에는 이 길을 이용한 하산은 삼가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지옥의 내리막길과 길게 싸우다가 힘에 겨울 때 즈음이면 능선은 완만해 지기 시작한다. 주변의 나무들도 소나무와 잣나무로 서서히 바뀌어 간다. 그러다가 이내 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임도(林道)가 보이고,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울창한 일본이깔나무(落葉松) 아래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이내 남대리에 닿게 된다.

 

 

 

 

 

 

산행날머리는 송내마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남대리, 도로변에는 때 이른 들국화들이 활짝 피어있다. 남대리가 산골인지라 가옥들도 수수한 시골집이려니했는데, 도로를 걸으면서 만난 집들은 다들 독특한 외양을 자랑하고 있다. 남대리에서 송내마을까지는 남대천을 왼편으로 낀 자동차도로를 따라 15분 정도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계곡쪽 도로변에는 잘지어진 팬션(vpension)들이 늘어서있고 계곡에는 물놀이 나온 사람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가득하다.

 

 

 

둔덕산(屯德山, 970m)

 

 

 

산행일 : ‘11. 7. 23(토)

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의 경계

산행코스 : 선유동계곡주차장→학천정→선유동계곡→능선→760고지→정상→헬기장→대골삼거리→대골→용추계곡주차장(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백두대간의 대야산(931m)과 조항산(951m) 사이에서 동쪽으로 솟아 있는 산이다. 주변의 바위산들과는 달리 전형적인 흙산(肉山)이며, 주변의 이름난 산들의 명성에 가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 산이다. 덕분에 때가 타지 않은 천연의 숲을 간직하고 있으나 이정표(里程標) 등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 초심자들이 산을 오르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산 아래에는 아름답고 물이 맑다고 소문난 선유동계곡과 용추계곡을 끼고 있다.

 

 

 

산행들머리는 문경 선유동계곡 주차장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 I.C를 빠져나온 후 34번 국도(國道/ 괴산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금호가든 쉼터’에서 517번 지방도(地方道/ 가은읍 방향)로 좌회전한다. 가은읍 관내인 관평삼거리에서 좌회전, 922번 지방도(가은읍 방향)를 따라 들어서면 용추계곡들머리를 지나 선유동계곡의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참고로 운전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追從)을 불허하는 안전산악회 회장님은 중부고속도로 증평I.C에서 빠져나와 선유동계곡에 이르는 코스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귀경(歸京) 때는 위의 코스를 이용...

 

 

선유동계곡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면 선유동식당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식당 앞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커다란 바위벼랑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학천정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도암 이재(陶庵 李縡)가 후학을 가르치던 자리에 지역 유림(儒林)들이 그의 덕망을 기려 세웠다는 팔작지붕 형태의 정자이다. * 조선 후기 학자인 이재(李縡, 1680~1746)는 18세기 사상 논쟁인 호락논쟁(湖洛論爭) 중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한 낙론(洛論)의 대표적 학자이다.

 

 

선유동계곡(仙遊洞溪谷)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우리 일행 외에도 계곡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나 산행보다는 물놀이를 나온 사람들로 보인다. 이고지고 들어가는 짐들이 등산장비가 아니고 먹고 마시는 것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계곡을 따라 100m내려간 후, 계곡을 가로지르면 오른편에 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보인다. * 이곳 선유동계곡은 대야산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있는 괴산군의 선유동계곡보다 계곡의 길이가 더 길고 계곡미가 빼어나 문경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인공적으로 쌓아 놓은 듯한 거대한 암석 사이로 맑은 옥계수가 흐르며 굽이마다 경승지가 널려 있다.

 

 

 

 

 

계곡을 건너면 작은 개울을 따라 완만(緩慢)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은 참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다행이도 산행을 시작할 때 내리던 비가 어느새 멈춰있다. 가녀린 물소리를 동무 삼으며 30분 정도 오르면 능선 안부에 도착하게 된다. 안부는 좌우로 길의 흔적이 보이고 있으나,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어디서 올라오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둔덕산이 바라보이지만 정상은 구름에 가려있다.

 

 

 

 

 

 

 

안부에서부터 고난(苦難)의 행군이 시작된다. 오르고 또 오르고, 아무리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경사라도 완만하면 좋으련만 가파르기 짝이 없는 급경사 오르막길로만 연결되고 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이 든다. 거기다 오늘 새벽까지 마신 술의 여파는 아무리 물을 들이켜도 갈증이 가시지를 않는다. ‘오늘 처음으로 나온 사람들은 엄청나게 고생하겠네요.’ 산에서 날아다니기로 소문이 나 있는 산꾼의 얘기이다. 내 대답은 단 한마디 ‘아니 매주 주말마다 산을 찾고 있는 나도 힘들어 죽겠답니다.’

 

 

 

 

 

숨이 턱에 차게 오르다보면 전면에 커다란 바위벼랑이 보이고, 벼랑위에 올라서면 왼편으로 시야가 열리고 있다. 비록 비는 내리고 있지 않지만 구름에 뒤덮인 산하(山河)는 그 자태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동안 고생하며 오른데 대한 보답일까? 모처럼 청량한 바람이 불어 가슴 밑바닥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다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땀을 식히고 있다.

 

 

 

전망바위에서부터 길은 경사가 완만해진다. 갑자기 찾아온 호사(豪奢)에 주변의 경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들꽃을 살펴보는 여유까지 부리다보면 어느덧 둔덕산 정상이다. 열 평 남짓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엔 이정표 하나 없이 자그마한 정상표지석만이 외로이 지키고 있다. 구름을 짙게 두른 산하는 아직까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구름이 걷힌다 해도 정상을 둘러싼 나무들로 인해 조망은 시원치 않을 것 같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조금 못되었다.

 

 

 

정상에서 하산(下山)은 대야산 방향으로 잡는다. 이정표 하나 없는 정상이기 때문에 대충 어림짐작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등산로가 2곳뿐이라 방금 올라왔던 길의 반대방향으로 내려서면 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상에서 10분 조금 넘게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잘록이에 이른다. 삼거리인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표지기가 나풀거리는 길이 보이는데, 가리막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잘록이에서 다시 오르막길을 잠깐 오르면 헬기장(957봉)에 올라서게 된다. 헬기장과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가엔 온통 억새들 천지... 가을이 무르익으면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해 줄듯 싶다.

 

 

 

 

 

 

헬기장은 둔덕산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고 소문난 곳이다.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들이 만들어내는 하늘금을 볼 수 있다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그런 아량을 베풀어주지 않고 있다.

 

 

 

헬기장에서 능선을 따라 다시 20분 정도를 내려오면 또 하나의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표지기가 덕지덕지 매달려있는 능선길로 직진하면 대야산,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대골로 내려서게 된다. 삼거리에서 오른편 대골방향으로 5분정도 내려서면 등산로가 두 갈래로 나뉘는데, 진행방향을 놓고 고민하게 만든다. 오른편 길이 더 넓고 탄탄한데도 표지기들은 길의 흔적이 희미한 능선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선답(先踏)한 산악회 리더들을 믿기로 하고 능선길로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최상의 선택이었음을 알아차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산행 내내 열어주지 않던 조망(眺望)이 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행운이... 모처럼 시야(視野)가 열리며 백두대간이 만들어내는 하늘금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 앞의 산이 대야산일 것이고, 그 옆으로 장성봉, 희양산... 백두대간의 산들이 이곳을 가운데에 두고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전망 좋은 능선을 내려서면서 길은 갑자기 험해진다. 경사가 심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면(路面)이 너덜길 같이 거친 것도 아니지만, 산죽(山竹)이라는 거친 적들이 갈 길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산죽의 숲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어른의 키를 훌쩍 넘겨버린 산죽의 잎들은 사정없이 얼굴을 할퀴고, 길의 흔적까지도 삼켜버리고 있다. ‘이제 그만!’ 외쳐보지만, 돌아오는 건 산죽의 이파리가 때리는 따귀 한 대, 더 이상 산죽을 생각하기도 싫어질 즈음에야 용추계곡이 마중 나온다. 선유동계곡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 용추계곡은 선유동계곡과 마찬가지로 바닥이 대부분 암반이다. 옷을 입은 채로 그냥 바위에 누워본다. 암반 위를 흐르는 옥수(玉水)는 더위에 시달린 육신에 다시 한 번 생기를 채워준다.

 

 

 

 

 

 

 

 

 

문경8경중에 하나인 용추계곡의 볼거리는 2단으로 이뤄진 용추폭포. 바위가 수천 년 동안 물에 닳아서 원통형 홈이 파져 있는데 하트(♥)모양을 하고 있어 더욱 신비스럽다. 용추[龍湫]란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생긴 웅덩이. 용소(龍沼)를 말한다.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용추 양쪽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을 할 때 용트림 하다 남긴 용비늘 흔적이 신비롭게도 선명하게 남아 있고, 아무리 가물어도 이곳의 물은 마르는 일이 없어 옛부터 극심한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산행날머리는 용추계곡 대형차량 주차장

용추에서 나무테크 등으로 잘 정비된 길을 내려서면 민박집들이 즐비한 집단시설지구(集團施設地區)이다. 이곳 끄트머리에 있는 마지막 산장에서 왼편으로 주차장 가는 길이 보인다. 주차장은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니 무더운 여름 날씨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알탕으로 깔끔해진 몸뚱이가 또다시 땀으로 젖어오를 즈음에야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내연산(內延山, 710m)

 

 

산행일 : ‘11. 7. 16(토)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송라면과 죽장면, 영덕군 남정면의 경계

산행코스 : 보경사주차장→보경사 일주문→임도→문수봉→삼지봉(정상)→향로봉(香爐峯, 929m)→시명리~청하골(12폭포)→보경사→주차장(산행시간 : 7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늘푸른산악회

 

 

특징 : 부드러운 능선, 폭포가 절경인 계곡, 거기다 산행을 마치고 조금만 더 다리품을 팔면 해수욕장이 널린 동해이다. 당연히 여름산행에 더 없이 좋은 산이다. 특히 청하골은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그렸을 정도로 빼어난 계곡미를 보여주므로 한번쯤은 꼭 찾아봐야할 곳이다.

 

 

 

산행들머리는 보경사 주차장

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 톨게이트(tollgate)를 빠져나와 7번 국도(國道, 영덕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송라면사무소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얼마 안 있어 보경사 주차장에 닿게 된다. 주차장에서 내려 집단시설지구 사이를 지나 보경사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보경사 매표소(賣票所)에서 오른편 길로 접어든다. 매표소가 아닌 산령고개를 들머리로 잡은 것은 문화재관람료(文化財觀覽料)를 물지 않고 내연산에 오를 수 있어서이다. 시간에 쫓겨 둘러볼 여유도 없을 문화재에 돈을 내는 것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2,500원이라니...

 

 

산령마을로 이어지는 임도(林道)는 차(車)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시멘트 포장길, 울창한 소나무 숲을 뚫고 꽤나 길게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10분쯤 거슬러 올라가면 이름 없는 고개 하나를 넘게 된다. 고갯마루에 '고은사' 방향 푯말이 서 있다. 그 방향을 따라 왼쪽 길을 내려가면 꺾이는 지점을 만나게 되고, 그 곳을 지나 40~50m쯤 더 진행하면 왼쪽 산자락으로 조그마한 오솔길이 열려있는 것이 보인다.

 

 

 

 

왼쪽 산비탈을 오르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이후 산길은 산령전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갈림길까지 마루금을 따르면 된다. 대형 급수탱크와 텐트를 쳤던 흔적이 눈에 띄는 걸 보면, 이 능선은 어쩌면 송이버섯 채취(採取)지역이 아닌가 싶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편의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면 보경사에서 문수암을 거쳐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보경사에서 이곳까지는 약 0.8Km, 문화재관람료를 내지 않으려고 약 1Km가까이를 돌아온 것이다. 이곳에서 문수봉까지는 1.3Km가 남았다.

 

 

 

 

문수암 삼거리에서부터 길은 고와진다. 서너 사람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걷기에 충분할 정도로 널따랗고, 거기에도 경사까지 완만하다. 등산로는 울창한 소나무로 덮여있다. 간혹 만나는 참나무는 양념... 하늘을 뒤덮은 숲으로 인해 조망은 없지만, 하늘을 가려주기 때문에 여름의 뙤약볕이 가려지는 반대급부(反對給付)도 있다. 문수봉을 오르지 않고 곧바로 삼지봉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만 서슴없이 문수봉으로 오른다. 모처럼 다시 찾은 내연산에서 한 곳이라도 더 둘러보고픈 마음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문수봉(622m)정상은 헬기장이다. 그러나 과연 헬기가 무사히 내려앉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비좁은 공간, 한쪽 귀퉁이에 정상표지석만 덩그러니 서 있다. 정상은 나무에 둘러싸인 탓에 조망이 일절 없다.(이정표 : 삼지봉 2.6Km/ 보경사 2Km)

 

 

정상에서 진달래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오솔길을 빠져나가면 문수봉을 들르지 않고 삼지봉으로 곧장 가는 널따란 등산로와 다시 만나게 된다. 삼지봉으로 향하는 길은 동네 뒷산같이 부담이 없는 능선 내지 비탈길이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까운 길은 곳곳이 낙엽이 곱게 다져져 푹신푹신하기까지 하다.

 

 

 

 

 

삼지봉으로 향하다 보면 봉우리도 아닌데 삼지봉(내연산:710m)의 큰 입간판(立看板)이 서 있다. 입간판에는 문수봉과 향로봉, 북동대산 등 3곳으로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봉우리라서 삼지봉이라고 불린다고 적혀있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원래의 삼지봉 정상이다. 이곳도 문수봉과 마찬가지로 조그만 정상표지석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로 인해 조망(眺望)이 없다.(이정표 : 문수봉 2.6Km/ 향로봉 2.6Km) 향로봉으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청하골로 내려가고 싶은 경우에는 조금 전 입간판이 서있던 곳으로 되돌아가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된다.

 

 

 

점심상을 차리는 산행대장을 앞질러 나가려는데 대장의 조언(助言) 한마디 ‘진행하다가 길이 나뉠 경우에는 무조건 능선을 탄다고 생각하고 진행해야한다’ 과연 얼마안가 두 갈래로 나뉘는 곳이 보인다. 산행대장의 말대로 직진(直進)인 사면(斜面)길(미결등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오른편 능선길으로 방향을 잡는다. 향로봉으로 가는 길도 한마디로 말해 곱다. 문수봉에서 걸었던 길보다는 좁고, 약간의 경사가 있지만, 걷기에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니다. 등산로 주변은 언제부터인지 참나무군락지(群落地)로 바뀌어 있고, 그 아래에는 곱디고운 풀들이 양탄자 같이 깔려있다.

 

 

 

 

향로봉 정상도 역시 헬기장이다. 그러나 삼지봉이나 문수봉보다는 훨씬 넓고, 정상표지석 또한 훨씬 큰 것을 보면, 세 봉우리 중에서 제일 높은 것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왼편으로 동해(東海)바다가 희미하게 조망되고 있다. 하산(下山)지점인 시명리로 방향을 잡으려고 이정표(里程標)를 보는데 이게 웬일일까? 삼지봉까지의 거리가 3.7Km란다. 삼지봉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에는 분명히 2.6Km로 적혀 있었는데 말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이정표를 보고 걷는 속도를 조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행정당국(行政當局)에서 조금만 더 신경 써 줄 것을 바래본다.

 

 

 

하산(下山)은 고메이등을 따라 시명리로 내려선다. 갑자기 고도(高度)를 떨어뜨리고 있는 등산로는 가파른 게 장난이 아니다. 물소리가 발아래에서 들려오건만 아무리 내려가도 계곡을 만날 수가 없다. 이정표에 적혀있던 시간(50분)이 거의 다 되어서야(40분) 오른편에 작은 개울이 보이는데, 벼랑을 타고 맑은 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다. 개울로 내려가 망설임 없이 물을 마시고 본다. 갈증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실컷 마시고서야 물통에 물을 채우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고메이등을 내려서면 시명(時明)마을이다. 시명마을은 세조의 서슬을 피해 숨어 살던 뼈대 있는 선비촌이란다. 밝은 시대를 기다리며 산(山)사람이 되었던 전설적인 마을인데 지금은 다 사라지고 허물어진 돌담만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추억을 더듬게 한다. 자시(子時: 밤 11-1시)가 되면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시명리(時鳴里)라고도 불리기도 한단다. 등산로는 시명리 이정표 앞의 개울을 건넌 후, 산의 허리를 따라 이어진다.

 

 

계곡 옆의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지루하게 이어지는 하산길은 험하다. 바위를 돌아내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예 바위를 잡고 위태롭게 내려서야할 때도 있다. 거기에다 등산로와 계곡이 너무 동떨어지게 이어지고 있어서, 그 유명하다는 폭포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등산로에서 짧게는 40~50m, 어떤 것은 100m이상을 걸어 내려갔다가 돌아와야 하니 들러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5시간 가까이 무더위와 싸우며 걸어온 내 발걸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기 때문이다.

 

 

 

계곡에 접근을 못하고 산허리를 따라 걷다가 너덜길 두어 곳을 지나면, 등산로는 계곡을 가로지르며 이어진다. 첫 번째는 바위를 건너 뛰어 무사히 통과했지만, 두 번째 계곡에서는 신발을 벗을 수밖에 없다. 상의를 벗은 채로 등목을 하고 있는 산행대장을 보고, 난 아예 알탕으로 누적된 피로를 풀어본다. 집사람은 탁족(濯足)으로 만족하고...

 

 

 

 

 

알탕으로 무더위를 날려버리고 난 후, 절벽의 자연 돌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청하골의 하이라이트인 관음폭포가 나타난다. 폭포의 옆 단애에는 굴들이 뚫려 있다. 관음폭포는 내연산 12폭포 중에서 아름답기로 제일이다. 물론 주관적이긴 하지만 폭포 아래로 마치 눈두덩처럼 뚫려 있는 관음굴과 그 뒤로 마치 빌딩처럼 버틴 절벽, 그리고 폭포 위를 잇는 구름다리가 한 폭의 동양화를 완성시키고 있다. 호쾌하게 떨어지는 폭포의 기세는 자못 웅장하기 그지없다. 범접하지 못할 카리스마는 덤으로 안고서... 여기에다 깎아지른 듯 서있는 절벽(絶壁)이 시야를 가득 채워주니, 한 폭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아닐 수 없다. 하긴 내연산은 진경산수화와는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불리는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이 ‘경북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이곳에 올랐었고, 이날 둘러본 내연산의 절경을 ‘내연삼용추(內延三龍湫)’라는 연작 작품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연산폭포. 관음폭포 위 구름다리로 올라가면 우레(雨雷)와 같은 물소리가 먼저 반긴다. 30여m 높이서 산산이 부셔져 떨어지는 모습이 실로 장관이다. 더불어 깊이를 알 수 없는 짙푸른 소(沼)는 태초의 무게가 얼마나 광대한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수직으로 쏟아지는 여느 폭포와 달리 연산폭포는 바위를 타고 흐르는 와폭(臥瀑). 그러나 오늘은 장마 뒤 불어난 물 덕분으로 수직폭포처럼 보이고 있다. 구름다리 뒤의 암벽은 학이 깃든다는 학소대. 학소대와 비하대 사이로 연산폭포가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보현폭포는 숨겨져 있다. 폭포주변의 바위들은 청하골에서 제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란다.

 

 

제1폭인 상생폭포, ‘쌍둥이 폭포’라는 의미에서 ‘쌍폭(雙瀑)’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린다. 엊그제까지 내렸던 장마 덕분인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고 있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소리에 무더위가 다 날아갈 것 같다. 한여름에 무더위를 쫒는 것 중에 폭포수(瀑布水) 떨어지는 소리만한 게 또 어디 있으랴?

 

 

 

산행날머리는 보경사 주차장(원점회귀)

상생폭포를 지나면 왼편에는 수로(水路), 오른편에는 계곡을 끼고 나아가게 된다.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길이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보경사가 있다. 폭포들이 끝나면 계곡은 작은 바위들과 바위 사이에 자갈들이 깔려있는 풍경으로 변한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날카로움은 다 없어지고 두루뭉술한 바위와 자갈들. 그렇게 물에 시달리며 떠내려 와서도 불평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 물이 갖다 준 대로 놓여있다. 사람이 건들지만 않으면 불만 없이 처음 장소에 서 있는 나무들같이...

 

 

보경사(寶鏡寺), 불국사의 말사로 602년(진평왕 25)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 지명(智明)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경사원진국사비(보물 252)와 보경사부도(보물 430)가 있으며 조선 숙종의 친필 각판 및 5층석탑 등이 있다

 

 

아미산(峨嵋山, 737m)-방가산(方可山. 756m)

 

 

산행코스 : 가암교→1~5암봉→무시봉→아미산→756봉→돌탑봉→방가산→갈림길→장곡휴양림 (산행시간 : 4시간20분)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과 영천시 화남면의 경계

산행일 : ‘11. 6. 18(토)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높은산 위에 또 하나의 높은 산이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아미산(峨嵋山)과 방가산 종주산행은 아름다우면서도 아찔한 암릉코스(아미산의 전반부)와 포근하면서도 한적한 육산(肉山/ 아미산의 후반부 및 방가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흥미진진한 코스이다. 전반부의 암릉코스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내세울만한 것은 없지만, 한번쯤은 둘러볼만한 가치가 있는 코스이다.

 

 

 

산행들머리는 가암리, 아미산 주차장(駐車場)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I.C를 빠져나와 68번국도(國道/ 군위, 의성 방면)를 따라 달리다가, 군위읍에서 927번 지방도로 바꾼 후 의성군 금성면을 거쳐 가음면까지 들어간다. 왼편 차창 밖으로 금성산과 비봉산이 바라보인다. 버스는 가음면에서 도로 이름(名)도 검색되지 않는 지방도를 따라 군위군 고로면으로 넘어간다. 왼편의 도로변에 서있는 빙계계곡 안내판이, 아미산을 포기하고 자기를 찾아오라며 꼬드기고 있다. 고로면으로 넘어가는 도로는 비록 도로 한가운데에 노란색으로 중앙선을 그려 놓았지만, 대형버스 2대가 비켜가기가 버거울 정도로 무척 비좁다. 거기다가 구불구불, 구절양장(九折羊腸)이라는 단어가 금방 떠오를 정도로 구불대고 있다. 고개를 넘으면 가암리, 도로변에 아미산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위천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木橋) 건너로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날을 세운 바위 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칼날봉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송곳바위이다. 주차장의 한 켠에 세워진 등산안내도에는 ‘아미산 등산로 안내도’ 밑에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라는 글귀 하나가 더 적혀있다. 아무래도 이 고장이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과 인연(因緣)이 깊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근에 있는 인각사에서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집필되었단다.

 

 

제1봉인 송곳바위를 바라보면서 다리를 건너면 목재(木材)계단이 낯선 이방인들을 맞이한다. 정비한지 얼마 안 되었는지 새것같이 깔끔하다. 천천히 5분 정도를 오르면 왼편에 날카롭게 하늘을 향해 치솟은 바위 하나가 보인다. 바로 송곳바위이다. 어느 틈에 올라갔는지 바위 꼭대기에 올라서서 하늘을 향해 포효(咆哮)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부지런하다고 해야 할 지, 아님 부잡(浮雜)스럽다고 해야 할 지 표현하기가 난감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에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생동감(生動感) 있는 사진을 찍을 수 해 주었으니까... 송곳바위와 어우러지는 위천과 양지마을이 일품이다.

 

 

 

 

송곳바위에서 가파른 바윗길을 치고 오르면 능선위에 올라서게 된다. 허리를 세우고 오를 수 없을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파르지만, 길가에 굵은 로프를 연결해 놓았기 때문에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다. 능선에 올라서면 왼쪽 발아래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진행방향으로 제2봉인 ‘앵기랑 바위’가 우람하게 솟아 있다. ‘앵기랑 바위’ 아래에 매달려 있는 경고판의 위세(威勢)에 눌려, 오른편으로 우회하여 2봉과 3봉 사이의 안부로 올라선다.

 

 

 

 

 

2봉과 3봉 사이 안부의 이정표에 ‘앵기랑 바위’ 방향으로 진행표시가 되어있다.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앵기랑 바위’ 앞에 세워져있는 안내판을 지나 곧장 바위를 잡고 오르기 시작한다. 몇 번의 위험한 곡예(曲藝) 끝에 봉우리 꼭대기 어림에 올라선다. 3봉과 그 뒤의 4, 5봉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왼편은 수백 길 높이의 아찔한 수직절벽(垂直絶壁), 오른편 저 멀리에 4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아스라이 바라보인다.

 

 

 

2봉을 내려서서 4봉으로 향하다 보면 왼편에 바위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바위 꼭대기 틈새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에 로프가 매달려 있다. 위험하니 올라가지 마라는 집사람의 잔소리를 뒤로 흘려버리며 냉큼 밧줄을 잡는다. 암벽(巖壁) 전문장비(專門裝備)까지 갖추고 있는 내 눈에는, 이런 정도의 암벽을 오르는 것은 어린애 장난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별 어려움 없이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 올라서자마자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잘 올라왔다는 것이다. 2봉인 ‘애기랑 바위’가 바로 눈앞에 서 있다. 2봉의 빼어난 자태는 이곳이 아니면 결코 조망할 수 없을 것이다. 진행방향으로는 4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갈지(之)자를 만들면서 봉우리를 향해 이어지고 있다. 암봉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옷들이 하얀 바위빛깔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3봉을 내려서서 4봉으로 길을 재촉한다. 이 암릉 구간은 발길 닿는 곳 대부분이 천혜의 전망대여서 따로 전망(展望)포인트(point)를 언급하기 힘들다. 그래도 굳이 한 곳을 꼽을라치면 목재계단과 밧줄구간을 지나면 나오는 5봉의 정상부일 것이다. 저 멀리 키 작은 1호 암봉부터 바로 앞 4호 암봉까지 이어지는 암릉이 용의 등허리에 돋아난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다. 마치 1봉을 머리로 둔 한 마리의 용이, 꿈틀대며 위천 주변 들판으로 나아가는 광경을 연상시켜준다. 그야말로 천혜의 비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면서 경관에 취한 탓인지 1㎞도 채 되지 않는 암릉구간을 통과하는 데 1시간 가까이나 걸렸다.

 

 

 

 

바위틈 사이에서 자라 짧게 뻗은 소나무 가지들은 분재 같은 모양으로 산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바위로 이루어진 산은 그 자체가 척박하다. 다른 나무가 들어올 수 없는 양지녘에 소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시원찮은 영양공급 때문인지 소나무들은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가냘프게 삶을 영유해 가고 있다. 비록 힘든 삶을 살아가는 소나무지만, 소나무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인하다.

 

 

 

짜릿한 암릉구간을 통과하고 나면 참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편안한 흙길이 마중 나온다. 아미산과 방가산을 거쳐 하산할 때까지 이런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진다. 저 멀리 무시봉이 우뚝 솟아 있다. 무시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예쁘다. 길이 흙길이라서 걷기에 좋을뿐더러, 의미 없는 봉우리는 오르지 않고 오른쪽 사면을 자르면서 능선으로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착한 길이라고 부르고 싶다.

 

 

 

 

 

산은 경사를 높이면서 소나무의 숫자가 적어지면서 참나무가 많아지더니, 이내 온통 참나무 군락지(群落地)로 변해버린다. 그리 경사가 심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돌탑이 보인다. 돌탑에 검정 매직펜(magic pen)으로 ‘무시봉 667m' 또 하나는 '아미산 402m'라고 적혀있다. 앞서가던 일행들이 이곳을 무시봉으로 잘못 알고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곳에 적혀있는 무시봉이라는 안내문은,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라는 의미로 적어 놓은 것이랍니다.‘ 의젓하게 폼을 잡던 분들, 조금은 허망하신지 다들 멋 적은 웃음들을 짓고 있다.

 

 

 

가짜 무시봉에서 길바닥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10분 정도를 오르면 높이 667m의 무시봉이 나온다. 정상표지석이 서 있으니 물론 진짜 무시봉이 틀림없다. 무시봉은 정상이라 하기엔 주변 조망이 보잘 것 없다. 볼록하니 솟아오른 봉우리의 일반 형태를 벗어나, 밋밋한 분지(盆地)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주변 나무들로 인해 시야(視野)가 트일 수 없기 때문이다.

 

 

 

무시봉에서 남쪽으로 내리막을 탔다가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게 된다. 고도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오르내리는데 어려움은 없다. 부드러운 흙길을 쉬엄쉬엄 25분 정도 걸으면 드디어 아미산 정상이다. 정상의 한쪽 귀퉁이에 자그마한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의 조망도 무시봉과 마찬가지로 별로다.

 

 

 

아미산에서 방가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90도 꺾어 내려서야 한다(방가산까지 2.1Km). 300m쯤 간 후에는 다시 왼쪽으로 꺾는다. 이번에는 경사가 제법 심한 내리막이다. 10분 조금 못되게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안부,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은 경사가 꽤 심하다. 너덜길을 돌아 올라서면 봉우리의 중간쯤에서 왼쪽이 탁 트인 전망대가 보인다. 동쪽과 북쪽으로 보현산에서 뻗어 내린 연봉들이 장쾌한 파노라마를 펼쳐내고 있다.

 

 

애기를 갖기를 원하는 부부들이라면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소원을 빌어도 좋을 듯싶은 소나무, 한 뿌리에서 9개의 가지를 만들어 내었다. 이 정도라면 한번쯤 빌어볼만하지 않겠는가?

 

 

전망대에서 5분만 더 오르면 756봉이다(아미산에서 0.8Km 거리). 정상부에 제단을 쌓은 흔적이 남아 있고, 가운데에 집채만한 바위가 보인다.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서 만든 것일까? 50평 정도 크기의 석축이 바위를 둘러싸고 있다.

 

 

 

방가산을 향해 완만한 내리막을 5분 정도(200m) 걸으면 굿골삼거리 갈림길. 이곳에서 왼쪽의 급경사 내리막을 타고, 날카롭게 날이 서있는 바위 사이를 5분 정도 돌아 내려서면 안부에 닿게 된다. 이어서 다시 10분 가량 가파르게 올라서면 돌탑이 세워진 742m봉이다. 능선은 이 봉우리에서 팔공지맥과 합류한다.

 

 

 

 

742봉에서 400m가량 더 걸으면 방가산 정상이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쌓인 분지형태의 정상에 비석모양의 자그마한 정상석과 이정표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도 역시 주변의 숲 때문에 조망이 일절 없다. 정상의 이정표는 날머리로 삼으려는 장곡휴양림까지는 5.08Km가 남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하산은 장곡휴양림으로 방향을 잡는다. ‘반남 박’씨 묘를 지나 약간 미끄러운 내리막에 이어 평평한 능선길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서면 또 하나의 묘가 보인다. 길가에는 복분자(覆盆子)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집사람이 빨갛게 익은 열매를 입에 넣어준다.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일품이다. 가는 길을 멈추고 본격적으로 복분자 사냥을 시작한다. 한 손 가득히 딴 복분자를 집사람의 입에 넣어준다. 집사람 또한 그녀가 딴 복분자를 자기가 먹지 않고 나에게 먹여준다. 이런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일 것이다. 아름다운 산에서 넘치도록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복분자 따먹는 재미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새 삼거리 쉼터에 이르게 된다. ‘복분자를 배부르게 먹다’. 쉽게 이해가 안가겠지만 집사람과 난 복분자를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이 따 먹었다. 삼거리에는 ‘휴양림 시설이 갖추어진 곳으로 들어설 때는 입장료를 징수한다.’라는 군위군수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그래서일까? 산악회 안내지는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표시해 놓고 있다. 왼편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 뚜렷한데 비해, 오른편으로 접어드는 샛길은 희미하다.

 

 

 

 

산행날머리는 장곡휴양림 주차장

오른편 길도 들머리만 희미했을 뿐 막상 능선으로 접어드니 길이 뚜렷해진다. 20분 정도 내려가면 작은 봉우리(570m) 갈림길. 이곳에서 왼쪽 계곡 아래 장곡자연휴양림을 향해 곧장 내려선다. 무지막지한 내리막길, 표현이 다소 심하기는 해도 과히 틀린 표현이 아닐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리막길 끝에는 위혐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면 능선은 다시 완만해진다. 그 끝에 나무계단이 보이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장곡휴양림에 도착한 것이다.

 

 

청량산(淸凉山, 870m)

 

 

산행코스 : 청량사 앞 주차장→일주문→산꾼의 집→응진전→김생굴→경일봉→자소봉→연적봉→뒷실고개→하늘다리→장인봉→뒷실고개(회귀)→청량사→대형버스 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40분)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과 안동시 예안면의 경계

산행일 : ‘11. 6. 4(토)

함께한 산악회 : 좋은 사람들

 

 

특색 :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경관이 수려(秀麗)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산(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23호), 월출산, 주왕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악(奇嶽)으로 꼽힌다. 비록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찾아오기가 쉽지 않으나, 수려한 경관 속에서 선현(先賢)들의 흔적(원효대사와, 최치원·김생·이황·주세붕)까지 둘러볼 수 있으니, 한번쯤은 시간을 내어 찾아봐야할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청량사 입구 주차장

중앙고속도로 영주 I.C에서 내려서서 영주 시내(市內)를 통과한 후, 36번 국도(國道)를 타고 달리다가 봉화읍을 지나 금봉교차로(交叉路)에서 빠져나온다. 금봉교차로에서 연결되는 918번 지방도(地方道)를 이용 명호면사무소 소재지까지 진행한다. 이곳에서 다시 35번 국도를 타고 안동방향으로 내려오면 청량산도립공원관리소가 있는 청량산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청량교를 건너면 청량산에 들어서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 청량사로 오르는 길은 초반부터 급경사 오르막이다. 하도 경사가 심하다보니, 가장자리 인도(人道)는 아예 계단으로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가파르다. 들머리에서부터 시작된 급경사 오르막 도로(道路)를 따라 20여분 정도를 숨이 차게 오르다보면, 저만큼 앞에 청량사 전각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청량사로 곧바로 오르지 않고, 오른편으로 소로(小路)로 접어든다. ‘산꾼의 집’과 응진전을 거친 후,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기 위해서이다. 들머리에 세워진 ‘산꾼의 집’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100m 정도 올라가면 붉은 색 지붕의 아담한 가옥이 보인다. ‘산꾼의 집’이다. 이곳은 달마도의 명장(名匠)으로 소문난 이대실씨가 살고 있는 곳이다. 입구에 ‘오고 가고 아픈 다리 약차 한 잔 그냥 들고 쉬었다가 가시구려.‘ 라는 글귀가 씌어 있다. 팻말 그대로 약차 한 잔 마신 후, 제 손으로 사용한 그릇을 씻어두고 나오면 될 일이지만, 시간에 쫒기고 있는 난, 그 잠시의 짬도 내지 못하고 응진전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산꾼이 집‘ 옆에 보이는, 단청을 하지 않아 한결 맛이 고풍스럽게 보이는 건물이 오산당이다.

* 오산당(吾山堂), 태어나자마자 부친을 여읜 퇴계 이황은 13세 때, 당시 안동부사였던 숙부를 따라 청량산에 들어갔다. 그 때 그가 머물던 곳이 오산당. 혹은 청량정사로서, 그의 숙부가 지은 것이다. 여기서 수학했던 그는 나중에 이곳에 들어와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도산십이곡도 여기 오산당에서 지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량산인으로 불리어질 만큼 청량산을 좋아했던 그는 ‘청량산가(淸凉山歌)’에서 『청량산 육,육봉(12봉)을 아는 이 나와 흰 기러기 너 뿐이니, 백구 너야 의젓하니 소문 아니 낼 것이고 문제는 저놈의 도화 꽃이로다. 저 도화 꽃이 강물에 떨어지면 어부(고깃배)가 그걸 보고 육육봉을 알까 하노라』라고 읊었다. 퇴계가 표현하고 있는 육·육봉은 구구법(九九法)에 의한 36봉이 아니라 ‘6 더하기 6’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곧 12개의 봉우리라는 얘기이다. 그 12기봉(奇峰)은 장인봉(丈人峰,=의상봉,870.4m), 선학봉(仙鶴峰, 821m), 자란봉(紫鸞峰, 796m) 자소봉(紫宵峰=보살봉, 845m), 탁필봉(卓筆峰, 620m), 연적봉(硯滴峰, 850m), 연화봉(蓮花峰), 향로봉(香爐峰), 경일봉(擎日峰, 750m), 금탑봉(金塔峰, 620m), 축융봉(祝融峰, 845.2m) 등, 12개의 봉우리이다. 이 12봉이 내청량사(內淸凉寺)를 빙 둘러 바위로 솟아 둘러싸고 있다. 이 12봉우리는 하나하나가 연꽃잎이요, 청량사 터는 그 연꽃의 '수술'에 해당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풍수 지리학상 청량사는 길지(吉地) 중에 길지(吉地)라 한다.

 

 

 

‘산꾼의 집’에서 응진전으로 가려면 오른편으로 보이는 급경사 오르막길로 올라서야 한다. 숨이 턱에 차게 10분 정도를 오르면 삼거리가 보인다. 이곳에서 왼편은 김생굴로 가는 길(200m)이고, 응진전은 오른편으로 10분 조금 못되게 더 가야만 한다. 이정표(김생굴 0.2km<10분>/청량사 0.4km<10분>/응진전 0.4km)

응진전(應眞殿)과 만난다. 꼭대기가 둥그스름한 고구마 같은 기암이 몇 개 옹기종기 살을 맞대고 서서 하나의 커다란 암봉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햇살을 받아 뚜렷이 입체감이 드러난 그 기암봉 아래에 응진전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기암봉(奇巖峰)을 포함한 봉우리 전체가 금탑봉이다. 금탑봉 아래 자리 잡은 응진전은 신라 문무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암자(庵子)이다. 낭떠러지에 걸치듯 세워놓은 암자, 그러나 암자가 자라잡고 있는 곳은 의외로 넓은 분지(盆地)이다. 낭떠러지 위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이다. 응진전은 홍건적 2차 침입 때 공민왕이 노국공주와 함께 이곳에서 피란을 와서 불공을 드린 곳으로 유명하다.

* 응진전(應眞殿) : 청량사의 부속 건물로 금탑봉 중간의 절벽에 위치한 작은 암자이다. 건물내부에는 익살맞은 표정의 16나한상(羅漢像)이 봉안 되어 있고, 공민왕의 부인 노국공주의 상이 안치되어 있다.

* 금탑봉(金塔峯, 620m), 경일봉의 동남쪽에 있으며 옛날에는 치원봉(致遠峰)이라고 불렀다. 연대(蓮臺, 지금의 오층석탑 자리)에서 바라보면, 3층으로 이루어진 동남쪽 층암절벽(層巖絶壁)이 마치 삼층탑의 형상으로 돋아있는 형상이다.

 

 

 

총명수(聰明水), 금탑봉을 멀리서 보면 3층으로 되었는데 그 층마다 소나무로 빙 둘러 있고 그곳에 평탄한 환상적인 길이 있다. 입석에서 응진전을 거쳐 김생굴로 가는 길은 그 중 중층(中層)인데, 길가 벼랑 밑에 큰 가뭄에도 물의 양이 일정하다는 총명수가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말기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청량산에 들러 이 물을 마시면 정신이 더욱 맑아지고 총명하기가 배가(倍加)하여졌다고 하여 총명수라는 이름이 생겼단다. 그러나 물 위에는 이물질이 떠 있고, 물은 썩어가는 듯하여 마시는 것은 고사하고,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보는 것 까지도 사양하면서 급히 자리를 뜬다.

 

 

 

응진전을 둘러보고 김생굴을 향해 금탑봉의 산허리를 돌아간다. 산허리를 뚫듯이 이어지고 있는 길은, 오른편 머리위로 절벽이 펼쳐지고 있고, 길의 아래도 아스라한 절벽이 끝이 없다. 길은 비록 아스라한 절벽위로 이어지고 있지만 결코 위험하지는 않다. 길의 폭이 넓은 원인이기도 하지만, 벼랑 쪽 가장자리에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벼랑아래가 내려다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풍대에 이르면 청량산의 전경(全景)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늘 높이 솟구친 암봉들은 병풍을 이루고, 그 암봉들 사이에 청량사가 다소곳이 앉아있다. 산등성이에 가득한 나무숲은 두텁게 우거졌다. 옹골찬 암산(巖山)이면서도 능선이 숲으로 덮여있어 풍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아마 청량산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한다. 어풍대는 청량산 제일의 전망대이다. 이곳에 서면 왜 청량사에서 전국 사찰(寺刹) 중 가장 먼저 산상 음악회(山上 音樂會)를 열었는지 알 수 있다. 소리가 깨지지 않고 본래의 음(音)을 유지하려면 원형의 터널과 같은 장소가 필요한데, 어풍대에서는 청량산의 봉우리들이 절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생굴(金生窟), 어풍대를 지나서 조금 더 걸으면 김생굴이다. 이곳 청량산에 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들른다는 곳, 산행대장의 안내도 꼭 들러봐야 할 곳으로 ‘자소봉, 하늘다리와 함께 이곳 김생굴’을 꼽았다. 김생굴은 경일봉의 중간어림에 위치하고 있는 반월형(半月型)의 자연암굴로서, 수십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오늘은 맑은 날씨인데도 바위 위에서 낙숫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비 오는 날이면 폭포가 되어 물이 떨어진단다. 아까 금탑봉 아래에서 발견되었던 최치원의 흔적에 이어 김생이라니, 신라시대에 가장 뛰어난 학자 두 분의 흔적을 청량산에서 찾을 수 있단다. 그렇다면 청량산은 실로 뜻을 세운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도, 이름에 발목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머물 만한 땅이란 말인가? 다시 한 번 둘러본 청량산은 높지도 그렇다고 넓지도 않은 산이었다.

* 김생은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를 살다 간 명필로서, 예서(隸書)·행서(行書)·초서(草書)에 능하여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이라고까지 불렸고, 송나라에서도 왕희지(王羲之)를 능가하는 명필로 소문났다

 

 

 

 

김생굴을 보고 삼거리로 되돌아와(100m) 급경사 길을 오르면, 금탑봉에서 경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안부다. 여기서 남쪽 금탑봉으로 가는 길은 폐쇄되어 있다. 그러니 왼쪽의 경일봉 방향의 능선으로 올라서는 수밖에 없다. 능선을 걷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산 자체가 워낙 가파르다보니 숨이 턱에 닿는 가파른 길의 연속이다. 중간의 일부 구간에는 굵은 밧줄을 매어 놓았다. 이곳뿐이 아니다. 청량산 등산로의 어느 구간이든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철제계단이나 밧줄을 설치해 놓았다. 능선을 따라 급경사 오르막길을 20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경일봉 정상이다. 경일봉 정상은 특이한 점이 눈에 띄지 않는, 능선상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평범한 봉우리일 뿐이다. 경일봉을 지나 자소봉으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봉우리들이 대부분 경일봉보다 더 높다. 왜 이곳에 정상석을 세웠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경일봉으로 오르는 도중에 간혹 나무숲 사이로 멀리 청량사가 바라보인다. 그러나 어풍대에서 바라본 경관보다 뒤떨어지기 때문에 사진촬영은 그만두고 발걸음을 옮긴다.

* 경일봉(擎日峯, 750m), 연대(蓮臺, 지금의 5층 석탑 자리)에서 정동(正東)쪽 방향에 있는데, 매년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에 연대에서 보면 해가 경일봉 정상의 한 가운데서 떠오르므로 주세붕이 인빈욱일(寅賓旭日 : 동방에 해가 떠서 빛난다는 뜻)의 뜻을 취(取)하여 '경일봉'이라 이름을 지었다.

 

 

 

 

 

경일봉에서 자소봉으로 이어지는 1.2Km, 탁립봉 갈림길까지는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대부분 흙길이기 때문에 걷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고, 간혹 바윗길이 나타나지만 거북하다고 느껴질 경우에는 돌아갈 수 있으니, 사색을 즐기면서 걷기에 좋은 구간이다.

 

 

 

 

 

청량산은 골산(骨山)이다. 첨봉(尖峰)으로 이루어진 골산이 아니라 노년(老年)의 골산이다. 봉우리들이 아스라한 절벽을 이루고 있지만, 대부분의 봉우리들은 머리에다 소나무를 하나 둘 얹어두고 있다. 때마침 낙동강에서 피어오른 안개라도 계곡따라 올라온다면 선경(仙境)을 만들어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 암벽(巖壁)에서, 마지못해 왼편으로 돌아 내려서면 청량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되고, 100m쯤 더 걸으면 이내 자소봉 밑에 다다르게 된다. 바위절벽위로 걸쳐진 아스라한 나무계단을 오르면 자소봉이다. 나무계단을 오르면 봉우리의 동쪽 허리쯤에 30~40명은 넉넉히 앉을 수 있는 널따란 암반이 펼쳐져 있다. 자소봉 꼭대기는 사람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이곳에 정상표지석과 내청량을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이 세워져 있다.

* 자소봉(紫霄峯, 845m), 연대의 뒤(북쪽)에 위치한 바위봉우리로 얼핏보면 청량산의 주봉(主峰)처럼 보인다. 푸른 바위가 천 길이나 높이 허공으로 솟아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봉우리의 명칭이 옛날에는 보살봉(菩薩峰)이었는데 주세붕이 자소봉으로 개명(改名)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청량산을 ‘숨어 있는 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래전 신라시대부터 눈 밝은 선현(先賢)들이 거처로 삼았던 열린 산이지만, 몸소 다가오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는 산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청량산은 내륙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래전부터 선현들이 찾았던 청량산이니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는 없다. 행선(行禪)을 하는 노덕처럼 산길을 걸어보자. 서둘러 정상에 오르지도, 헐떡이며 봉우리를 밟아 나가지도 말고, 구름과 바람의 얘기를 다 들으며 천천히 걸어보자. 그래도 한나절이면 충분하니까...

 

 

 

자소봉을 지나면서부터는 경사(傾斜)가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자소봉에서 얼마 안 걸으면 능선의 한가운데에 버티고 선 거대한 돌탑 같은 형체가 앞을 가로 막는다. 바위 봉우리의 왼편 아래로 지나가는 등산로의 가장자리에 탁필봉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탁필봉은 퇴적암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사람이 오를 수는 없다.

* 탁필봉(卓筆峯, 820m), 봉우리 전체가 돌로 이루어져 있다. 뾰족한 봉우리의 형상이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닮았다하여 옛날에는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주세붕이 '탁(卓)'자를 더하여 '탁필봉' 이라 개명했단다. 중국 여산(廬山)의 '탁필봉(卓筆峯)'을 모티브(motive)로 삼았음이니 이 또한 모화사상의 한 단면이 아닐까?

 

 

탁필봉

 

 

 

탁필봉 바로 옆에 위치한 문필봉에 올라선다. 10여명이 한꺼번에 쉴 수 있을 정도로 평평한 정상에서 올라서면, 지나온 방향의 바로 앞에 탁필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자소봉이 연이어 보인다. 서쪽으로 하늘다리가 보인다지만 녹음에 가린 탓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연적봉(硯滴峯, 850m), 탁필봉의 바로 옆에 탁필봉과 나란히 솟아 있다. 정상이 조금 평평한 것이 흡사 연적(硯滴; 벼루의 물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연적봉에서부터 능선은 다시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서면 안부 갈림길인 연적고개에 닿고, 다시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은 후 제법 길고도 경사가 심한 철제계단을 내려서면 뒷실고개이다. 정상인 장인봉으로 가려면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야하고, 왼편은 청량사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이 길은 체력이 달리는 사람들이, 자소봉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상인 장인봉으로 갈 경우에 이용하는 길이다. 뒷실고개 이정표(하늘다리 0.5km/청량사 0.8km/자소봉 0.7km)

 

 

뒷실고개에서 침목계단과 철제계단을 번갈아 오르면 자란봉이다. 자란봉 정상은 어디가 정상인지 구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밋밋하고 평범한 봉우리일 따름이다. 물론 정상 표지석도 찾아볼 수 없다. 조망도 없기 때문에 걸음을 멈추지 않고 하늘다리로 향한다.

* 자란봉(紫鸞峯, 796m), 선학봉(仙鶴峰)의 동쪽과 내산(內山) 경계에 위치하며 그 모양이 마치 신비로운 새가 춤을 추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자란봉의 봉우리를 넘자마자 허공에 걸린 구름다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쪽 자란봉과 반대편 선학봉의 이마 어림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다리’이다. 지상에서 70m의 높이에 아찔하게 걸린 다리이건만,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다. 아마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최신공법으로 지어졌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다리 한복판은 일부러 투명아크릴로 바닥을 만들었다고 해서 일부러 쭈그리고 앉아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러나 아크릴에 흠집이 생겼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나은 재료를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지난해 대학원 동기들끼리 중국 상하이에 들러, 492m 높이의 ‘국제 금융센터 빌딩’ 전망대(展望臺)에 올랐을 때, 지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투명아크릴 바닥 위에서 오금이 저려서 당황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어본다.

* 하늘다리, 선학봉(해발 826m)과 자란봉(해발 806m)을 잇는 해발 800m 지점에 놓여 진 이 현수교(懸垂橋, 길이 90m)는 국내 최장·최고를 자랑한다. 산악지대에 설치된 보도형 교량(橋梁) 중 가장 길고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하늘과 가장 가깝다 해서 ‘하늘다리’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 보면 문득 아이스크림 생각이 난다. 아마 아름다운 풍경이 달콤한 미각(味覺)을 불러일으켰나 보다.

 

 

 

 

선학봉도 자란봉과 마찬가지로 아무 특징도 없고, 당연히 정상표지석도 보이지 않는다. 선학봉에서 통나무계단을 따라 깊게 내려섰다가, 가파른 철제계단을 밟고 길게 올라서면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이다.

* 선학봉(仙鶴峰 821m), 장인봉의 동쪽에 있으며 외산삼봉(外山三峰)중에서 가운데 있는 돌봉우리로 옛날에 학(鶴)의 집이 있었다 하여 주세붕이 '선학(仙鶴)'이라 이름 지었단다.

 

 

 

장인봉 정상은 흙으로 이루어진 널따란 분지(盆地)이다. 한 가운데에 세워진 커다란 정상석의 글씨는 청량산과 인연이 깊은 '김생'의 친필을 모아서(集子) 새긴 것이란다. 정상에서 약 2분 정도를 더 나가면 벼랑위 전망대에 닿는다. 망원경까지 설치된 전망대에 서면, 남쪽의 기암봉과 괴석(怪石), 그 기암봉 사이사이로 펼쳐지는 무르익은 짙푸른 녹음, 산허리를 돌아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의 물결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조망의 즐거움과 희열, 그리고 의미까지도 다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아주 빼어난 조망지다. 고개를 들어보면 산 너머 산이 첩첩(疊疊)이 쌓여있고, 발아래에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절벽, 조망의 기쁨은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으로 늘어만 간다.

* 장인봉(丈人峯, 870.4m), 청량산의 가장 높은 주봉(主峰)으로서 옛날의 명칭은'대봉(大峰)'이었으나 주세붕이 '장인봉(丈人峯)'으로 개명하였다. '장인(丈人)'의 '장(丈)'은 대자(大字)의 뜻을 부연한 것으로써 멀리 중국 태산(泰山)의 장악(丈嶽; 큰산)을 빗댄 것이란다. 청량산을 가장 극찬했던 사람은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이다. 그는 ‘청량산록(淸凉山錄)’에서 인간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언어로 청량산을 표현했다. 『해동 여러 산 가운데 웅장하기는 두류산(지리산)이고, 청절하기는 금강산이며, 기이한 명승지는 박연폭포와 가야산이다. 그러나 단정하면서도 엄숙하고 밝으면서도 깨끗하며, 작기는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청량산이다.』 그러나 청량산 최고봉의 이름을 중국 태산의 장악을 본떠 ‘장인봉(丈人峯)’으로 개명한 것을 보면 주세붕은 도가 지나친 모화주의자(慕華主義者)였음이 틀림없다(최근 의상봉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표현대로 청량산은 범접하기 힘든 신비의 산이었다. 장인봉의 정상석 뒷면에는 주세붕의 싯구(詩句)가 음각되어 있었다.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햇빛은 머리위에 비추고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감회가 끝이 없구나. 다시 황학을 타고 신선에게로 가고 싶네』

 

 

 

장인봉에서 청량사로 내려서기 위해서는 뒷실고개까지 1.2km의 거리를 되돌아 나와야한다. 장인봉에서 내려서면 오른편으로 청량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만 이를 무시하면 된다. 뒷실고개에서 청량사까지는 0.6km로 30분이면 내려갈 수 있지만 급경사의 나무계단이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내려서기가 만만치 않다. ‘몇 개나 될까요? 헤아려 보셨수?’ 집사람에게 말을 건네 보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평소에 잘도 헤아리던 그녀도 너무나 길게 이어지는 계단에 헤아려볼 엄두를 내지 못했나보다.

 

 

 

나무계단이 넌더리가 날 즈음에 길은 수평으로 숲의 터널을 통과하게 되고 이내 청량사의 유리보전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청량사 경내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산행차림이 아닌 평상복 차림이 많이 보이는 것은 그만큼 청량사에 뭔가가 있음일터...

* 청량사(淸凉寺),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청량산 중턱의 아늑한 산세에 자리 잡고 있다. 청량사에는 유리보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7호)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이 지불(紙佛 :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이 유명한데 지금은 개금(금칠)을 해 놓았다. 유리보전이란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건물의 대들보 밑에 사이기둥을 세워 후불벽을 설치한 것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특징으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청량사는 ‘산사(山寺) 음악회’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 유리보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아담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편액 글씨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전해진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을 모시는 곳인데, 주불전(主佛殿)에서 약사여래불을 모시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일반적으로 주불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대웅보전),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적광전(비로전),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무량수전)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청량사 풍광의 백미(白眉)중 하나는 ‘5층 석탑’, 유리보전 앞에 서면 벼랑 끝에 세워진 석탑이 보인다. 석탑(石塔)은 마치 청량산의 열두 봉우리 사이에 둥둥 떠 있는 듯하다. 연꽃 형상을 이루는 이곳 청량산 12봉우리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청량사, 그중에서도 이 석탑이 자리한 위치가 연꽃의 수술에 해당하는 부분이란다. 이 탑은 영화 ‘워낭소리’의 오프닝 촬영지이기도 하다.

* 유리보전 우측 전방 5층석탑이 서 있는 연대 앞에는 삼각우송(三角牛松)이라는 노송(老松)이 운치 있게 세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오랜 옛날 한 농사꾼의 집에 등치는 낙타만하고 힘이 센 소가 태어났단다. 그 소가 일은 하지 않고 밥만 축내자, 농사꾼이 연대사(蓮臺寺, 후에 청량사)에 시주를 해 버렸나보다. 그런데 이 소가 절을 짓는 일에는 꾀도 안 부리고 열심히 일을 했고, 절을 다 짓고 나서는 곧바로 죽어버렸단다. 그 소(牛)가 죽은 자리에서 소의 뿔처럼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돋아났기에, 후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삼각우총(三角牛塚)이라 하고 그 소나무를 삼각우송(三角牛松)이라 하였단다.

 

 

경내를 둘러보다 범종각 앞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병을 가득 채운 후, 하산을 서두른다, 문득 절 입구에 들어앉은 안심당의 굴뚝이 눈에 띄기에 발걸음을 옮긴다. 굴뚝이 깜찍하다. 황토로 지어진 안심당은 절에서 만든 전통찻집인데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인다. 출입문 위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서각이 걸려 있었다. 차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찻집이다

 

 

산행날머리는 청량사 대형버스 주차장

청량사 경내를 빠져나와 가파른 경사(傾斜)의 찻길(車道)을 내려서면 얼마 안 있어 산행을 시작할 때, 들머리로 삼았던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 근처 계곡에서 탁족(濯足)을 즐기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오늘 산행이 마무리되는 대형버스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100m정도 아래에 음식점을 겸한 민박집이 있으니, 박주(薄酒)에 소찬(素餐)으로 요기를 달랠 수 있다.

 

소백산(1,439m)

 

산행일 : '06. 1.8

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의 경계

산행코스 ; 삼가리매표소-비로봉-천동 쉼터-천동매표소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대단한 산행이었습니다.

그 큰 관광버스에 12명이 승차했으니, 침대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고민이 많았을텐데 결단을 내려준 운영진께 감사드립니다.

간혹은... 이러한 무모하다면 무모한 결단도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번, 두번 계획된 산행이 취소되다보면 자칫 타성에 젖을 우려도 있으니까요.

 

새로나온 무경님과 스테파니아님 반가웠고요. 앞으로도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부산서 서울까지 찾아주신 피닉스님, 님의 열정과 사랑에 다시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선물해 주신 소주는 귀경길 찻속에서 감주로 변했고요, 종잣돈은 올 한해 부귀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에 도착해서 먹은 대구탕을 대접해 주신 낙성대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오랫만에 나오신 라기님과, 참가해 주신 다른 모든 님들 함께 해서 즐거웠고요.

다음번 정기산행에 한명씩 삐끼하기로 한 약속 잊지 않으실거죠? 

 

 

산과 하늘과 함께 소백산에 다녀왔습니다.
조이님과 함께가 아니라서 서운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교회를 빠뜨릴 수 없는 상황이라 참을 수 밖에요.
맑은 날씨에, 포근한 기온까지... 산행하기엔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단 하나 서운한 것은
45인승 관광버스에 고작 12명이 참가했으니 썰렁한 것이 좀...
다음 번에는 조금 나아지겠지, 위안을 삼을 밖에 없었습니다.

삼가리에서 비로봉을 거쳐 천동리로 내려오는 코스
인원이 적기에 오손도손,,,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앞에서 조금 톤만 높이면 뒤에 까지 들릴 수 있으니까요.

부산에서 피닉스님이 오셔서 좋았고, 오랫만에 보인 라기...
새로나온 무경은 프로 산악인 수준, 거기다 사진까지 잘 찍네요.
낙성대님을 따라나온 여자분, 스테파노라나요?
아마 부군의 영세명일 것입니다.
21세에 결혼, 대학 초년병때 낚였나봅니다.ㅎㅎㅎ
나이보다는 훨씬 어리게 보이는게, 좋은 부군을 두었나봅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낙성대님이 대구탕을 대접하는군요
오랫만에 시원한 국물로 산행을 마무리 지었답니다.

 

운영진중의 한사람인 연신내입니다.
연신내에서 살아서 그런 닉을 지었다나요? 요즘은 정사장이란 칭호로도 불린답니다. 본명이 정환득이니까요.
환득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열정과 투지가 넘치는가 봅니다.
우리회사에도 용환득이라는 사무관이 있는데, 산악스키 국가대표이거든요. 무지막지하게 고된 운동인 산악스키말입니다

산에 대한 열정과, 산과하늘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의리의 사나이...
산행때마다 맛있는 찌게거리로 우릴 즐겁게 해 준답니다.
요리 체인사업을 한다나요? 당연히 찌게맛도 일품이랍니다

 

제 뒤에 위에서 말한 하영씨의 힘든 모습이 보입니다.
은결이라는 닉도 좋은데... 본명도 불러달라는 군요

 

삼가리에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합니다.
간간히 쉬며, 춘삼월이 아니 미옥씨라고 불러줄까?
돌아오는 귀경길에 미옥씨라는 내 존칭에 녹아 과음을 했답니다.
미옥씨가 사온 계란, 하영씨가 저녁내내 까온 삶은 밤의 속살...
역시 먹거리가 있는 휴식은 즐겁기만 하답니다 

 

 

정상에서...
참가자가 적어서 한컷에 다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걸보고 새옹지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 옆에 큰 표지돌이 있었지만, 사진을 찍으려고 대기하고 있는 인파에 놀라 우린 적은 팻말 앞에서 찍을 수 밖에 없었답니다

 

 젊잖게 찍으려는데 솔피네가 또 촐삭을 떠는군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다들 즐거우면 그만인걸요
저 웃고 있는 사람들에게 올 한해 내내 웃고 지낼 수 있도록 복을 주소서!

 

부산서 올라오신 피닉스님입니다.
호텔업을 하신다는데, 서울의 산우들이 보고파서
천리길을 달려오시는 그 열정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챙겨오신 소주에 과자들... 이번엔 연초라고 세뱃돈까지 준비해 오셨네요.
오천원짜리 신권으로요.
그돈이 종잣돈이 되어 다들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새로나온 스테파노님입니다.
낭군의 영세명을 닉으로 사용하시는 걸 보니, 부부간 금슬이 아주 좋으신 모양입니다. 그럼 남편의 닉은 스테파니아???ㅎㅎㅎ
21살 대학 2학년때 결혼...이화여대는 결혼과 동시에 퇴교입니다.
사위를 두었다는데 아직도 사십대 초반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네요.

조금전에 카페에 가입하셨는데 스테파니아로...
역시 여성의 닉은 여성명사로 사용해야 이쁘답니다

 

관리사무소에서의 점심입니다.
라면을 끓여서 냠냠...산행에는 역시 라면이 최고랍니다.
넘치는 사람들의 물결속에서 겨우 엉덩이만 박고서도 잘만 들어갑니다

黃鶴山(915m), 白華山(1,064m)


산행코스 : 이화령 휴계소→조봉(671m)→황학산→바위지대→백화산→평전치→구룡산→다다리재→안말 (산행시간 : 5시간20분)


소재지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및 마성면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

산행일 : ‘10. 9. 25(토)

같이한 산악회 : 송백산악회


특색 : 황학산과 백화산은 백두대간에 놓여 있는 산으로서 대간을 답사할 목적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볼만한 특별히 뛰어난 경관은 보여주지 못하는 산들이다. 이화령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능선에 오르는 다리품을 적게 팔아도 되는 구간으로 대간꾼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구간중의 하나이다. 두 산을 오르내리며 느끼는 눈요기보다는 두 산을 잇는 능선을 걸으면서 바라보는 인근의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등의 멋진 모습을 바라보는 눈요기가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  산행들머리는 이화령고개

‘3번 國道’ 이화령 휴게소에 도착하면 고갯마루에 ‘백두대간 이화령’이라는 우람한 표지석이 威風堂堂하게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백두대간 조령산과 갈미봉 사이에 이곳 이화령이 위치하고 있다는 기록과 함께... 휴게소 광장에서 문경방면으로 약 50m 정도 내려오면 영남의 관문이 이화령이 경상북도 문경시에 위치하고 있다고 적힌 집체만한 돌비석이 서 있고, 등산로는 그보다 약간 더 내려가서 오른편 사면으로 열린다. * 이화령은 원래 작은 고갯길로 1925년 일제 때 신작로가 되면서 중부와 영남을 잇는 길잡이 역할을 해 왔는데, 조선시대에는 조령이라고 했고, 근래에 이화령으로 바뀌었다 한다. 

 

 

 

 

 

▼  들머리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다가 ‘이화령초소’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접어들면, 등산로는 능선 안부를 향해 山斜面을 가로지르며 이어진다. 이윽고 도달한 산등성이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헬기장이 보이고, 이곳에서부터 조봉까지는 高低가 거의 없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걷게 된다.

 

 

 

 

▼  조봉은 아무리 봐도 봉우리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저 高低가 밋밋한 능선의 한 부분으로 등산로 한쪽 귀퉁이에 세워져있는 자그마한 정상 표지석이 없었더라면 아무도 봉우리라고 알아채지 못할 듯 싶다. 정상석 뒷면에는 ‘2007년 11월 4일 문경산들 모임 산꾼들, 구슬땀 목도로 세우다’ 라고 적혀있다.

 

 

 

 

 

▼  ‘백두산에만 천지가 있는 게 아니고, 이곳 황학산에도 있답니다.’ 700고지가 넘는 능선에 습지도 아닌 연못이라니... 연못의 한 중앙에는 자그마한 섬까지 설계된 情景은 사뭇 驚異 그 자체다.

 

▼  집사람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한가로이 걷고 있는데, 왼편 숲 사이로 등산객 몇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호기심에 올라보니 이름 없는 전망대, 이물질 하나 보이지 않는 가을의 창공에 주흘산과 부봉이 청명하게 떠오르고 있다. 이렇게 뛰어난 조망처를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번했다.

 

 

 

 

▼  조봉에서 억새밭 및 일본이깔나무 숲 지역을 약 40분 정도를 걸으면 흰드뫼삼거리이다. 등산로는 한적하고 평화스러운 것이 꼭 동네 뒷산의 산책로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분지리 안말부락이 나온다. 왼편은 표기는 안되어있지만 문경읍 각서리로 내려서는 길이 분명할 것이다. 이 지점은 안말부락에서 이곳을 거쳐 황학산과 백화산으로 오르는 일반적인 코스이다.

 

 

▼  황학산 정상은 서너평 남짓한 분지에 조그마한 정상표지석이 서있다. 황학산도 역시 봉우리로 봐주기에는 뭔가 부족한 인상, 그나마 이곳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있기 때문에, 아까 지나왔던 조봉보다는 봉우리 같은 느낌을 준다. 정상에는 조봉의 정상석을 세웠던 ‘문경산들 모임, 산꾼들’에서 같은 날에 건립한 정상석이 보인다. 나무들 때문에 조망은 열리지 않으나, 유일하게 진행해야할 방향으로 백화산이 뚜렷하게 바라보인다.

 

▼  황학산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등산로가 왼편으로 급회전을 하면서 바위벼랑이 나타난다. 그리 높지도 않은데다 굵은 밧줄까지 매달려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을 정도... 밧줄을 잡고 내린 후, 바위 밑을 돌아, 또 다시 밧줄을 타고 능선에 오르면, 왼편으로 시원스레 조망이 열리면서, 저 멀리 高山들의 능선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형상으로 다가온다.

 

 

▼  바위지대에서 백화산까지는 너덜지대, 작은바위는 넘고, 큰바위는 우회하면서 진행하다보면 어느덧 백화산 정상이 저만치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아무리 高低가 없는 능선이지만 그래도 등산로는 작은 고갯마루를 따라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면 이어지는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던 다리품은 걷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느새 콧노래 대신 더딘 숨소리로 바뀌어버렸다.

 

 

 

▼  백화산 정상도 서너평 남짓한 분지에, 앙증맞을 정도로 자그마한 정상표지석과 안내판 두 개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남쪽을 제외한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망은 별로, 다만 남쪽 방향의 바위 위로 올라서면 문경시 방향의 산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화산에서 내려서서 조금 걷다보면 전면에 허공에 걸린 듯 떠있는 암봉이 보인다. 뒤로 돌아 정상에 올라서면 世上萬物이 내 발아래 다 놓여있다. 지나온 백화산 능선 뒤로 조령산과 부봉을 낀 주흘산이 보이고, 반대편엔 희양산과 이만봉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가을은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등산로 주변 바닥에 부추처럼 생긴 기다란 풀이 잔디를 깔아놓은 것처럼 덮여있는데. 언제부터인지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머리 위의 참나무 잎은 아직도 검푸름을 자랑하고 있는데...

 

  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돌너덜길이 장난이 아니므로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걸으면 평전치 안부 삼거리이다.

 

 

 

 

 

  평전치삼거리에서 오른편 방향으로 내려서면 분지리 안말부락인데 60분이 소요된다고 적혀있다. 행정기관에서 세워 놓은 이정표보다는 나무줄기에 매어 놓은 어느 등산객의 안내도가 더 신뢰할 수 있음은 산에서 어느 정도 이골이 난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평전치에서 사다리재까지는 여느 등산로와 다를 게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산길이 1시간 정도 지루하게 이어진다. 조망도 없이 겨우 나뭇가지들 사이로 주변의 산들이 언뜻언뜻 보일 따름이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類 일색, 소나무는 어쩌나 한 그루씩 보일 정도이고, 굴참나무와 도토리나무가 대부분이다. 이런 숲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람쥐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길가 참나무 가지에 그 흔한 도토리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체력이 안되는 사람들이 하산지점으로 즐겨 이용하는 사다리재 삼거리,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분지리 안말부락이다. 내려서는 길은 초반부터 경사가 심한 너덜길, 원시림 터널 아래로 흐르는 너덜길은, 바닥의 바위들이 온통 습기에 젖어있어, 많이 미끄럽기 때문에 걷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 사다리재는 문경의 가은읍 원북리마을에서 괴산군 연풍면 분지마을을 오가던 고개로서, 이곳에 고사리가 많다하여 ‘고사리밭등’이라고 불리었다. 따라서 고개이름을 고사리밭등이라고 고쳐 부르는 게 맞을 듯 싶다.

 

 

  너덜길이 끝날즈음에 만나는 무덤, 무덤은 인가에서 멀지 않다는 통념으로 산행이 마감되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급경사 내리막길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다만, 돌길이 흙길로 바뀌었을따름...  ‘너덜길에서 고생했다고 이렇게 편한 길을 선물하나 봐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일본이깔나무 잎이 수북이 쌓인 등산로는 그야말로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폭신하기 그지없다.

 

 

 

 

  산행날머리는 연풍면 분지리 안말부락

곱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정도로 걷기에 편한 등산로를 따라 내려서면, 어느덧 물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곧 이어 조그마한 냇가를 만나게 된다. 산행중에 흘린 땀을 씻고 개울 둑을 따라 내려서면 안말부락, 주차장 가장자리, 조금전 내려섰던 방향으로 등산안내판이 서 있다

 

연점산(鉛店山, 868m)-천지갑산(天地甲山, 462m)

 

산행코스 : 명곡부락 버스정류장→계곡→연점산 8부 능선→716봉(연석봉)→천지갑산(4봉~1봉)→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30분)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과 청송군 안덕면의 경계

산행일 : 2010. 7. 31(토)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天地間의 山중에서, 十干(天干이라고도 부르며 甲,乙,丙,丁...壬,癸를 말한다)의 우두머리인 甲에 해당하는 산이니, 대단한 山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봄은 어쩌면 當然之事, 그러나 막상 내가 찾아온 천지갑산은 그런 내 기대를 채우기에는 뭔가 부족한 산이었다. 그저 우리 주위에서 가끔 볼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갖춘 바위산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부족한 2%는 안동지역의 넉넉한 인심으로 충분히 채우고도 남았다. 폭염속의 산행으로 인해 몸속의 수분을 다 빼앗겨버린 후, 갈증에 허덕이며 도착한 공원(하산지점)에서 건네주던 시원한 생맥주 한잔은 그야말로 감로주였다. 다시한번 안동산악연맹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  산행들머리는 길안면 명곡부락의 버스정류장

안동시내에서 길안천을 따라 이어지는 35번 국도를 타고 영천방면으로 달리다가 천지갑산의 들머리인 송사리를 지나서, 조금 더 달리다보면 왼편으로 명곡부락이 보인다.

오늘의 불행한 산행은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뭔가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쉽게 도착할 수 있는데도, 주차장이 되어버린 영동고속도로를 피하다보니, 우린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상주시에서 의성군과 청송군을 통과해서 안동시로 들어가는 엄청나게 먼 거리를 우회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 산악회의 봉고차량의 고장 등, 자질구레한 사고까지 겹쳐 산행들머리에 도착할 때는 오후 한시가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이었다. 늦게 도착해서 마음이 급했던 때문이었을까? 산행들머리로 예정했던 설록펜션산장을 지나쳐버리고, 별수 없이 우린 명곡부락 앞을 산행 들머리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  옛말에 ‘늦을수록 천천히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원래 우리가 가고자 했던 연점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명곡부락에서 오른편으로 올라가야하건만 우린 왼편으로 진행, 연점산은 오르지도 못하고 결코 길이랄 수 없는, 길 위에서 목 놓아 울고 싶었던 오늘의 고달픈 산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풋사과가 대롱거리는 과수원 사잇길로 접어들면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옆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20분정도 걷다보면 마중 나오는 비포장 임도... 즐기는 산행은 여기에서 끝내야만 한다. 곧이어 이가 갈리게 만드는 산행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  산딸기넝쿨의 가시에 찔리면서 ‘씨~~“ 소리 두어 번 내뱉으면 계곡, 그나마 여기까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곡이 희미해지면서 만나게 되는 너덜지대는 그야말로 生地獄이다. 경사가 심한 너덜지대는 작은 돌맹이, 조금만 잘못 디뎌도 돌맹이들이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뒤에서 오르는 사람들에게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앞사람과 간격을 벌리세요!‘ ’돌맹이 구르니 조심하세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산행이 되어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고생한 산행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난 이런 산행은 결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  ‘길 아닌 길 위에서 울다‘ 지금 내 심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길이 아니니 당연히 잡목을 헤치고 나갈 수 밖에 없는데, 주변은 온통 산딸기넝쿨과 가시가 무성히 돋아있는 굵은 두릅나무 천지다. 몸은 긁혀 따끔거렸고 얼굴은 거미줄로 뒤덮였다. 거기다 소름끼치는 옻나무가 드문드문 보이기까지... 머리염색을 못할 정도로 옻에 약한 난 더욱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산행을 하고 있다.  

 

 

▼  결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길 아닌 길, 거기다 경사까지 심해서 허리를 펼 수도 없을 정도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나무 등걸을 부여잡으며 한시간 정도 안간힘을 쓰면 능선에 있는 제대로 된 등산로를 만나게 된다.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봉우리 하나가 언뜻 보이는데, 어느 봉우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눈짐작만으로 산지봉으로 결정을 내려버리고, 왼편으로 내려선다 

 

 

 

▼  왼편 안부에 세워져 이정표, 앗불싸! 아까 언뜻 보았던 봉우리가 연점산이란다. 여기서 연점산 정상까지는 1.4Km, 아까 만났던 지점에서는 700~800m만 더 걸었으면 정상이었을텐데... 한참을 망설인 끝에, 다시 돌아서서 연점산으로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천지갑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안부에서 천지갑산으로 가는 길은 기분 좋은 오솔길이다. 잠깐 급경사 오르막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휘파람이 나올 정도의 걷기 좋은 오솔길은 719봉(연석봉)까지 이어진다. 719봉 정상은 두어평 되는 공터에 이정표가 하나, 그리고 허리 높이의 돌 무더기가 빈 자리를 지키고 있다. 

 

 

 

 

 

 

▼  719m봉 이후로는 그간의 참나무 일색이던 등산로 주변이 짙푸른 송림들이 섞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백년은 넉넉히 되었음직한... 급작스레 뚝 떨어지는 급경사 날등에서는 언듯언듯 나뭇가지 사이로 길안천과 송계천 건너편의 금학산이 보이고...    

 

 

 

 

 

▼  천지갑산 정상은 20평은 족히 됨직한 널따란 공터, 정상표지석과 여기가 4봉임을 알리는 이정표, 그리고 나무벤치 4개를 설치해서 등산객들에게 쉼터를 만들어 주고 있다. 쉼터의 반대편에는 납작한 봉분 한 기가 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서 하산길은 날등길로 내려설 수도 있지만, 오른편 ‘하산길’의 안내문을 따라야 천지갑산의 비경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 천지갑산은 조선조 철종 때 武科에 급제한 金仲鎭선생이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마을에서 보면 산의 형태가 옛날 양반들이 정자관을 쓰고 서 있는 모습과 닮았다’해서 관악봉이라 부른단다. >

 

 

 

 

▼  밧줄에 의지해서 정상을 내려서면 5봉, 등산로에 빗겨나 있다고 그냥 지나치면 안될 일이다. 5봉의 끄트머리 전망대에 서면 水太極을 이루고 있는 길안천과 한반도의 지형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  천지갑산은 해발 462m에 불과한 야산이다. 그럼에도 산중에 제일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 어쩌면 老松과 어우러진 奇巖絶壁, 그 위에서 바라보는 8자 모양으로 돌아나가는, 水太極의 風光이 가히 압권이기 때문일 듯 싶다. 

 

 

▼  다시 밧줄에 의지하다보면 6봉, 이곳도 그냥 지나치기 보다는 절벽 쪽으로 더 나아가봐야 될 일이다. 약간의 두려움을 떨치면 더 좋은 경관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  6봉에서부터 등산로는 경사도를 더 심하게 만든다. 天涯絶壁으로 형성된 6봉, 5봉 아래로 난 난간위에서 바라보는 왼편 조망은 오늘 산행의 백미... 건너편 금학산이야 차지하고라도 발아래 펼쳐지는 한반도 지형과 水太極은 어디서도 쉽게 대할 수 없는 경관이니까...   

 

 

 

 

 

▼  5봉과 6봉을 거쳐 내려가는 등산로 주변은, 엄청나게 굵은 소나무들이 즐비하고 솟아오른 바위봉우리가 수려하다. 5봉을 지나고 6봉에서 내려서면 太極모양으로 돌아가는 길안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저렇게 그 스스로 모습을 인간에게 내보여주고 있다.

 

 

▼  모전탑, 5봉과 6봉을 거쳐 절벽틈새의 로프를 잡고 내려서면, 자연 巖盤 위에 축조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인 ‘안동 대사동 모전석탑’을 만날 수 있다. 편마암으로 축조된 모전석탑은 탑의 기단과 탑신의 일부만 남아 있을 뿐 윗부분은 허물어지고 없다. < 모전탑은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판석형상을 띤 돌을 적당히 다듬어 사용하였고, 단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뿐더러 투박한 느낌이다. 탑 아래로 제법 널찍한 터는 절집이 있었다는 증거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이 절은 빈대를 잡으려던 스님의 실수로 불에 절이 타버리자 스님들은 인근 용담사와 불국사로 떠났다는 전설만이 남아 있다.>  

 

 

 

▼  석탑 주위는 억새와 칡넝쿨로 뒤엉켜 길을 찾기가 힘들 정도, 석탑을 지나서 내려가는 길 주변의 거대한 바위절벽은 온통 굵은 담쟁이 넝쿨들로 뒤덮여 있다. 가을쯤에 다시한번 이곳을 찾아볼 수 있다면, 붉게 물들어가는 담쟁이와 어우러진 또 하나의 절경을 맛볼 수 있을 듯 싶다.

 

 

▼  가파르게 내려가는 하산 길은 미끄럽다. 그러나 굵은 동아줄을 매어놓아서 결코 위험하지는 않을 정도... 비탈의 끝에서 만나는 길안천을 따라서 철제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절벽과 강의 경계를 따라 이어진 小路에서 보는 강에는 푸른 하늘이 비치고 있고, 그 강물 위는 어린이들의 내뿜는 열기로 뒤덮여 있다. 그 너머에 한반도의 지형이 보이지만 여기서는 그저 밋밋한 분지로 보일 따름이다. 

 

▼  ‘산이 높으면 당연히 골은 깊어진다.’이라는 先人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송계천의 물은 깊고 푸르렀다. 하긴, 연점산과 금학산이라는 原始의 산을 左右에 끼고 있는 골짜기이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  정자를 벗어나면서 천지갑산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정자 옆 길안천변에 서서 뒤돌아본 천지갑산은, 언젠가 중국에서 바라봤던 경관을 떠올리게 만든다. 깎아지른 절벽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 그리고 그 밑을 휘돌아 감는 강물, 한 폭의 동양화를 가만히 가슴에 담아본다. ‘山勢가 천지간에 으뜸’이라는 뜻의 천지갑산은 정상을 이루고 있는 봉우리들마다 기암절벽 위에 老松이 울창하며, 특히 산자락을 휘감아 太極形을 만들며 흐르는 길안천은 시선을 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천혜의 눈요깃감을 선사해 주고 있다.

 

 

▼  산행 날머리는 송사마을 주차장, 주차장이라기 보다는 운동기구, 파고라, 팔각정 등으로 단장된 테마공원이라고 불러야 더 어울릴 정도로 잘 가꾸어져있다. 오늘은 안동지역의 산악회들의 축제가 있는 날인지 이곳저곳에 천막들이 둘러져 있고,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역에서의 5시간 가까운 산행, 갈증에 목말라 하던 나에게 건네주는 생맥주 한 잔은 곧 감로수였다. 한잔을 더 청해 마신 후에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

 

 

학가산 ((鶴駕山, 882m)


산행코스 : 광흥사입구→복지봉(523m)→당재→상사바위→예천군 정상(870m)→국사봉(정상)→동학가산성→마당바위→천주마을(산행시간 : 4시간)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북후면과 예천군 보문면의 경계

산행일 : ‘10. 7. 3 (토)

같이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산세가 사람이 학을 타고 노니는 모양이어서 학가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산은 북쪽으로 영주, 서쪽으로 예천, 남동쪽으로 안동이 똑같이 15km 거리에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 이름도 다양하다. 영주에서는 정상이 평평하여 선비봉이라 하고, 안동에서는 울퉁불퉁하다고 문둥이봉, 예천에서는 모습이 수려하다고 인물봉이라고도 부른다. 이산의 특이한  점은 정상이 두개라는 점이다. 예천군에 세워놓은 정상석은 어풍대 위에, 그리고 안동시에서는 능인굴 바위 정상에 세워 놓았다. 아무리 이 지방 사람들이 고집이 세다지만 이건 아니다. 하나의 산에 정상이 두개가 있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  산행들머리는 광흥사 입구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 I.C를 나와 34번 국도를 타고 예천읍을 지나면 안동시에 접어들게 된다. 풍산읍 상리리의 상리교를 지나서 좌회전, 천주마을 방향으로 들어가다가 광흥사 입구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하차한다. 이곳에서 광흥사까지는 승용차 통행은 가능하다. 광흥사 입구임을 알리는 標識石 뒤로 난 시멘트도로를 따라 5분정도 걸으면, 왼편으로 복지봉(2.3Km)으로 가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광흥사 방향으로 걷다보면 광흥사 일주문과 그 뒤로 樹齡 4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를 만나게 된다. 조금 더 진행하면 왼편으로 연꽃이 곱게 핀 연못이 보인다. 연신 연꽃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여인의 자태가, 자못 연꽃을 닮아가는 것은 나만의 錯視현상일까? 

 

 

 

 

 

▼  본격적인 등산은 광흥사가 바라보이는 입구에서 왼편 산자락을 따라 진행된다. 경사가 완만한 등산로의 주변은 참나무群落地, 간간히 소나무들이 섞여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등산로는 능선 안부에 다다르자마자 급한 오르막으로 변해버린다. 어느새 등산로 주변은 별로 키가 크지 않은 소나무들로 바뀌어져 버렸다.

< 광흥사 >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한 자료는 없다. 한때 안동지역에서 제일 큰 사찰이었다고하나. 1946년 화재로 인해 대웅전을 燒失하였고, 또한 사세가 기울면서 극락전과 학서루 등 사찰건물들이 허물어져 없어지는 등, 전반적으로 쇠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유문화재로는 ‘취지금니묘법연화경(보물 제314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보물 제315호)'이 있었으나, 현재는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  복지봉 정상은 널따란 공터, 중앙에 묘지 비슷한 봉분이 보이나 허물어져 그 형태를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학가산 방향에 산행안내도와 그 반대편, 올라왔던 길가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  복지봉에서 당재로 가기위해 내려서는 길은 심한 급경사, 그 끄트머리에 이정표가 세워져있는 고개(핀데기골?)가 있으나, 지도에 표기된 당재는 1Km이상을 더 걸어야 나온다. 고개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편은 완전한 농경지, 산 허리를 가로지르면 왼편에 농가와 과수원이 보인다. 폐목으로 방치되고 있는 과수원의 끝을 당재의 임도가 맞대고 있다.   

 

 

 

 

 

▼  당재. 

당재를 향해 걷다보면 학가산의 전모가 정면으로 펼쳐져 보일 듯 싶다.(오늘은 구름에 가려 아랫도리만 겨우 보이지만...).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인 당재의 고갯마루는 적송 몇 그루가 차지하고 있고, 적송 곁에 이정표가 서있다.(좌측은 느리티리, 우측은 천주마을, 학가산은 곧바로 진행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학가산을 오를 때는 이곳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데, 오늘 우리는 짧은 산행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 복지봉을 서비스로 오른 셈이다  

 

 

 

 

▼  상사바위

까마득한 암벽 밑을 지나 바위벼랑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왼편이 상사바위이다. 상사바위의 벼랑 위는 못생긴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어디다 특별히 내세울만한 경치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바위벼랑 위에 올라서면, 전방이 시원스레 트여있어 조망이 좋을 것 같은데, 오늘은 구름이 짙게 끼어있어 이마저 시원치 않다.  

 

 

▼  당재에서 학가산을 오르려면 1km 약간 넘는 거리에서 무려 300m 이상의 고도차를 극복해야만 한다. 무지막지한 급오름이 시작되는데, 그나마 등산로가 넓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따름이다. 상사바위와 남영사지 이정표가 나타나는 어림의 완만한 오름길도 잠깐, 커다란 무덤이 있는 곳부터는, 거의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심한 급경사 오름길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던 등산로는 다시 한번 남영사지 이정표를 만나면서부터 급 오름의 끄트머리를 만나게 해준다.  

 

 

 

 

▼  학가산 정상을 향해 한참을 오르다보면 산 밑에서는 안보이던 엄청난 바위가 곳곳에서 소나무와 조화를 이뤄 기다린다. 기단 위로 돌을 쌓은 작은 돌탑을 지나면 서학가산성이다.

  

 

▼  남영사지 갈림길에서 조금 더 걸으면 ‘학가산 3거리’, 오른편으로 마룻금을 살짝 벗어난 지점에 있는 학가산 정상에 들러 쓴웃음을 지어본다. 사실 이곳은 학가산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예천군에서 자기지역의 봉우리에 정상석을 세워놓았을 따름... 학가산이라는 빼어난 산을 다른 지자체에 양보하기 싫은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정상도 아닌 곳에 정상표지석을 세워놓은 행위는 지탄받아야하지 않을까?

 

 

▼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를 비켜나 오른편에 밧줄이 하나 매어져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올라서니 지도에도 없는 전망대, 발아래 천주마을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  전망대를 내려와 바윗등을 조금 걸은 후, 철계단의 난간을 잡고 오르면 학가산 정상(국사봉)이다. 학가산 정상은 바위봉으로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비집고 앉으면 20~30명 정도는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위쪽의 바위 위에 잘생긴 정상석이 자리 잡고 있다. 정상에서 보면 KBS, MBC, KT의 중계탑들이 구름 속에서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곳은 예천의 학가산에 비해 조망이 훨씬 뛰어났다.  

 

 

  

▼  정상의 능선에 올라서면 학가산은 완전히 다른 산이 되어버린다. 보드라운 흙길이 많았던 등산로 주변은 이번엔 기암괴석 전시장으로 변해버린다. 늘 그렇듯 소나무가 걸려있는 기암괴석은 시선을 한동안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  정상에서 내려와 조금 더 걷다가, 오른편에 메어진 밧줄을 잡고 오르면 유선봉이다. 만일 유선봉을 오르려면 아래쪽에 설치되어있는 안내판의 글을 읽지 말고 오르라고 권하고 싶다. 조선조 이황선생의 제자였던 송암 권호문선생이 이 봉우리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이름을 지었다고 하지만 아무리봐도 그런 느낌을 접할 수 없으니말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다. 그 곁에 있는 ‘삼모봉’ 또한 볼품없기는 매한가지...  

 

 

 

 

 

 

▼  삼모봉을 좌측에 끼고 한국통신의 철망을 따라 내려서면 등산로는 갑자기 급경사 내리막길로 변한다. 철계단과 안전로프에 의지해서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동학가산성터가 보인다.   

 

 

 

 

▼  동학가산성터

학가산은 곳곳에 성터가 남아있다.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2차 침입으로 공민왕이 안동에 몽진을 왔을 때, 쌓은 성이 학가산성이라고 알려져 있다. 장군의 지휘소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사봉을 둘러싸고 있었을 학가산성은 한마디로 난공불락의 요새였을 것이다.  

 

 

 

▼  下山 길은 동학가산성을 지나 신선바위를 지나가는 길과 우회로로 나누어진다. 전문가가 아니면 우회하라는 경고문이 아니더라도 오늘같이 바위가 젖어있는 날에는 바윗길은 금물이니 당연히 우회를 따라 진행한다. 우회로도 무지막지한 급경사 내리막길의 연속, 그 끄트머리에 ‘네파 안동점’에서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약수터가 있다. 한여름 등산화 속이 질퍽거릴 정도로 흘린 땀의 수분도 보충할 겸 두 바가지의 물을 쉬지도 않고 마셔버린다 

 

 

 

▼  약수터에서부터 이어지는 등산로는 그야말로 양탄자길, 푹신푹신 하기가 그지없다. 등산로에 소복하게 싸인 낙엽을 보며, 이런 낙엽을 긁어내야만 밥도 해먹고, 아랫목에 군불을 지필 수 있었던 옛 시절이 떠오름은, 난 농군의 자식은 아니었을망정 시골에서 나고 잠시나마 시골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것이다.  

 

 

▼  기암괴석위에 분재처럼 꼬부라지게 자란 老松들을 뒤로하고, 등산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원시림을 따라 걷다보면 좌우엔 집채만한 바위들... 조금 더 내려가면 좌측에 30명이 앉아도 충분할 듯한 반석이 보인다. 마당바위란다.  

 

 

▼  날머리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천주마을 입구.

좌우로 묘들이 심심치 않게 늘어서 있는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굵직하면서도 늘씬하게 자란 산죽 숲이 보이고, 곧이어 만나게 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만 더 내려오면 시내버스 종점, '천주마을‘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다. 마을 쪽으로 하늘을 향해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 10여 그루가 의연함을 자랑하고 있다. (* 천주마을은 ’하늘거미‘라는 뜻이다. 복지봉과 학가산에 거미줄을 치면 중앙에 마을이 된다는 전설을 간직한 마을이란다)  

 

남산 금오봉(468m)


산행코스 : 삼릉주차장→상선암→능선 안부→남산(금오봉)→약수골→경주교도소 뒤 철조망→금오사 입구 도로(산행시간 : 2시간)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산행일 : ‘10. 6. 12 (토)

같이한 산악회 :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임직원


특색 : 산은 500m에 미치지 못하는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큰 봉우리가 세 개로 이루어져 있고, 가파른 비탈과 험한 바위벼랑, 그리고 험한 바위능선도 있어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니다. 산행은 2시간에서 5시간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다. 나지막한 산이라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고, 등산로 주위에 불교 유적들이 널려있어 볼거리가 많으므로, 어린이들과 함께 찾는다면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산이다.

 

 

▼  산행들머리는 삼릉주차장

경주 I.C를 나와 서라벌대로를 따르다가 35번 국도 언양방면으로 우회전, 오래지 않아 포석정 이정표가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하면 왼편에 삼릉주차장(대형차량 주차비는 4천원)이 보인다. 산행은 35번 국도(舊道路)를 건너 멋스런 소나무들이 촘촘하게 늘어선 소나무 숲 사이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2.6Km, 오른편에는 커다란 산행안내판이 서있다.  

 

 

▼  경주평야는 狼山과 明活山 등 많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중에 제일 크고 높은 산이 남산이다. 남산에는 高位峰(494m)과 金鰲峰(468m), 두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이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계곡과 능선들을 합쳐서 경주 남산이라 부른다. 남산은 불교의 寶庫로서, 현재까지 발견된 절터만 112곳이며, 탑은 61기이고, 불상은 80체를 헤아린단다.  

 

 

▼  등산로 따라 조금 걷다보면 오른편으로 삼릉(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덕왕의 능)이 보인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등산로는 냉골을 좌우에 번갈아 끼면서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에는 머리를 잃어버린 석불좌상 등 석불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이정표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해설에 열을 올리고 있는 ‘문화재 해설가’들의 모습도 보이고...  

 

 

▼  남산에는 마애불이 많다. 마애불상은 우리 조상들이 불교수입 이전부터 믿어온 암석신앙에, 신라시절 공인된 불교의 靈驗이 접목되었다고 보는 게 옳을 듯 싶다. 佛像이 있으면 그 앞을 예외 없이 촛불상자가 지키고 있고, 근처에 세워져 있는 빗자루 덕분일까? 불상 주변은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다. 불상 앞에 놓인 저 복전함의 돈은 과연 누가 가져갈까? 오늘의 숙제다...  

 

 

▼  냉골의 대부분은 거의 물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건천이다.  얼핏 이러한 냇가의 모습은 경주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경주는 地名 중에 乾川이라는 곳이 있을 정도로, 냇물이 지하로 흐르는 곳이 많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가깝게는 우리 공단의 환경관리센터 옆으로 흐르는 대정천도 이런 乾川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  골짜기 주위의 아름다운 소나무들과 계곡을 둘러싼 화강암 바위들, 만일 그 위에 玉水까지 흐른다면 그야말로 佳境이 될 터인데... 계곡을 따라 오르는 등산로 주변의 石佛들 가까이에 다가서면 그윽한 향 내음이 코끝을 간질여준다. 나무아미타불...   

 

 

▼  상선암

산행을 시작해서 1.6Km, 약 30분쯤 걸으면 허름하고 조그만 암자에 도착한다. 좋은 산, 부처님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에 위치한 암자이니 이곳에서 모시는 부처님은 틀림없이 영험할 것이고, 당연히 이곳 山寺를 찾는 이들에게 많은 福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러나 내 순진한 생각은 금방 실망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화장실이 급해 동동거리는 나에게 1Km를 더 올라가면 정상에 화장실이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라는 매몰찬 답변... 모름지기 佛敎 제일의 理念은 慈悲가 아니었던가? 이런 분들이 모시는 부처님은 틀림없이 ‘돌아가신지 오래’였을 것이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Km가 남았다.

 

 

 

 

▼  상선암에서 10m를 더 오르면 왼편에 ‘삼릉계곡 마애여래좌상’, 승복을 입은 불자들 몇이 열심히 절을 하고 있다. 뒤에 앉은 이는 목탁을 두드리는데 온통 정신을 쏟고 있고...  

 

  

 

 

▼  포석정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안부삼거리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멋진 전망대와 암릉을 갖추고 있다. 곳곳에 널린 바위들의 돌출된 형상을 보면,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거려지게 된다. 석불이나 마애불 등 부조들을 새기기에 딱 좋은 모습으로 생겼으니 말이다.  능선에서 정상까지는 0.8Km가 남았다.

 

 

 

  

 

▼  등산로 주변은 온통 소나무, 아니 산 전체가 솔숲으로 이루어졌다. 예부터 소나무가 이렇게 많았고, 거기에다 굵기까지 하였다면 서라벌의 궁성과 사찰, 민가에서 사용했던 목재들은 구태여 멀리 찾아 나설 필요도 없었을 듯...  

 

 

▼  남산은 그 계곡과 능선에 아름다운 조각들이 없었더라도 평범한 야산은 아니다. 군데군데 멋진 바위들, 깎아지른 단애들이 있고 계곡은 비록 물이 적었지만 깊었다.  

 

 

 

▼  금오산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은 일부 구간이 암릉, 오른편으로 높은 단애를 이루고 있어 전망이 좋다. 금오산에서 뻗어내리는 곁가지 능선들과 그 사이 냉골이 발아래 펼쳐진다. 그 끄트머리에는 경주의 뜰이 널따랗게 펼쳐지고... 

 

 

▼  금오봉 정상은 제법 널따란 분지, 올라오는 반대편에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이정표가 찾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빼 놓지 않는 것 중의 하나는 증명사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 금오봉은 금자라가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편하게 앉아 있는 형상이어서 그리 불리었다한다. 하나 삼국유사에는 남산으로 나와 있고 지금은 금오봉은 남산의 큰 축을 이루는 봉우리로 되어 있다. 표지석 뒷면의 싯귀를 옮겨본다. “높고도 신령스런 금오산이여! 천년왕도 웅혼한 광채 품고 있구나. 주인 기다리며 보낸 세월 다시 천년 되었으니 오늘 누가 있어 이 기운 받으련가 >  

 

 

▼  정상에 올라가면 동으로 멀리 높다란 토함산이 길게 누워있고 북동쪽 산자락 끝에서는 경주시가지도 보인다. 이정도 위리라면 주중이나 주말을 가릴 것 없이 경주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을 듯, 아니나 다를까 산행 내내 많은 경주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  하산은 올라왔던 반대편 등산로를 따라 약수골로 결정, 왼편 저만치에 경주 남산의 제일봉인 고위봉이 우뚝 서있다.  

 

 

 

▼  내려서는 등산로는 아마추어에게는 조심스러운 코스, 경사도 심하지만 바위 위를 덮고 있는 흙이 여간 미끄럽지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괴성~~ 엉덩이가 하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엉덩방아를 찧었나보다.  

 

 

▼  약수골도 건천이긴 마찬가지, 그나마 이곳은 간간히 물기가 보이기는 하지만 손 씻을 양도 되지 않을 정도다. 등산로는 계곡을 끼고 이어지다가 경주교도소 뒤 철조망을 만나면서, 오른편으로 진행된다.  

 

  

 

 

 

▼  산행 날머리는 금오사 입구

경주교도소의 뒷 철망이 끝나고, 잘빠진 대나무들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는 공터 끝에 금오사에서 나오는 길과 만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잡고 얼마 안 걸으면 35번 국도가 나온다.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했던 삼릉주차장까지는 걸어서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