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중국 태항산 여행

 

여행일 : ‘18. 10. 8() - 10.12()

일 정 : 석가장(8)휘현 천계산·왕망령·만선산(9)임주 태항산대협곡(10)임주 팔천협(11)안양 문자박물관(11)석가장 조운묘(12)

 

여행 둘째 날 : 왕망령(王莽嶺)

 

특징 : 중국국가지질국에 의해 중국의 가장 아름다운 협곡 중 하나로 선정된 왕망령(王莽嶺)은 하남성과 산서성(晋城市 陵川县)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풍경구로, 해발 800m~1,665m 사이의 웅장하고 기이한 50여 봉우리들이 한데 집중되어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중국의 명산들이 갖고 있는 풍경들을 두루 함축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산정에는 4,335m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탐방로를 걷다보면 신귀봉과 선타봉, 방지애, 석고천서, 유수조, 한무석림, 소태항, 금대, 한류, 팔선봉 등 10개 관광지를 만나볼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왕망령은 태항산맥에서 으뜸으로 꼽힐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수백m에 달하는 수직절벽과 굽이굽이 늘어선 기이한 능선과 봉우리 등으로 인해 남태항 최고봉,’ ‘태항지존,’ ‘무릉도원같은 별칭으로 불릴 정도이다. 특히 이곳은 일출과 운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알려진다. 인근에 있는 비나리길이라는 괘벽공로(掛壁公路)와 세외도원이라고 불리는 석애구(錫崖溝)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다. 참고로 왕망령이란 이름은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 8-23)를 세웠던 왕망(王莽)이 훗날 후한(後漢, 25-220)을 세운 유수가 항산으로 도망하자 80만 대군을 이끌고 뒤쫓아 와 진을 쳤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천계산을 빠져나와 다음 행선지인 왕망령으로 향한다. 천계산 경구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잠깐 달리니 관문(關門) 하나가 나타난다. ‘왕망령 경구의 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걸로 보아 목적지인 왕망령의 입구쯤 되는 모양이다.






이곳에는 레스토랑으로 여겨지는 건물들 외에도 홍암대협곡(紅岩大峽谷)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협곡의 길이는 7.5km이며, 폭은 넓은 곳은 200m에서 좁은 곳은 10m 가량으로 온통 붉은색 사암(沙岩)의 절벽으로 이뤄져 있다.






광장에는 석애구(錫崖溝)’라고 적힌 커다란 빗돌(碑石)과 함께 석애구에 대한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이곳이 석애구라는 얘기일 것이다. 아니면 석애구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일 것이고 말이다. 참고로 석애구(錫崖溝)는 외부와 단절된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알려져 있다. 깎아지른 절벽과 사방을 둘러싼 웅장한 산세,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함께 모여 있는 곳에서 200여 가구 800여 명의 주민들이 외부와 단절된 채로 살아가고 있단다. 그 모습이 흡사 속세를 떠나 무릉도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버스를 갈아타고 40분쯤 들어가자 널따란 주차장이 나온다. 태항산에서 아름다운 일출과 운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다는 왕망령(王莽嶺)’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에는 레스토랑과 매점은 물론이고 호텔까지 들어서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집단시설지구라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왕망령 풍경구국가 4A관광지이자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왕망령과 석애구, 곤산, 유수성 등 4개의 관광지를 포함한다.



집단시설지구에 지어진 저 건물은 생태빈관이라는 3성급 호텔이란다. 계단 모양으로 지어진 3층짜리 건물인데 앞 건물 지붕이 뒷 건물의 테라스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인기척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귀국 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시설이 엉망이라는 사용 후기를 보았는데,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생태빈관에 이르자 왕망령 관광의 핵심이랄 수 있는 관일대방향이 눈에 들어온다. 왕망령은 원래 고갯마루를 뜻하지만 주위의 봉우리들을 한데 묶어 통칭하는 지명으로도 통한다. 왕망령에는 수십 개의 봉우리들이 있지만 실지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봉우리들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의 봉우리들이 송곳처럼 솟아오르면서 사방에 바위절벽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우리가 탐방하게 될 관일대는 사람이 오를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봉우리 가운데 하나이다. 귀하디 귀한 대접을 받기에 손색이 없다 하겠다.



생태빈관 뒤편 언덕에는 피라미드처럼 생긴 송신시설이 자리 잡았다. 그 앞에 청풍림(淸風林)’이라고 쓰인 빗돌이 세워져 있는데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맑고 부드러운 바람이 수풀처럼 넘실대는 언덕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송신시설이 있는 언덕의 위까지 올라가보기로 한다. 조망이 뛰어날 것 같아서이다. 그런 내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집단시설지구는 물론이고 왕망령 주변의 뛰어난 경관들이 한눈에 쏙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젠 왕망령의 속살을 엿볼 차례이다. 주차장의 반대편 방향인데, 한글로 병기(倂記)된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이를 따르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가는 길에 여러 개의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 최종 목적지가 관일대(觀日台)라는 것을 꼭 기억해 두자.



탐방을 시작하자마자 왕망령표지석이 이라고 적힌 빗돌이 길손을 맞는다. ‘왕망령(王莽嶺)’은 전한(前漢)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건국한 왕망(王莽)이란 인물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왕망은 훗날 후한(後漢)을 건국한 유수(劉秀, 광무제)가 태항산으로 도망을 치자 80만 대군을 몰고 쫓아와 지금의 왕망령에다 진을 쳤다는 것이다. 왕망은 비록 유수에 패해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이름은 산봉우리에 남아 후세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전한 황실의 외척이었던 왕망(王莽)은 원제(元帝, 재위 BC48-33)의 황후였던 효원황후(王氏)’의 비호 아래 권력을 장악한 사람이다. 애제(哀帝, 재위 BC7-1)가 죽자 9세의 평제(平帝, 재위 BC1-AD5))를 옹립한 후 안한공(安漢公)이 되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평제를 죽인 다음 유자 영을 세워 스스로 섭정이 되어 가황제(假皇帝)라 자칭하였으며, 8년에는 전한을 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황제에 즉위했다. 그는 유교경전을 근거로 개혁정치를 단행한 군주였다. 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아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에는 왕조를 연지 15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잠시 후 왼편으로 시야가 트인다. 그러나 내놓고 자랑할 만한 풍경은 못된다. 저런 정도의 경관쯤이야 중국, 아니 이곳 태항산맥만 해도 비일비재하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5분 남짓 지났을까 갈림길 하나가 나타난다. 왼편은 영지버섯바위(靈芝石)’로 가는 길이라니 개의치 말고 직진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관일대(觀日台)‘ 방향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게 되는 야외 장터에서는 륵마애(勒馬崖)와 와운강(臥雲崗부운애(浮雲崖)가 좌우로 나뉜다. 그리고 곧이어 나타나는 삼거리에서는 금대(琴台)로 연결되는 길이 갈려나간다. 탐방로는 계속해서 관일대(觀日台)‘ 방향을 따른다.




장터는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물론 최종 목적지인 관일대로 가려면 곧장 직진해야 한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와운강(臥雲崗부운애(浮雲崖) 방향, 즉 오른편으로 나있는 코스를 이용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이정표에 적힌 두 곳은 물론이고 방지애와 유수조, 선몽장산, 석고천서 등의 명소들을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돌아오는 길에 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들머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코스를 난 아예 빼먹어버렸다. 이곳 왕망령이 옵션코스였던 탓에 예습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갔던 길로 되돌아 나오라는 가이드의 멘트까지 있었으니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 덕분에 한번쯤은 꼭 들러보았어야 할 방지애(方知崖)’를 놓쳐버렸다. 방지애는 조훈현국수가 중국의 진조덕기사와 친선바둑을 두었던 곳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당시 진조덕은 왕망령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우쳤노라고 하면서 두어나가던 바둑을 멈춰버렸다고 한다. 상대편을 잡아먹고 집칸수를 늘리는 바둑을 더 두어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말이다.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방지정(方知亭)’이란 정자를 짓고 두 사람이 두다 그만둔 바둑을 돌로 제작해 놓아두었고 한다.



금대(琴台) 갈림길을 지나면서 왕망령의 절경들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정표에서 보았던 금대가 발아래에 놓여있는가 하면 그 너머에는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암봉들이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잘 그린 산수화를 무한히 확대해 놓았다고나할까. 그 아름다운 풍광을 어찌 인간의 세치 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왕망령이 '남태항의 최고봉'이자 '태항지존(太行至尊)'으로 불리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특징도 엿볼 수 있다. 바위산임에도 불구하고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어느 글에선가 이곳 왕망령의 녹화비율이 90%에 이른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가 보다. 그는 또 여름 평균 기온이 섭씨 22도인 점과 1000에 달하는 평균 강수량을 그 원인으로 꼽았었다.





잠시 후 탐방로는 소태항(小太行)으로 연결된다. 작은 기암괴석들이 수 없이 널려있는데, 그 모양새가 태항산맥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그러나 내 눈에는 별로일 따름이다. 상술이 뛰어난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이야깃거리쯤으로 보일 따름이라는 얘기이다. 조망도 역시 볼품이 없었다.






소태항에 있는 매점은 한국 관광객들을 위한 서비스가 만점이다. 컵라면은 물론이고 맥심커피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다.



몇 걸음 더 걷자 관일대(觀日台)‘가 나온다. 이름 그대로 ()‘바라 보()‘는 조망대라는 뜻이다. 왕망령은 일출과 운해로 유명한 곳이다. 면적이 40에 이르는 왕망령 풍경구의 여러 전망대 가운데서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백미(白眉)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점을 감안했는지 꽤 너른 조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곳은 안개 낀 풍광도 일품인 것으로 알려진다. 찬기류와 따뜻한 기류가 자주 만나면서 중국 북방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믄 안개 낀 풍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란다.




관일대에서의 조망도 일품이다. 동쪽으로 일출 배경이 되는 수많은 암봉들이 일렬로 도열하고 있는데, 그 생김새가 자못 빼어나다. ‘산 위에 또 다른 산이 있다는 말을 확인시켜주는 풍경이라 하겠다. 아래는 수천 길의 낭떠러지이고, 그 위에는 수직 절벽의 바위봉우리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올랐다. 왕망령의 이런 경관들은 보면 볼수록 그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소수민족의 전통 복장을 빌려주는 곳도 보인다. 한나라 때의 것으로 보이는 갑옷도 갖춰놓았다.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배경삼아 인증사진을 찍어보라는 유혹일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 시단석(試胆石)’이란 바위도 볼 수 있었다. ‘쓸개즙을 시험하는 바위라는데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담(, 쓸개)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바위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수백 길의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저 바위에 올라서서도 단(, 쓸개즙)이 제대로 분비되는지를 시험해본다는 의미 말이다. 바위로 들어가는 입구를 쇠창살로 막아놓은 것을 그 증거로 치면 앞뒤가 딱 맞는다 하겠다.




대미는 산화대(散花台)가 장식한다. 관일대가 일출의 명소라면 이곳 산화대는 일몰(日沒) 사진을 찍기 딱 좋은 명소로 소문나있다. 그런 점을 감안했던지 바위 벼랑 끄트머리에다 두 개의 단으로 나누어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에 오르면 왕망령이 광활하고 웅장한 알몸을 세상에 드러낸다. 수많은 암봉들과 푸른 숲이 조화를 이루며 그림 같다는 느낌을 자아내게 만드는 절경이 눈을 호강시킨다.




안내판에는 이곳이 태항산과 중주 평원의 냉온 기체가 교착되는 곳이라고 적었다. ’마오쩌둥(毛泽东) 주석이 시에서 묘사한 것처럼 높은 하늘에는 파도치는 찬바람이 급하고 대지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이다. 벼랑 아래의 따뜻한 기류가 상승하여 절벽과 충돌하고 찬 공기의 눌림을 받아 이 틈새에서 파도친다고 한다. 그래서 벼랑에서 흩날리는 복숭아꽃이 골짜기에서 춤을 추며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는단다. 중국인들은 이런 풍광을 천녀가 꽃을 뿌리는 듯하다로 표현하는 모양이다. 이곳에 산화대(散花台)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걸 보면 말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오전에 보았던 천계산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까마득한 절벽 일색이던 천계산의 거대한 바위 협곡과는 달리 이곳은 바위봉우리들이 울쑥불쑥 솟아올라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장가계·원가계에서 보았던 풍경에 더 가깝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수 만년 동안의 침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천계산의 협곡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뾰쪽뾰쪽한 기암괴봉 들이 빽빽하게 솟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혹시 땅과 하늘을 연결한다는 건곤주(乾坤柱)가 저런 형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경이롭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마오쩌둥(毛泽东)의 비서였던 리루이(李锐)’는 그의 시에서 왕망령에 오르지 않고는 태행산을 보았노라고 얘기할 수 없고, 왕망령에는 천하의 기봉들이 모여 있어 굳이 오악(五岳)에 오를 필요가 없다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의 눈에 저런 경관들이 펼쳐졌기에 그런 표현이 가능했었을 것이다.




에필로그(epilogue), ‘왕망령 경구옵션관광코스이다. ‘선택 관광이라고도 하는데 이름 그대로 선택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그에 대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는 여행사의 약속도 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게 통용이 되지 않았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다는 얘기이다. 다음 행선지가 만선산인데 가는 길목에 위치한 왕망령비나리길을 옵션코스로 넣어버렸기 때문이다. 옵션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에는 천계산경구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타고 만선산의 입구까지 빙 돌아서 와야 한단다. 그럴 경우 만선산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을 것이라는 겁까지 준다. 이번 여행 일정은 대부분 그렇게 편성되어 있었다. 이곳 왕망령과 비나길 같이 꼭 지나가야하는 곳이나, 팔천협과 노야정, 단분구 등과 같이 꼭 보아야만 하는 경관들, 특히 운봉화랑과 만선산의 환산선 전동차처럼 타지 않고서는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운송수단 등은 하나같이 옵션관광에다 포함시켜 놓았다. 그러니 바보가 아닌 이상 어찌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들어간 돈이 무려 310(US), 여기에 마사지 비용까지 합치면 40만원을 훌쩍 넘겨버린다. 이번 패키지여행의 가격이 459,000원이었으니 배꼽보다 크다고는 할 수 없으나 배꼽만큼이나 커져버린 여행이 되어 버렸다. 거기에 쇼핑센터에서 가이드의 눈치까지 보아야 했으니 싼 것이 비지떡이라는 속담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