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牛岩山, 353m)-상당산(上黨山, 491.5m)-낙가산(洛迦山, 483m)

 

산행일 : ‘15. 11. 24()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행코스 : 삼일공원우암산상당산성상당산동문남문남암문출렁다리깃대산낙가산김수녕양궁장(산행시간 : 4시간50)

함께한 산악회 : 기분좋은 산행

 

특징 : 청주의 진산이라는 우암산은 물론, 상당산과 것대산 낙가산 등 나머지 세 개의 산 역시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때문에 바위다운 바위 하나 없는 산은 특별한 산세(山勢)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청주시민들로부터 가장 사람 받고 있는 산() 중의 하나이다. 산이 별로 높지 않아 접근성이 좋은데다 상당산성이라는 빼어난 곡선미를 지닌 옛 산성까지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때문인지 청주시청에서는 산을 아예 시민들의 휴식처로 가꾸어 놓았다. 잘 정비된 길에는 벤치나 정자, 체육시설 등은 물론이고 산길 곳곳에다 화장실까지 만들어 놓았다. 거기다 산성을 빙 둘러 둘레길을 조성해 놓았다. 둘레길을 따라 성을 한 바퀴 돌고 난 뒤에, 낙가산이나 우암산 등 나머지 산들을 연계시킨다면 하루의 산행코스로는 이만한 코스도 없을 듯 싶다.

 

산행들머리는 삼일공원 주차장(청주시 상당구 수동 159-1)

경부고속도로 청주 I.C에서 내려와 좌회전, 36번 국도를 타고 청주 시내로 들어온다. 시내를 통과할 즈음 만나게 되는 상당삼거리(상당구 수동)에서 좌회전, 곧이어 나타나는 수협은행 청주지점앞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잠시 후 삼일공원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산자락으로 놓인 나무계단을 밟고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우암산 걷기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고 길을 나설 일이다. 하지만 이 안내도는 우암산만 그려져 있을 따름이다. 이왕이면 상당산까지 아울렀으면 좋았을 텐데도 말이다.

 

 

 

산행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주차장 바로 아래에 꼭 둘러봐야 할 시설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후손에게는 3·1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조성된 삼일공원(三一公園)이다. 공원에는 광복 68주년을 기념해서 세웠다는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이 있고, 그 옆에는 동상(銅像) 몇 개가 반원형으로 둘러서 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충청북도 출신인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1861~1922)와 우당 권동진(1861~1947), 청암 권병덕(權秉悳, 1867~1944), 동오 신홍식(申洪植, 1872~1937), 은재 신석구(申錫九, 1875~1950), 청오 정춘수(鄭春洙) 등 여섯 명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정춘수는 3·1운동 후 변절하여 민족지도자로서의 품위를 잃었다 하여 199628일 시민단체에 의해 동상이 철거되었다고 한다. 좌대(座臺)만 남아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횃불 모양의 조각품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차장으로 돌아와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은 데크로 만들어진 계단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계단이 끝나면 곧이어 완만한 능선이 길손을 맞는다. 그런데 능선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게 아니겠는가. 겨울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시점에 가을의 낭만을 만나다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오는 도중에 산행대장이 멋진 가을 경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더니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가을의 풍경화(風景畵)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이후부터는 보여주는 그림마다 앙상한 초겨울 일색이었던 것이다.

 

 

산길은 완만한 편이다. 가끔 통나무계단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자지 가파르지 않아 오르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걷는 것 그 자체를 즐기면서 걸어볼 일이다. 마침 등산로 주변에는 갖가지 체육시설들까지 갖추어져 있다. 준비운동 없이 산행을 시작했다면 몸이라도 풀어볼 일이다. 거기다 곳곳에 벤치도 놓아두었다. 이건 숫제 산을 통째로 웰빙(well-being)공간으로 바꿔놔 버렸다.

 

 

 

산행을 시작한지 15분 남짓 지나면 성공회 성당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쳐지는 삼거리(이정표 : 우암산 정상1.2Km/ 성공회성당0.8Km/ 삼일공원0.5Km)를 지나게 되고, 이어서 7~8분 후에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거대한 철탑들을 만나게 된다. KBSMBC의 방송 송신탑(送信塔)들이다.

 

 

송신탑에서 잠시 내려서면 안부삼거리(이정표 : 우암산 정상0.6Km/ 보현사0.5Km/ 삼일공원1.1Km)이다. 우암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이곳에서 둘로 나뉜다. 하지만 잠시 후에 다시 합쳐지니 마음 내키는 대로 진행하면 된다. 구태여 고민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얘기이다. 다만 자연생태학습공원(自然生態學習公園)’의 관찰로(觀察路)를 따르고 싶다면 오른편 계곡길로, 육산(肉山)으로 이루어진 우암산에서 제대로 된 바위라도 하나 구경하고 싶다면 왼편의 능선 길을 따르면 될 일이다.

 

 

왼편 능선을 따른다. 행여 색다른 볼거리라도 있을까 해서이다. 하지만 어설픈 바위들을 제외하고는 눈요깃거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바위다운 바위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흙산에서 저 정도의 생김새라면 눈요깃거리로 쳐도 불만은 없을 것이지만 말이다.

 

 

어설픈 바윗길을 잠시 치고 오르면 산불감시 망루(이정표 : 우암산 정상/ 안덕벌1.2Km/ 삼일공원1.6Km)가 나타난다. 왼편은 안덕벌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정상은 체육시설들이 설치된 오른편 방향이다.

 

 

체육시설을 지나면 또 다시 삼거리(이정표 : 광덕사/ 우암산 생태터널/ 송신탑)이다. 우암산 정상은 오른편 광덕사 방향으로 조금 더 가야만 만날 수 있다. 상당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약간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우암산 정상을 둘러본 뒤 다시 이곳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야만 함은 물론이다.

 

 

 

잠시 후 청주의 진산(鎭山)이라는 우암산(牛岩山)에 오른다. 산세가 소가 누운 모양새와 같다하여 와우산(臥牛山)이란 이름으로도 불리는 산이다. 전국의 읍지(邑誌)들을 모아 성책(成冊)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관아의 동쪽 2리에 있다. 상령산에서 뻗어 나와 향교의 으뜸이 되는 줄기가 된다.’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와우산으로 적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택리지(擇里志)’에 기록된 '당이산(唐羡山)'이나 대모산(大母山), 모암산(母岩山), 장암산(壯岩山), 목암산(牧岩山), 목은산(牧隱山) 등 수많은 별칭(別稱)들을 갖고 있기도 하다. 별칭들 중 몇몇에 목()이란 글자가 들어 있는 걸로 봐서 옛날 이 부근에 목장이 있었나 보다. 그렇다면 이곳이 서원팔경(西原八景) 중 제7경인 우산목적(牛山牧笛)이 아닐까 싶다. 목동들의 피리소리가 자못 들을만하다는 그 와우산 말이다. 서원(西原)이란 이곳 청주의 옛 이름이다. 청주는 백제의 상당현이었다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685(신문왕 5)에 서원소경(西原小京)을 설치했다. 이후 757(경덕왕 16)에 전국 행정구역 명칭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서원소경을 서원경(西原京)으로 바꿨다. 청주라는 이름으로 개칭한 것은 고려 개국 후 태조 23(940) 부터였다. 그러니까 서원팔경이란 청주에서 가장 빼어난 8가지의 볼거리라는 얘기이다. 서원팔경이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잠시 후에 만나게 될 또 다른 서원팔경에서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상당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가파른 내리막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가파름은 안부(鞍部)에 있는 바람매기고개에 이를 때까지 상당히(20) 오랫동안 계속된다. 고도(高度)를 많이 떨어뜨렸음은 당연한 일이다. 우암산이 상당산에서 갈라져 나온 하나의 봉우리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이름에 ()’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이유일 것이다.

 

 

바람매기고개는 지금 왕복 6차선 도로가 나있다. 본의 아니게 능선이 끊어져 버린 셈이다. 이에 따라 청주시에서는 고갯마루에다 생태터널을 만들어 놓았다. ·물들이 마음 놓고 오고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 길이 낮에는 사람들의 차지가 되는 모양이다. 터널 위에다 벤치까지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해 놓았다. 쉼터의 한켠에서 커피봉사를 하는 분들이 보인다. 읽어보라고 주는 팸플릿(pamphlet)을 보니 동산교회라는 인근 교회에서 나온 모양이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봉사활동을 욕되게 하는 사람들도 일부 보였다. 커피를 마시고 난 일회용 컵들이 등산로 주변 곳곳에서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바람매기고개란 바람을 막아주는 고개라는 뜻이다. 옛날 상리(상당구 율량동 상리) 사람들이 명암약수터로 갈 때 이용하던 고개인데, 길이 험하고 높아 바람을 막아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인용)

 

 

바람매기고개를 지나면서 능선은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러나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는 것을 보면 그다지 급할 것이 없나보다. 하긴 3.5Km 정도가 떨어진 상당산성까지 가는 동안 고도를 200m만 높이면 되니 구태여 서두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바람매기 고개 근처에서 청주랜드갈림길(이정표 : 상당산성 3.4Km/ 청주랜드0.5Km/ 삼일공원3.5Km/ 우암산 정상1.1Km)을 지나 별다른 특징이 없는 능선을 15분 정도 더 걸으면 안부사거리(이정표 : 산성1.6Km/ 명암동0.2Km/ 율량30.3Km/ 생태육교1.8Km)에 이른다. 오른편에 보이는 돔(dome)처럼 생긴 건물이 청주랜드인가 보다.

 

 

 

사거리를 지나면서 능선은 서서히 가팔라져 간다. 그러다 쉼터용 정자(亭子)를 지나면서부터는 제법 가파르게 변한다. 그렇다고 버거울 정도는 아니다. 그저 조금 전까지 걸어온 것에 비해 상당히 가팔라졌다는 의미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가파름 끝에 약수터가 있다. 어쩌면 이렇게도 절묘한 곳에 자리 잡았을까. 힘들게 올라온 이들에게는 감로수(甘露水)가 따로 없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앞서가던 집사람까지 불러 샘물을 마셔본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맛은 시원하면서도 달았다.

 

 

약수터까지 왔다면 상당산성(上黨山城)은 다 온 것이나 다름없다. 10분이 채 안되어 성벽 아래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성벽은 나무데크 계단을 이용해 오르도록 해 놓았다. 계단의 아래에 세워진 안내판에 한남금북정맥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는 걸로 보아 정맥이 이곳을 지나가는 모양이다. 그리고 성벽 위에는 조망도(眺望圖)가 세워져 있다. 조금 전에 올랐던 우암산은 물론이고, 가까이는 청주시내가 멀게는 미호천과 증평평야까지 펼쳐진다지만 짙은 안개에 잠겨버린 산하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겨우 보이는 풍경 또한 보잘 것이 없다. 상당산성을 둘러싸고 있는 구름이 서원팔경(西原八景)의 제4경인 상당귀운(上黨歸雲)에 꼽힐 정도로 자못 빼어나다고 알려졌는데도 말이다. 구름과 안개의 차이 때문인 모양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행운은 하늘이 도와주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서원팔경은 1930년대 이병연이 쓴 조선환여승람이라는 책에 수록돼 있다. 이 책은 각 지역의 정보를 적은 지리지(地理志)’인데, 아쉽게도 저자가 누구인가는 알려지지 않는다. 아무튼 서원팔경은 당시 청주사람들 사이에 회자될 만큼 아름다운 곳임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참고로 서원팔경의 나머지 다섯은 석교석구(石橋石狗 : 남석교에 서 있는 돌 개), 금천어화(金川漁火 : 쇠내개울의 고기잡이 횃불), 동장철학(銅檣鐵鶴 : 철당간 위에 앉아있는 학), 선루제월(仙樓霽月 : 망선루에 걸려있는 달), 봉림조하(鳳林朝霞 : 봉림에 자욱한 아침안개)이다.

 

 

왼편 방향의 성벽을 따른다. 서문(西門)인 미호문(弭虎門)을 향해 걷는 길이다.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넓게 터지지만 안타깝게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미호문에 닿는다. 미호문은 거대한 2개의 무사석을 쌓고 그 위에 장대석을 올려놓았다. 바깥쪽으로 돌출된 성벽이 옹성의 형태를 띤 것이 이 문의 특징이다. 사적 제212호인 상당산성은 상당산(또는 상령산) 능선을 따라 쌓은 둘레 4.2km의 산성이다. 초기(백제시대)는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 이었으나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는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 있던 충청병마절도사영을 청주로 옮겨(1716, 숙종 42)오면서 돌을 쌓아 석성(石城)으로 만들었다.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土砂)로 쌓아올리는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시설로는 남문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 3개의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 2개의 암문(暗門 :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게 숨겨 만든 성문), 2곳의 장대(將臺), 15개의 포루(砲樓)터 외에 성안 주둔병력의 식수를 대기 위한 대소 2곳의 연못이 있다.

 

 

계속해서 성벽을 따른다. 구불구불 이어진 성벽의 곡선미가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은 마치 뱀처럼 구불거리며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청주는 충주, 보은과 더불어 삼국시대 때 영토다툼이 빈번했던 격전지(激戰地)이다. 그 흔적을 잘 보여주는 것이 정교하게 쌓은 산성(山城)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자연과의 조화가 아름답고, 우아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곳이 바로 청주의 상당산성(上黨山城)이다. 이 산성은 이웃에 위치한 다른 산성들(삼년·충주·덕주·미륵·온달·장미산성)들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세계유산 등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요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상당산에도 둘레길이 나있다. 상당산성의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길이다. 그런데 이 둘레길은 성곽(城郭)길 외에도 숲으로 난 길을 하나 더 두고 있다. 우린 물론 성곽 위를 걷고 있다. 안개 때문에 비록 조망(眺望)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부드럽게 휘어지는 성곽의 곡선미라도 실컷 눈에 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여름철 뙤약볕이라면 숲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두 길은 걷는 내내 이어지고 갈라지기를 반복한다. 길은 중간에 백화산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포루터(砲樓址)나 성안의 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시설인 수구(水口) 등 유적들을 만나면서 이어진다.

 

 

성벽으로 올라선지 30분이 조금 못되었을 즈음 오른편 산자락으로 오솔길이 하나 열린다. 상당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다. 산악회 시그널(signal)들이 몇 개 매달려 있을 따름이니 주의해서 살펴볼 일이다. 서너 평 넓이의 공터로 이루어진 상당산 정상은 말뚝 모양의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어지럽게 까발려져 있어 보기가 흉할 정도이다. 옛날에 이곳에 있었다는 포루(砲樓)라도 복원하려는 모양이다. 정상에서의 시야(視野)는 넓게 열리는 편이다. 비록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20분이 지났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을 보면 이달 중순에 다녀온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에서 쌓인 피로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상당산에서 정점을 찍은 산등성이는 완만하게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잠시 후 개구멍처럼 뚫린 문()이 하나 나온다. 문루(門樓)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이 동암문(東暗門)이다. 암문은 적의 눈을 피해 몰래 사람이 드나들거나 식량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비밀문(秘密門)이다.

 

 

동암문을 지나면 잠시 후 아담한 진동문(鎭東門)에 이른다. 진동문은 산성의 동문이다. 이곳에서 성벽길이 끝난다. 보수공사로 인해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우회해서 다시 성벽으로 올라설 수도 있겠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그보다는 산성마을을 둘러보고 싶어서이다. 덕분에 1992년에 복원했다는 동장대는 들리지 못했다. 장대는 우두머리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사방이 잘 조망되는 곳에 세운다.

 

 

진동문과 헤어지면 곧바로 산성마을이다. 제법 큰 저수지를 끼고 있는 산성마을은 닭백숙과 대추술로 유명하다. 1990년대 전후로 이 마을의 집 중 70% 이상이 닭백숙과 대추술을 팔았다고 한다. 특히 대추술은 청주의 대표 전통주로 유명했다. 같이 걷고 있던 일행 몇이 식당으로 들어가지만 우리 부부는 그만두기로 한다. 구수한 두부에다 대추술이라도 한잔 곁들이고 싶었지만 도시락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산악회 버스의 출발시간에 맞추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싸온 도시락을 비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수지를 왼편에 끼고 돈 후, 산자락을 치고 오른다. 저수지 보수공사로 인해 저수지 왼편이 막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문 앞에 있는 너른 잔디광장에 들러보려면 왼편 도로를 따르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잠시 후 남문(南門), 즉 공남문(控南門)에 올라선다. 상당산성의 정문 격인 공남문은 우아한 무지개 형태이고, 문짝에는 도깨비가 그려져 있다. 성문의 안은 특이하게도 옹벽(甕壁)으로 되어 있다. 성문 바깥쪽에 옹성(甕城)을 쌓은 다른 성곽과 달리 성 안쪽에다 내옹성을 만든 셈이다. 자연지형을 이용했다지만 적군이 성 안으로 곧바로 들어올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든 성문방어벽인 셈이다.

 

 

남문을 나선다. 혹시라도 뭔가 볼거리를 놓칠까 해서이다. 성 밖은 너른 잔디밭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비석(碑石) 하나가 길손을 맞고 있다. 매월당 김시습의 유산성(遊山城)’ 시비(詩碑)이다. ‘꽃다운 풀 향기 짚신에 스며들고, 활짝 갠 풍광 싱그럽기도 하여라. 들꽃마다 벌이 와 꽃술 따 물었고, 살진 고사리 비 갠 뒤라 더욱 향긋해라. 멀리 바라보니 산하는 웅장하고, 높이 오르니 의기는 드높아라. 사양을 말고 저녁 내내 바라보게, 내일이면 남방으로 떠나갈 것이니우리 국토의 순례를 즐겼던 김시습 선생이 상당산성을 빼먹었을 리가 없다. 꽃피는 춘사월(春四月)에 상당산성을 찾은 김시습은 산성에 올라 시를 남기고 낙가산 아래 보살사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전라도로 향했다고 한다. 그 시를 새겨놓은 것이다.

 

 

남문으로 다시 돌아와 다시 둘레길을 따른다. 이번에는 산길이다. 보드라운 황토로 이루어진 산길이 여간 고운 게 아니다. 그렇다고 성벽으로부터 돌출시켜 전방과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인 치성(雉城)을 둘러보는 걸 빼먹었을 리는 없다. 하긴 산길과 성곽길이 바로 옆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놓치려고 해도 놓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남문에서 10분쯤 걸으면 남암문(南暗門)이다. 것대산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암문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문 앞에 것대산 가는 길, 1Km 지점 출렁다리 경유)라고 쓰인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산성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1시간10분이 걸렸다.

 

 

암문을 나서면 잠시 후 길이 두 갈래(이정표 : 것대산 1.7Km/ 산성 서문 1.2Km, 산성 남문 0.6Km)로 나뉜다. 왼편에 보이는 오솔길은 아까 남문 앞 잔디광장에서 보았던 왼편 산자락으로 나있던 오솔길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이어서 별 특징이 없는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를 걸으면 출렁다리가 나온다.

 

 

출렁다리 아래에는 왕복 2차선의 도로가 지나고 있다. 예전에는 것대산과 상당산성을 오갈 때 이 도로를 무단 횡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고도 가끔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놓은 다리가 바로 출렁다리라고 한다. 다리 입구에는 두 개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전을 위하여 한꺼번에 30명 이상이 건너지 말라는 내용과 다른 하나는 다리의 보호를 위해 건널 때 등산용 스틱을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하여간 출렁다리는 스릴 만점이다. 다른 곳에서 만났던 출렁다리들 보다 유난히 더 흔들리기 때문이다. 1.5m에 길이라고 해봐야 고작 50m를 넘기지 못하는 데도 말이다.

 

 

 

출렁다리에서 15분 조금 못되게 더 걸으면 우암어린이회관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이정표 : 상봉재70m, 낙가산 정상 2.5Km/ 우암어린이회관2.7Km/ 상당산성1.1Km)에 이르게 되고, 곧이어 상봉재(이정표 : 낙가산2.4Km/ 것대마을1.5Km/ 옹달샘0.1Km/ 상당산성1.1Km)에 내려서게 된다. 상봉재는 옛날 미원이나 낭성의 소몰이꾼들이 청주로 소 팔러 다니며 넘나들던 고개라고 한다. 이 고개는 남편의 유지(遺志)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자결을 하고 만 기생 김해월의 전설(傳說)도 간직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청주군관이 1728년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다 전사하였는데, 애첩이었던 김해월이 낳은 아이가 단명 운이라며 스님이 아이를 절에 맡기고 10일 한번 이 고개에서 만나되 고개를 넘지 말라했는데 애첩이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넘자, 아이가 달려오다 연못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정표에 나와 있는 옹달샘은 청주를 길게 관통하는 무심천의 발원지라고 하니 참조할 일이다. 참고로 청주에서 가장 높은 고개라는 상봉(上峰)고개는 상봉산에 있는 고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개는 것대산에 있는 고개라고 해서 것대고개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상봉산과 것대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니 둘 모두 맞는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요 아래에 있는 마을의 이름이 것대인 걸로 보아 것대고개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것대에서 명암동 중봉(中峰)로 넘어가는 고개이기 때문이다.

 

 

상봉재를 지난 능선은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다지 가파르지는 않은 편이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걸으면 다섯 개의 봉수대로 이루어진 것대산봉수대(烽燧臺 : 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26)’가 나온다. 동서길이 26m, 남북너비 15.5m인 이 봉수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청주목편에 '것대산 봉수는 청주 동쪽 11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봉수는 문의현(文義縣) 소이산(所耳山)과 진천현(鎭川縣)의 소을산(所乙山) 사이 중간거점 봉수로서의 역할을 했다. 민묘(民墓)들로 인해 파괴되어 북쪽면과 동쪽면의 일부만이 남아있었으나 2009년에 불을 피워 연기를 올리던 봉대(烽臺:봉돈수대(燧臺)를 복원해 놓았다.

 

 

봉수대 아래에는 화장실까지 갖춘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 통일준비 한마음 봉화 대축제가 열렸다는데 이때 만들어진 시설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주차장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드디어 깃대산 정상이다. 상당산성의 남암문에서 이곳까지는 40분이 걸렸다.

 

 

것대산 정상에는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든 충청북도 특유의 정상표지석과 이정표(낙가산 정상1.4Km/ 한남금북정맥의 선도산4.8Km/ 상봉재1.3Km) 외에도 정자(亭子)와 깃대 등의 다른 시설들도 갖추고 있다.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 활공장을 겸하고 있어 그에 필요한 시설들일 것이다. 한편 상당산성에서부터 함께 이어오던 한남금북정맥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갈려나가니 참조할 일이다. 참고로 '것대산'은 옛 문헌에 '거차대산(居次大山)' 또는 '거질대산(居叱大山)' 등으로 차자(借字 : 남의 나라 글자를 빌려서 자기나라 말을 적는 것)되어 나온다. '居次大''居叱大'는 모두 '것대'로 재구된다. '거질대산''居叱大'''이 차자 표기에서 '의 표기인 줄을 모르고 음으로 읽은 지명이라고 한다. 또한 '것대'는 상당산성(上黨山城) 밖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거죽'(居竹)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것대'의 어원(語源)은 알려지지 않는다.

 

 

것대산에서 낙가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한마디로 순하다. 보드라운 흙길인데다 경사까지도 완만한 것이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20분 남짓 걸으면 낙가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참 한 가지를 빠뜨릴 뻔 했다. 낙가산을 오르기 직전에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올라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가운데가 약간 솟아오른 분지(盆地) 모양으로 이루어진 정상의 가장 윗자리는 무덤이 차지하고 있다. 무덤에게 자리를 내준 정상표지석은 그 아래에 뻘쭘하게 앉아있는 모양새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산만한 풍경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상석과 이정표(원봉공원(용암동성당) 5.5Km/ 것대산 1.4Km) 그리고 산불감시초소와 이동통신사의 철탑, 운동기구 등이 이곳저곳에 어지럽게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낙가산 정상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낙가석조(落伽夕照) 즉 낙가산에서 본 저녁노을이 서원팔경(西原八景)의 가장 윗자리(1)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풍경은 아무 때나 보여주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시간이 일러 낙조를 볼 수 없는 것은 그렇다 치고라도 아직까지도 안개가 걷히지 않아 조망까지 딱 막아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은 김수녕양궁장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편으로 가면 동남택지개발예정지구로 내려서게 된다. 오른편으로 향한다. 하산 길은 가파르게 시작된다. 하지만 금방 완만해지더니 갈림길(이정표 : 양궁장1.9Km/ 원봉공원5.1Km/ 낙가산 정상0.4Km) 하나를 만든다. 이어서 노랗게 물든 낙엽송 숲길을 가파르게 내려서면 13~4분 후에는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양궁장0.6Km/ 보살사0.7Km/ 낙가산1.7Km)를 만난다. 이정표에 나와 있는 보살사가 김시습선생이 머물렀다는 사찰이 아닐까 싶다.

 

 

산행날머리는 김수녕양궁장 주차장

하산 길을 얘기할 때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다보면 가끔은 제법 높은 봉우리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김없이 우회로(迂廻路)를 만들고 있으니 구태여 올라갈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보살사 갈림길을 지난 후 제법 긴 데크계단을 내려서면 산길은 다시 완만하게 변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김수녕양궁장주차장(이정표 : 낙가산 정상 2.3Km)에 내려서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김수녕양궁장(金水寧洋弓場)‘88 서울올림픽에서 2관왕, ‘89 세계양궁선수권에서 전관왕에 오르는 등 세계 최고의 여궁사로 부각한 충청북도 출신인 김수녕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양궁장이다. 총공사비 402,400여 만 원을 투입하여 1994년에 건립한 시설로서 8322대지에 국제양궁연맹(FITA)이 공인한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 본부석 및 부대시설, 주차장 등을 갖추고 있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간식을 먹느라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50분이 걸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