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스크 대학 방문기(訪問記)

 

소재지 : 러시아 로보시비리스크주 톰스크시

일정 :

‘12. 3. 23(토) 10:00 인천공항 출발

14:45 ~ 20:40 브라디보스토크 도착 및 출발(6시간 대기)

3. 23(토) 22:45 노보시비리스크 도착(알랙세이교수의 영접)

3. 24(일) 04:30 톰스크 도착(버스이용, 본아파트 체크인)

14:00 톰스크 시내 투어(16:00, 켄체로프敎授 주최 晩餐)

3. 24(월) 09:00 톰스크대학 총장과의 미팅(대학 본관 대회의실)

10:00 ~ 17:00 공식 일정(인공지능연구소, 물리공학연구소, 전력공학연구소, 천연자원연구소 순환미팅)

18:30 대학기숙사로 숙소 이동 및 공식만찬

3.25(화) 09:00 ~ 17:00 비파괴연구소 및 로봇연구소 미팅

11:00 한국 방문단 발표 및 양자간 의견교환

14:00 스포츠센터 방문 및 공식만찬(미하일교수)

3.25(수) 09:00 ~ 13:30 톰스크 출발 및 노보시비리스크 도착

14:00 ~ 19:00 노보시비리스크 투어

3.26(목) 00:30 노보시비리스크 출발, 베이찡 경유 김포 도착

 

방문목적 : 경인(京仁)지역과 톰스크 대학(大學)간 기술 교류(技術 交流), 올 2월에는 톰스크 대학의 교수 5명이 한국으로 와서 IMT(Intelligence mechatronics)관련 세미나에 페널(panel)로 참여를 한바있고,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러시아를 방문하여 톰스크대학 부설연구소의 교수들과의 미팅을 통해 양국(兩國)간 기술협력을 도모하는 일정, 러시아측의 성의(誠意) 있는 안내(案內)와 발표 기대했던 효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 톰스크(Tomsk), 러시아 톰스크주(州)의 주도(州都)로서 인구는 48만8,800명(2004년)이다. 시베리아 러시아 남부, 오비강(江)의 지류인 톰강(江) 연안에 있으며, 시베리아 철도의 지선이 지난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서 1604년 요새가 축조되었으며, 후에 시베리아와 유럽 및 러시아의 교역으로 번영하였다. 한 때는 광활한 시베리아의 중심지였으나 시베리아 철도(鐵道)가 노보시비르스크를 통해 오비강을 횡단하게 되자 노보시비르스크에게 그 중심 역할(役割)을 내주었다.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2시간이 조금 더 넘게 날아가면 중간기착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게 된다. 참고로 공항에 도착하면서 시계의 시침을 두 시간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해 놓으면 현지시간과 같아진다. '동방을 정복하라'라는 뜻으로 예전에는 해삼위(海參崴) 또는 해삼시로 알려졌던 블라디보스토크는, 인구가 약 60만 명쯤 되는 러시아 극동(極東)의 군사기지(軍事基地)이며, 연해주지방의 행정(行政)중심지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리니 택시로 이동(移動)하기에는 다소 무리, 조금 지루하겠지만 공항근처에서 소일(消日)하기로 결정하고 국내선(國內線) 비행기 탑승건물로 자리를 옮긴다.

<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

 

 

 

 

 

국내선 청사(廳舍)에는 식당과 다과점, 커피점, 그리고 기념품 가게와 약국 등이 있으나 가격(價格)은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사먹는 가격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대합실(待合室)에 있는 편의(便宜)시설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공항 앞의 광장(廣場) 맞은편에 있는 모텔로 가면 된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맛있는 식사와 함께 피아노 연주를 듣는 낭만(浪漫)을 즐길 수 있으니까. 또한, 깔끔한 회의실에서 커피 향을 음미(吟味)하며 진행 중인 업무를 정리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다.

< 공항광장 맞은편의 모텔 : 식당과 회의실 및 휴계실을 갖추고 있으며, 라이브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

 

 

< 광장 한쪽 귀퉁이에 있는 전시용 비행기 >

 

 

< 운행중인 버스, 기아자동차의 로고가 뚜렷하다 >

 

 

 

지루한 기다림에 짜증이 날 즈음, 갑자기 승객들이 북적대기 시작하더니, 9시 가까이야 러시아 국내선 비행기는 드디어 공항을 이륙(離陸)한다. 노보시비리스크에 도착시간이 11시가 조금 못되니 시간상으로는 2시간 남짓이지만 시차(時差)를 감안할 경우 6시간이 넘는 장거리 여행으로 변해버린다. 기내식(햄, 야채, 빵, 밥과 섞인 닭고기 볶음 등인에 양도 충분하고 맛도 괜찮은 편이다.) 후의 포만감에 잠깐 졸다보면 어느새 노보시비리스크이다. 공항에는 톰스크대학의 알렉세이 교수가 마중을 나와 있다. 함께 통역으로 따라 온 올가(女)양을 만나면서 걱정이 시작된다. 그녀의 한국어 실력이 겨우 ‘6개월짜리 한국어 연수(硏修)’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 노보시비리스크 공항 >

 

 

 

 

 

 

톰스크시를 향해 달리는 도로(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는 온통 눈(雪) 녹은 물과 아직까지 덜 녹은 눈들이 두텁게 뒤엉켜있어서 노면(路面)상태가 엉망이다. 우리를 실은 자동차는 달리는 중에 몇 번인가를 눈 위에서 미끄러지며 아찔한 순간을 연출한다.(도로변에는 뒤집힌 채로 방치된 차(車)들도 눈에 띄었다). 달리는 중에 요기도 할 겸해서 들른 식당, 우리나라로 치면 고속도로 휴게소 정도이다. 편의점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식당은 보기보다 깔끔하고 음식도 우리 입맛에 맞는 편이다. 카페테리아식(cafeteria, 셀프서비스 간이식당)이니 스프와 꼬치구이 등 입맛에 맞는 종류를 골라 먹으면 된다. 맥주나 보드카를 곁들여 마셔도 가격(價格)은 그다지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다.

 

 

 

 

 

 

 

노보를 출발한지 6시간(평상시는 5시간 정도) 가까이 되면 기다란 다리(橋) 하나가 보인다. 그 너머에 보이는 도시가 톰스크시이다. ‘본 아파트’라는 호텔에 여장(旅裝)을 풀자마자 잠자리에 들고 본다. 시간으로 보면 이제 먼동이 틀 시간이지만 긴 여행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호텔 규모(規模)는 모텔 정도로 작지만, 스파(spa) 등 각종 편의(便宜)시설을 갖춘 내부는 괜찮은 편이다. 하룻밤에 20만원을 넘기는 숙박비는 장기 투숙객들에게는 다소 부담이 될 듯 싶다.

 

 

 

 

 

 

오후 2시에 통역(通譯)인 올가양이 다른 러시아여자 한 명을 데리고 나타난다. 시내 투어를 안내할 문화해설사라고 한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都市)인 톰스크를 돌며, 러시아정교회 성당과, 최초의 요새(要塞), 그리고 톰강(강의 이름을 따서 톰스크라는 도시이름이 생겼단다)등을 돌아본다. 시내 중심가(中心街)를 제외하고는 통나무집들이 자주 눈에 띈다. 통나무집들은 한마디로 예술(藝術) 그 자체이다. 보이는 나무집들마다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을 정도로 각각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White Lake공원(公園), 인터넷에서 검색되기에 제법 규모가 큰 공원으로 알았는데 호수(湖水)를 끼고 있는 공원은 왜소(矮小)하기 짝이 없다. 호수로 들어가는 입구에 인공위성(人工衛星)의 유인(有人) 착륙선(着陸船)(아마 모형일 것이다)이 전시되어 있다. 최초에 달의 표면을 밟은 우주인(宇宙人) 중의 한사람이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러시아정교회 성당(聖堂), 이곳 톰스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성당 두 곳에 들렀다. 세계 곳곳의 성당을 많이 구경해봤지만 이곳 같이 화려(華麗)한 성당은 처음 본 것 같다. 건물의 외부(外部)는 일반 성당과 다를 것이 없는데,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원색(原色)을 사용해서 그린 예수님과 성모(聖母)님 그리고 기타 성인(聖人)들의 초상화(肖像畵)는 살아 움직이는 듯이 생생하고, 그 밖의 벽면(壁面)은 온통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러시아정교회(正敎會)의 특징인 모양인데, 러시아 방문이 처음인 내 눈에는 신기하게만 보이는 모양이다.

 

 

 

 

 

 

 

 

 

또 하나, 다른 나라의 성당과 다른 점은, 성당 내부에 의자가 없는 것이다. 이는 함께 모여서 예배(禮拜)를 보는 장소로 이용되지 않는 다는 의미인데, 이들은 과연 어디에 모여서 하느님을 모시는 의식(儀式)을 거행하는지 궁금하다. 성당 내부에는 교회 신자들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데, 모두들 교회 내부를 꽉 채우고 있는 액자(額子) 속의 사진들을 향해 기도를 하며 돌고 있다. 사진틀 앞에는 탁자와 촛대들이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다. 비록 엉터리 신자이지만 나 또한 천주교 신자, 예수님과 성모님 상 앞에서 경건히 기도를 드려본다. ‘이번 일정이 의도한데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명작가(有名作家)의 집이라는데 아무리 이름을 기억하려고 해도 머릿속에 남아나지 않다. 그만큼 러시아말은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아무튼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보게 되는 생가복원(生家復元)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요즘에는 이 지역(地域)의 작가들이 모여서 차(茶)도 마시면서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교류(交流)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톰스크 역사박물관(歷史博物館), 톰스크 시내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먼 옛날 정복자(征服者)들이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려면, 맨 먼저 흙이나 돌 또는 목재를 이용해서 요새(要塞)부터 만들었다. 맹수는 물론 원주민(原住民)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이다. 톰스크도 1604년에 이곳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요새를 제일 먼저 세웠을 것이고, 그 자리는 이 박물관(博物館) 자리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아쉽게도 지금은 옛날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다만 건물 벽(壁)에 그려진 걸개그림을 보며 그 형상을 추측해 볼 따름이다. 건물의 맨 위에 보이는 것은 요새의 망루(望樓)를 복원(復元)해 놓은 것이다.

 

 

 

 

 

 

 

 

< 톰스크시를 개척할 당시의 요새를 재현한 그림 >

 

 

 

톰스크 시가지(市街地)를 싸고 흐르는 톰강(江), 톰스크라는 시(市)의 이름은 이 강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란다. 강 건너에 검게 보이는 부분은 시베리아의 상징(象徵)인 울창한 숲이다. 침엽수림(針葉樹林)인데 도로변에서 잣을 파는 주민(住民)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잣나무도 많이 심어져 있는 것 같다.

 

 

 

 

 

 

 

 

 

 

 

 

 

시장(市長)의 딸이 살고 있다는 집, 역사적(歷史的)으로야 특별한 의미가 없는데도 관광객(觀光客)들이 많이 찾는 편이란다. 나무에다 정교하게 새겨 놓은 아름다운 문양(紋樣)들은, 하나하나가 예술품(藝術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조각품(彫刻品)들이다. 비록 역사(歷史)는 오래되지 않았을지라도 그 사물(事物)이 지닌 아름다움만 뛰어나다면 관광자원(觀光資源)으로 활용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證明)하고 있는 것이다.

 

 

 

삼일 동안 이어진 만찬(晩餐)은 첫날은 켄체로프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열어주었고,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대학당국에서 공식행사로 개최되었다. 이틀 동안 연속된 공식만찬은 교내에 있는 식당에서 개최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후생관(厚生館)으로 불러야할 듯 싶으나, 그 서비스는 물론 시설(施設)이나 음식 맛이 시내의 일반식당(一般食堂)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회관 안은 젊은 학생들로 북적대고 있다. 신입생 환영회(新入生 歡迎會)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 근처에 술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학의 신입생환영회와 다르다면 다른 점일 것이다.

<켄체로프교수님이 초대한 첫날의 만찬 장소>

 

 

 

 

 

 

 

<대학 총장님이 초대한 둘째 날 만찬>

 

 

 

 

 

 

 

< 연구 책임 교수진들과 함께한 셋째 날 만찬>

 

 

 

 

 

 

추가적인 여행 팁(tip)으로 시베리아 타입(type) 사우나(sauna)에 대하여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항공편이 쉽지 않은 시베리아는 쉽게 올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왕에 왔으면 시베리아 고유(固有)의 사우나에 들러볼 것을 권하고 싶다. 풀장과, 열수탕, 휴식 공간, 침실 등을 갖춘 사우나는 상상(想像)외로 이용료가 비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8~10명이 공동(公同)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 비용을 분담한다면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價格)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돈을 조금(?) 더 내고 추가(追加)서비스를 받는 다면, 사우나는 갑자기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변하기도 한다.

 

 

 

 

톰스크에서의 두 번째 날이다. 9시에 약속된 총장(總長)님과의 공식 미팅(meeting)에 맞춰 8시40분에 켄체로프교수님과 통역인 올가양이 에스코트(escort)를 나왔다. 호텔에서 대학 본관(本館)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첫 만남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통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어‣영어(총장의 환영사), 한국어‣러시아어(우리측 대표인 내 인사말) 또는 러시아어‣한국어(질문 답변) 등 3개국(國)의 나랏말(國語)를 사용해서야 겨우겨우 의사전달(意思傳達)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이런 상황은 각 연구소를 돌며 이루어진 미팅에서도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혹시라도 러시아에 오실 일이 있는 분들은 통역(通譯)할 사람을 선택하는데 신경을 많이 쏟으실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특히 기술적(技術的)인 일로 러시아를 찾을 경우에는 통역 선택이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要因)일 될 수 있으니까.

 

 

 

 

 

< 총장님과의 공식 미팅 >

 

 

 

 

톰스크 폴리텍(Polytechnics)대학(TPU), 톰스크시(市)는 인구 50만 명 중에서 10만 명이 학생일 정도로 전형적인 교육도시(敎育都市)이다. 시베리아에서 최초(最初)로 설립된 국립대학(1888) 및 공과대학(1900)·교육대학·의과대학·토목공학대학등 6개의 대학(大學)과 여러 기술연구소들이 밀집(密集)되어 있는데, 이번에 우리가 방문한 폴리텍대학은 1900년에 설립된 종합대학(綜合大學)이지만 공학(工學)부문에 특화를 시켜서, 물리학, 인공지능, 천연자원, 전력, 우주항공 등 수많은 분야(分野)의 연구소(硏究所)를 운영하고 있다. 10,800명의 학생이 수학(修學)하고 있으며, 180명의 정교수와 790명의 보조교수, 그리고 370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된 교수진은 러시아 108개 공과대학중 제2위로 평가받은 바 있음,

 

 

 

 

 

 

 

 

 

 

 

대학은 땅이 넓은 나라답게 좌측에 대로(大路), 우측에 학교건물들, 그 사이로 인도(人道)를 만들어 놓았다. 특이한 점은 대학 캠퍼스 안에 일반인들이 거주(居住)하는 주택(住宅)들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다만 학생들을 위한 편의(便宜)시설 외에는 거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마지막 토론에 앞서 톰스크 대학 박물관(博物館)에 들렀다. 박물관에는 톰스크 시에 대한 역사(歷史 : 톰스크는 '대제(大帝)' 칭호를 듣는 황제 중 한명인 여제(女帝), 예카테리나 대제의 명령으로, 영토 확장과 시베리아 개척을 위해, 오비강(江)의 지류인 톰강(江) 연안에 건설되었다. 1604년에 축조되었다하니, 3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와 톰스크 대학의 역사, 그리고 업적(業績)들에 대한 기록들이 시대 순으로 진열되고 있다.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맨 마지막에 전시(展示)된 우주왕복선(宇宙往復船)인데, 이 학교에 소속된 많은 인재(人才)들이 개발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 톰스크대학을 빛낸 교수님들의 사진, 우리 한국계 교수님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

 

 

 

박물관의 옆방은 기술(技術)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이 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들을 분야별로 전시하고 있는데, 기술협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전문가(專門家)들을 만나기 전에 먼저 원하는 기술을 설명(說明)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박물관과 기술관을 관람한 후에는 미하일교수가 담당하고 있는 로봇연구실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공식일정(公式日程)에는 없었지만 우리 회사에서 로보파크(ROBO Park)라는 로봇 관람시설(觀覽施設)을 운영하고 있고, 또한 각종 ‘로봇 경기대회’를 개최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양 시설(施設) 간에 협력할 분야가 있을까 해서다. 방문 다음 날에 ‘로봇이 주어진 미션(mission)을 수행하는 과정(過程)’을 심사(審査)하는 ‘로봇 경기대회(競技大會)’가 열린다고 하는데도, 시설은 의외로 한적(閑寂)하고 우리 회사의 관련시설에 비해 많이 협소(狹小)했다.

 

 

 

 

 

로봇관련 시설을 둘러본 후에는 같은 건물에 있는 회의실에서 양 당사자(當事者)들이 이번 일정에 대한 논의(論議)에 들어갔다. 방문단 전원과 대학 측에서는 미하일교수 등 교수 및 산학협력단(産學協力團) 관계자들이 참석했는데 먼저 나의 ‘이번 일정에 대한 소감(所感)과 향후 계획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방문단들은 각자 준비해온 자료를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으로 발표하였고, 이어서 질문과 답변, 논의(論議)가 진지해지다보니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7명의 발표가 다 끝날 수 있었다.

 

 

 

오전의 공식 일정이 끝나고 우리 측에서 마련한 점심식사는, 톰스크에서 노보시비리스크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러시아 시슬릭(꼬치구이) 전문식당으로 정했다(물론 러시아 교수님의 추천이 있었다). 축사(畜舍) 안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 곰을 배경삼아, 톰스크대 교수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에 식당으로 들어선다.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 다양한 꼬치구이를 팔고 있는 식당은 허름한 외형(外形)에 비해 맛은 일품이었다. 점심에는 이곳에 유학을 온 한국인 학생들도 자리를 함께 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고작해야 2명뿐(국립대학 남학생 1명과 공과대학 여학생 1명)이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향수(鄕愁)를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다행이 학생들이 좋아해서 저녁 만찬(晩餐)에까지 참석을 시켰고, 교수님들께 우리들이 떠난 뒤에도 그들의 학교생활을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는 기회도 만들 수 있었다.

 

 

 

 

 

 

 

점심을 끝내자마자 시내에 있는 스포츠센터로 향한다. 톰스크대의 학생들이 교양(敎養)과목으로 이수하고 있는 스키(ski)를 우리들에게도 직접 체험(體驗)해 보라며 잡은 일정이다. 스키장은 평평한 운동장(運動場), 주변은 온통 자작나무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라운드(ground)는 두텁게 눈이 쌓여 있다. 운동장 트랙(track)을 도는 크로스컨트리(cross-country)가 오늘 우리가 체험하게 될 종목인 것이다. 운동장에는 교수 몇 분과 현지의 TV방송국 기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의 일정을 취재(取材)하겠다며 나온 것이다.

 

 

 

 

 

 

 

 

 

스키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몸매에 쫙 달라붙은 스키복을 입은 러시아 여학생들이 보이는 것이다. 또 다시 눈이 즐거워진다. 러시아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소감을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팔등신의 미녀(美女)들’라고 할 것이다. 지금은 겨울의 막바지, 날씨가 조금 풀렸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털 코트를 입고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계절(季節)이다. 이런 서늘한 계절에도 젊은 여성들은 하나같이 미니스커트를 입었거나, 아니면 몸에 찰싹 달라붙은 스판(spandex) 계통의 바지들을 입고 있다. 날씬하게 뻗은 다리들은 예술품(藝術品)이라고 과언(過言)이 아닐 것이다. 거기다 얼굴까지 자그마하니 눈초리를 돌리기가 서운할 정도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파리의 패션쇼모델들 절반이 러시아 미녀(美女)들이라고 했다. 그가 한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시베리아의 마지막 날, 계획되어 있던 토의시간은 귀국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갖기로 하고 국제선(國際線) 비행장이 있는 노보시비리스크로 향한다. 9시 출발시간에 맞춰 켄체로프교수님과 알렉세이교수님이 마중 나오셨다. 특히 알렉세이교수는 5시간이 넘게 걸리는 노보시비리스크까지 따라오겠다고 우긴다. 겨우겨우 사양하고 우리끼리 노보로 향한다. 물론 통역(通譯)과 동행하는 것은 필수, 이곳 러시아에서는 영어(英語)를 알아듣는 사람이 전무(全無)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통역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마신 술 탓인지 일행들 얼굴색들이 좋지 않다. 다들 입만 뻥긋하면 김치와 얼큰한 라면이 흘러나오고 있다. 채 일 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조국(祖國)의 음식들이 눈앞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 톰스크에서 노보시비리스크로 나오는 도로에서 본 풍경 >

 

 

 

 

 

 

 

노보에는 2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국제선(國際線)대기실에 짐을 맡겨놓고 시내로 나간다. 다들 무조건 ‘한국(韓國) 식당’으로 가잔다. 핸드폰에서 검색한 한국식당(오직 한 곳)을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찾아가보지만 결과는 공장지역의 뒷골목, 상점이나 식당은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보아도 ‘없는 전화번호입니다.’ 별수 없이 톰스크대학 소속 차량운전자분이 추천하는 러시아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다행이도 음식(난 양고기 볶음과 맥주 음료)은 우리들의 입맛에 딱 맞는다. 행여 느끼할까봐 걱정하던 일행들의 얼굴에 화색(和色)이 돌기 시작한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노보시비리스크 시내 투어(tour)에 들어간다. 전문가이드가 없기 때문에 우선 레닌광장(廣場)으로 방향을 잡는다. 레닌 광장은 어느 도시에나 있고, 또한 그 도시의 가장 번화가(繁華街)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노보시비리스크의 레닌광장(廣場)에는 오페라하우스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광장 옆으로 시 청사(市 廳舍)와 필하모니오케스트라 건물이 배치(配置)되어 있다. 그리고 광장의 전면(前面)에는 기단(基壇)을 쌓고 중간에 레닌(Lenin)의 동상(銅像), 그리고 레닌동상의 양쪽에는 학생 및 군인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노보시비리스크(Novosibirsk)시는 러시아에서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어 세 번째 규모의 도시로 노보시비리스크주(Novosibirsk Oblast)의 수도이기도 하며, 시베리아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도시가 생긴 것은 1893년으로 Ob강을 가로 지르는 시베리아 철도(Trans-Siberian Railway)가 건설되면서 부터이며,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 지역을 관통하는 중요 거점(據點)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Novosibirsk Tolmachevo Airport 공항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러시아의 여러 도시을 연결시키고 있다.

 

 

 

 

 

시내 투어를 끝내고 슈퍼마켓(supermarket)에 들러 회식용 보드카 몇 병을 사가지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온다. 국내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이곳을 00:30분에 출발해서 중국의 베이찡공항을 거쳐 내일 오후에 최종목적지인 김포공항에 우리를 내려놓게 된다.

 

 

 

 

 

 

 

비행기를 갈아타야할 베이찡공항, 도착지(到着地)는 2010년 올림픽 때에 지어졌다는 신공항(新空港)인데, 우리가 갈아타야 할 비행기는 옛날 공항에서 출발한단다. 따라서 입국신고(入國申告)와 출국신고(出國申告) 등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 입국신고를 한 후, 비행장을 빠져나와 전철(電鐵)을 이용해서 옛날 공항으로 이동(移動)한다. 베이찡공항에서 6시간을 게긴 뒤에야 우린 최종목적지인 김포로 출발할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혹시라도 한국식당이 보일까 찾아봤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공항 대기실에 있는 식당들은 하나같이 중국식당 일색(一色)이었다.

 

 

 

 

 

 

 

 

 

 

 

 

프랑스 방문 일정

2.16,       늦은 오후에 파리도착

2.17,       북프랑스의 뷰르 소재 폐기물실험실 방문 관계자 면담

2.18,       북프랑스의 로브 소재 폐기물처리장 방문 관계자 면담

2.19.       파리시 소재, 프랑스 원자력청에서 한불 원자력전문가 미팅

2.20,       남프랑스 오랑쥬 소재 마꿀 비지아톰 방문 관계자 면담

            아비뇽시 경유, 마르세유에서 숙박

2.21,       파리로 귀환, 간단한 시내 투어 후 출국  

 

 

 

▼  도착한 첫날 호텔로 가는 길에 잠깐 들른 에펠탑의 야경 

‘제1회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조형물로서 당시 철강사업을 하고 있던 ’구스타브 에펠‘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당시 아시아에서 청나라와 일본 조선이 참석했는데, 우리나라는 가마와 화문석이 전시되었다한다). 2년만(1887~1889)에 지어졌으며, 모든 구조물은 철로 만들어졌고 최고 높이는 324m...

 

 

 

 

 

 

 

 

 

 

 

▼  도착한 다음날부터 이틀간의 일정은 북프랑스의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방문, 이곳에서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영구저장하고 있으며, 지하 400m에서 고준위 폐기물의 영구처리를 위한 연구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우리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의미인지 입구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엔 프랑스 원자력청에서의 전문가 미팅... 빽빽한 일정으로 사진 찍을 여유조차 없었다.

 

 

 

 

 

 

 

 

 

 

▼  아비뇽 城(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城郭都市 아비뇽은 1309년 교황 클레멘트 5세에 의해 그의 거주지로 결정되었다. 1309년에서 1377년까지 로마 대신 교황청이 존재(교황청의 바빌론 유배로도 불리운다)했던 비운의 도시이다. 당시는 교황의 힘이 약했던 시절로 교황이 두 명이 존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은 프랑스왕 ‘필립 4세’의 강요가 제일 큰 이유... 당시 이곳에서 생활했던 7명의 교황과 2명의 대립교황(교회의 분열로 2명의 교황이 동시에 존재했던 시기이다)들은 모두 로마로 돌아가 생을 마쳤단다. 

 

 

 

 

 

 

▼  교황의 궁전 옆에 위치한 ‘노트르 담 데 돔 성당’  

 

 

 

 

 

 

 

▼  城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교황의 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은 비록 낡았지만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영광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교황청의 뜰에서 열리는 ‘아비뇽 연극축제’에는 여행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김덕수 사물놀이 패’가 비 초청 팀으로 참가해서 각광을 받았던 연극축제이다.  

 

 

 

 

 

 

 

 

 

 

▼  ‘노트르 담 데 돔 성당’을 지나 오른편 경사로를 올라가면 나오는 ‘롯셰 데 돔 공원’은 아비뇽에서 가장 높은 바위지대이다.  

 

 

 

 

 

 

 

▼  아비뇽의 다리

12세기 후반 론강에 세워진 석조다리, 어느 수사님이 론강 건너에 사는 서민들이 아비뇽城안으로 올 때, 배를 이용하는 불편을 없애고자 다리를 놓으려 했으나 城안 부유한 주민들의 호응이 없자 수사님 혼자서 건설을 시작한 다리. 그러나 이 다리는 끝내 완공을 보지 못했다. 거기다 홍수로 인해 몇 개의 교각까지 유실된 비운의 다리이다. '아비뇽의 다리에서 춤을 추자, 춤을 추자…….' 는 가사로 시작되는 ‘아비뇽의 다리위에서’라는 민요로 우리에게 친숙한 유서 깊은 다리이다.  

 

 

 

 

 

 

 

 

▼  ‘江의 도시’ 또는 ‘江風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아비뇽은 외곽까지 합치면 인구 30만이 넘는 제법 큰 도시이지만 느낌은 자그마한 소도시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성곽이 구도시를 둘러싸고 있고, 그 밖으로 론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이곳에는 앙글라동 미술관이 있고, 마네, 세잔느, 드가, 고흐,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관람은 생략, 어제 파리의 미술관에서 그들의 작품을 이미 구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  론강 

길이 약 810km. 유역면적 약 10만㎢. 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가까운 알프스산중에 있는 론빙하에서 발원하여, 베르너알프스와 바른알프스와의 사이의 발레 지방을 서쪽으로 흘러 레만호(湖)로 흘러든다. 론강은 대체적으로 급류를 이루어 수상교통로로서의 가치는 적으나, 알프스의 융설(融雪) 등에 의해서 수량은 프랑스의 하천 중 가장 많다.   

 

 

 

 

 

 

▼  마르세유시가지의 야경

마르세유는 파리 남쪽 797km, 지중해 리옹만(灣) 내의 크론곶과 크르와제트곶 사이에 있는 천연의 양항으로 프랑스의 무역항이며 대도시이다.

 

 

 

 

 

  

 

▼  마르세유 市街地는 마르세유만의 안쪽에 있으며, 그 배후를 석회암 丘陵이 둘러싸고 있다. 

 

 

 

 

 

 

▼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마르세이유의 남쪽 언덕 위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뱃사람들이 수호신으로 받들고 있다. 옛날 이곳 여성들이 고기잡이를 떠난 낭군들을 기다리며 무사귀환을 기도드리던 곳이란다.  

 

 

 

 

 

 

 

 

 

▼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남쪽에는 건축가 르코르뷔지가 설계한 주택단지가 있다. 한국의 도시 설계전문가들이 벤치마킹했다는...

 

 

 

 

 

 

 

 

 

 

 

 

 

 

 

 

 

 

 

▼  항구 바깥의 포메그섬과 고대 그리스인의 거주지였던 라토노섬, 그 앞에 있는 조그만 섬이 소설 ‘몽테크리스트 백작‘으로 유명한 이프섬이다.

 

 

 

 

 

 

 

 

▼  센강

길이 776km로 프랑스에서 3번째로 긴 江. 부르고뉴, 상파뉴, 일드프랑스(파리분지), 노르망디 등을 거쳐 영국해협으로 흘러든다. 파리에 간 사람치고 이 강에서 유람선 한번 안타본 사람이 있을까? 난 주간과 야간에 각각 한번씩 골고루 타봤지만....  

 

 

 

 

 

 

 

▼  느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de Notre-Dame de Paris)

파리의 시테섬에 있는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성당으로 ‘노틀담이 꼽추’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공사는 1163년에 시작되어 1250년에 완성되었다. 쉴리 주교의 지휘로 착공하여 루이 9세 때 완공된 것이다. 그 후에도 부대공사는 계속되어 18세기 초엽에 측면 제실(祭室)의 증설로 겨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노트르담의 어원은 ‘성모 마리아’란 뜻으로 이곳 외에도 프랑스 여러 곳에 노뜨르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당이 있으며, 이 성당은 뒤편에 파리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미 두 번을 다녀간 인연으로, 방문은 사양하고 성당 바로 곁에 있는 카페에서 생맥주로 시간을 때운다. 관광객들일까? 빈자리가 나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  몰려드는 노트르담성당의 관광객으로 인해 성당 주변은 교통체증... 주민들의 원성으로 지금은 1Km이상 떨어진 곳에 주차가 가능하다. 슬그머니 시테섬 근처 도로에서 하차하는 실례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 다리 주변엔 시에서 만든 무료 스케이트장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