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모텔 앞으로 나간다. 아침 6시에 시작된다는 트레킹(trekking)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아침 화장까지 마치고 나오느라 늦장을 부린 아줌마들로 인한 작은 해프닝(happening)을 뒤로 하고 사곶마을까지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이 트레킹은 사곶마을에서 진촌마을까지 이어지는 1.8Km의 산길을 따라 걷게 되는데, 산행이라기보다는 산책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산이 언덕을 연상시킬 정도로 낮은데다가, 그나마 정상을 군부대(軍部隊)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산길은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진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산길은 일절 조망(眺望)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답답한 느낌, 그저 가끔 나타나는 군부대의 철조망과 길가에 설치된 체육시설, 거기다 조금 더 호사(豪奢)를 부린다면 길가에 핀 들꽃과 기괴(奇怪)하게 생긴 야생(野生)버섯을 보는 일 정도이다. 백령도 지도(地圖)에 표기되어 있는 산이라고는 용기원산이 유일하기 때문에 용기산을 다녀 왔나보다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용기원산이 아닌 다른 이름 없는 산이었다.

 

 

 

 

 

 

 

 

 

백령면 소재지인 진촌리

 

 

용기포 마을 바닷가에 세워진 국기봉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그 수가 46개로서 천안함에서 순국한 장병들의 숫자를 나타내고 있단다. 원래는 47개로서 이 마을 가구 당 1개씩 세웠는데, 천안함사태 이후부터 마지막 국기봉 하나는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은 채로 비워놓고 있다고 한다(가이드의 설명).

 

 

 

용기포의 옛 선착장 오른쪽 해안에는 아주 근사한 비경(秘境)이 있다. 옛 선착장 초입에 자리한 해경 백령출장소 옆의 계단을 지나 10여분만 걸으면 즐비한 기암절벽(奇巖絶壁)과 아담한 몽돌해변이 인상적인 '등대해안'에 도착한다. 등대(燈臺)가 서 있는 용기원산(136m)과 용기포 구선착장(舊船着場 : 예전에는 이곳으로 여객선이 들어왔다) 사이에 위치한 이곳 해안에는 커다란 해식(海蝕)동굴이 형성돼 있어 풍광이 다채롭다.

 

 

 

 

 

 

섬의 북쪽에 있는 두무진을 ‘서해의 해금강’이라 부른다. 그만큼 뛰어난 웅장미(雄壯美)를 자랑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 침식해안(浸蝕海岸)도 결코 두무진에 뒤지지 않는다. 두무진에 비해 비록 웅장미는 떨어지지만 바위들은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각기 다른 모습이다. 다양하고 기묘(奇妙)한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펼쳐지고 있어 가히 자연풍광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침식해안에서 가장 뛰어난 곳은 단연 침식동굴이다. 그중에서도 십(十)로 침식된 동굴이 단연 백미(白眉)이다. 서해바다에서 밀려오는 크고 억샌 바닷물이 이런 비경을 만들어 냈다. 오랜 세월동안 힘찬 물살을 받은 백령도 절벽(絶壁)이 깎이고 구멍이 뚫리면서 저렇게 기묘(奇妙)한 자연 비경(秘境)을 연출해 낸 것이다.

 

 

 

 

 

백령도의 야트막한 산 정상, 북녘 땅 황해도를 지척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심청각(沈淸閣)이 세워져 있다. 백령도가 심청전의 무대였던 사실을 기리기 위해 심청이가 공양미 300백석에 몸을 던진 북한의 장산곶 인당수와 인근 대청도 사이의 연봉바위가 동시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건립했다. 그 옛날 심청이가 뛰어들었다는 절벽(絶壁)아래의 인당수는 민감한 군사지역(軍事地域)이라서 남북한 어느 쪽에서도 접근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덕분에 중국(中國) 어선들만 희희낙락(喜喜樂樂)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인망(底引網) 그물을 이용해서 고기들을 싹쓸이 해 간다는 얘기이다. 하긴 중국인들은 그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그럴 만도 하겠다.

* 예로부터 인당수를 지나는 배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한다. 해저(海底)의 바위에 부딪친 해류(海流)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탓에, 수많은 배들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주(船主)들은 용왕(龍王)님의 심술을 달래기 위한 제물(祭物)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에 순결한 숫처녀만 바쳤던 것을 보면, 여자를 보는 용왕님의 시각(視覺)도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가 보다.

 

 

심청각 뒤에는 해풍(海風)에 치마를 날리며 바다로 뛰어드는 심청의 동상(銅像)이 있다. 만일 슬픔에 잠긴 그녀의 마음을 공감(共感)하고 싶다면 심청각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녀의 기구하고도 극적인 일생이 아름다운 조형물로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용왕의 도움으로 환생한 심청이 황후마마가 되고, 아버지가 눈을 뜨게 되는 클라이맥스(climax)는 압권(壓卷), 이보다 더 나은 줄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인생 역전(人生 逆轉)은 평범한 우리네들이 가장 갈망하는 삶일 테니까...

 

 

 

심청각에 도착하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언덕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탱크이다. 그리고 잠깐 눈을 돌려보면 곡사포(曲射砲) 한 문 (門 : 포나 기관총 따위를 세는 단위)이 북한을 향해 머리를 치켜세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제도 용기포 선착장 근처에서 외지인(外地人)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장갑차(裝甲車)를 볼 수 있었는데, 아마 노후(老朽)된 군(軍) 장비들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분단(分斷)된 조국의 현실을 일깨워 주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어제 본, 흑룡이라는 부대에서 사용했던 상륙함은 귀엽기까지 해서 눈요기꺼리로도 충분했다.

 

 

 

심청각을 떠나 콩돌해안으로 가는 길에 잠깐 약쑥매장에 들른다. ‘지역경제를 위한 길이랍니다.’라는 가이드의 인도로 들어선 매장에는 진액(津液)과 환(丸), 그리고 향(香) 등 약쑥으로 만든 갖가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보약(補藥)을 팔고 있나 보다. 보약을 선전할 때에는 보통 대부분 ‘남성의 성기능(性機能) 강화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는 효능(效能)을 가장 먼저 내세우는데, 이곳에서도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게 남성의 성기능 강화이기 때문이다. 상품을 한 아름씩 안고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자들이다. 자기 남편에게 만족하는 여자들이 극히 드물다는 속언(俗言)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하긴 그래서 ‘이웃집 남자’라는 신조어(新造語)가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콩돌해안(海岸 : 천연기념물 제392호), 두무진 해안의 반대편 해안에 위치한 콩돌해변(海邊)도 백령도가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길이 1㎞가량의 해변 전체가 콩처럼 자잘한 돌로 가득하다. 돌의 크기와 모양이 진짜 콩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 하긴 얼마나 콩과 닮았으면 이름까지도 콩돌이라고 지었겠는가. 이 콩돌들은 백령도에 흔하게 분포된 규암이 억겁(億劫)의 세월동안 파도에 깎이고 씻겨 지면서 만들어 낸 모양이란다. 돌의 색깔도 매우 다채롭다. 보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은 흰색, 갈색, 회색, 적갈색, 청회색, 청록색 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색적(異色的인) 콩돌은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神秘)한 경험이며, 거기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산책(散策)까지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호사(豪奢)는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같이 간 사람들이 너나없이 신발을 벗어 들고 걷고 있다. 발바닥 지압에 좋다는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가 있었는데, 어느 누가 신발을 벗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맨발로 바닷물을 첨벙이는 사람들과,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바다, 그리고 바닥에 깔린 부드러운 자갈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영화(映畵) 속의 한 장면을 연출해 내고 있다.

* ‘여기의 돌을 갖고 나가면 3년간 집안에 우환(憂患)이 끊이지 않는답니다.’ 가이드가 잔뜩 겁을 주는 것을 보면 꽁돌을 몰래 숨겨나가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모양이다. 자연을 보존(保存)하기 위한 얕은 심리전이겠지만 고향을 지키려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아 보기가 좋다. 여름철에는 이곳에서 자갈찜질을 하면 건강에 좋다고 한다.

 

 

 

 

 

용트림 바위는 절벽(絶壁)위에 만들어진 전망대(展望臺)의 바로 아래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마치 용(龍)이 하늘로 승천(昇天)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위 스스로 하늘을 향해 나선처럼 꼬며 오르는 형상(形象)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곳에는 많은 갈매기 가마우지가 서식(棲息)하고 있다. 깎인 절벽 곳곳에 둥지를 튼 갈매기 떼들의 모습이 평소에도 장관(壯觀)을 이루는 곳이다. 천안함의 함미(艦尾) 인양(引揚) 시 모든 방송사들이 이곳 용트림 전망대를 중계 포인트로 삼았었다.

 

 

 

 

 

용트림바위 전망대(展望臺)에서 왼편에 보이는 나무테크 계단을 밟고 오르면 서해바다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그 한 가운데에 면봉바위가 있다. 전망대에서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연봉바위는 효녀 심청의 설화(說話)와 관련이 있는 바위이다. 심청이 바다에 몸을 던진 사연에 감동한 용왕이 심청을 연꽃에 태워 다시 바다위로 보냈는데, 그 연꽃이 바로 백령도 남쪽 연화리 앞바다에 있는 연봉바위 근처에 떠올랐다는 것이다. 참고로 연봉바위는 천안함이 좌초(坐礁)되었던 곳이다.

 

 

 

 

둘째 날 점심메뉴는 짼지떡과 메밀칼국수이다(메밀칼국수가 싫은 사람들에게는 메밀냉면이 제공된다). 백령도의 대표적 토속(土俗)음식을 맛보지 않고 육지로 나갈 경우,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된다니 어떻게 해서라도 꼭 먹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칼국수의 맛은 내륙(內陸)에서 맛보던 칼국수에 비해 썩 뛰어나지 못했고, 짼지떡은 짜디 짠 것이 싱거운 음식들로 길들여진 도회지(都會地) 사람들 입맛에는 별로였다.

* 겨울이면 백령도 주민(住民)들은 동네사람들끼리 둘러앉아 '짼지떡'을 해먹는다고 한다. 황해도 사투리(方言)로 김치를 '짼지'라고 하는데, '짼지 떡'은 메밀로 반죽한 피에 총총 썬 김치와 자연산 굴로 속을 채운 만두 같은 떡이다. 끓는 물에 익히고 참기름에 잘 버무려 주면 '짼지 떡'이 완성된단다. 백령도 전통음식은 이 외에도 메밀냉면과 메밀칼국수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성게와 메밀이 만나는 ‘성게 칼국수’의 맛이 환상적(幻想的)이라는데, 운(幸運)이 따르지 않았던지 우리가 들른 음식점의 메뉴판에는 성게칼국수가 적혀있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에 들른 곳은 ‘백령도 특산품 판매장’ 이곳에서는 돌미역과 다시마, 까나리액젓 등 백령도에서 생산하는 특산품(特産品)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콩돌해안에 가기 전에 들렀던 곳에서 팔던 약쑥으로 만든 제품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지역경제를 위해서 들르는 것입니다.’ 가이드의 충심(忠心)이 전이(轉移)되었는지 사람들마다 특산품들을 한 아름씩 안고 버스에 오르고 있다. 같이 간 집사람까지 동참한 덕분에 난 의도하지 않았던 포터(porter) 역할까지 해야만 했다.

 

 

특산품 매장’을 둘러보고 여객선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잠깐 ‘백령심청 연꽃마을’에 들렀다. 연꽃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이국풍(異國風)으로 지어진 펜션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연꽃이 만발한 널따란 연꽃방죽, 길가에는 남성의 성기(性器)를 형상화한 장승들이 눈길을 끈다. 연꽃마을을 조성한 사람은 김진일씨라고 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외진 곳에다, 집을 짓고 연못을 만드는 등 심청이 테마마을을 만든 그는, 아이러니(irony : 모순)하게도 백령도 원주민(原住民)이 아니고 다른 지역 출신이란다. 그는 이곳에다 집을 짓고, 연못에 연꽃을 심었다. 그리고 곳곳에 독특한 장승을 만들어 세웠다.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조형물(造形物)이 있는 곳’ 가이드의 말마따나 아줌마들이 좋아하게 생겼다. 너무도 튼실한 남성의 상징물(象徵物)이 늘어서 있으니까. 육지로 돌아가는 배의 출항시간이 빠듯하니 대충대충 둘러보라는 가이드의 말을 착실하게 따른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커다란 허탈감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남자들이 좋아하는 목각(木刻)들이 널려있단다. 그럼 테마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얘기를 해주어야지 이 나쁜 사람아!!!

 

 

 

 

 

 

선유도 나들이

 

 

 

일정 : ‘011.7.18(월)-19(화)

코스 : 군산항→선유도→선유봉→장자도→대장도(대장봉)→명사십리해수욕장→무녀도→군산항→신시도 새만금공원→춘장대해수욕장 부근 식당(서천군 서면)→신성리 갈대밭(서천군 한산면)

함께한 사람들 : 우리부부와 큰 처제 부부, 둘째 처제 부부, 그리고 큰 처남

 

 

선유도 개관 : 예부터 섬마다 기암괴석이 불끈 솟아난 선유도 일대를 '산(山)이 무리(群)지어 있다' 해서 군산이라 불렀다. 麗末 鮮初.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선유도에 수군기지가 들어섰다. 이름하여 '군산진'이다. 약삭빠른 왜구들은 군산진의 방어를 피해 내륙으로 침략해 들어가자, 조정에서는 군산진을 지금의 군산 땅인 내륙으로 옮겼단다. 이 때문에 내륙의 땅이 졸지에 군산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고, 수군진이 떠나간 선유도 일대 섬은 '옛 군산'이란 뜻으로 '옛 고(古)'자를 붙여 '고군산'이라 불리게 됐단다.  

 

 

 

선유도를 들어가려면 우선 서해안(西海岸)의 금강하구에 있는 군산시(群山市)로 가야한다. 군산어시장을 찾아 광어회와 소라를 구입하여 얼음으로 포장한 다음 연안여객터미널로 나간다. 터미널은 새로 신축한 것처럼 산뜻한 건물, 선유도행 여객선은 평균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하고 있다. 여객선은 고속선과 쾌속선으로 구분되는데 쾌속선을 타면 약 30분 정도의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단다. 마음은 쾌속선이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고속선인 옥도페리호를 타고 군산을 출발한다. 드디어 1박2일간의 섬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다 위를 얼마쯤 달렸을까, 서성거리는 사람들의 인기척 때문에 눈을 뜬다. 아마 섬에 가까워졌나보다. 선미(船尾) 쪽으로 나가보나 아직은 망망대해(茫茫大海), 인기척을 찾아 뱃머리(船首)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늘이 아빠가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먼 바다 위에 자그마한 섬들이 하나 둘 떠오르고 있다. ‘저 섬은 값이 얼마나 될까요?’ 뜬금없는 질문... 식수도 없고, 거기다 배를 대기도 쉽지 않은 저런 섬에 무슨 흥미가 있으랴마는, 모처럼 흥이 오른 하늘이 아빠의 흥을 깨지 않기 위해 박자를 맞춰준다.

 

 

 

 

선유도가 가까워지면 우선 선유도의 아이콘이라는 망주봉 눈에 들어온다.

섬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는 선유도(仙遊島), 진봉반도(進鳳半島)에서 남서쪽으로 약 32여㎞ 떨어진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의 중심 섬. 본래는 분리된 3개의 섬이었는데 현재는 육계사주(tombolo , 陸繫砂洲 : 퇴적된 모래인 사취(spit)가 길게 연장되어 섬과 육지를 연결시킨 것)와 해안사구(coastal sand-dune, 海岸砂丘 : 해류에 의하여 운반된 모래가 낮은 구릉 모양으로 쌓여서 형성되는 지형)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으로 되었다. 육계사주와 해안사구는 세사(細砂)로 구성되어 있어서 현재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선유도에는 자동차(自動車)가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동차는 있었다. 비록 몇 대 되지는 않지만... 대신 섬 안에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한 전동카트가 운행되고 있었다. 선유도에 도착하니 미리 예약을 해둔 ‘신선산장’에서 전동카트를 내 보내 주었다. 바리바리 싸들고 간 짐들을 둘러메고 숙소까지 갔더라면, 아마 오후 관광은 포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 무더위에 말이다. 카트가 출발하자마자 또 다시 하늘이 아빠의 입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두서없이 쏟아내는 질문, 묻고 있는 사람조차도 질문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냥 지나쳐버려도 나무랄 사람이 없겠건만, 마음씨 착한 산장의 셋째 아드님은 하나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대꾸를 해주고 있다. ‘행여나 화를 내지 않을까?’ 괜히 옆에 있는 사람들 마음만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여객선의 선착장(船着場)은 선유1구, 숙소인 ‘신선산장’은 선유3구에 있으니 거의 2Km, 꽤나 먼 거리이다. 급하지 않는 카트는 주변의 풍광을 보여주면서 느긋하게 달려간다. 명사십리해수욕장을 지나 망주봉에서 오른편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신선산장’이다. ‘산장(山莊)’이라는 이름 때문에 건물이 산속에 있으려나했지만, 뜻밖에도 해변에 한쪽 면을 접하고 있는 아담한 민박집이었다.

 

 

 

 

 

선유도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망주봉의 우뚝 솟은 암봉이 저만큼에 우뚝 솟아있고, 그 앞으로는 명사십리의 백사장이 펼쳐지고 있다. 백사장은 앞으로는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 그 뒤에는 바닷물이 찰랑이는 갯벌이다.

* 명사십리해수욕장의 백사장 건너편에 있는 망주봉(望主峰)은 옛날 유배되어 온 충신이 귀양살이를 하면서 매일같이 산봉우리에 올라 한양 땅만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산장에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산행에 나선다. 오늘은 우선 선유봉과 대장봉을 오르고, 망주봉은 숙소 바로 곁에 있으니 내일 아침에 오르면 될 것이다. 산을 오르는 것 자체가 싫다는 하늘이 엄마는 당연히 막사감시 요원(?)... 명사십리해수욕장을 지나 장자도 방향으로 진행하만 ‘선유봉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왼편으로 접어든다. 산의 초입은 어디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흙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5분 정도 올라가면 바위산으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소나무가 대부분인 나무들도 바닷바람에 시달려서인지 크지도 않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제멋대로 서 있다. 산의 초입에서 20분이 채 안되어 정상에 올라서면 광활하게 펼쳐지고 있는 서해바다가 아득하다. 발아래에는 주변의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왼편의 선유대교로 이어진 무녀도 너머로는 신시도가 바라보이고, 오른편으로는 장자대교 너머로 장자도와 대장도가 도열해 있다.

 

 

 

 

 

 

 

 

선유봉을 내려와 해 질 녘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는 '장자대교'를 건너 대장봉으로 향한다. 자동차나 카트는 애초부터 다닐 수가 없고, 그저 자전거나 넉넉히 지나다닐 정도의 작고 귀여운 다리다. 포구에 한가로이 떠있는 동네 어선들을 눈 아래로 구경하며 장자대교를 건너면 커다란 바위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선 대장도가 나타난다. 민박집 사이를 지나면 길의 끄트머리쯤에 산으로 오르는 진입로가 보인다.

* 장자도는 고군산군도의 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힘이 센 장사가 나왔다 하여 장자섬이라고 불린단다. 선유도와는 장자교로 연결되어 있으며, 섬 전체가 암석 구릉으로 덮여있어 주변 경관이 장관을 이룬다. 장자봉에는 장자할머니바위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대장봉의 초입에서 길손을 맞고 있는 나무 계단 길은 금방 끝나고, 이어지는 흙길을 타박타박 걸어 오르면 온통 초록뿐인 울창한 숲 속이다. 숲길 한가운데에 다 쓰러져 가는 목조건물이 한 채 있다. '어화대'라 부르는데 무속인(巫俗人)들이 찾아와 굿을 하거나 제(祭)를 올리는 곳이었단다. 무속인들이 숭배하는 대상은 바위산 끝에 뾰족하게 솟은 암봉인 '장자할미바위'다. 폐허(廢墟)의 앞에 세워진 팻말에는 섬에 살던 할머니가 과거를 보러 간 할아버지를 기다렸는데, 낙방한 할아버지가 첩을 끼고 돌아오자 그만 돌이 됐다는 ‘장자할미바위’의 전설이 적혀 있다. 지아비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전통적인 우리네 여인상, 믿었던 낭군으로부터 배신당한 여심(女心)이 거기에 있었다. 폐허 뒤로 어슴푸레 보이는 할미바위는 무속인들이 둘러놓은 붉은 천과 푸른 천을 마치 넥타이처럼 두르고 있다.

 

 

 

 

 

폐허 앞에서 방향을 틀면 곧바로 암벽이 발길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암벽은 수직으로 서있지도 않을뿐더러 밧줄이 매어져있기 때문에 아이들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평소에 암벽을 즐기는 난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도 여유 있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서면 가까이 발밑으로는 대장도에서 장자도를 잇는 다리가 보이고, 장자도의 끝에서는 다시 선유도를 잇는 장자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는 무녀도와 일대의 섬들의 풍광이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하다. 섬마을마다 포구에 매어 놓은 고깃배들이며 고기잡이에 나선 어선들이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더없이 평화롭고 고즈넉해 보이고 덩달아 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구태여 서두를 필요가 없다. 잠시 바위에 앉아 망중한(忙中閑)을 즐겨본다.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와 평화로운 섬마을. 시원한 바닷바람 따라 흘러다니는 비릿한 바다 냄새... 이런 풍경 속에 앉아 있노라면 육지에 두고 온 번잡스러운 일 따위는 다 잊어지고 만다.

 

 

 

해가 저물려면 아직도 시간이 꽤 남았지만, 일찌감치 저녁상을 차린다. 1박2일의 섬 나들이는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눈요기를 빼 놓을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군산에서 사온 회는 여자들의 회덮밥, 남자들은 삶은 소라를 안주로 술부터 들이키기 시작한다. 들이킨다고 해봐야 나 혼자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열시가 넘어 술자리가 파한 후 해수욕장 산책 다녀오는 길에 게를 한 말 정도나 잡았다. 다음날 아침에 못 먹는 것이라는 주인 할머니의 말을 듣고 더 큰 실망을 했지만...

 

 

 

 

5시에 눈을 뜬다. 이렇게 일찍 눈이 떠진 것을 보면 평소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렵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모처럼 나온 여행인데도 집에서와 같은 시간에 눈이 떠지니 말이다. 창틀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일기예보에서 남동해안은 태풍 가온의 간접 영향권이라고 했는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오는데, 집사람이 따라 나선다. 행여나 망주봉에 오를까 걱정이 되어 감시(監視) 겸해서 따라나서는 모양이다. 이 정도 바람이면 아무리 강심장(强心臟)이라고 해도 어느 누가 저런 민둥 바위산을 오를까마는... 다시 숙소로 들어가 이번에는 카메라를 챙겨 숙소를 나선다. 일출사진(日出寫眞)이라도 몇 장 건져보기 위해서이다. 산장에서 10분 정도를 더 걸어 도착한 포구(浦口)의 방파제는 가까이 다가서기가 무서울 정도로 파도가 높게 일고 있다. 한 참을 기다린 끝에 낚은 사진 몇 장, 비록 구름의 방해를 받았지만 일출의 장관을 담을 수 있었다.

 

 

 

 

‘강풍주의보’에 겁을 먹다.

연안여객터미널에서는 배를 운행한다고 하지만, 여간 불안하지가 않다. ‘루다아빠만 고속버스로 올려 보내고 한 이틀 더 놀다 갑시다.’ 누군가의 농담이 있지만 다들 마음을 졸이기는 매 한가지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부랴부랴 선착장으로 나오니, 배의 출항시간은 아직도 한 시간 이상이나 남았단다.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무녀도까지 다녀오기로... 선유대교를 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轟音), 오토바이가 내지르는 소리다. 마후라가 터진 것일까? 속된말로 탱크의 엔진 소리보다 더 클 정도이다. 선유대교는 카트까지도 지나다닐 수 없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 밖에 없겠지만 정비를 해서 소리라도 좀 적게 하면 어떨까? 무녀도를 다녀오는 한 시간 동안 심심찮게 마주치는 오토바이의 굉음 때문에 내내 얼굴을 펼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섬과 친절한 주민들로 만들어낸 행복이 일순간에 날아가 버리다니....

 

 

 

무녀도에서는 바다 건너에 새만금 배수갑문의 섬 신시도의 대각산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가 선명하게 바라보인다. 저 섬에서 이곳 무녀도로 다리가 놓인다니 얼마 안 있으면 이곳을 찾기가 한결 편해질 전망이다.

* 무녀도는 선유도·신시도·장자도 등과 함께 고군산군도를 이룬다. 장구모양의 섬과 그 옆에 술잔처럼 생긴 섬 하나가 붙어 있어 무당이 상을 차려놓고 춤을 추는 모양이라고 하여 무녀도라 부른단다. 그러나 옛 이름은 서들이였다고 하는데, 이는 바쁜 일손을 놀려 서둘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부지런히 서둘러야 살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역은 넓어도 높은 산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북쪽 해안에는 간석지가 넓게 펼쳐져 염전이 많다.

 

 

 

 

명사십리 해안가는 고운 모래도 좋고 주변에 망주봉이라는 바위산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어 그 어디보다 멋진 바닷가 풍광을 뽐내는 곳이다. 누구라도 사진을 찍으면 멋진 작품사진이 될 수밖에 없다.

 

 

 

태풍에 쫒겨 선유도를 일찍 빠져나왔기 때문에 시간이 남는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군산에서 가까운 새만금방조제(防潮堤)에 들러본다. 새만금방조제의 배수갑문이 있는 이곳 신시도는 조금 전에 우리가 머물렀던 고군산열도의 한 축이다. 배와 승용차로 돌고 돈 끝에 원위치로 돌아온 샘이다.

* 새만금방조제 : 새만금간척사업의 1단계 사업으로 건설된 방조제로, 1991년 11월 16일 착공한 후 19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10년 4월 27일 준공하였다. 방조제와 간척지 조성이 마무리될 때까지 약 2조 9,0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여되었으며,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환경오염 문제가 제기되어 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한 찬반 논란이 빚어지면서 물막이 공사를 남겨둔 시점에서 공사가 2차례 중지되기도 하였다. 길이 33.9km, 평균 바닥 폭 290m(최대 535m), 평균 높이 36m(최대 54m)로, 세계 최장 방조제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주다치 방조제(32.5km)보다 1.4km 더 길다. 방조제 건설로 인하여 전라북도 군산시·김제시·부안군 공유수면의 401㎢(토지 283㎢, 담수호 118㎢)가 육지로 바뀌었는데 이는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간척지 조성으로 인하여 한국 국토 면적은 10만 140㎢에서 10만 541㎢로 0.4% 늘었다.

 

 

 

 

 

새만금방조제를 다녀왔는데도 이직도 시간은 여유롭다. 어떻게 하면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을까? 부지런한 집사람은 스마트폰의 기능까지도 부족하다며 소진이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드디어 선정된 곳이 서천군 서면 마량리 근처에 있는 ‘소문난 해물수제비’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숲'과 춘장대해수욕장 부근, 우리가 다음에 가려고 하는 갈대밭이 있는 한산면과는 반대방향이다. 아무리 돌아도 맛만 있으면 된다는 믿음으로 위안을 삼으며 도착한 식당은, 음식 맛은 차지하고라도 두 번 다시 찾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불친절하다. 맛도 별로이건만 심심찮게 보이는 것은 아마 이곳이 동백나무 숲과 춘장대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인 모양이다.

신성리갈대밭 : 서천군과 군산시가 만나는 금강 하구(서천군 한산면 신성리)에 펼쳐져 있는 갈대밭으로, 너비 200m, 길이 1.5km, 면적 10만여 평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며, 제방도로에 올라서면 드넓은 갈대밭이 눈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곰개나루터(진포)라고 불렀던 곳으로, 고려 말 최초로 화약을 가지고 왜구를 소탕시킨 진포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지역적으로 금강 하류에 위치한 까닭에 퇴적물이 쉽게 쌓이고 범람의 우려로 인해 강변 습지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 무성한 갈대밭이 조성되었다. 한국의 4대 갈대밭으로 꼽히는 동시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갈대 7선에 속한다. 각종 교육기관의 자연학습장은 물론 전국 사진작가들의 촬영장소로 인기 있으며, 최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