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12구간(푸른들 비단길)

 

여행일 : ‘23. 2. 4()

소재지 : 충북 옥천군 안남면과 동이면 일원

여행코스 : 말티마을말티고개위청동아래청동가덕교(실제는 청마대교를 건넜다)평촌삼거리미산마을종미마을안남면사무소(거리/시간 : 13km, 실제는 11.27km 3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대청호(大淸湖) 전국 3대 호수 중 하나로 2개 광역(대전·충북) 5개 기초(대전 대덕구·동구, 청주시·보은군·옥천군) 자치단체에 걸쳐 있으며, 둘레만도 무려 ‘500나 된다. 이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지는데, 그 야산과 호숫가·자연부락·소하천·옛길 등을 둘레길로 이은 다음 대청호 오백리길(220km 21개 구간으로 나누었다)’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은 열두 번째 구간인 푸른들 비단길(13km)’을 걷는다. 이 구간은 대청호의 본류인 금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대신 햇볕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강변길의 특성 상 여름철에는 지옥의 행군이 될 수도 있겠다.


 들머리는 말티마을 대청호오백리길 쉼터’(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TG를 빠져나와 금강로(영동방면)’를 따라 1km남짓 내려오다 우산로2(‘보청천을 건넌 다음부터는 575번 지방도)’로 옮긴 다음 강변도로를 따라 6km쯤 하류로 내려오면 청마농장(민박)에 이른다. 농장 앞에서 청마교를 건너 500m쯤 들어가면 정자(‘대청호오백리길 쉼터라는 간판을 달았다)가 들어앉은 널따란 광장이 나온다.

 푸른들 비단길이란 이름처럼 대청호 상류 금강(비단 ’)과 그 물줄기가 꿈틀대면서 빚어놓은 푸른 들녘을 끼고 걷는 구간이다. 덕분에 호젓한 강촌마을의 풍광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거기다 상고시대 때부터 이어져오는 문화유적(청마리 제신탑)’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트레킹을 나서기 전 청마리의 랜드마크인 제신탑(祭神塔, 충북 민속문화재 제1)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가로등에 매달려 있는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올라가니 옻배움터 표지판. 제신탑은 저 옻배움터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조금 더 들어가자 벽화를 그려놓은 창고가 나온다. 농촌이니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쯤으로 여기겠지만 사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열리는 탑신제의 행사장면을 그렸다. ‘탑신제란 민초들에 의해 전해져 내려오는 민속신앙으로 질병과 악귀를 쫓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洞祭). -솟대-장승의 순으로 제사를 올리며, 제사가 끝나면 농악대가 찾아다니며 굿을 하여 마을의 풍년과 편안함을 빈다고 한다.

 제신탑은 그 맞은편에 있다. 제신탑이란 마을의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던 곳으로 탑신제당(塔身祭堂)’이라고도 불리며, 그 기원이 마한(BC2-AD4)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 청마리의 신앙 유적은 원탑과 솟대, 장승, 산신당 등 복합적인 문화형태를 띤다. 탑은 절에서 흔히 보는 것들과는 달리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돌을 원추형(圓錐形)으로 쌓아올리고 그 꼭대기에 기다란 돌 하나를 세웠다. 곁의 작은 돌무더기에는 솟대(하늘과 땅을 연결하는)를 꽂아놓았다.

 장승은 길가에 세웠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나란히 서있는 게 보통인데, 이곳은 길의 양옆에 서서 수문장 역할을 자처한다. 또 다른 유적인 산신당(山神堂)은 뒷산에 있다고 한다. 소나무를 신목으로 모시는 자연신 형태를 띤단다. 하나 더, 저 장승은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의 정월 대보름에 새로 세운다고 한다. 새로운 민속 문화재를 만들어나간다고나 할까? 민속 문화재라는 게 본디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래전부터 행해온 신앙·세시풍속·생업·의식주 등 전통 사회의 생활문화가 담긴 물건을 모두 포함하니 말이다.

 마침 동네 주민들이 윤년인 올 정월 대보름(내일)에 새로 세울 장승을 제작하고 있었다.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는 현대, 그 이면에는 우리네 고유문화가 사라져간다는 그림자가 스며있다. 그것도 통신의 발달만큼이나 빠르게 소멸해 간다는... 그런 세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기네 전통 민속을 지켜나가는 저들이 존경스러운 건 나뿐일까?

 청마초등학교 옛터는 옻배움터로 다시 태어났다. 강의실과 전시·판매장 등을 갖췄다는데, 전국 유일의 옻산업특구(옻 재배에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췄단다)’인 옥천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긴 예로부터 옥천은 옻으로 유명했다. 옥천 공납품으로 건칠(옻나무 진을 말려 만든 약재)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에 전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옻샘이 남아 있는가 하면, 수령이 300년 가까운 옻나무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 옻과 관련된 지명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단다.

 12구간의 출발지임을 알리는 이정표(가덕 2/ 안터마을 5.7)는 창고 옆 삼거리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진행방향(가덕)의 표시가 조금 묘하다. 오백리길 홈페이지에서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라 했는데, 이정표는 금강 쪽(청마대교 방향)으로 안내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내려 받은 선답자의 ‘gpx트랙도 이정표처럼 강변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백리길 쉼터로 되돌아와 트레킹을 이어나간다. ‘gpx트랙이 지시하는 대로 금강을 오른편에 끼고 하류로 내려간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8. ‘마티마을 공동생활관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탐방로는 이제 후묵골로 들어간다. 완만한 경사의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진다.

 좁디좁은 입구와는 달리 골짜기 안은 꽤 널찍했다. 두세 채의 민가까지 들어섰으니 의젓한 마을이라 하겠다. 하지만 오르막길의 경사는 시간이 갈수록 가팔라진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3. 마지막 민가 앞에서 길이 뚝 끊겨버렸다. 선답자의 gpx트랙보다는 오백리길 홈페이지의 안내를 받는 게 옳다는 방증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되돌아 갈수야 없는 노릇. 주인장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앞마당을 가로지르고 본다. 그리고 주택 진출입로의 끝에서 포장 임도를 만났다. 오백리길 홈페이지의 지시대로 말티마을을 횡단했더라면 이 임도로 왔을 것이다.

 임도로 올라서니 금강이 얼굴을 내민다. 장수군의 신무산(뜬샘봉)에서 발원한 금강은 이 지역을 지나며 곳곳에서 산태극수태극을 만든다. 그리고 금강유원지를 거쳐 온 저 물줄기는 또 다시 굽이쳐 옥천1경인 둔주봉(屯駐峰)’으로 향한다.

 로버트 바크(Richard Bach)는 그의 저서 갈매기의 꿈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고 했다. 맞다. 지금 걷고 있는 이 임도가 그 증거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금강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니 말이다. 그러자 휘돌아가는 물굽이가 만들어놓은 모래사장과 고요하게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가 한 폭의 풍경화로 그려진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5. 임도로 올라선지 13분 만에 말티고개에 올라선다. 12구간에서 가장 높은 지점(해발 267m)이다. 그러니 벤치 하나쯤 놓아두었을 법도 하련만 막상 고갯마루에는 엉덩이를 댈만한 돌멩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나 더, 이곳에서 왼쪽 능선(사진에서는 오른쪽)을 탈 경우 탑봉으로 연결된다.

 고갯마루를 넘은 오백리길은 이제 위청동에서 올라오는 임도로 옮겨간다. 이후부터는 내리막길, 느긋하게 걷는데 눈에 익은 표지기(‘허총무는 오백리길을 리딩하는 청마산악회 요원이다)가 눈에 띈다. 서해랑길의 도반인 사슴과 구름님은 우리와는 다른 일정에 이곳을 다녀간 모양이다.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을 15분쯤 걷자 위청동마을이 나온다. 옛날엔 여섯 채 정도의 집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딱 한 채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러나 둘레길 나그네들에게는 남아있는 한 채가 더 소중하다. 농부소설가 김봉난할머니의 집이라니 말이다.

 할머니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현관문이 휑하니 열려있는가 하면, 마당은 잡동사니로 어지럽다. 어쩌면 작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포항 출신(동지여중·동지여상 졸업)인 할머니의 최종학력은 수도사범대학교(현 세종대) 국문과 중퇴다. 산골마을로 시집와 억척스런 삶을 살아오신 할머니의 바램은 소설 한 편을 제대로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위청동을 지나면서 길은 거칠어진다. 말라비틀어진 잡초는 허리춤까지 차오르고, 대나무 숲이 기존의 길을 잠식해버렸다. 마을이 사라지면서 인적이 끊겼으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가? 앞서가는 집사람에게서 난 저수하심 (低首下心)’이란 사자성어를 배운다. 교양이 있고 수양을 쌓은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남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저 움막의 용도는 대체 뭘까? 난로까지 설치되어있으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움막 아래에 농경지가 있는 걸로 보아 농번기 때 사용하는 농막일지도 모르겠다.

 길은 물기 하나 없는 개울을 두어 번 가로지른다. 장마철에는 길이 폐쇄될 수도 있을 듯. 그나저나 김봉난 할머니는 25세 때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이 길을 올라왔다고 했다. 울면서 올라오지나 않았을까?

 그러다보니 요런 앙증맞은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계곡은 넓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일구어 먹을 땅뙈기 하나 없겠는가.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묵밭 일색이었다.

 비록 잠시지만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무릎이 시원찮은 집사람에게는 지옥의 행군이 될 수밖에 없는 구간이다.

 ! 오백리길 표지기다. 트레킹을 시작하고 1시간 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오백리길 옥천구간은 앱(gpx트랙)의 도움 없이는 걸을 수 없다는 평이 난 이유일 것이다. 둘레길의 장점 중 하나는 지역경제에 대한 도움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백리길의 한 축을 맡은 대전시처럼 명품 둘레길로 가꾸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말티고개에서 하산을 시작한지 32분 만에 또 다시 시멘트포장 임도로 내려설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오른편 방향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5. 잘 지어진 전원주택이 보이는가 싶더니 장승이 반긴다. 뭔가가 적혀있으나 잠시 후 만나게 되는 또 다른 장승에도 같은 글귀가 적혀있으니 그냥 지나치도록 하자.

 초입에는 수문장 노릇이라도 하라는 듯 아예 쌍으로 세워두었다. 글자가 좀 틀리기는 했어도 방생정계(放生淨界)’ 호법선신(護法善神)’이라는 휘호까지 품었다. 매인 것(모든 생명체)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자비를 베푸는가 하면, 불법을 수호하고 성불을 돕는 착한 신이라니 이 집이 불국정토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음지에 들어선 집에서의 삶은 그리 녹녹하지만은 않을 듯...

 잠시 후 대여섯 가구가 모여 사는 아래청동의 본 마을에 이른다. ‘청마리는 예전의 갈마동리와 마티리, 청동리를 합쳐 만들어졌다. 그러니 옛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몇 걸음 더 걸으면 이번에는 금강이 반긴다. 강 건너는 지수리(안남면), 12구간의 후반부는 반대편인 저 강변을 따라 걷는다.

 이후부터는 금강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왼쪽 옆구리에 끼고서...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25(아래청동에서 10). ‘청마2교차로에 이르면 길이 둘로 나뉜다. 오백리길은 계속해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서 청마대교를 건너도 된다. ‘가덕교까지 올라간 오백리길이 다리 건너로 돌아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청마대교를 건너기로 했다. 가덕교까지 올라갔다가 반대편으로 되돌아오면서 만나게 되는 풍경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사람의 체력안배까지 감안했음은 물론이다.

 상류 쪽 풍경이다. 오른쪽 강변을 따라 가덕교까지 올라갔다가 반대편(왼쪽) 강변을 따라 다리 건너로 되돌아온다.

 하류 쪽 풍경. 다리를 건넌 오백리길은 이제 금강의 물 흐름에 발맞추며 내려간다.

 잠시지만 575번 지방도(안남·보은 방향의 안남로’)를 따른다. 이때 혜연스님의 화실이 있는 연관사를 스치듯 지나친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으나 그림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번쯤 들러볼 만도 하겠다.

 연관사를 줌으로 당겨봤다. 저곳은 그림을 도반 삼아 불법을 전해준다는 혜연스님이 주지로 있다. 스님은 1998년 한국화대전 초대전과 2005년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특선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단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35. ‘평촌삼거리에 이르니 이정표(안남면사무소 4.8/ 가덕 2.3)가 반긴다. 오백리길은 이곳 평촌마을 앞 삼거리에서 도로(안남로)와 헤어져 강변으로 간다. 참고로 이곳은 안남면의 행정 동리인 수동리(水洞里, 지수2)’, 물가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 평촌은 물가 들녘에 위치한 마을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조금 더 걸어 강변에 이르니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오백리길 나그네들에게는 이만한 쉼터도 없겠다.

 안내판은 이곳이 KBS의 예능 프로그램인 ‘12의 촬영지였음을 알려준다. 강변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출연자들의 사진도 함께 게재했다. ‘향수100리길을 소개하면서 이 부근 모래사장을 이용했던 모양이다.

 물가로 내려가는 길도 나있다. 지형으로 볼 때 여울(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곳)이라도 있었을 듯. 맞다. 누군가는 이 부근에 은응댕이 여울이 있었다고 했다. 여울 근처의 은행나무를 잘랐는데 그 그루터기 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음식을 먹을 정도로 굵었다나?

 이후부터는 강변길을 따른다. 왼편은 금강, 오른편은 구릉지에 가까운 나지막한 산자락을 끼고 길이 나있다. 그 사이에는 뜨락에 가까운 작은 들녘이 들어앉았다.

 맞은편에서 달려온 라이더들이 반갑게 인사를 보낸다. 맞다. 이 구간은 향수100리 자전거길이기도 하다. 옥천 출신 정지용 시인의 대표 시 향수(鄕愁)’에서 이름을 따온 이 길은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고 해서 자전거 동호인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자전거여행 길 30선()’에 뽑히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안남면사무소에서 금강휴게소에 이르는 18.6를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꼽았다나?

 이곳 지수리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설화가 하나 있다. 진벌 앞산에 묘를 쓰면 왕비가 난다는 것이다. 그게 또 육영수여사의 외할머니가 이곳에 묻힘으로써 왕비가 난다는 명당자리임을 증명해 주는 계기가 되었단다. 그래선지 양지바른 산자락마다 반듯하게 써놓은 묘들로 한가득이었다.

 오늘은 입춘(立春). 맹추위가 떠날 줄을 모르고 기승을 부리지만 계절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길가 농경지에 심어놓은 가축용 사료가 저리도 파릇파릇해진 걸 보면 말이다.

 반면에 강물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꽁꽁 얼어붙은 게 잘하면 도강도 가능하겠다.

 이렇듯 경관이 빼어난 곳을 가만 둘 인간이겠는가. 간판은 달지 않았지만 민박집으로 여겨지는 건물들도 눈에 띈다.

 저 헬기의 정체는 과연 뭘까? 누군가에게는 음풍농월을 즐기는 장소가 될 수도 있겠다. 박주에 소찬 놓고 시 한수 지어 곡을 부치니 이만한 풍류가 또 어디 있겠는가.

 삶의 근간이 되는 경제활동. 누군가의 이익은 누군가에겐 해가 될 수도 있다. 산림의 경제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벌목작업이 터줏대감이었던 저 나무들에게는 목숨까지 빼앗기는 아픔이 되었다.

 그렇게 25분쯤 걷자 민가 한 채가 나타난다. 100m쯤 전방에는 너덧 채의 민가가 더 있다. 첨부된 지도에 나와 있는 음지말이지 싶다.

 이곳에도 강가로 내려가는 길이 나있었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도태골 여울이 아닐까 싶다. ‘도태골이란 지명은 미산 마을 쪽 골짜기의 이름인 도태골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여울을 이용해 마을 사람들이 옥천 장에 나가기도 했고, 옥천에 볼 일을 보러 가기도 했단다.

 음지말 앞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안남면사무소 2.3/ 가덕교 4) 를 만났다. 이정표는 이곳 삼거리에서 왼쪽 들녘을 가로지르란다.

 미산(薇山)’ 마을은 그 들녘의 끄트머리에 들어앉았다. 원래 이름은 궐산’, 마을위의 산이 낮고 고사리같이 퍼져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어감이 좋지 않다 하여 고사리 미()’자를 써서 미산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마을 앞에서 만난 이정표(안남면사무소 2.1/ 가덕교 5)가 이번에도 왼쪽으로 가란다.

 마을을 지켜준다는 선돌도 만났다. ‘수살맥이라고 부르는데 마을을 수호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사람의 얼굴 모습과 흡사하도록 가장자리를 손질하였다고 한다.

 몇 걸음 더 걸자 이번에는 경율당(景栗堂, 충북유형문화재 제192)이 반긴다. 영조 때인 1735, 학자인 경율(景栗) 전후증(全后曾)이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율곡 선생의 학덕을 흠모하던 그는 자신의 호를 경율이라 하고, 서당 이름도 경율당이라 했단다.

 문이 잠겨있어 카메라에 건물의 외관만 담았다. 안내판은 정면 4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4면에 마루를 품어 전형적인 서당 형식을 보여준다고 적고 있다.

 경율당에서 오백리길은 금강을 완전히 벗어나 버린다. ‘종배마을로 이어지는 이 구간은 인삼밭 천지였다. 인삼의 주산지인 금산군과 어깨를 맞대고 살다보니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30. ‘종배(從培)’ 마을로 들어선다. 그리고 마을을 관통한다. 대부분의 둘레길은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들일 나가던, 옆 마을에 일보러 가던, 장보러 가던 길들을 모아 연결했을 뿐이다. 그러니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지나가도록 하자. 낯선 나그네에게 길을 열어준 그들에게 도움은 못 줄지언정 피해까지 끼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을안길을 걷다 또 하나의 귀하신 몸을 만났다. 정비가 잘 되어있는 대전구간과는 달리 이곳 옥천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이 눈에 띄니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을 뒤 작은 봉우리에는 정자가 올라앉았다. 덩치 큰 나무 아래라선지 빼어난 풍취까지 더해준다. 아니 이 마을에서 신목으로 모시는 느티나무일지도 모르겠다. ‘호무시(’호미를 놓는다는 뜻이란다)나무라 하여 보호되고 있으며 요즈음도 노인들을 중심으로 제사까지 올린다는 나무 말이다.

 저건 웬 시츄에이션? 밭에 잘 생긴 호박을 열을 맞춰 진열해놓았다. 그것도 바닥에 마분지까지 깔고서... 정부의 무한책임이 요구되는 요즘이니, 막혀버린 호박의 판로에 대한 시위일지도 모르겠다.

 동구 밖에는 마을자랑비와 함께 강릉 유씨의 효심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시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면서 서모까지 얻어주었는가 하면, 서모가 죽은 후 시아버지가 눈까지 멀자, 틈틈이 모은 돈으로 개안 수술을 시켜 주었고, 35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모셨다고 한다.

 오백리길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린다. 안남면 소재지인 연주리를 진행방향에 놓고 드넓은 들녘을 걷게 된다. 날이 풀리면 저 들녘은 푸름으로 넘칠 것이다. 그러니 12구간의 브랜드인 푸른 비단길은 저 들녘에서 탄생했지 않나 싶다.

 12분쯤 농로를 따르던 오백리길이 575번 지방도(안남로)로 올라선다. 하지만 도로를 따르지는 않고 농로로 다시 내려서고 만다. 시쳇말로 간만 보았다고나 할까?

 농로에 이어 안남천의 제방을 걷는다.

 농기계의 재활용? 움직임이 멈춰버린 경운기가 펌프로 다시 태어났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3시간, ‘연주교를 건너자 널따란 잔디광장이 나타난다. 안남면을 대표하는 공원으로 연주공원 또는 배바우공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배바우는 이곳 연주리(蓮舟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는 도덕리(덕실부락)에서 흐르는 냇가에 배()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데서 연유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배바우는 물속에 잠기게 될 것이며, 그 앞의 넓은 들은 호수가 되어 배를 띄우게 되고, 인포리에는 포구가 생긴다고 했다. 주민들까지도 믿지 않는 전설이었지만, 대청댐에 물이 차면서 수몰선(水沒線)이 이 배바위에 이르게 되었단다. 결국 배바위가 물속에 잠기는 것이 아니고 물 위에 뜨는 형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옛말 그른 게 하나도 없다고나 할까?

 지역공동체인 안남은 상상의 배인 배바우를 형상화했다. 안남의 역사와 함께 흘러온 금강에 두둥실 떠 있는 배이다. 배 위의 소녀상은 자치와 협동의 지역공동체를 의미한단다. 하나 되어 나아가는 안남이라는 꿈을 향해 스스로 노를 저어가는 안남 주민들의 힘과 의지를 표현했다나?

 안남면을 상징하는 조형물은 무지개로 표현했다. 일곱 개 색깔의 무지개처럼 7개 마을(연주리·종미리·지수리·도덕리·청정리·화학리·도농리)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공원에는 제신탑(원탑)도 있었다. 청마리의 것은 본떠 만든 것으로 여겨지는데, 청출어람이랄까 본물(本物)보다도 더 잘생겼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배바우장터가 열린다고 했다. 지역에서 발행하는 배바우 화폐를 이용할 시 20% 할인된 저렴한 가격으로 안남면 지역에서 생산된 싱싱한 농산물(·호두·마늘·호박·고추 등)을 구입할 수 있다니 한번쯤 시도해 볼 일이다.

 날머리는 안남면사무소(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장터 옆 안남면사무소에서 12구간의 트레킹을 마쳤다. 오늘은 11.27km을 걸었다. 가덕교까지 가지 않고 청마대교에서 금강을 건넌 덕분에 2km쯤 단축할 수 있었다. 소요시간은 3시간 10, 말티고개를 제외한 나머지 구간이 평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