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중국 동북부 여행

 

여행일 : ‘18. 6. 25() - 6.29()

여행지 : 중국 대련, 단동, 집안, 통화, 환인

일 정 :

6.25() : 대련(성해광장)

6.26() : 단동(압록강 철교), 집안(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환도산성)

6.27() : 통화(백두산 천지, 금강대협곡)

6.28() : 환인(오녀산성), 단동(유람선 투어)

 

여행 셋째 날 : 백두산 천지(白頭山 天池)

 

특징 : 단군 신화가 서린 백두산(장군봉, 2,750m)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그 중앙부에 넓고 파란 호수인 천지(天池)가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해발고도 2,500m 이상의 회백색 봉우리 16개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다. 이 가운데 6개 봉우리는 북한, 7개는 중국에 속하며, 3개는 국경에 걸쳐 있다. 절반 정도는 우리네 땅이라는 얘기이다. 그런데도 우린 중국 땅을 거쳐야만 천지에 오를 수가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의 땅,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닌 우리네의 현실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바쁜 모양인데, 그 바람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져 중국 땅을 거치지 않고도 천지의 아름다운 경관들을 구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백두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산해경, 山海經)은 불함산(不咸山)으로 적고 있다. 이후 기록에는 단단대령(單單大嶺개마대산(蓋馬大山태백산(太白山장백산(長白山백산 등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문헌에서 백두산(白頭山)에 관한 기록은 일연(一然)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에 태백산(太伯山)이란 이름으로 처음 나타난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쪽에서 살게 했다하여 '백두산'의 명칭이 문헌상에 처음 기록되었다. 한민족이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본격적으로 숭상한 것은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부터라고 추정된다.


 

통화를 출발한 버스는 4시간 남짓이 지난 후에야 해발고도가 900m나 되는 서파(西坡) 입구 주차장에다 우릴 내려놓는다. 서파의 파()는 언덕을 뜻한다. 그러니 서파는 서쪽으로 향하는 언덕 코스라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먼 거리라 하겠다. 아니 비행기에서 내렸던 대련에서부터 계산해보면 실로 어마어마한 거리를 달려온 셈이다. 그렇다고 백두산을 찾는 사람들 모두가 다 그런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에 문을 연 장백산공항을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파에서 18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여름 성수기에는 인천에서 장백산공항까지 직항 전세기가 운행된다니 말이다. 조선족자치주인 연길(延吉) 공항을 이용하더라도 대련보다는 훨씬 더 편하게 백두산을 둘러볼 수 있다. 참고로 이곳 서파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북파(北坡)의 베이스캠프 도시는 이도백하(二道白河이다. 북파 입구에서 30km쯤 떨어져 있다. 북파 외에 남파(南坡) 코스도 있으나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아직은 인프라가 덜 발달되어 불편하다하니 거론하지는 않겠다.




관리사무소 앞에는 엄청나게 큰 표지판 하나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백두산(白頭山)‘이 아니라 장백산(長白山)‘이란다. 조금은 서운하지만 두 나라의 경계선 위에 놓여있으니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거야 그들 마음일 것이다. 다만 남의 나라 땅을 통해서 우리네 영산(靈山)을 올라야만 하는 상황을 탓할 수밖에... 참고로 머리가 하얀 산이란 뜻의 백두산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흰색 부석(浮石)이 온 산을 뒤덮고 있어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1년 중 겨울이 230일 이상으로 정상에 흰 눈이 쌓여 있는 기간이 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중국인들은 백두산을 장백산(長白山)’이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같다.



너른 주차장을 빙 둘러 커다란 패널(panel)들을 세워놓다. 백두산의 아름다운 경관들을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편의시설들에 대한 광고판도 보인다. 이곳은 장백산 서경구(長白山 西景區)’,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유명 관광지이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들머리에 관광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천지와 고산화원, 금강대협곡, 금강폭포, 왕지 등 이곳 서파코스에 들어있는 관광명소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고 투어를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표를 사서 안으로 들면 원시림을 헤집으며 내놓은 산책로가 관광객들을 안내한다. 거대하지도 그렇다고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지도 않지만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삼림(森林)이 울창하기 짝이 없다.



숲을 통과하면 검표소(檢票所)가 나온다. 이곳에서 검표를 마친 사람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옥주봉 아래 해발 1,570m 지점에 만들어놓은 상부주차장까지 올라가게 된다.



천지를 보기 위해서는 셔틀버스를 타고 40km의 거리를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야만 한다. 이 길을 따르다보면 해발고도에 따라 식생(植生)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출발지점에는 소나무 등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자작나무와 작은 나무들로 바뀌는 것이다. 이보다 더 오르면 산은 드디어 초본식물(草本植物)들만이 자라는 공간으로 변해버린다.



40여분 후에 내리게 되는 주차장에서 본 주변은 작은 나무와 풀만이 존재한다. 흡사 초원에라도 들어온 느낌이다. 옥주봉 정차장의 높이가 2,200m나 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바람이 세차게 부는가하면 기온도 뚝 떨어진다. 차에서 내린 관광객들마다 두꺼운 파카 등 겨울옷을 입느라 분주하다. 우리 부부도 화장실을 다녀온 후 바람막이 옷을 덧입었다.





이젠 정상으로 향할 차례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전체가 계단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그 끝을 보이지 않는 채로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하긴 1,442개에 이른다니 끝이 보일 리가 만무하다. 아득하기만 한 정상을 향해 길을 나선다. 저 계단을 다 올라야만 정상에 이를 수가 있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고 북파(北坡)는 걷지 않고도 천지까지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셔틀버스를 타고 주봉 승차정류장(主峰乘车站)까지 간 다음에 지프차로 갈아타고 천문봉(天文峰, 2,679m) 아래에 있는 전망대(展望臺)까지 올라간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비룡 폭포(飛龍瀑布) 옆에 있는 등산로를 이용해 걸어 올라갈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등산로가 완전히 폐쇄되어 지프차를 이용해야만 한단다.




계단은 두 줄로 놓여있다. 하나는 나무계단, 다른 하나는 돌계단이다. 원래의 돌계단이 밀려드는 인파를 해결 못하자 나무계단을 하나 더 놓은 게 아닐까 싶다.



계단의 입구에는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900m라면서 총 1442개의 계단이 놓여있단다. 내딛는 발걸음을 조심하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고 적어 넣었다.



계단이 완만하기 때문에 오르는데 크게 힘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선지 계단에 적힌 숫자까지 눈에 들어온다. 130. 135, 140... 다섯 개 단위로 숫자를 적어놓아서 자신이 어디쯤에 오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길가에 가마가 놓여있다. 가마꾼으로 보이는 사람이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 걸로 보아 오르다가 힘이 부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가마는 주로 몸무게 때문에 산에 오르기 힘든 사람들이 이용한다. 하지만 가마꾼들에게는 이들이 기피의 대상이란다. 그렇다고 뚱뚱한 사람들이 가마를 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저 가마꾼들은 손님이 타지 않으면 끼니를 굶을 수도 있을 것이니 아이러니(irony)라 하겠다.




잠시 후 날씨가 우중충해지기 시작한다. 비가 내리기 전에 천지에 이르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올라본다. 등산으로 단련된 우리 부부인지라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이내 비가 내리고 말았다. 준비해온 우의를 입고 달리다 걷기를 반복해가며 빠르게 올랐다.





오르는 길목에는 폭설이나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가림막 시설도 해놓았다. 난간에 빗대어 장의자를 만들어 놓았는가하면 천지의 사계(四季)를 담은 사진을 게시해 두었다.





좌우 산자락은 나무 한 그루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적 작은 초본식물(草本植物)들만 보일 따름이다. 해발 2,000m를 훌쩍 넘기는 곳이라서 나무가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긴 겨울이 매우 길고 추우며 여름철에도 20를 넘기지 않는데다, 특히 겨울철에는 -47까지 기온이 내려가기도 한다니 어찌 나무가 자랄 수 있겠는가.




산자락에 주아료(珠芽蓼)’의 자생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아래는 ‘polygonum viviparum L.’라고 적혀있다. 학명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본류인 씨범꼬리로 불리니 참조한다. 간염, 장염, 만성기관지염, 구강염, 인후염 등에 약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서 자생하는가 보다.



푯말 근처에서 야생화를 만났다. 백두산은 산자락에 초지가 형성되어 있는 탓에 저런 희귀 야생화가 많이 자생한단다. 담자리꽃나무, 각시투구꽃 등의 한대성 식물과 금방망이, 분홍노루발풀 등 냉대성 식물을 볼 수 있다는데 야생화에 문외한인 내 눈에는 그게 다 그거로 보일 따름이다.







계단의 끄트머리에는 묘한 문구의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해발 2,470m인 이곳의 높이를 적어놓고, 그 위에다 등정성공(登頂成功) 아진봉(我真棒)이라고 적고 그 오른편에는 엄지를 세운 주먹을 그려놓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등정 성공, 엄지 척!’이 아닐까 싶다. ! 그러고 보니 올라오면서 만났던 알쏭달쏭한 글들도 이제 반 왔다’, ‘이제 3분의 2 왔다등이었던 모양이다.



20분 정도 걸려 오른 산정에는 커다란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북한과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에 세운 경계비란다. 빗돌의 숫자 ‘37’‘37호 경계비를 뜻한다. 통상 ‘5호 경계비라고 부른다. 1990년에 세운 비에는 ‘5’라고 적혀 있었는데, 2009년에 바뀌었단다. 북한과 중국이 국경공동조사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2009년에 경계비를 갱신하고 번호도 바꾸었다고 한다. 37호 경계비에서 반대편 자하봉과 쌍무지개봉 사이에 있는 ‘38호 경계비(통상 6호 경계비)’를 직선으로 이으면 천지를 가르는 북·중 국경선이 된다. 9월의 ·북 정상회담과 이어 열린 ·미 정상회담의 훈풍이 국경선의 긴장감을 조금씩 녹이고 있다. 대북 경제제재가 풀리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야 가능하겠지만,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조업 재개와 백두산 관광 개시를 기대하게 만드는 분위기만으로도 반갑다. 대립과 긴장의 국경선이 우호의 접합점, 나아가 양쪽의 영역을 넓혀주는 확장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참고로 백두산의 60%는 중국 땅이고 40%만이 우리나라 땅이라고 한다. 1962년에 중국과 북한 정부가 영토의 경계를 나눈 결과란다. 하지만 가장 높은 장군봉은 우리나라 땅에 위치하고 있다. 그 덕분에 올라가볼 수가 없지만 말이다.




경계비를 중심으로 북한 쪽은 텅 비어 있고, 중국 쪽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북한쪽은 사람들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놓았기 때문이다. 이곳 서파(西坡)는 지난 9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오른 곳의 대척점으로 보면 되겠다. 남과 북이 애초 약속대로 시행했다면, 북한 쪽으로 백두산을 오르는 게 소원이었다는 문대통령의 꿈은 앞당겨 이뤄졌을 터다. ·북은 20057월 개성 및 백두산 관광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의 ‘10·4 선언’(6)에서는 백두산 관광을 위한 직항로를 열기로 했으며 그해 11월 현대아산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가 관광 합의서를 작성하기에 이른다. 곧이어 정부 합동실사단의 현지답사까지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20087월 금강산관광 중단을 시작으로 남북관계가 끊기면서 미뤄졌다.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정상에 만들어놓은 널따란 전망대는 혼잡한 저잣거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한국인들이다. 떠들썩한 소리가 온통 우리나라 말인 것이다. 가끔은 악센트 강한 중국어가 들리기도 하지만 아주 드문 편이다. 흡사 우리나라에 있는 유명관광지에라도 온 느낌이라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관광지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이 먹여 살린다고 하던 어느 기자의 말이 생각난다. 하물며 이곳은 한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이 아니겠는가.



서파에서의 조망은 북파보다 한 수 위라고 했다. 북파보다 완만한 지세에서 천지를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사위는 온통 구름에 잠겨버렸다. 구름이 얼마나 짙던지 10m만 떨어져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저 전망대 옆에 있는 바위봉우리만이 구름 속에서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문득 현지 가이드들 사이에 바이블(Bible)처럼 떠돈다는 천지는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만 볼 수가 있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그만큼 제대로 된 천지를 만나는 게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천지 방향의 난간 앞에 섰다. 가슴이 쿵쾅대고 숨이 멎는 듯 했다. 하지만 눈앞은 텅 비어있다. 아니 짙은 구름만이 가득할 뿐이다. 웅장하고 푸르며 고요할 천지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언젠가 자연이 허락한 사람만이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맞았던 모양이다. 30분을 기다려봤지만 날씨는 끝내 개이지 않았다. 하긴 1년 중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이 고작해야 40여 일에 불과하다니 어쩌겠는가. 그저 천지에 대한 상식이나 떠올려 볼 뿐이다. 천지는 화산폭발이 빚어놓은 산물이다. 260만 년 전에 분출한 용암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면서 넓은 면적의 평탄한 땅을 만들었고, 용암이 다시 분출하면서 높은 봉우리를 형성하였다. 그 후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면서 분화구(噴火口) 주변이 무너지고 넓어졌으며 그곳에 물이 고여 천지가 되었다고 한다.



구름으로 인해 보지 못한 천지의 실경(實景)을 다른 분의 사진으로나마 대신해 본다. 백두산 천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칼데라 호수(Caldera Lake)’이다. 화산 분출 후 화구가 함몰되면서 생긴 호수를 칼데라호라고 하고 화산 분출구에 물이 고여 생기는 호수를 화구호(火口湖, crater lake)‘라고 한다. 한라산 백록담은 화구호이고 백두산 천지는 칼데라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넓은 칼데라 호수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토바호수(Lake Toba)‘ 수심이 500m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백두산의 천지도 최대 수심이 384m나 되며, 평균 수심도 213m로 그에 버금간다고 한다. 둘레 14.4에 수량은 20억 톤에 달한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내려오는 길 쭈그리고 앉아 카메라의 셔터를 열심히 눌러대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꽤나 많은 종류의 야생화들이 사방에 피어났다. 문득 얼마 전 술자리에서 만난 지인(知人)이 침을 튀겨가며 떠들어대던 얘기가 생각난다. 천지로 오르는 코스가 남··북 등 세 곳이나 되는데도, 굳이 이곳 서파(西坡)를 찾는 가장 큰 이유가 6~8월 들판에 만발한 야생화를 보기 위해서라던 얘기가 말이다. 야생화가 사라진 계절에는 그 아름다움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그런 꽃 잔치를 볼 수가 없었다. 가이드가 야생화들이 꽃 잔치를 벌인다는 고산화원(高山花园)을 투어 코스에서 아예 빼버렸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꽃이 피지 않았단다. 해발고도가 더 높은 이곳에도 저렇게 꽃이 피어났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패키지여행이라는 게 본래 가이드 맘대로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큰원추리와 하늘매발톱, 개불알꽃 등 1,800여 종의 야생화가 자라고 있는 고산화원은 7월 중순에서 8월 초에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매년 7월 초에는 야생화 축제까지 열린단다.







되돌아 내려온 상부 정차장에는 어느새 먹거리촌이 들어서있다. 하지만 난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입이 짧은 탓에 자칫 배탈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휴게소까지 지나칠 수는 없었다. 기념품은 물론이고 음료수와 과자, 초콜릿, 옥수수 등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사람을 옥수수, 난 캔 맥주 하나를 주워들고 정차장으로 향한다. 요기는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이틀을 머물렀더 통화의 한림원호텔(瀚林園, Hanlinyuan Hotel), 통화(通化)시는 중국 길림성(吉林省)에서 세 번째(장춘과 길림 다음)로 큰 도시로써 예로부터 인삼의 고장’, ‘한약의 고장’, ‘우수한 쌀의 고장’, ‘와인의 고장’, ‘스키의 고장등 여러 가지 별명으로 불리어왔다. 특히 고구려 유적이 몰려있는 집안(국내성)도 통화지구에 속하기 때문에 고구려 유적의 고장라고 불리기도 했다. 때문에 우리나라 여행자들에게 있어서는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지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숙소 또한 이곳을 이용하게 된다. 볼 만한 관광지는 비록 없지만 집안에 비해 숙소가 많고 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호텔은 우리나라 모텔수준으로 보면 되겠다. 하지만 객실은 두 사람이 쓰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널찍하고 와이파이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커피포트가 비치되어 있어 커피를 타거나 라면을 끓여먹는데도 불편함이 없다. 세면도구 또한 완벽히 갖추어져 있다.



에필로그(epilogue), 숙도로 돌아오는 버스, 천지를 구경 못한 관광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시무룩한 표정이다. 이때 스피커를 통해 가이드의 조크가 들려온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를 아느냐는 것이다. 그리고는 백 번을 올라야만 천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맞다. 높은 고도 탓에 백두산의 날씨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바뀐다. 그러니 속살을 보는 일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그 말을 듣고도 얼굴이 풀리지 않았던지 또 다른 질문이 건네진다. 천지에 괴물이 있다는 게 사실이겠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반반, 하지만 그의 대답은 아니란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천지의 괴물 이야기는 중국 정부가 백두산 관광객의 유치를 위해 유포하는 치밀한 계산이라는 것이다. 설마 정부차원에서 그런 일을 저지르겠는가마는 마냥 웃고 넘길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그건 그렇고 2016SBS-TV물은 생명이다탐사팀에서도 백두산의 수질에 대한 정밀검사를 한 일이 있었다. 결론은 너무 추워서 큰 괴물의 생존 가능성은 도저히 없다로 났다는 것도 알아두는 게 좋겠다.